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연금책 - 놀랍도록 허술한 연금 제도 고쳐쓰기
김태일 지음,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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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에서 '연금개혁'이 입에 올랐었다. 지금의 국민연금 체제로는 연금 운용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빨리 정책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었다. 2018년에 실시한 재정계산에 따르면 연금 고갈시점은 2057년으로, 지금(2018년)나이 31살이 연금을 받을 때 고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젊은 세대들은 연금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금 내도, 연금은 결국 고갈되니 못받을 거라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고갈되어도 받을 수 있다. 매해 적립되는 돈을 바로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꾸거나, 세금에서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이 방법도 다른 나라에서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연금이 지속가능해야 불안함이 해소되고 국가 재정에도 영향을 덜 미치는 것이 아닌가.

 

“국민연금 덜 받아도 좋습니다” 지난 3월 NGO연구기관인 K정책플랫폼에선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학(원)생 14명에게 소득대체율 30%와 40%를 두고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물었는데요. 소득대체율이란 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을 말합니다. 소득대체율 30%안을 찬성한 청년이 처음엔 14명 중 9명이었는데, 전문가 토론 이후 12명으로

 

저자 김태일은 현재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소 원장을 맡아 복지와 재정에 관해 연구한다. 그는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개편해야 하는지 자신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글과 주장에 책임을 진다고 할 만큼 진지하고 절실하게 임했다. 이 책은 대중서이기 때문에 더 쉽게 쓱고 각주형식을 취했다. 읽으라고 떠먹여 주는 것이다. "국민이 관심 없는데 정치권과 정부가 알아서 잘 만들고 정성껏 운영할 리 없다." '국민연금'문제는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복지체계와 해외 연금체계도 이해할 수 있으니,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나한테 동조할 것이다. 국민의 삶과 국가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이토록 엉성하게 설계되고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음에 정말 놀랄 것이다.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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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서재 탐험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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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책장을 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한길사 대표이사 김언호는 독서가라고 불리는 이들을 인터뷰한다.


전 대통령 문재인

영화감독 박찬욱

중국연구가 김명호

서예가 박원규

변호사 강금실

시인 장석주

출판인 이기웅

번역가 김석희

작가 유시민

인류학자 한경구

소설가 조성기

번역가 박종길


각자 분야에서 유명한 인물들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책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인물들이 공통되게 말하는 '시대의 책'과 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을까.


"왜 책을 읽는가. 철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씀을 나는 좋아한다. 책을 읽어 웅변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생각을 반박하자는 것도 아니다. 맹신은 더더욱 아니다. 사유하자는 것이다. 균형있는 사유를 하자는 것이다. 독서가들은 관용하는 사람들이다. 지성은 나 자신을 겸손하게 하지만, 무지는 우리를 교만하게 한다."

p.16

전 대통령 문재인은 책이 귀했던 어린 시절, 누나의 교과서를 읽으며 사회를 보고 자랐다. 학창 시절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을 즐겨 찾으며 <사상계>, <창작과 비평>과 같은 당대의 계간지들을 읽었다. 한 번씩 건너가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같은 책들도 읽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선 그는 변호사 시절 시국사범들을 변호하면서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다. 그는 퇴임 이전에도 책방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역을 되살리고 싶어 했다. 지금은 양산에 평산책방을 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며 책 읽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산책방 홈페이지에서도 그의 서재를 볼 수 있는데, 다양한 주제의 책들, 특히 사회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꽂혀있다. 책에서는 책방을 열기 전의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다.


박찬욱 영화감독은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2004이후부터 부모님과 거주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 책을 자주 읽었던 그는 주로 문학 독서에 집중했다. 그가 읽는 책은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나에게 서재란, 내 영화의 원천입니다. 독서란 내 영화의 자양분이며, 문학은 내 영화를 만드는 힘입니다. 좋은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알리는 일이 영화를 잘 찍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p.64)

그의 집은 하나의 서재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가방에 책 하나씩을 넣어 다니며 다양한 공간에서 읽는다. 박찬욱의 영화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같은 것. 그러나 그는 진리나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대표하는 책도 쉽게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또한 어린 시절 <을유세계문학전집>과 같은 시대의 도서들과 함께했다. 국내외 소설을 가리지 않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고 아름답다 여기는 책은 이문구의 <관촌수필>이다.


