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은 부처님께서 처음 보리수 아래 깨달으시고 화엄경을 21일 동안 천신들에게 설하신 후 천신들마저 깨달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일승의 법을 나누어 아함경 12년  방등경 8년 반야경 21년을 설하신 후 마침내 삼승을 회통하는 말씀으로 남기신 법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모든 경전 가운데 으뜸이 되며, 결코 대중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성질의 경전이 아닙니다. 경전에도 스스로 비밀스럽게 지니고 결코 망령되이 아무에게나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시대가 그렇다 보니 너무 흔해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보현보살권발품에 경전을 볼 수 있는 자격이 나와 있고 이 자격을 갖춘 이가 읽는 것과 그렇지 못한 이가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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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님의 "야금야금 읽어야할 여행 이야기"

김훈의 자전거 여행, 제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하지만,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이 책이 다른 어떤책을 사면 끼워서 준다고 광고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만큼 팔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 일까요?
글은 참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깊은 사색, 그 사색을 풀어내는 글솜씨
하지만, 사색이 깊은 만큼 글을 읽는 사람 또한 그러한 깊은 사색이 없고서야
결고 책장을 가벼이 넘길 수 없더군요.
그래서 여지껏 다 읽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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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님의 "상상력은 지식 이상을 주는 법"

' 와 정말 대단한 선생님 이셔! '(혼잣말)
맨 마지막 구절이 와닿습니다. "작은 몸짓 하나가 그들의 마야를 짓밟는 결과가 낳을지
모른다"
님과 같은 선생님을 둔 제자들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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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잃을 것이 없는... 우리 시대

하루키는 그의 시대를 상실의 시대라고 한다. 그가 상실한 것은 무엇일까. 자아의 상실? 목적의 상실? 희망의... 즐거움의... 낭만의... 순수함의...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상실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싫어한 가장 큰 이유는 한창 하루키가 유행이던 시절, 그의 날개잃은 새라는 장편을 읽었는데, 정말 짜증나는 환상과 몽상과 공상과 정신분열적인 소설이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읽으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정말 지겹게도 오래 읽었다. 바빠서 화장실에서 하루 열 페이지 정도 읽는 날도 있어서 그랬지만, 역시 나는 하루키가 싫었다. 그래도 다 읽은 건, 학생들이 종종 이 책의 독후감을 썼기 때문에, 정말 지도의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일본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볼 순 없어서) 개인적 성향에 염증을 느꼈다. 성적인 집착, 변태성욕적 고착, 퇴행적 추상적 사고, 파편화되고 고립된 자아. 그런 것이 그의 말들에서 곳곳에 배어있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친구의 죽음에서부터 허무를 끌어내어,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다. 그저 실망하는 것이 싫을 뿐이다.'며 미도리에게 털어놓는 파편적 인간상으로 전개되다가,

'우리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신분열적 자아의 반영을 보이면서,

'나는 내가 이 기묘한 혹성 위에서 삶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무엇인가 이상한 감동을 느낀다'며 객관화된 거울 속에 비친 굴절된 나를 바라보더니,

'인생은 비스킷통,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된다.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인생론으로 마감한다.

그가 바라본 인생은 이렇게 부스럭거리고 가벼운 비스킷이기에(시쳇말로 쿨~~한) 한없이 외로워보이면서도 주변의 죽음과 성적 욕구들과 제자리에 놓이지 못한 것 처럼 보이는 고장난(out of order) 인생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난 그가 별로 상실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엔 별로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순수, 희망, 꿈, 목적, 즐거움, 아스라한 환희와 희열감, 성취감... 이런 것들은 인간의 존재와 역사에 본래 부재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이런 것들을 '추상명사'라고 부른다. 추상명사는 결국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이란 뜻이니까.

쿨하게 가슴은 뜨겁게... 하고 노래부르던 어느 가수의 노래가 우리 가슴을 싸늘하게 찍어 내리는 이유는 예전처럼 착각하고 살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 주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잃을 것이 없는 것이 인간인데, 지금 우린 잃고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 백년 전 사람들도, 천년 전 사람들도, 아니 그 이전의 사람들도 - 모두 상실감과 영원한 노스탤지어(향수)의 손수건 한 장씩은 가슴에 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백년간의 고독은 결국 세대를 이어 되풀이되던 것이기에.

하루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판기 커피를 맛있게 감상하다가 바로 커핏잔을 구겨버리는 모습이 떠오르며 입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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