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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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대 철학과 교수인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는 여기서 수사학적 이용 및 악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는 이 책의 목적으로 "개소리의 본질이 무엇이고, 개소리가 아닌 것과 개소리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라 말한다.

 

초반에는 개소리와 의미가 가까운 '협잡'의 의미란 무엇인지 논하면서 맥스 블랙의 정의를 가져온다. 맥스 블랙은 다음과 같이 형식적 정의를 제안한다. <협잡:누군가가 자신의 생각, 느낌 또는 태도에 대해 특히 허세 부리는 말 또는 행동을 통해 기만적으로 부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거짓말에는 미치지 못함.> 하지만 프랭크퍼트는 이 정의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개소리에 대해서도 그것이 거짓말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어떤 식으로 부정확한 진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p.24)라고 말하고 있지만 개소리의 설명에서 중요한 점을 빗겨나가 개소리의 본질적 특성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개소리 혐오를 이야기하며, 그와 관련된 한 일화를 소개한다. 편도선 제거 수술을 하고 요양원에 있던 파스칼은 비트겐슈타인을 만나자 자신의 처지를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라 말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라며 이것이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파스칼이 자신의 상태를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실제를 묘사한다는 기획의도가 담겨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비트겐슈타인이 파스칼을 꾸짖은 것은 바로 이 생각 없음 때문이다." (p.35) 핵심은 "파스칼이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려 할 때 요구되는 제약에 성실히 따르지 않은 채 어떤 사태를 묘사 했다는 것"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묘사를 할 때는 현실의 제약에 맞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의도적 거짓 전파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형식보단 저 생각 없음이 강조된다.

 

개소리의 본질은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파스칼의 사례로 들면 차에 치인 개에 대한 실제적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내 감정 혹은 상황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 표현의 비유에 그칠 뿐이었다.

 

저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참조해 흔히 개소리라 불리는 'Bull Shit' 특히 접두사로 많이 붙는 Bull을 분석하는데, Bull은 대체로 진짜 목적에 기여하지 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개소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허세 부리기에 가깝다 말하고 있다. 본질이 거짓에 있지 않고 가짜라는 것에 있다. 거짓말의 본성에서 가장 중심적 개념은 '허위성'이지만 허세 부리기는 거짓이 아니라 '속임수'의 문제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 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P.57) 저자는 이것이 개소리쟁이와 거짓말쟁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 강조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릿값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진리인지 알아야 속일 것 아닌가. 또 진릿값이 존재한다는 것은 객관적 제약에 따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소리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더 자유롭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소리의 작업은 보다 광범위하고 독립적이며 임기응변과 꾸며냄, 그리고 창의적인 연기의 여지가 많다. 이것은 들인 노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예술의 문제다."(p.58) 그렇다. 꾸며내는 것, 개소리는 예술의 경지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 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속셈을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내면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진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거짓말과 다른, 책임지지 않고 부끄럼도 없는, 속이기 위함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낸다.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마구 주장하는 개소리 행위에 과도하게 탐닉하다 보면 사태의 진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상적 습관은 약화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P.63)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다. 진상에 대한 탐구 정신을 말살시키고, 입맛에 맞게 휘둘려줄 수 있는 존재를 양성하는 것. 특히 정파적으로 굳어버린 사고를 원하는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우리 작금의 사태다. 진리를 아는 것은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가볍고 짧게 생각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선호되었고, 빠르고 쉽고 자극적이고 효율적이고 충동적인 것들이 우대받는 현실이다. 그것을 삶을 잘 사는 처세술이니 뭐니 하면서 치켜세운다.

 

"진실과 거짓은 사물을 잘못 이해하는 것과 올바로 이해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며, 적어도 때로는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사물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있다는 사고가 남아있다면, 그것은 탐구로 이어지겠으나 그 사고 자체가 없으면 물을 흐리기만 한다. 이것이 저자가 이후에 말하는, 현대의 개소리가 넘쳐나는 이유임을 말하고 있다. 거짓말하는 쪽은 적어도 진리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개소리를 하는 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소리는 진리의 큰 적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같은 게임 속에서 반대편으로 활동한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사실에 반응한다. 비록 한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따르고, 다른 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며 그 요구에 맞추기를 거부하지만 말이다. 개소리쟁이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P.64)

 

저자는 오늘날 개소리의 확산이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 보다 깊은 원천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진실을 탐구하는 것을 무의미하다 생각하고 사회에서 개인으로 초점이 옮겨가 개인을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에 충실하지 않고 자신에 충실하면 된다는 사고. 그런데 인간이란 존재는 세계와 맞닿아 있어서 다른 것들을 알아야 우리를 알 수밖에 없는데, 절대적 세상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은 사고를 가지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한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 저자는 묻고 있다.