이들은 그저 좋아서 독서한다.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인생은 책과 떨어질 수 없다. <중국인이야기> 시리즈를 펴낸 김명호는 그저 좋아서 중국에 대한 공부를 한다. 중국사가 좋아서 한문을 배우고, 새로운 지식들을 배우고, 시간이 나면 중국에 가서 책을 사 온다. 그는 책에 대한 애정으로, 서점을 만들고 고서들과 중요한 책들을 수집했다.


서예가 박원규는 새벽같이 일어나 부모님 사진에 예를 표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세 시간씩은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한다. 여행 갈 때는 가방에 꼭 책을 넣고 간다. 그도 배우고 배웠다. 한국사 뿐 아니라 동양의 사상과 역사들을 계속해서 배웠다. 서예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직업이 아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직업이다. 그의 열정은 집을 팔아서 벼룻돌을 구매할 정도였다. 이들의 모습에선 어떤 열정이 보인다. 열정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은 사유한다.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변호사 강금실은 대학원에서 접한 토마스 베리의 책으로 인해 가치관이 변화한다. 그는 토마스 베리에 영향을 받아 생태학적인 사고에 이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탈피하고자 주장한다. 그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를 중요한 책으로 말하고, 레비스트로스의 <슬픈열대>를 인생의 책으로 꼽는다. 세상은 타인과 함께 살며 항상 생각해야 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는 '지구와사람'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다양한 학술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지구와 사회를 개선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시인 장석주도 어린 시절 가리지 않고 독서를 했다. 그의 시대는 민주화의 시대였기에 그는 사회의 모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했다. 직접 나서는 편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고민했다. 1991년 장석주의 출판사 '청하출판사'를 통해 마광수 교수가 펴낸 <즐거운 사라>가 외설 논란이 일었고, 둘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마 교수는 꼬리표를 달고 살며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장석주는 출판의 억압에 대한 참담한 심정과 사회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장석주의 삶에선 니체의 철학이 삶에 대한 용기를 심어주었다. 계속되는 시련에도 글을 써내고 책을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기획자 이기웅은 파주출판도시 건설에 선두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의 젊은 시절, 한국은 미술전문출판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한국 작가들이 일본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미술 출판을 중심으로 한 열화당을 만들어 미술 출판의 수준을 높였다. 그야말로 '책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는 편집자로서 먼저 원고를 접하고 책 읽는다. 책을 다듬는다.

"열화당 책 박물관의 컬렉션은 '보편의 특수성' 또는 '보잘 것없음의 보잘것 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책의 역사성, 희귀성으로 고서의 가치를 규정하는 일반적 잣대와 달리, 컬렉터가 아닌 '편집자'의 시각에서 발견한 책들입니다." (p.152)


번역가 김석희는 한길사에서 펴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포함해 3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그는 어린 시절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살았는데,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일기를 쓰고 시를 쓰며 산문도 썼다.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문학책을 열독했는데, <죄와 벌> <이방인>을 읽게 되면서 작가의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느낀 후 소설가라는 꿈을 가졌다. 그의 번역에 대한 태도는 그의 저서나 번역서의 옮긴이 말에 자세히 쓰여있는데 계속해서 원서에 대해 알아가려는 겸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계속해서 번역하고, 글을 쓴다.

"번역은 해석입니다. 해석은 하나의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또 하나의 콘텍스트를 얻어내는 과정입니다. 번역이 단순한 낱말풀이나 의미 전달이라면, 번역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기계의 몫이 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p.174)


많이들 알다시피 작가 유시민은 유신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며 살았다. 그는 최루탄이 날리던 시절 28살에 자취방에 들어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책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는데 그의 시대를 대변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는 <하인리히 뵐의 잃어버린 명예>와 같은 책을 언급하며 언론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는 변화하는 사회를 기대하며 계속해서 책을 읽어왔고, 멈추지 않고 책을 읽는다. 또 많은 책을 썼다. 지금은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북스를 운영하며 책에 대한 토론과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은 과학책을 읽으며 생각이 변해간다 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무엇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최근에 하고 있는 생각은 최근 나온 그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다른 모든 국민 국가가 그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바친 열정과 헌신, 눈물과 희생의 산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더 훌륭한 국가, 더 좋은 정치가 구현되기를 소망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젊은이들과 함께, 토론하고 싶습니다. 좋은 정치, 훌륭한 국가 없이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구현될 수 없습니다. 이웃들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싶습니다." (p.201)


