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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장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가의 작가라면, 그리고 문화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아온 국가의 작가라면 그들은 독자에게, 그 국가라는 틀의 문화 속에서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으로 읽혀진다. (망명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도 심지어 국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국가들, 이를테면 그 국가에 대해 전쟁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없는 국가라면, 혹은 엑소두스나 창세기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 국가라면, 말이 달라진다. 동 시대를 사는 작가의 작품은 '그 나라' 전체로 읽혀지기도 한다. 편견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다. 왜냐면 그 안에 나오는 인물, 배경, 사건들은 작가가 사는 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스라엘 작가인 케레트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많은 작가들을 떠올렸다. 루슈디도 떠올렸고, 키리니도 떠올렸다. 그의 얼굴, 나이, 성별을 모른채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밟아온 전적을 생각해보게 한다는데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고 생동감있는 일이기도 하다.
서른 여섯편의 짧은 소설들은, 그것이 마치 단상인 것 처럼 읽히기도 하며 그러다가도 그저 수다스러운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그 성향이 더 잘 드러난다.
아모스 오즈나 데이비드 그로스만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이스라엘 문학이 방대하고 유장한 서사로 국가와 사회의 거대 이슈를 다루는데 비해, 그는 기발한 설정의 짧은 소설에서 마치 친구 사이에 나누는 술자리 대화처럼 꾸밈없고 일상적인 문체로 현대인의 실존적 혼란을 그린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대면하는 순간을 유머로 버무려내는데, 그리하여 우리는 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어떤 공포, 어떤 슬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말을 들으면 그의 문학적 보편성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현대 이스라엘이 직면한 위험, 즉 막연한 분노와 고용 불안, 돌연하고 이유 없는 폭력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실존적 딜레마다."
빛나는 문장들을 몇개 골랐지만 사실 문장들보다는 설정의 기발함이 더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짧은 소설의 무게가 전혀 가볍지 않다.
이 모든 기술에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다. 눈썹은 생각한다. 인터넷을 발명한 사람들은 천재였고 아마도 인간성을 진일보시켰다고 믿었을 테지만, 결국 사람들은 연구를 하거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4학년때 짝이었는 불쌍한 남자를 괴롭히는 데 이 발명품을 쓴다.
치과의사가 되는 것과 배관공이 되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지? 둘 다 냄새나는 구멍에서 일한다. 구멍을 내고 구멍을 메우면서 먹고 산다. 둘 다 벌이가 괜찮다. 그리고 둘 중 어느 쪽도 자기 일을 즐기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눈썹의 일이 '아주 존경받는'것이고 그 존경을 얻기 위해 오년간 나라를 떠나 루마니아에서 공부해야 햇다는 사실만 빼고는. 배관공은 아마 시간을 조금 덜 투자했어도 될 것이다.
아내는 버벅거린다. 자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카메라를 힐끗 거린다. 하지만 별로 문제될 건 없다. 언제든 편집하면 되니까. 바로 이게 방송의 좋은 점이다.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아내를 편집하거나 지워 없앨 순 없다. 오로지 신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