 

이런 비판을 가하기 이전에 저자는 개소리에 대한 설명에 들어서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남겼다. "개소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왜 일반적으로 거짓말을 대할 때보다 관대한가?" 라고. 저자는 진리의 관점에서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적대시되어야 한다 말한다. 거짓말보다 개소리를 경계하고 주의해야 한다. 개소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저자는 개소리를 더 관대하게 대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과거보다 더 넘쳐나는지 실증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형태는 확실히 바뀌고 있다. 누구는 확증편향으로 얼룩진 사회가 미디어의 발달로 더더욱 늪으로 빠져간다고 말하지만 개소리를 걷어내지 못해 다 같이 침몰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걸 단순히 국민의 수준이니 비관하면서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진 않다. 하지만 굉장히 절망적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책읽지 않고, 찾아보려는 습관이 없이 떠먹여주길 원하는 사회의 결말은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책을 안읽으니 역사도 모를 것이 아닌가. 개소리에 대한 문제는 태도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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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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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알 수록 복잡하고, 사람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상에 다양한 돋보기를 대보며 더 정확한 이해에 다다른다. <생각의 요새>저자 고명섭은 세계의 문학, 철학, 역사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학자들의 사상과 최신 연구까지 포함한 '생각의 요새'들을 파고든다.


프랑수아 줄리앙은 "자신에 대한 자기적응에 균열을 냄으로써 '자아'의 마비에서 빠져나오는" 탈합치 개념을 창안했다. 리처드 도티<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에서 우연적인 사건을 거듭해온 사회가 자유주의라는 가장 좋은 사회를 만들었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잔인성을 최소화한 사회를 추구해야 함을 주장한다. 알랭 바디우는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이라는 영역의 사건들에서 기존의 여론의 지배를 깨뜨리는 보편성을 창출하면서 진리가 출현하며 혁명 집단과 같은 세계 내부의 몸체에 개인들이 합류할 때 개인은 진리의 주체가 된다 말한다.


이와 같이 사유의 근본 사고를 건드리는 책들을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로티가 말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겐 모든 것을 초월한 특정한 진리라는 것은 없으며 각자의 자기창조 활동을 이어나가며 세상을 발전시킬 뿐이다. 바디우는 자신을 주체로 일으켜 가장 완전한 이상을 마음에 품고 진리의 주체로 나아가는 삶을 참된 삶으로 보았다. 


세상에는 어떤 진리가 필요한 것일까? 그저 진리는 중요하지 않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한가? 세상은 어떤 수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사회라는 틀로 많은 현상들을 바라본 뒤르켐의 이야기와 그의 사고를 비판하면서, 총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마르셀 모스의 주장도 소개된다. 모스는 사회로 인해 신체의 기능이 바뀐다는 <몸 테크닉>을 저술하며 부르디외 이전의 아비투스 개념을 발견한다.


로고스주의를 바탕으로 개념을 나눠 한 쪽을 무시한 이분법을 바꾸고자 한 엘렌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와 남녀의 확실한 이분법을 나누는 운동을 비판하며 공생적 시각을 추구해 내부, 외부 모두에게 논쟁을 일으킨 도나 해러웨이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여기서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그저 기능적 존재인가, 사회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과 사회가 작동하는 법칙과 관성적이고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운동을 벌여야 하는가의 질문이 이어지게 된다.


이도흠의 <18~19세기 한국문학, 차이의 근대성>에서는 원효의 화쟁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원효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아울러 더 큰 하나로 회통하는 방법을 내세웠다. 모든 존재는 서로의 영향을 받아 존재하는 것이며 통합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최신 우주연구에 대한 토니 로스먼<빅뱅의 질문들>설명에서 과학자들의 질문들이"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지워진다 주장한다. 우리는 다양한 가설로 우주를 설명하듯 다양한 가설로 사회를, 세계를, 인간을 설명한다.


백낙청은 민주주의, 평등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지혜의 등급은 필요하면서도 지혜의 질서는 고정되지 않고 역동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삶과 세계가 얼마나 넓게, 얼마나 깊게 통찰되느냐가 지혜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통찰의 수준에 따라 사회의 지혜가 달라진다.


<생각의 요새>고병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소개로 마무리하는데, 고병권은 민주주의는 제도라기보단 제도에 대응하는 힘의 표출로 인식하며, 대의제 강화와 완성을 목표로 내세우며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내리치는 최장집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하지만 이후에 대안으로 설명되는 고병권의 발언에서는 자아실현을 외치는 마르크스의 유토피아가 겹쳐 보인다.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구체성과 설계의 문제다. 인간은 여기서 수만 가지로 뻗어나간다. 헤겔과 같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까지도 다른 생각을 한다.