파주출판도시에 가면 '지혜의 숲'이라는 책이 가득한 공간이 있는데, 그중 5000여권은 인류학 교수 한경구가 자신의 서재에서 뽑아 기증한 책들이다. 그는 출판사 사장인 아버지의 영향 아래서 독서를 열심히 하며 자랐고, 몸소 느낀 대로 책의 중요성을 느끼고 책 읽는 사회만이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교수인 그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일상에 끼고 살길 원하며 대학생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과 책을 읽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편하고 일상의 한 부분이었길 바란다. "도서관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책과 함께 지적이고 즐겁고 건강하게 노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10.26 사태에 대해 쓴, 한길사에서 펴낸 <1980년 5월 24일>을 쓴 소설가 조성구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생 시절 알바를 하며 살았다. 그러다 아르바이트하는 집 누렇게 빛바랜<현대문학>이 있어 100권을 읽었다. 그렇게 문학에 대한 꿈을 꾼다. 그렇게 작가가 된다. 그는 세계문학도 모두 읽었다. 그의 생애를 견디게 해준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그의 시대는 역시나 유신시대였다. 아버지는 용공분자로 체포되었다. 그의 마음속에선 종교와 문학이 공존하며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의 삶을 소설로 쓰려고 한다.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다


도서가이자 번역가인 박종일. 그는 청계천 헌책방들을 돌아다니며 책을 산다. 그 또한 유신시대에 대학생이었다. 스스로 대학시절 난독, 남독을 했다 말하며 역사와 정치의 중요성을 외쳤다. 그는 우리 역사에 대한 책들을 돈을 아끼지 않고 구매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에서 민찬 한국사의 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며 역사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한길사의 책을 좋아하며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읽어본다 말하며 독서를 쉼 없이 한다. 한길사 책의 번역에도 참여한다.


책들을 보면 위의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어릴 적 책을 좋아했거나 쉽게 접했고, 다독을 했다는 것. 또 즐거워서 했고 어느새 독서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자체로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환경에 따라 독서를 쉽게 접할 수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책을 사랑하는 마을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책에 관심이 있었고 궁금하고, 흥미를 찾았을 것이다.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것은 읽는 사람들만이 느끼기에, 글로,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다.


우리는 어찌 됐든 책에서 답을 찾는다. 글로 쓰인 세상에 빠져 때론 얕게, 때론 심해를 누비며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이런 사유의 모험은 보이지 않기에, 책 읽는 사람에게 어떤 아우라가 느껴지며, 저자와 둘만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만의 사고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에서 책 읽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의 서재는 어떤 책이 담겨있는가.

책이 하나 둘 쌓여 한 사람을 만든다.


아래는 책의 등장인물들이 추천하는 책 목록이다. 책 추천이라는 김언호 대표이사의 부탁에 교양 수준에서 추천한 것처럼 보인다. 나오지 않은 인물들의 책과 중요하다고 언급한 책들은 <김언호의 서재 탐험>에 나와 있으니 읽어보길 권한다. 책을 좋아하고 삶이 된 이들에 대한 적당한 분량의 이야기로, 그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괜찮게 읽을 수 있던 책이다.


문재인

김희교 <짱깨주의의 탄생>

한국역사연구회 <시민의 한국사>

천현우 <쇳밥일지>

켈리 제라디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훈 <하얼빈>


박찬욱

이문구 <관촌수필>

카프카 <성>

존 르 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그레이엄 그린 <브라이턴 록>


강금실

토마스 베리<위대한 과업>, <모든 존재는 권리를 가진다>, <우주 이야기>, <지구의 꿈>, <황혼의 사색>


유시민

칼 세이건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브라이언 그린 <엔드 오브 타임>

<맹자>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꼽사리(?)를 껴서! 나도 나의 추천 책을 뽑자면,

뤼트허르브레흐만 <휴먼 카인드>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칼 세이건 <코스모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정도 되겠다 :)

모두 즐거운 독서생활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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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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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 올라이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출산을 앞둔 마르타의 방에선 비명소리가 들렸고

늙은 산파 안나는 올라이를 진정시켰다.

