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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어부 올라이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출산을 앞둔 마르타의 방에선 비명소리가 들렸고
늙은 산파 안나는 올라이를 진정시켰다.
잠깐의 고요함이 지나고
마르타는 아들 요한네스를 낳았다.
"그래 그런 거예요, 늙은 안나가 말한다"
"다 잘 될 거야, 올라이가 말한다"
자식을 얻은 올라이는 기뻤고, 요한네스가 어부가 되길 바랐다.
요한네스는 자신과 같은 길과 인생을 걸을 것이라 상상한다.
침대에서 일어난 요한네스는 어느 때와 같이 커피를 마신다. 빵을 먹고 담배를 피운 후 밖으로 나가 창고에 들린다. 그는 이제 손자도 있는 어엿한 할아버지다. 그는 모든 행동과 장소마다 먼저 떠나간 부인 에르나를 생각한다. 창고 안에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다시 들어가지만 부르는 것은 없었고, 달라보이는 물건들만 있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보는 것들이 모두 이전과 달라있었다. 창고에는 에르나와 자신이 쓰던 물건들이 있었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그리고 저 위 창고 다락에는, 오랜 세월 모인 많은 물건이 있다"
평생을 어부로 산 그는 평소처럼 배를 몰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바다로 가는 길에 마을의 집과 풍경을 보며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갔던 이웃들과 친구 페테르를 생각한다. 그런데 해변에 도착하니 죽은 친구 페테르가 서있었다. 요한네스는 놀라 두 눈을 의심하며 페테르에게 돌을 던져보는데, 돌멩이는 그의 몸을 통과했다. 그럼에도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평소와 같이 말을 걸며 담뱃불을 붙여주며 옛날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둘은 물고기를 잡으러 배에 올라 서쪽 바다로 향한다.
요한네스는 가만히 서서 언덕과 들판, 산과 해안에 늘어선 집들을 둘러본다, 부잔교와 부표에 묶여 있는 그의 작은 노 젓는 배, 그리고 보트하우스들과 거리 위쪽의 집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모든 것이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문명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p. 74
한때는 힘센 장정이었던 요한네스가 늙은 모습을 보며 페테르는 한탄한다.
"역시 늙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야"
요한네스는 페테르의 늙고 쇠약한 모습을 바라본다.
서로가 서로의 늙음을 바라본다.
계속 낚싯대를 던지지만 배 밑바닥 일 미터쯤 아래서 계속 멈춘다.
낚시가 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정말 고약한 일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바다가 더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구먼, 그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그럼 남는 건 땅뿐인가, 페테르가 말한다
p. 81
"우린 더이상 한창때가 아니지"
세상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늙는다는 건 세상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일까. 더이상 얻는 것은 없는데 하나씩 잃어간다.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늙는다는 건 고약한 일이다. 거부할 수 없지만 느껴야 하는 것. 그저 그런 것.
"에르나가 가고 없는 것이 슬프다 (...) 그런데 이제 그녀는 영영 가고 없다 (...) 그래 그런 거지, 요한네스는 말한다" 늙어가며 하나 둘 떠나간다. 젊음도 물론이요, 주변 것들까지. 그리고 기억이든 물건이든 흔적만이 남는다.
낚시가 되지 않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요한네스는 부두로 올라 집으로 향한다. 페테르의 배는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에르나만 집에 있다면, 그럼 더 바랄게 없을 텐데"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에르나가 마중을 나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 사라진 에르나는 집에 도착하니 주방에 있었고,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해변에서 만나 함께 가정을 이룬 에르나는 7명의 자식을 낳고 열심히, 또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에르나는 그에게 돌아선다 그리고 거기 서있다 그리고 말없이 행복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에르나가 아직 살아 있던,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참 편하게 살았다고, 돈 걱정 없이, 고생도 걱정도 없이 조용하고 만족스럽게,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에르나가 돌연 다락방 침대에 누운 채 숨을 거뒀다, 그리고 그는 에르나가 늘 서 있던 부엌 창가를 바라보지만, 에르나는 거기 없고 텅 빈 마룻바닥만 남아 있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담배를 재떨이에 걸쳐놓고 레인지에서 커피 주전자를 내린다
p.111
요한네스는 페테르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딸 싱네를 발견하고 그녀를 부르지만 싱네는 그를 통과해간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느낀 싱네는 아버지가 걱정돼 집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요한네스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다가와 죽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둘은 고깃배를 타고 저 먼바다, 저 세상 너머로 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난다. 요한네스는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아래는 궂은일이 생겼구먼"
삶의 마지막 날에 유령이 되어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 죽음을 느끼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요한네스는 분명 죽어 무언가 달라짐을 느꼈지만 일상은 그대로였다. 그는 평소와 같이 살다가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그래서 자신이 죽은 것도 잘 몰랐을 것이다. 요한네스는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어부로서 살았고, 물려받고 또 물려주며 가정을 만들어갔다. 기대를 받고 태어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일들을 겪고, 떠나가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죽음을 맞는 인생이 그려진다.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저 그런 인생의 순리다. 그렇기에 늙음에 대한 한탄이라기보단 늙음에 대한 인사로 보인다. 배를 타며 자신이 살던 곳을 희미하게 떠나보내는 것처럼 인생의 막바지에서 삶은 희미하게 기록되는 것이 아닐까.
<아침 그리고 저녁>만의 특징은 대부분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장들은 쉼표로 끝나 잠시 쉬어갈 뿐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아침과 저녁은 이어지고 삶의 시작과 끝은 흘러간다. 마침표가 등장하는 문장은 해설에서 말하듯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문장,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일상이다." 나의 의지에서 이어져 나에게서 끝나는 행위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그러나 타자(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세상 또한 포함된다)와 연결되는 순간순간은 정확함과 끝을 모를, 멜랑꼴리함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욘 포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다.
욘 포세는 구체적인 행위와 감정을 설명하기보단 서사의 힘으로 이야기를 밀고 간다. 작중 친구 페테르의 말에 따르면 저 너머 세계에는 말조차 없다. 세계는 설명할 수 없는, '그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할 것 없이 비슷한 과정을 겪고, 세월의 고약함을 느낀다. 남겨진 사람은 떠나간 존재의 공허를 몸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되살린다. 삶은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삶의 기대와 안정 속 파편들, 또 지나가는 작고 작은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리운 과거의 나와, 그리운 사람들에게 바치는 한 인생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