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시
고두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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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7년 시 읽는 CEO를 읽었을 때 이 책 참 좋다. 했었는데 베스트셀러로 등극되고 시가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서 참 좋았다. 나도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 밖에는 모르지만 내 주변에는 나보다 더 시를 모르는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서와 인문, 지식 습득에 기준을 두고 책을 읽기 때문에 시는 정말 재미를 위해서도 제일 뒤쪽으로 밀리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시가 돌아왔다. 6년만에 돌아온 그가 이제는 잠시 멈춰 숨 고를 나이, 가슴 뛰는 시를 만나라고 조언하고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시 읽는 CEO에서도 신입사원들에게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라는 시를 읽어주며 창의력은 창가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해 주라고 시작하지 않는가. 망설이는 후배에게는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읊어주며 어깨를 두드려주라고. 하듯이 이 책도 딱 마흔, 중년이 되어야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삶을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약간 지치고 힘이 드는 우리들에게 잠시 시 한 편을 읽고 다시 재충전해서 열심히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1.흔들릴 때마다 시가 내게로 왔다.

2.그리운 것들은 모두 시가 된다

3.모름지기 사랑이란 뜨거워야 한다

4.더 늦기 전에 가슴 뛰는 시를 만나라


이런 구성으로 만들어지고 각 파트마다 열다섯편씩 총 60편의 시가 이 책 한 권에 들어있

다.시인의 해설과 작은 내용이 함께 덧붙여서 있어서 시를 이해하기에도 생각을 하기에도 좋은 구성이다. 또한 글 사이사이에고 직접 지은 시와 다른 시의 일부분이 나오니 다 헤아리면 더 많은 시가 나온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시를 읽으면서도 우리 부모님은 건강히 잘 살아계시지만 나도 모르게 주루룩 눈물이 흘렀고,

가을에 -오세영 은 이 계절에 너무 어울리는 공허만 마음을 그러나 따뜻한 자연과 풍경과 함께 하는 마음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애절한 사랑시는 정말 가슴아픈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올해 102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다 도요의 시는 큰 힘과 용기를 준다.

좋아하는 길이라면/울퉁불퉁한 길이라도/걸어갈 수 있어/힘들어지면/ 잠시 쉬며/하늘을 보고/쭉/걸어가는 거야/따라오고 있어/당신의 그림자가//힘내/하고 말하면서 <길-당신에게 전문>


국민애송시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 노래는 이제 다가오는 겨울에 어울리며 다시한번 애송하게 한다.


시 읽는 CEO를 자주 가끔 꺼내 보면서 시를 읽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 책까지 두 권이 생겨서 좋다. 시는 정말 우리 삶 가까이에서 삶을 넉넉하고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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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무게[HEFT]란 단순히 Weight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짐이 되는 것, 고통스럽게 짊 어지고 나가 하는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복잡하고 힘겨운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 진지하고 심각하며 중요하게 여거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작가는 서문에서 밝혔다.  [HEFT]제목에 대한 고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였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왠지 모르게 주인공 아서에게 감정이입을 넘어서 몰입이 되었다.  고독하고 외롭고 슬픈 그의 모습이 마치 내 자신인 것 같아서 자꾸자꾸 슬퍼졌다. 


아서의 편지로 글은 시작된다.  몸무게는 220~270킬로그램 사이인데 정확한 몸무게는 특수 저울이 필요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전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18년 전에 그만 두었고, 10년 전 부터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느날 뉴스를 보다가 너무나 외로워져서 현관 계단 밑에서 앉아서 한시간동안 있었는데 얘기를 나눌 사람이, 전화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이후 집을 나갈 필요성이 없어지고 철저하게 은둔자가 되었다.  그 후 집에라는 고치 안에 머물며 음식을 먹고, 또 먹고 점점 더 비대해졌다. 설명은 없지만 그가 외롭고 허한 마음이 들때마다 음식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부분이 나오므로......


가끔 그에게는 편지를 주고받는 여성이 있었으니 20년전에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 샬린이다. 

몇년에 한번씩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곤 했는데 그녀는 그의 사랑이였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편지를 주고받는 중에는 자신이 일을 그만둔것도, 집에만 머물고 있는것도 거대해졌다는 것도 그 어떤 사실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이가 적건 많건 사랑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고, 초라하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말하지 않는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 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이 그들을 사랑하게 했다.  평생을 통틀어 나보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을 딱 하나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샬린 터너였다. 샬린의 눈빛에서 외로워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는 아서의 고백.


아서와 샬린 가끔씩 전화하고 편지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힘을 주곤 했던 두 사람.

꼭 얼굴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소통으로만으로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두 사람.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샬린은 어느날 아서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겠다고 한다.