잠깐의 고요함이 지나고

마르타는 아들 요한네스를 낳았다.


"그래 그런 거예요, 늙은 안나가 말한다"

"다 잘 될 거야, 올라이가 말한다"


자식을 얻은 올라이는 기뻤고, 요한네스가 어부가 되길 바랐다.

요한네스는 자신과 같은 길과 인생을 걸을 것이라 상상한다.


침대에서 일어난 요한네스는 어느 때와 같이 커피를 마신다. 빵을 먹고 담배를 피운 후 밖으로 나가 창고에 들린다. 그는 이제 손자도 있는 어엿한 할아버지다. 그는 모든 행동과 장소마다 먼저 떠나간 부인 에르나를 생각한다. 창고 안에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다시 들어가지만 부르는 것은 없었고, 달라보이는 물건들만 있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보는 것들이 모두 이전과 달라있었다. 창고에는 에르나와 자신이 쓰던 물건들이 있었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그리고 저 위 창고 다락에는, 오랜 세월 모인 많은 물건이 있다"


평생을 어부로 산 그는 평소처럼 배를 몰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바다로 가는 길에 마을의 집과 풍경을 보며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갔던 이웃들과 친구 페테르를 생각한다. 그런데 해변에 도착하니 죽은 친구 페테르가 서있었다. 요한네스는 놀라 두 눈을 의심하며 페테르에게 돌을 던져보는데, 돌멩이는 그의 몸을 통과했다. 그럼에도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평소와 같이 말을 걸며 담뱃불을 붙여주며 옛날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둘은 물고기를 잡으러 배에 올라 서쪽 바다로 향한다.


요한네스는 가만히 서서 언덕과 들판, 산과 해안에 늘어선 집들을 둘러본다, 부잔교와 부표에 묶여 있는 그의 작은 노 젓는 배, 그리고 보트하우스들과 거리 위쪽의 집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모든 것이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문명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p. 74


한때는 힘센 장정이었던 요한네스가 늙은 모습을 보며 페테르는 한탄한다.

"역시 늙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야"

요한네스는 페테르의 늙고 쇠약한 모습을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의 늙음을 바라본다.

계속 낚싯대를 던지지만 배 밑바닥 일 미터쯤 아래서 계속 멈춘다.


낚시가 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정말 고약한 일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바다가 더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구먼, 그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그럼 남는 건 땅뿐인가, 페테르가 말한다

p. 81


"우린 더이상 한창때가 아니지"

세상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늙는다는 건 세상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일까. 더이상 얻는 것은 없는데 하나씩 잃어간다.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늙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다. 거부할 수 없지만 느껴야 하는 것. 그저 그런 것.


"에르나가 가고 없는 것이 슬프다 (...) 그런데 이제 그녀는 영영 가고 없다 (...) 그래 그런 거지, 요한네스는 말한다" 늙어가며 하나 둘 떠나간다. 젊음도 물론이요, 주변 것들까지. 그리고 기억이든 물건이든 흔적만이 남는다.


낚시가 되지 않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요한네스는 부두로 올라 집으로 향한다. 페테르의 배는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에르나만 집에 있다면, 그럼 더 바랄게 없을 텐데"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에르나가 마중을 나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 사라진 에르나는 집에 도착하니 주방에 있었고,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해변에서 만나 함께 가정을 이룬 에르나는 7명의 자식을 낳고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에르나는 그에게 돌아선다 그리고 거기 서있다 그리고 말없이 행복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에르나가 아직 살아 있던,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참 편하게 살았다고, 돈 걱정 없이, 고생도 걱정도 없이 조용하고 만족스럽게,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에르나가 돌연 다락방 침대에 누운 채 숨을 거뒀다, 그리고 그는 에르나가 늘 서 있던 부엌 창가를 바라보지만, 에르나는 거기 없고 텅 빈 마룻바닥만 남아 있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담배를 재떨이에 걸쳐놓고 레인지에서 커피 주전자를 내린다

p.111


요한네스는 페테르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딸 싱네를 발견하고 그녀를 부르지만 싱네는 그를 통과해간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느낀 싱네는 아버지가 걱정돼 집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요한네스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다가와 죽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둘은 고깃배를 타고 저 먼바다, 저 세상 너머로 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난다. 요한네스는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아래는 궂은일이 생겼구먼"


