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라울 뒤피에 관한 이야기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울 뒤피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를 넘나들었고, 그림뿐만 아니라 도예, 패션, 직물 디자인, 무대 장식 등에도 도전하고 실험하는 예술가였다. 그만큼 남긴 작품과 후대와 당대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상당하다. 미술사 작가로 유명한 이소영이 이야기하는 뒤피의 삶을 보자.


많은 화가와 예술가에게 바다는 영감의 원천이자 안식처였다. 뒤피의 고향이자 해변의 도시였던 르아브르는 뒤피 그림의 주제이자 그가 평생 파란색을 좋아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르아브르는 장르를 초월해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장소였다.


뒤피는 모네, 피사로 같은 인상파 화가에게 영향을 받아 인상파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공부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폴 시냑과 마티스의 작품을 보게 되면서 회화의 새로운 존재 이유를 알며 야수파에 사로잡힌다. 야수파는 색의 사용이 자유롭고 활기차고 생명력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친한 친구 조르주 브라크와 공부하며 입체파에도 영향을 받는다.이 시기 뒤피의 그림을 보면, 형식 측면에서 입체파적인 모습이 굉장히 돋보이는데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다른 화가가 크게 떠오르진 않는다. 뒤피만의 스타일을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뒤피에게는 모든 미술사조가 영감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사조에도 자신의 개성을 얽매이도록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늘 변화하는 스타일에 있었다." (P.84)


뒤피는 수채화를 특히 좋아했는데, 투명 수채화와 불투명 수채화인 구아슈(gouache) 작품을 많이 남겼다. 수채화는 연하고 밝은 느낌을 표현하는데 좋다. 특히 구아슈는 선명하고 색이 환해지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뒤피가 원하는 색감을 표현하기 좋았을 것이다.


저자는 뒤피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여러 인물들을 소개한다. 특히 뒤피 작품을 최초로 구매하고 소개한 여성 갤러리스트 베르트 웨일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웨일은피카소, 모딜리아니, 뒤피, 발로몽, 로트렉, 마티스, 시냑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시를 열어 컬렉터들을 연결해 주었고 미술사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모딜리아니에게 생애 유일한 개인전을 만들어 준 것이 베르트 웨일이라 할 정도다.


뒤피는 패션계의 대가 폴 푸아레와 협업했다. 뒤피의 텍스타일 디자인을 사용해 디자인을 만들었다. 지금 패션계에서도 뒤피의 패턴은 종종 나올 정도다. 뒤피는 흥미를 느껴 시작한 삽화 작업이 직물 디자인까지 연결되는데, 이후 패턴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정말 안한 것이 없다.


뒤피는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의 특징을 모두 흡수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투명하게 발린 색은 이전의 스케치를 숨기지 않고, 감상자가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특히 드로잉 선과 색면을 비대칭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큰 특징인데, 부조화를 느끼기보단 색들이 자연스레 물 번지듯 퍼진다. 수채화의 강점을 그대로 이용했다.


저자는 뒤피 회화의 세 가지 대표적 특징을 뽑는다.


1) 대담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으면서 투명하게 겹쳐지는 붓질

2) 춤을 추는 듯한 서예 스타일의 드로잉

3) 색면과 선의 분리


"이 세 가지 장점이 뒤피가 당대 화가들에 비해 보다 일러스트적이고 독창적이면서도 융통성은 잃지 않는 지점이다."(p.245)


뒤피의 색에는 따듯함이 느껴진다. 뒤피는 고난 속 피어난 깊은 감정이 느껴지기보단 미술적 실험과 다양한 시도로 지평을 넓혔다. 그래서 화가 개인적 감정과 일화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고 작품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뒤피처럼 수채화와 색감 선택을 자신 있게 하는 화가도 드물다. 정확도와 묘사를 중시하는 이들은 뒤피의 그림을 선호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피카소가 그랬듯이 못해서 정확히 못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유분방함과 화려함, 따듯함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뒤피는 삶이 고뇌에 찰지라도 스스로의 예술에 그 고통을 절대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p.338


우리가 미술작품을 보며 화가의 삶 뿐만 아니라 화가의 의지도 느낀다. 그림은 결국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한정된 무대 속에서 벌이는 개인의 열투다. 화가 개인의 삶과 작품의 공간에서 이중적으로 벌어지는 스토리텔링이 한 작품을 완성한다. 그것이 그저 목적을 가지고 수동적으로 행하는 ai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뒤피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만들었다. 그의 삶과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은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고 잔잔히 빛나는 발자국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