그리고 아서의 기다림이 시작되고,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서와 샬린의 첫만남. 데이트. 그리고 그 후의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 샬린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야구를 아주 잘하는 고등학생이다. 야구를 뛰어나게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지만 혼자 남게 될 엄마가 걱정되서 대학를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소년이다. 책은 켈과 아서가 시점을 바꾸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국은 둘이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을 계속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아서는 외부와 단절하고 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늘 자기전에 밤에는 똑같은 기도와 다짐을 한다. 

" 내일은 제대로 먹게 해주세요. 건강하고 착하게 살게 해주세요. 언젠가는 집 밖을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

외롭고 외롭지만 그 누구에게도 전화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집에서만 생활하게 된 그이지만, 관계에 대한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아주 소박한 그러나 그래서 더 절실한 그의 희망. 그의 기도에 응답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누구나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보이고 왜 나만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들까에 대해 고민하고 의기소침해지고 또 나만 외롭다는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기도 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고민이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유명한 시 구절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가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은 외롭다고 울부짖거나 말하지 않는다. 그냥 그 감정이 구구절절 느껴진다. 

읽는 동안은 이 가을과 참 어울리는 쓸쓸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이 책은 가을과 잘 어울린다.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쁘게 지은 멋진 집에 있는 아서를 생각한다. 그리고 켈과 율란다와 옆집 부부와 함께 가든 파티를 하고 있는. 그리고 살짝 미소지으며 맛있는 음식을 한조각 입에 머금고 있는 그의 미소가. 



16~17쪽

뉴스를 보다가 너무나 외로워져서 현관 계단 맨 아래에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있는데얘기를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세상이 그대로 끝날 것만 같았어요.

 서글픔과 그리움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연민이 나를 짓눌렀어요내게 자신에 대한 연민과 타인에 대한 연민은 대게 같은 감정이에요두 발이 내 몸무게를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서 있다가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날 나는 아무에게도 전화할 사람이 없었고 내게 전화한 사람도 없었으니 집을 나갈 필요가 없었던 거죠그날 이후 난 철저하게 은둔자가 되었어요어쩌면 그래서 내가 점점 더 비대해지고 집이라는 고치 안에 머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31쪽

우리 두 사람을 서로에게 이끌어 함께 있게 한 것은 결국 외로움이었다샬린이 강의실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그녀의 외로움을 감지했고내가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샬린 또한 내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247

매일 밤 나는 내일은 달라지고 새로워질 거라고좀 나아질 거라고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고 자신에게 말한다어쩌면 내일은 산책을 하거나조깅을 하거나아니면 예전에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했던 그 뭣 같은 먼지투성이 스텝머신을 침대 밑에서 꺼낸 다음 몸에 딱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은 전문가가 텔레비전에서 하던 동작을 따라 해보겠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57

올가을 샬린이 내게 전화하기 전욜란다가 내게 오기 전, 10년 동안 철저하게 혼자 지내면서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 있었다그래음식도 있긴 했지만그것 말고도 내게는 외로움의 대령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세상의 외로운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면 의지할 수 있다는 생각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에는 달콤한 낭만이 있으며 그래서 내가 더 고결한 거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내 고독에는 목적이 있다고틀림없이 그렇다고.


358

내 삶을 통틀어 나처럼 외로워 보이는 사람을 딱 하나 만났는데그게 바로 샬린 터너였다그녀를 만난 순간 나는 생각했다당신도샬린의 눈빛에서 그녀 역시 외로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 때 샬린은 나보다 더 외로워했다난 그걸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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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 1 : 사랑 하나 못하는 놈 - 상 - 지구에 닥친 대격변(大激變), 그 이후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대서사시
곤도사 지음 / 좋은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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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가페는 절대적 사랑 입니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조건없는 사랑를 하는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이 소녀를 사랑하고 소녀를 지키고 싶어했지만 어떤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하게 이어져갑니다.


소년과 소녀의 첫 만남은 흡사 영화 늑대소년을 떠올리게 합니다. 겁에 질린 눈빛, 약간은 경계하는 모습 그러나 용기를 내어 다가가는 늑대 소년이 이 소설에서는 소녀의 모습니다.

소녀를 지키고자 소녀를 따라다니고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싸움을 하는 모습에서는 소년이 늑대소년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 가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주인공 소년 쳐리는 그런 아이입니다. 전설속의 살인마 잭의 아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악한 기운이 자신의 속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소년은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은 죄를 범하지 않을거라고 다짐하며 , 착한 아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자랍니다. 그러나 악은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다가옵니다. 일련의 사건을 격은 후로 소년 은 기억상실증과 실어증의 증상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고 더 큰 어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소년을 생각하는 소녀가 있습니다. 소녀는 소년보다 자신이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소년보다 공부도 더 잘했고, 소년이 저지른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행동이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한 행동임에도 소년에게 왜 그랬냐고 소리를 지르고 책망하여 소년이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후회 합니다. 왜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었던 오빠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소년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만나서 사과 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아프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며 하루 이틀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소년 소녀 외에도 매력적인 매우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환보좌관, 딘보좌관, 혜나중사, 기추와 여비. 르화 교주......

