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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ㅣ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 정확함과 간결함은 산문의 첫 번째 가치이다.
산문은 생각, 생각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없다면 빛나는 표현은 아무 소용이 없다."
산문에 관하여 中 - 알렉산드르 푸슈킨
작품 해설을 읽다 보니 이런 문장이 눈에 와서 콕 박힌다. <작가에게는 끊임없이 '생각 , 생각 '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생각, 즉 작가의 예술적 기획은 안타깝게도 작품의 행간에 교모하게 숨겨져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더 적극적인 독서와 반추를 요구한다.> - 즉슨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는 이유일 것이다. 등등.
아...... 우리는 그저 눈에 밟히는 대로 읽으면 안 되는 것일까 ? 그냥 좀 편하게 읽으면 않될까 ? 그냥 재미있는 연애소설 낭만담이잖아. 지식소매상이시라는 유모님처럼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로 해석하면서 행간 하나 하나의 의미를 따라가기엔 시간이 부족하잖아, 아니 이건 핑계지..... 그저 깊게 생각하기 귀찮을 뿐이야. 이런 건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꺼잖아. 생각, 생각을 필요로 하는 책은 머리 아파. 난 그냥 내가 읽고 싶은대로 읽을꺼야, 라고 부질없이.. 가끔 반항해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시대상을 비추지 못하는 글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수많은 글 중에서 살아남은 고전이기에 내가 살아가는데 실제적 좌표를 세워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말이다.
예전엔, 나는 책읽기가 버거울때가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어려운 책도 아니였다. 그저 줄거리만 따라가도 즐거운 소설이었다. 나는 입을 헤에 벌리고 서사가 주는 눈의 즐거움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부유하다가 어느 순간, 장애물에 턱 하고 걸려 더이상 떠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읽기의 고통은 시작되었다. 생각, 생각이 많아지면 책읽기는 속도가 느려진다. 어떤 날은 책 한 페이지도 넘기기 못할때가 있다. 그걸 무시하고 읽다가는 그 책은 볼장 다 본 것이다. 나중에 이 책을 왜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조차 하얗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책에 대한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고전 읽기를 시작했다. 배경지식을 알아야 이해가 되고 생각도 좀 덜하고 재미있는 가벼운 고전을 골라 읽었다. 주석이 많은 책을 좋아라 했고 (주석을 달지 않는 개같은 출판사와 번역자는 망해버려랏!!) 길지 않는 소설을 읽다 보니 책읽기의 즐거움과 생각을 덜하게 되는, 나름의 절충안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책읽기를 대략 삼사년 정도 반복하니 이제 좀 정리가 된 것 같다.
오래 전 읽었던 [대위의 딸]을 다시 한번 펼쳐 본다. 유쾌한 낭만 모험극으로 기억하고 있던 책이다. 역시 즐겁다. 잔치국수 먹듯이 후루룩 마시고 났는데 뭔가가 허전했다. 고명을 얹지 않아 먹은 듯한 느낌이다. 아... 재미있다 그럼 끝인가 ? 이건 좀 아니잖아...... 집에 있는 러시아 역사서와 인터넷으로 [대위의 딸] 집필 당시 배경을 발췌해서 읽어본다.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어떠했는지 푸슈킨이 멋진 녀석으로 묘사한 푸가쵸프도 찾아보고 말이다. 일주일을 묵혀놓고 다시 슬슬 읽어본다. 줄거리는 다 알고 있으니 조급하게 따라 갈 일도 없다. 느긋하게 읽다보니 과연 작품해설에서 말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나는 오렌부르크 봉쇄를 묘사하지 않으련다. 이는 역사의 영역이지 가족연대기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방 관료들의 허술한 조치가 도시의 봉쇄를 초래했고, 그 결과는 실로 치명적이어서 주민들은 기아와 온갖 고난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점에 대해서만 간략이 적어두기로 한다. 오렌부르크의 생활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모두들 실의에 빠져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긴 한숨만 내쉬었다. 주민들은 자기 집 뜰 안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익숙해졌으며 푸가쵸프가 기급공격을 해와도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P.119
마치 앞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올 묵시록적 예언처럼 들려왔다. 우리는 과연 안드레이치 그리뇨프처럼 해피한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 기적처럼 여제를 만날 것인가.
현실은 혹독하다. 그리하여 현실을 동화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미화하려 하지만 가엾게도 다 떨어져 나간 외피 사이로 눈물은 뚝뚝 떨어진다. 그 슬픔을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스스로 닦지 못했다. 상황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그들에겐 무기가 없었지만 우리에겐 주권을 행사할 한표가 있다. 이것으로 어쩌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 아 갑자기 울컥했다.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다시.....
책을 읽는 목적은 분명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잘 살 것인가, 남들과 어떻게 잘 조화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위함이 아니던가. 답을 찾으려면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담아야 한다. 그 생각을 찾아야 하고 생각을 실행하여야 한다. 대위의 딸이 마냥 낭만 모험활극담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죽어라 파기만 해서는 무엇할 것인가. 즐거움도 있어야 말이지. 그래서 중용이라는 것 -'중간(中)에 서서 한편에 치우침이 없다'- 이 절실하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리해싸면 회색분자같은 새끼라고 이젠 욕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을까..?
-잠결에 비몽사몽...
펭귄 클래식 코리아엣 도서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