삶의 마지막 날에 유령이 되어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 죽음을 느끼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요한네스는 분명 죽어 무언가 달라짐을 느꼈지만 일상은 그대로였다. 그는 평소와 같이 살다가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그래서 자신이 죽은 것도 잘 몰랐을 것이다. 요한네스는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어부로서 살았고, 물려받고 또 물려주며 가정을 만들어갔다. 기대를 받고 태어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일들을 겪고, 떠나가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죽음을 맞는 인생이 그려진다.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그런 인생의 순리다. 그렇기에 늙음에 대한 한탄이라기보단 늙음에 대한 인사로 보인다. 배를 타며 자신이 살던 곳을 희미하게 떠나보내는 것처럼 인생의 막바지에서 삶은 희미하게 기록되는 것이 아닐까.


<아침 그리고 저녁>만의 특징은 대부분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장들은 쉼표로 끝나 잠시 쉬어갈 뿐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아침과 저녁은 이어지고 삶의 시작과 끝은 흘러간다. 마침표가 등장하는 문장은 해설에서 말하듯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문장,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일상이다." 나의 의지에서 이어져 나에게서 끝나는 행위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타자(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세상 또한 포함된다)와 연결되는 순간순간은 정확함과 끝을 모를, 멜랑꼴리함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욘 포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다.


욘 포세는 구체적인 행위와 감정을 설명하기보단 서사의 힘으로 이야기를 밀고 간다. 작중 친구 페테르의 말에 따르면 저 너머 세계에는 말조차 없다. 세계는 설명할 수 없는, '그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할 것 없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세월의 고약함을 느낀다. 남겨진 사람은 떠나간 존재의 공허를 몸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되살린다. 삶은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삶의 기대와 안정 속 파편들, 또 지나가는 작고 작은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리운 과거의 나와, 그리운 사람들에게 바치는 한 인생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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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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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사람들만 기후변화를 논의하던 로마클럽의 시기를 넘어 이제는 기후위기가 하나의 대중적 의제로 자리매김하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대선주자들의 정책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인데, 우리는 이 시기에 어떤 방향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청년 기후 활동가 김한민이 일간지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쓴 칼럼을 모아 책 <탈인간 선언>을 만들었다.

 

지금은 인류세(Anthropocene)다.

인류세는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 Crutzen)이 제시한 지질연대 개념으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며 환경을 급속도로 바꾼 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인간으로 인해 지구환경이 급속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존층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급변하는 환경을 비판한 학자였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간단히 언급한 다큐멘터리다.

지금 지구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으로 1.5~2도 정도를 잡고 있다. 이 정도도 많은 변화를 일으키지만, '그나마' 감당 가능한 정도다. 그러나 이 순간을 넘으면 급변하는 환경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며 이미 우리는 그 전조 현상들을 느끼고 있다.


 [기후위기] 지구 온도상승 1.5도 넘기면 안되는 이유 - 파인드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에 따르면 2030년대 중후반이 되면 1.5℃ 도달하고, 2100년에 2°C를 넘을 확률은 9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협정에 따라 제출된 국가별 감축목표를 이행하더라도 2030년 연간 온실가스배출량은 520-580억CO2톤에 이르러, 1.5℃ 달성에 필요한 배출량(250-350억CO2톤)을크게 초과, 2100년에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3℃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1.5°C 상승 이내로 억제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막는 마지노선이다.