공감이 되는 인물도 많고 멋진 인물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소년 소녀를 위한 주변인물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역동적인 인물들 입니다.


판타지의 상상력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생명체 들도 만들어 냅니다.. 하늘을 지배하는 지즈, 바다를 지배하는 리워야단, 땅을 지배하는 베헤모스. 본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동물들이 나오며,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 나무. 마력석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하고 에너지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바이블이라는 무기로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바이블을 가진 자들은 일반인 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그간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일정 분야의 소설만을 그동안 읽어왔다는 것입니다. 장르문학으로 불리는 특히 판타지로 분류되는 새로운 형식의 글을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가 만든 세계에서 그가 만든 인물들이 되어 보는것. 그것이 판타지 문학이 주는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곤도사가 초대하는 그의 세계관 속으로 함께 빠져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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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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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7년의 밤에서는 세령시를 묘사하더니 이번 작품에서는 화양시가 주 배경이다. 

작은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실하고 세밀하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수법을 구사한다. 

전작도 영화화하면 참 좋겠지만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재형 링고 동해 윤주 수진 기준 등 다인칭 시점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시점에서 상황을 묘사하고 그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늑대개 링고의 시점이 특히 더 몰입이 되었다. 

개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간호대학을 나오고 간호사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문학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멋지다. 멋지다. 멋지다.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들이 살처분 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친숙한 친구인 개(강아지)에게서 정체모를 전염병이 걸린다면 인간은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하는 의문에서......

나도 걸리도 너도 걸리는 누가 걸릴지 모르는 질병이고 어디서 와서 어떨게 사라졌는지 모르는 그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재형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재형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수의사로 개를 가장 사랑했던 그러나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밧줄을 놓아버렸던 그의 마음에 심심한 위로를......


 OST도 참 좋다. 특히 링고의 테마. 


[밑줄긋기]

347쪽

"욕망이 없다면 잃어버릴 것도 없어. 잃을 게 없다면 두려움도 없고. 드림랜드에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잃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적어도 그때보다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472쪽

일상을 멈추라...... 그의 위장 속에서 조약돌 같은 것들이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그것이 웃음과 분노라는 걸 목젖이 열린 후에야 알았다. 기준은 낄낄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기둥 구조물에 등을 기대고 발아래 차량들을 내려다보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일상을 멈추라니. 살아남은 자가 몇이나 되는지도 모르는 곳에 와서 일상을 멈추라니.

화양에서 일상을 앗아간 세상은 화양을 잊은 것 같았다. 죽은 자를 땅에 묻듯, 시간과 망각 속에 화양을 매장해버린 후 자신들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화양에 대한 뉴스는 점점 줄어들었다. 곧 시작될 브라질월드컵 얘기에 밀려 어느 날엔 아예 언급도 없이 넘어가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날 새벽’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날 새벽, ‘700미터 구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진상이 밝혀지려면 기나긴 세월이 지나야 할 터였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일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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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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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이 좋다. 

첨 책을 보고선 왜이리 얇아! 하고 투정을 했다. 예상대로 한두시간이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여운이 남는다. 생각이 남는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된다. 

이 소설의 마력이다. 


치매에 걸린 70살의 연쇄살인범이 일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한다. 

치매에 걸려있기에 책은 여백이 많고 생각의 흐름을 끊어준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잊게 된다. 

잔혹한 살인마가 두려워 하는 것. 그건은 시간이고 기억이다. 

기억하는 것이 사실일까 내 상상속의 현실일까?

현실과 기억이 뒤죽박죽 되고, 그리고 서서히 사라진다. 빨리 읽히지만 계속 잔상을 남긴다. 


70살의 할아버지가 좀비를 믿는다고 하는 그의 사상과 유머가 왠지 모르게 웃음을 짓게 했다. 좀비 무섭다. 근데 나도 있을 것 같다. 


[밑줄긋기]

북트레일러  http://youtu.be/g9opTh5eP8c


46쪽

나는 좀비가 진짜 있다고 믿는다. 지금 눈에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좀비 영화를 자주 본다. 


144쪽

나도 죽으면 좀비가 될까. 아니, 이미 돼 있는 건가. 


47쪽

두렵다. 솔직히 좀 두렵다

경을 읽자.


48쪽

머리가 복잡하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마음은 정처를 잃는다.


63쪽

"박주태는 어떻게 만났니?"

아침을 먹다 은희에게 물었다.

"우연히요, 정말 우연히요."

은희가 말했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우연히'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115쪽

사람들은 악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부질없는 바람. 악은 무지개 같은 것이다. 다가간 만큼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악이지. 중세 유럽에선 후배위, 동성애도 죄악 아니었나.


144쪽

한 남자가 찾아와 만났다. 기자라고 했다. 그는 악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 진부함이 나를 웃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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