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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집 - 니 맘대로 내 맘대로
실키 지음 / 현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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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태어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집. 집이 단 하나의 공간이 아니듯이 그 안에 있는 물건들도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같은 신발장이라 하더라도 어떤 집에서는 번듯한 장의 형태를 가졌던 반면 어떤 집에서는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산 5단짜리 조립식 플라스틱이었고... 이런 식으로 집의 물건들이 내게 환기하는 기억이나 감각은 다만 한 가지가 아니다.

실키 작가의 신간 <단어; 집>을 보면서 그런 식으로 단어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단어집"처럼 여러 단어에 대해 뜻을 정의하고, 그런 "단어"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집"을 짓는다. 챕터는 현관, 거실, 욕실, 침실 등 집에 있는 공간대로 구분되어 있고 각 챕터에서 우리는 그 공간과 관련이 있는 실키 작가의 단어들을 읽게 된다. 현관에서 우리를 맞이하여 가장 깊숙하고 내밀한 침실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단어집을 통해 우리를 자신의 내면으로 초대한다.

어떤 정의는 시적이다. 이를테면, 작가는 [사랑]을 "내가 너를 얼마나 참아주는가."로 정의했고, [혼자]에 대해서는 "대부분 몸이 혼자이고 싶지만 / 마음이 혼자이고 싶진 않아요."라고 썼다. 그런가 하면 다른 정의는 좀 더 산문적이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밤] 같은 단어가 그렇다. [효과음]처럼 가벼운 정의도 있고, 어떤 것들은 만화로 표현되어 있다. 쉽게 읽을 수 있겠거니 하고 펼쳤는데 멈칫멈칫하게 되는 페이지가 꽤 있었던 이유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책이기 때문에 작가의 정의에 나름의 대답을 해보며 읽게 된다. 각 페이지의 여백에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면서 함께 단어집을 완성해 나가도 좋을 것이다.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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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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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0년 동안 빅토르를 사랑한 크리스틴. 하지만 동성애자인 빅토르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10년 동안 크리스틴은 스물일곱 명의 애인을 만나면서도 여전히 빅토르를 향한 마음을 지키고, 결국 그의 운구차에 홀로 올라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이 소설은 빅토르의 사망일부터 크리스틴이 운구차를 타는 다음날까지의 하루를 그린다. 독자는 그 하루 동안 크리스틴과 함께 10년의 시간을 되짚게 된다.


이 작품의 프랑스어 원제 <L'Homme de peine>는 직역하면 '고통의 남자'다. 이는 크리스틴이 빅토르를 바라보는 시선을 함축한다. 유명한 이름들의 주변부에 머물고, 근육 경직으로 괴로워하며, '정상'의 경계 밖에 있는 빅토르. 크리스틴은 그를 고통받는 존재로 보았고, 구원의 대상으로서 사랑했다. 나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결국 자신의 결핍이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틴은 '사랑하는 존재'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 결핍은 애초에 응답받을 수 없는, 불가능성을 내포한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다. 물질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헌신하며 청혼까지 한 아쉴을 통해서는 그 욕망을 충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빅토르 역시 이 점을 간파했다. 그는 크리스틴의 청혼에 "난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서, 오로지 내게 충실하라고 너에게 강요하게 될 거야."라고 답한다(86). 그녀가 자신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너에게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188)." 유르스나르도 <은총의 일격>에서 게이 남성을 사랑한 여성을 등장시킨 바 있다. 이어 빅토르는 "내 얘기를 써봐."라고 말하다가, 끝내는 "넌 날 몰라.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거야."라고 고함을 지른다(190). 크리스틴의 욕망이 실은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는 단지 스스로의 욕망을 빅토르라는 대상에게 투사하고 있었을 뿐임을 알았던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신'을 욕망하는 크리스틴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더이상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없다. 때문에 빅토르는 크리스틴의 청혼에 "(...)내가 죽은 다음에 하든지(86)."라고 말하고, 그 말을 실현시킨다. 마지막 길을 함께할 여행자로 크리스틴을 지목하여, 그녀에게 "함께 보내는 최초의 밤(244)"을 선물함으로써. 크리스틴의 '불가능한 사랑'을 완성시킴으로써 그 감정의 구조를 해체하고, 그녀를 해방시킨 것이다. 이 일을 죽음 이후로 미룬 것은, 계속해서 사랑하는 상태이고 싶었던 크리스틴의 욕망을 존중하고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년 동안이나 짝사랑을 한 건 어쩌면 크리스틴이 아니라, 그녀의 욕망을 가장 잘 이해한 빅토르였는지도. 


그래서 다시, <고통의 남자>를 생각한다. 자신을 향한 듯하지만 실은 굴절된 사랑을 10년간 받는 일 또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거울처럼 자신을 투사하는 크리스틴을 바라보며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성적 지향이 교차하고 욕망이 어긋날 때, 사랑은 어디서 어떻게 피어나고 변형되는가. 그 모든 감정 중,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고 무엇을 사랑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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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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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알고 지냈고 그 중 6년은 함께 살기까지 했던 친한 언니 고수미에게 돈을 떼인 손열매. 열매는 우울증을 얻고, 목소리가 떨려 직업인 성우 일도 못하게 될 지경에 이른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던 중, 고수미의 고향인 완주마을로 찾아가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예상할 수 있듯, 열매는 완주마을에서 수미를 만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회복한다. 그러니까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소설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으로 다시 치유받는 이야기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어저귀의 말대로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돕고 싶어 하고, 그런 친교적 조력을 통해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서로에게 친교적 조력만을 행하지는 않는다. 열매는 수미 언니에게 돈을 떼이는 바람에 거리에 나앉게 생겼고, 완주마을에도 돈의 논리 앞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갈라 놓고 만 그 해의 장마처럼, "자연은 때론 친교적 선의를 가지고 손을 내밀지만 때론 환경적 조건의 반응 외에는 어떤 기제도 없는, 생명과는 무관한 존재들처럼도(171)" 느껴지기 마련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아니, 어저귀의 표현을 빌자면, '유효'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열매는 그 여름, 소나기처럼 많은 변화들을 겪으며 색다른 버전의 여름을 '유효'하게 경험한다.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도 한다는 것, 자연도 늘 우리를 품어주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온몸으로 겪는다. 그리고는 앓는다. 우리가 이 생을 진정으로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아닐까. 그렇게 앓고 나서야 열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 여름을 지나며 익어간다. 겨울의 눈과 봄의 비와 여름의 볕과 가을의 서리를 다 견디고 나서야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이 여름이 열매의 마지막 여름일리 없다. 앞으로도 열매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많이 상처입을 것이며, 수없이 많은 장마를 지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어?(212)"하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열매가 이 여름을 지나며 겪은 일들은 가슴 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단단한 씨앗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올 여름이 힘겹지 않을 리도 없다. 유효하다는 건 그런 일이다. 우리 모두, 유효한 죄로, 그런 순간들을 계속해서 살아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인생과 자연의 섭리 앞에 무력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때마다 작품 속 디제이의 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내야지.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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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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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좋았다. 듣는 소설로 기획되었다는 걸 알고 읽어서 그런지 표현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듣지 않고도 들려오는 소리들, 보지 않아도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 코 끝에 어리는 냄새들... 오감으로 읽었다. 오디오북으로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경험할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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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셜리 1~2 세트 - 전2권
샬럿 브론테 지음, 송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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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디자인! 기대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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