- 파인드비 기사 인용 (위의 기사)

저자 김한민은 탈인간 선언을 한다. 탈인간은 말 그대로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자는 의미다. 인류세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삶과 사회의 기반들을 해체해 보고,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공멸을 막고 공존을 현실화하기 위한 온갖 '다리 놓기(매개)'를 자처하는 것은, 탈인간적 접근의 핵심이다. (p.13) 탈 인간적 사고는 타자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사고이다. 기존의 자연을 도구적으로 보는 사고를 포함한 기존의 사고들을 넘어 그저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과 <탈인간 선언>의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이 이론이나 사고실험, 지적 유희가 아니라 현실과 호흡하면서, 또 변화를 갈망하면서 얻은 실천적 성찰들의 모음이라는 점이다." 그의 글은 공허한 운동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제기되는 질문을 뒤엎어보고, 잘 보이지 않는 가능성들을 보며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실과 맞닿아 있는 성찰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연설문에 가깝다

우리의 관점을 바꿔보며 절망하지 말고, 그 관점을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의 사고는 물고기라는 단어가 아니라 '물살이'라고 부르자는 방식에서 잘 나타난다. 탈인간적 관점에서 모두를 존중하고 살릴 수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은 느끼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 앞에서 분신을 했고 어떤 활동가들은 박물관에 가서 유명한 명화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명 '미술관 테러'를 감행했다. 이는 그 시위 방법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들도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은 그것뿐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며 가장 크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세리머니에 대해 고민한 듯 보인다.

 

기득권이 없는 이들은 그러한 극단적인 행위를 통해 관심을 모은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고 위기는 곧 나의 미래로 다가오니 말이다. 이는 과격한 행동으로 보이나 이 논란의 핵심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보다. 그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적 처벌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생사가 달린 세상의 위기 앞에서 고귀한 미술 감상이 무슨 의미랴.

 

이젠 기후위기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근거가 있기에 트럼프나 각종 극우 인사들은 기후위기를 과학적으로 비판하기보단 기후위기 자체를 비논리적으로 부정하는 수사학, 대중선동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오묘하게 대중의 마음을 바꾸려는 의도적이면서도 비의도적인 시도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그 모습 중 하나로 소는 알려진 것보다는 많은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소는 억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것을 비판한다. 적게 배출하든 상당한 비율의 탄소 배출을 하고 있음은 다름없기 때문이다. '억울'의 수사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최근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같은 기존의 효과 없는 기후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책들이 나오면서 기후운동을 폄하하거나 활동가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우리가 더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기후운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저런 메시지들이 '더 나은 기후위기 대응'이 아니라 그저 환경보호 활동에 대한 비난일 뿐이라면 그 저의를 의심해 봐야 한다. 우리의 목표점엔 항상 기후위기 대응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인 비판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애매하게 돌려서 기후를 위해 행동하자는 의식 자체에 금을 가게 하는 것뿐이다.

 

저자는 평생을 바다 연구에 헌신한 해양학자 실비아 얼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공해상 원양 어업을 금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이야기로 들리나, 그녀의 말은 매우 현실적인 연구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는 어부들과 그 산업에 수산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수산업에 지급되어온 보조금은 대형 선박이나 각종 어류 포획을 위해 사용되었고 과도한 어획과 서식처 파괴, 생물의 고갈을 불러왔다. 바다는 산소를 발생시키는 플랑크톤의 주요 서식치다. 다른 곳보다 바다가 받고 있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과소평가되는데, 살펴보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저자는 기술을 이용한 탄소제로와 탄소배출권거래제 같은 기술 중심주의적 사고, 시장 중심적 사고도 비판한다. 우리는 오염 행위 자체를 멈추고, 우회적으로 다가서며 환경 중심적 활동을 동행해 보며 정말 '현실적'으로 대체해야 한다. 위기를 불러오면서 기술만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매우 이상적인 일이다. 이런 사고 속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우주선을 만들어 황폐해진 곳을 책임지지 않고 떠날 것이다.

 

급진적 환경운동에 거칠게 대응하는 유럽···유엔 “인권침해 우려”

앞으로의 시대는 중장년보다는 청년, 아이들을 위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세대들이 더욱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유럽과 같은 국가를 필두로 많은 청소년들이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끌려가기도 하고, 적절한 대답을 듣지 못하지만, 적어도 약속이라도 받아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기후 위기라는 주제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편의와 질의 문제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사의 문제,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물론 절망적인 마음이 들고, 저자 또한 강의를 진행하면 관중에게 어떻게 이런 사회에서 희망을 갖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저자는 우리가 엄청나게 완벽하고 강한 변화를 이끌기보다는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확장시켜 나가자고 말한다. 또한 나를 엄청나게 소진시켜 번아웃 상태를 만들기보단 차분하게 힘을 내 나아가자고 말한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에 방점이 있다. 저자 김한민이 그레타 툰베리 비롯한 운동가를 대하는 태도로 사람들을 나누는 부분에서 우린 생각할 수 있다. 환경운동가 개인을 비난하는 모습이 많고 때론 환경운동가들도 자극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완결한 도덕적 완벽성을 요구할 것이라면 그 완벽성에 도달하려고 스스로가 작은 노력이라도 해보라는 것.

