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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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외국 사람들이 매혹될만도 하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새로울 이야기.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내일 옥희를 만나면 이 모든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세상 무엇보다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옥희라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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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서 시작해 가을, 추운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며 끝이 난다. 장식, 배경으로서의 식물이 아니라 귀한 친구로서의 식물과 생활을 함께 하다보면 자연스레 식물의 섬세함과 끈기도 닮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식물은 우리에게 다시 힘을 내 나아갈 기운을 주는 것 같다. 말없이 보내는 다정함이 식물이 주는 낙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대하고 희망하고 믿는데는 힘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것은 외면과 단절로 끝이 나지만 믿는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이후의 발걸음까지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42

소용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가능한 한 힘써보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의 습관이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얻는 것이 없더라도 끝까지 애쓰면서 아주 천천히 손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 그 역시 우리가 아는 사랑의 일면이니까. - P85

무언가를 보살피는 마음에서 그 대상은 다른 대상으로 좀처럼 대체되지가 않았다. 마음은 늘 동일한 것이라서, 쓰려고 하면 여러 대상을 향해 나아갔고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함께 멈췄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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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존재도 보태거나 그럴싸하게 꾸며내거나 허울뿐인 것인 겉모습만으로 판단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면. 부디 그럴 수 있다면.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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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깊이 상처입은 한 사람이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의 어머니를 만나고, 그의 둘도 없는 친구도 만나며 시공간을 건너 천천히 치유되는 이야기.
애달픈 편지 읽다가 눈물 한 방울, 사위어가는 마음을 읽어보다 또 한 방울, 떠나가는 영혼을 마주하다 한 방울.
그렇게 함께 울다보니 쓸쓸한 내 마음과 비슷한 마음의 조각들을 찾게 되어 조금은 위안이 된 소설이라 고맙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작가님은 글을 쓰며 마음을 얻었다 하셨는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을 얻은 것 같다. 삼천이와 새비, 영옥이와 지연이처럼 꿋꿋하게 살아갈 마음.

그녀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뽑아내도 잡초처럼 퍼져나가서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망을 지배할 수 없었다.
희망이 끌고 가면 그곳이 가시덤불이라도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그건 안전한 삶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는남자를 따라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의 경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을까. - P56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그날 밤 꿈에 전남편이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그가 내게 준 상처도잊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에 그저 행복해했다. 그의 큰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그를 안아보기도 했다.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을 때 어떻게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내 마음의 일부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오로지 그만이 내게 줄 수 있었던 친밀함을 갈구하고 있구나, 그 편안함과 안락함을 기억하고 있구나. 당연한 일이라고 되뇌면서 나는 조금 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P99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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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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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도시의 삶에서 하루에도 수천번씩 흔들릴 마음을 붙잡아줄 사랑한다는 그 믿음에 대하여, 그 얄팍함과 연약함에 대하여, 그 불완전함이 주는 기대와 또 다른 불안에 대하여

꽤 오랫동안 나는 배서정과 매거진 C의 사람들을 원망했었다.
그들의 면전에 대고 신입사원에 불과했던 우리에게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묻고 따지고 싶었다. 어느덧 나는 그때의 배서정과 비슷한나이가 돼버렸고, 딱 그만큼 나이든 모습이 되었다.
서른한 살, 벌써 네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 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 - P62

소설가 K와의 인터뷰는 즐거웠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게 부러웠는데, 그때의 내게 결핍된것이 그런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것들. 내가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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