깊은 사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때론 극단을 지양하며 사고의 통합을 추구했던 학자들의 이야기와 민주주의 논의로 마무리되는<생각의 요새>를 곱씹은다면 현재 사회에 함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연구해온 이들의 생각과 노력을 작은 돈을 들여 손쉽게 들여다본다. 이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세계와 인간을, 현명한 삶의 방식을 더 잘 이해한다.




*읽고싶었던 도서인데 교양인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아 읽었다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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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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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뒤피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를 넘나들었고, 그림뿐만 아니라 도예, 패션, 직물 디자인, 무대 장식 등에도 도전하고 실험하는 예술가였다. 그만큼 남긴 작품과 후대와 당대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상당하다. 미술사 작가로 유명한 이소영이 이야기하는 뒤피의 삶을 보자.


많은 화가와 예술가에게 바다는 영감의 원천이자 안식처였다. 뒤피의 고향이자 해변의 도시였던 르아브르는 뒤피 그림의 주제이자 그가 평생 파란색을 좋아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르아브르는 장르를 초월해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장소였다.


뒤피는 모네, 피사로 같은 인상파 화가에게 영향을 받아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공부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폴 시냑과 마티스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회화의 새로운 존재 이유를 알며 야수파에 사로잡힌다. 야수파는 색의 사용이 자유롭고 활기차고 생명력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친한 친구 조르주 브라크와 공부하며 입체파에도 영향을 받는다.이 시기 뒤피의 그림을 보면, 형식 측면에서 입체파적인 모습이 굉장히 돋보이는데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다른 화가가 크게 떠오르진 않는다. 뒤피만의 스타일을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뒤피에게는 모든 미술사조가 영감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사조에도 자신의 개성을 얽매이도록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늘 변화하는 스타일에 있었다." (P.84)


뒤피는 수채화를 특히 좋아했는데, 투명 수채화와 불투명 수채화인 구아슈(gouache) 작품을 많이 남겼다. 수채화는 연하고 밝은 느낌을 표현하는데 좋다. 특히 구아슈는 선명하고 색이 환해지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뒤피가 원하는 색감을 표현하기 좋았을 것이다.


저자는 뒤피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여러 인물들을 소개한다. 특히 뒤피 작품을 최초로 구매하고 소개한 여성 갤러리스트 베르트 웨일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웨일은피카소, 모딜리아니, 뒤피, 발로몽, 로트렉, 마티스, 시냑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시를 열어 컬렉터들을 연결해 주었고 미술사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모딜리아니에게 생애 유일한 개인전을 만들어 준 것이 베르트 웨일이라 할 정도다.


뒤피는 패션계의 대가 폴 푸아레와 협업했다. 뒤피의 텍스타일 디자인을 사용해 디자인을 만들었다. 지금 패션계에서도 뒤피의 패턴은 종종 나올 정도다. 뒤피는 흥미를 느껴 시작한 삽화 작업이 직물 디자인까지 연결되는데, 이후 패턴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정말 안한 것이 없다.


뒤피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의 특징을 모두 흡수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투명하게 발린 색은 이전의 스케치를 숨기지 않고, 감상자가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특히 드로잉 선과 색면을 비대칭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큰 특징인데, 부조화를 느끼기보단 색들이 자연스레 물 번지듯 퍼진다. 수채화의 강점을 그대로 이용했다.


저자는 뒤피 회화의 세 가지 대표적 특징을 뽑는다.


1) 대담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으면서 투명하게 겹쳐지는 붓질

2) 춤을 추는 듯한 서예 스타일의 드로잉

3) 색면과 선의 분리


"이 세 가지 장점이 뒤피가 당대 화가들에 비해 보다 일러스트적이고 독창적이면서도 융통성은 잃지 않는 지점이다."(p.245)


뒤피의 색에는 따듯함이 느껴진다. 뒤피는 고난 속 피어난 깊은 감정이 느껴지기보단 미술적 실험과 다양한 시도로 지평을 넓혔다. 그래서 화가 개인적 감정과 일화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고 작품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뒤피처럼 수채화와 색감 선택을 자신 있게 하는 화가도 드물다. 정확도와 묘사를 중시하는 이들은 뒤피의 그림을 선호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피카소가 그랬듯이 못해서 정확히 못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화려함, 따듯함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뒤피는 삶이 고뇌에 찰지라도 스스로의 예술에 그 고통을 절대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p.338