 

책을 읽으며 다양한 문제의식을 다시 일깨워본다.

생각보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이시대는 모두가 활동가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월급 받는 직업 활동가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후 재난을 막기 위한 싸움도 처음엔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모두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제가 참여하는 시셰퍼드라는 해양보호단체는 "파트타임 히어로"라고도 하는데, 누구는 석탄발전소 반대 운동에 , 누구는 정부가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일에, 누구는 비행기 덜 타기 운동, 누구는 탈축산 탈육식 운동에, 누구는 플라스틱 중이기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기 세계를 확장시켜 나아가면 서로 다른 운동들이 만나며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p.210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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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위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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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베냐민(1892-1940)은 말한다.
"더 이상 멀리서 오는 지식이 아닌,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의 단서를 제공하는 정보만이 공감을 얻는다"(P.13)


깊은 깨달음을 주는 것, 역사와 같은 옛 것은 중요성을 잃어버렸다.
현대사회는 정보로 가득 차 삶과 공동체의 의미를 잃어가는 서사의 위기에 놓여있다.
한병철은 서사의 위기에 놓여있는 사회를 비판하며 삶은 이야기임을 피력한다.


서사(이야기)와 대비되는 정보란 무엇이며 저자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먼저 정보의 사전적 정의는 "관찰이나 측정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를 실제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리한 지식. 또는 그 자료"지만,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로 생각해도 상관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보의 특징'이다. 저자는 정보는 이야기의 짜임이 없으며 정보만이 자극의 형식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고 말한다.


"정보사회는 정신적 고도 긴장의 시대를 열고 있다. 정보의 본질이 다름 아닌 놀라움의 자극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지루함을 허용하지 않기에 정보로 꽉꽉 채운다. 자극적인 정신적 고도 긴장의 상태가 지속되는 과잉활동성을 띤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는 말 그대로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사건들을 잇는 하나의 이야기다.


"정보는 단지 세상을 앞에 전시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손에 잡히도록 한다. 그와 달리 먼 곳을 가리키는 '기록'은 암시하는 바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이야기로 이어진다." 현실의 정보화는 직접적인 현존 경험들을 약화시킨다고 말하는데, 이는 현실의 정보화 자체가 애초에 완벽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경험이라는 것은 따로 떼어내어 정보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을 "경험의 빈곤"이라는 도구를 통해 진단한다. 경험이 부재한 이들을 야만인이라 말하는데, 이 신 야만인은 경험의 빈곤을 해방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내부적인 빈곤이 순수하고도 거침없이 통용되어 자기들에게 적당한 어떤 것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갈망한다."


야만인의 특징은 근대와 후기근대 둘로 나뉜다.


"미래와 진보의 서사를 가지고 다른 삶의 형식을 향한 갈망을 품었던 근대와 달리, 후기 근대는 새로운 것 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에 해당하는 혁명적 파토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후기 근대에는 출발 직전의 분위기가 없다. '계속 그렇게 하기'와 대안 상실로 힘이 빠져 있다. 이야기할 용기, 세상을 바꾸는 서사를 향한 용기를 상실했다. (P.36)


