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깊이 상처입은 한 사람이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의 어머니를 만나고, 그의 둘도 없는 친구도 만나며 시공간을 건너 천천히 치유되는 이야기.
애달픈 편지 읽다가 눈물 한 방울, 사위어가는 마음을 읽어보다 또 한 방울, 떠나가는 영혼을 마주하다 한 방울.
그렇게 함께 울다보니 쓸쓸한 내 마음과 비슷한 마음의 조각들을 찾게 되어 조금은 위안이 된 소설이라 고맙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작가님은 글을 쓰며 마음을 얻었다 하셨는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을 얻은 것 같다. 삼천이와 새비, 영옥이와 지연이처럼 꿋꿋하게 살아갈 마음.

그녀에게는 희망이라는 싹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뽑아내도 잡초처럼 퍼져나가서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희망을 지배할 수 없었다.
희망이 끌고 가면 그곳이 가시덤불이라도 그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말대로 그건 안전한 삶이 아니었다. 알지도 못하는남자를 따라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의 경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을까. - P56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그날 밤 꿈에 전남편이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그가 내게 준 상처도잊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것에 그저 행복해했다. 그의 큰 손을 잡아보기도 하고 그를 안아보기도 했다.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을 때 어떻게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내 마음의 일부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오로지 그만이 내게 줄 수 있었던 친밀함을 갈구하고 있구나, 그 편안함과 안락함을 기억하고 있구나. 당연한 일이라고 되뇌면서 나는 조금 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P99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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