우리가 미술작품을 보며 화가의 삶 뿐만 아니라 화가의 의지도 느낀다. 그림은 결국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한정된 무대 속에서 벌이는 개인의 열투다. 화가 개인의 삶과 작품의 공간에서 이중적으로 벌어지는 스토리텔링이 한 작품을 완성한다. 그것이 그저 목적을 가지고 수동적으로 행하는 ai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뒤피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만들었다. 그의 삶과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은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고 잔잔히 빛나는 발자국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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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리아 - 플루타르코스에게 배우는 지혜 한길그레이트북스 170
플루타르코스 지음, 윤진 옮김 / 한길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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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리아』는 로마시대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저작 중 '지혜'와 관련된 다섯 편을 담은 책이다. 플루타르코스는 227편의 매우 방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썼지만, 『모랄리아』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불리는 『대비열전』만이 현존한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19?)는 그리스 카이로네아출신으로 도시 간 교류를 도우면서 아르콘(행정장관)을 맡기도 했으며 여러 고위 관직에 올랐다. 또한 "그는 그리스(교육)와 로마(권력)의 관계를 대표하는 저술가였다."


플루타르코스는 크게 교육, 지혜, 역사, 철학, 종교에 관한 담론을 펼치는데, 대체로 인물들의 행위나 대사를 서술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알렉산드로스, 데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카이사르, 스키피오, 아게실라오스, 키루스, 리쿠르고스와 같은 고대사 유명 인물들이 나오며 역사적 사건과 국가별 특징, 문화와 인물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중간중간 인물들의 유머와 극단적인 사고, 유명 속담들도 나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왕들과 장군들의 어록>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헌정하기 위해 쓴 것으로, 통치에 필요한 지혜와 사고방식을 조언한다. 고대의 마키아벨리와 사마천 역할을 한 것이다. 고대사에 관한 책이다 보니, 헤로도토스의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그리스 로마신화 같은 다양한 책들을 넘나든다. 몰라도 괜찮다. 각주가 매우 상세히 달려있다.


책의 목차는 7현인의 저녁식사, 왕들과 장군들의 어록, 로마인들의 어록, 스파르타인들의 어록, 스파르타 여성들의 어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7현인으로 탈레스, 비아스, 피타코스, 솔론, 킬론, 클레오불로스, 아나카르시스가 모여 민중의 통치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데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로마시대에 사고가 경제적인 것과 결부되기 이전에 그리스에서는 공공의 것, 특히 정의가 강조된 말들을 하고 있어 몇몇 인물들의 발언은 사회주의와 맞닿아 있었다.


이후에는 집안을 건사하는 법, 먹고 마시는 즐거움 등 정말 다양한 것들을 논한다. 재미있는 점은 스파르타와 굉장히 다른 모습과 사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들의 대화에서도 스파르타를 비난하는 말들이 나오며 스파르타도 아테네를 가차 없이 깐다.


왕과 장군들의 어록에서는 굉장히 낭만 넘치는 구절들과 재미있는 일화들이 쏟아진다.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이야기에서는 그 아빠에 그 아들인듯싶었다. 자신을 험담하는 민중 덕분에 더욱 열심히 처신할 수 있다거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의 말을 듣고 화가 나지만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둘 다 포부와 정의감이 넘쳤다.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고전에 빠트린 파비우스 막시무스도 나오는데, 한니발을 상대할 수 있었던 정신이 나타난다. 굉장히 자만스럽지 않고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한다. 권위 의식이 없으며 명예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카이사르의 대범함을 보여주는 모습이 나온다. 그가 젊은 시절 해적에게 붙잡혔는데, 해적이 제시한 돈을 비웃으며 두 배로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곤하니 조용히 하라고까지 말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iacta alea est)",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대사도 나온다. 대범하고 야심찬 그의 성격이 나타난다.


일곱차례 집정관을 지낸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절제하는 정맥류 치료를 받으면서도 고통을 참는 모습은 관우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외에도 동양사상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 흥미로웠다.


스파르타 전성기의 왕 아게실라오스 대왕과 입법자 리쿠르고스가 나온다. 리쿠르고스 법에선 개인의 인격이 말살되고, 문화를 사치로 바라보며 절제와 국가 헌신을 미덕으로 본다. '전사 양성'이 목적이다.