과거를 밀어내고 새로운 이념, 갈망을 가진 근대였지만, 후기근대는 어떤 희망조차 갖지 않으며 그저 흘러가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는 현대에도 적용되는 굉장한 통찰이기도 하다. 이젠 청년들마저 끓어오르는 어떤 정의감이나 연대감조차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벤야민의 이론을 통해 그저 쉴 곳을 찾으며 편리함 또는 좋아요에 예속되는, 미래를 잃은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오늘날의 정보 쓰나미는 우리를 최신성에 도취된 상태로 추락시킴으로써 서사의 위기를 악화시킨다. 정보는 시간을 잘게 토막 낸다. 시간은 현재의 좁은 궤도로 단축된다, 여기에는 시간적 폭과 깊이가 없다. '업데이트 강박'은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과거는 더 이상 현재에 유효하지 않고, 미래는 최신의 것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그 폭이 좁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가 없는 채로 존재하게 된다. 이야기가 역사이기 때문이다. 응축된 시간인 경험뿐 아니라 도래할 시간인 미래 서사 모두 우리에게서 사라져 간다. 현시점에서 다음 현시점으로, 하나의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하나의 문제에서 다음 문제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다니는 삶은 생존을 위해 마비된다. 문제 풀기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없다. 서사만이 비로소 우리로 하여금 희망하게 함으로써 미래를 열어준다.

P.37


저자는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을 언급한다. 그에게 자기 존재란 무엇인가, 실존한다는 것은 세계 내부적 이야기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 즉 근원적이고 상실되지 않는, 맨 아래 바닥에서 계속되는 존재의 확인이다. 이와 달리 스스로 '순간적 실제'에 내맡기는 사람, 정보로 그때그때 자신을 채우는 사람에겐 이러한 운명이 없고 고유한 역사성이 없음을 비판한다.


"디지털화된 후기 근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게시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면서 벌거벗은, 공허해진 삶의 의미를 모르는 척한다. 소통 소음과 정보소음은 삶이 불안한 공허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든다." (P.64)


우리는 다른사람(타자)를 시선을 통해 인식한다. 타자는 시선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대상이 나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물리적 의미를 포함한 철학적 의미의 시선을 모두 차단한다. 이런 시선의 차단은 소통의 불가뿐만 아니라 나르시시즘화의 증가로까지 이어진다. "나르시시즘은 허구의 이미지를 위해 시선, 즉 타자를 제거한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에 더더욱. "라캉의 시대에는 세계는 여전히 시선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현대에는 시선의 소멸은 늘어가는 지각의 나르시시즘화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이야기란 그저 대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치료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 자체가 치료이며 의사와 이야기하기가 치료 행위에 포함됨을 말한다. 환자가 스스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 치유되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에 치유되는 힘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 병원에서는 환자의 이야기보단 의사의 처방이나 일방 사고가 퍼져간다. 이야기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더더욱 병이 깊어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위해선 상대가 있어야 하고, 시선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할 대상의 존재다. 우리는 이 대상을 어떻게 만나는가? 또 이야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접촉'이다. 여기서의 접촉은 그저 물리적 접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접촉은 줄고, 접촉의 시도조차 사라진다. 접촉의 상실이 곧 바른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현실의 접촉이 곧 현실의 완전한 접촉인데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접촉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접촉한다는 것은 타자로부터 가용성을 박탈하는 타자의 타자성을 전제한다. 우리는 소비 가능한 대상을 어루만질 수 없다. 단지 그것을 쥐거나 소유할 뿐이다. (...) 커져가는 접촉의 빈곤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P.120


저자는 이런 서사의 위기가 곧 공동체의 위기임을 말한다. 이야기는 사회적 응집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공통의 서사와 역사가 내려오고 그것을 답습하며 공통점으로 묶이는 사회. 미래까지 함께 나아가는 사회였지만 신자유주의 체계의 목표는 완전히 달랐다. 신자유주의 체계의 기초가 되는 세상, 즉 신자유주의적 성과 서사는 공동체 형성 자체를 방해한다. "모든 사람을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업가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성과 서사가 '우리'를 만들지 않으며 연대뿐 아니라 공감까지 해체하며 사람들을 고립시킨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우선이며, 자기 숭배적이며 스스로 지도자이자 스스로를 생산하고 공연하는 곳에서 안정을 찾는 곳엔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이제 서사조차 상업에 의해 독점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소비를 위한, 스토리 셀링(STORY SELLING)이라 말한다. 서사를 공동체와 연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자아와 연결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은 나를 드러내는 것, 선하 이미지의 소비와 연결되지만 말이다. 이야기 또한 나를 드러내는, 전시하는 방식이 된다. 관건은 단순히 서사를 찾는 것을 넘어 이것을 공동체와 연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과 삶은 정보의 나열이 아니다. 이야기다.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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