스파르타 여성들도 굉장히 호전적이다. 여성들도 군사훈련을 받고 출산에 힘썼는데, 남녀평등의 의식보단, 남성성의 기준을 여성이 따라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성도 스스로를 지키고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스파르타에선 인간은 기계적이고 소모품이 된다. 물론 '국가를 위한다'라는 굉장히 숭고한 이미지로 나타나지만, 개인의 인격이 말살되는 모습을 보면 그 국가를 위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고대 국가의 모습들과 인물들의 성격과 대화를 보면, 좋은 국가란 무엇인가, 지혜롭게 사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 사는 모습이나 생각은 외양만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서양고대사나 서양 문화와 철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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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 서점은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한밤의 별빛이다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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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은 출판인 김언호가 세계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서점의 모습과 역사, 서점인을 만나 대화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저마다 독특한 모습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점을 볼 수 있었다.

고딕 교회를 리모델링한 도미니카넌, 천장까지 책으로 뒤덮인 중수거, 질 좋은 내용의 책만 고집하는 돈트북스, 지역의 문화 거점 트론스모, 기차역을 개조한 바터 북스,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은 미드타운 스콜라, 생명과 평화의 철학을 가진 크레용하우스, 저자 본인의 꿈이었던 북하우스와 순화동천 등의 서점들은 각자의 세계를 나타냈다.

셴펑 서점인 첸샤오화는 지역 노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촌에 서점을 만들어 지역을 독서 관광지로 만들었다. 그는 특색 있는 주제의 책을 다루면서 농촌에는 공공 문화공간, 지식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말한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서점인의 정신과 철학이 드러나고 다양한 모습을 갖춘, 독자와의 소통 공간이다.

주샹쥐 서점인 주야후이는 고서적들의 가치를 알고 중고서적과 고서적을 무게가 아닌 권수대로 값을 매겨 구매한다. 특별전을 열면 완판되고, 고서적이 비싸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를 알고 구입한다.

세상의 수많은 헌책들을 모으는 헤이온와이 서점인 리처드 부스는 책방 마을 운동을 벌여 전 세계로 수출했다. 그는 새로 만들어내는 책들의 내용은 이미 헌책에 다 나와있다고 말한다. 그는 재사용을 강조하며 새로운 책보다는 친환경적인 헌책을 추구한다.

저자 김언호는 종이책을 선호하는데, e-book과 인터넷 서점 시스템은 기계 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사색을 추구하기 보다 편리함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책의 가치는 어느 순간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어 ‘팔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저자에게 책이란 음미하고 분석되어야 하는 대상이지 물건처럼 처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종이책의 효용이 더 좋다는 연구가 나왔기도 하지만 공간과 부피를 가진 책이 주는 힘은 상당하다.

독립서점은 낭만처럼 보이나 현실은 국내나 해외나 다르지 않았다. 오프라인 서점, 특히 많은 동네 책방은 적자 때문에 문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저마다 대응책을 내놓는다. 직원이 책을 추천한다거나, 음악회 같은 예술 행사를 열거나, 독자와의 대화 같은 각종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뉴욕의 맥널리 잭슨은 나만의 책을 쉽게 만들어준다. 저작권 없는 옛 고전들도 새로운 책으로 만들어준다.

서점을 도우려는 외부의 도움들도 있었다. 폐업 위기에 처한 서점을 살리려는 성명 운동과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운동, 차용증서를 요구하지 않은 기부, 일부러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까지. 서점을 살리는 것이 마을의 문화와 정신을 살리는 의지였다.

“서점은 본래 공공공간입니다.”(p.329) 셴펑서점 서점인의 말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사고 팔리지만, 중고거래되기도 하며 빌려지기도 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화를 만들어내며 꿈을 만들어낸다. 책의 가치는 외관에 있기보단 내용에 있다. 지식은 독점되지 않는다는 점과 책의 본래의 가치를 생각할 때 서점은 공적인 것을 사고파는 공적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작은 종이책에서 무한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돈으로 주고 팔 수 없는 것이다. 책을 인생으로 삼은 사람들은 그러한 경외를 경험한다. 서점은 꿈을 파는 곳이자 인생을 파는 곳이다. 서점을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의 정신에는 옛것을 지키고자 함과 동시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자 함이 느껴진다. 그들은 작은 가능성들을 키워낸다.

“비관주의자들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책을 만들고 책 읽기를 일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매사추세츠 ‘북밀’ 서점인,수잔 실리데이(p.174)

저자의 말처럼 책을 만들고 읽고 지키고자 하는 것은 세계를 초월한 보편적 정신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 본성의, 인간 의지에 고귀한 무엇인가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 도서관을 없애고 독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이 시기에 주는 시사점이 상당하다. 언제나 그렇듯 앉아서 책을 읽으며 이 작은 공간에서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는 것은 흥미롭고 대단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책을 사고 책을 읽는다.


“한 인간이 생애를 통해 구현해낸 큰 정신은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다.“(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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