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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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읽고 나면 마음속에서 한동안 끊임없이 잔물결 치는 이야기들이 있다.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읽었던 <이지뷰티>가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장애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박사과정 강사로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주인공 클로이 쿠퍼 존스는 술집에서 친구였던 남성 둘과 대화를 하다 어떤 감정을 느끼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녀는 박물관과 오페라 공연, 아름다운 자연들을 만끽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녀는 고관절이형성이라는 고관절들이 서로 잘 맞지 않아 불안정해 통증이 지속되는 병을 갖고있다. 또한 천골무형성증이라는,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없는 병을 앓고있었다. 걷기 힘들고 작고 형편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 장애는 태어날때부터 그녀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런 그녀가 평생 마주했고 스스로도 되새겼던 질문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였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인지 객관적인 것인지 그 둘 다 섞여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미술 작품은 대칭과 완벽을 요구했고, 그리스 철학과 미술은 완벽한 것을 추구했다. 그러나 장애인인 그녀의 삶은 균형이 맞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삶이 그들 자신의 삶보다 원천적으로 가치가 낮다고 생각했을까?" (p.125)

 

장애인은 동정받는 삶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먼저 제한을 두고 틀을 벗어나면 놀라는 방식이었다. 장애인이란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항상 그녀를 뒤따라다녔다. 동료 콜린과의 대화에서 장애인의 삶의 모든 부분은 부정적이며 장애인으로 태어나느니 비장애인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이 문제는 클로이가 가르치는 과목도 관련되어 있었다. 장애인 부모는 자식을 비장애인으로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있고 실제로 어떤 상황에 마주하는가.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고, 때로는 잔인하게 굴었지만, 대개의 경우 그저 나를 끼워주기가 어려우니 나를 가장자리 남겨두는 게 편하다고 느꼈다. 내 몸은 항상 눈에 보였지만, 내가 나의 '자아'라고 불렀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불가피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나 자신을 배제했다. 더 현실적인 삶, 사방에서 반짝이는 삶, 발곡 충만하고 접근 불가능한 삶의 흐름에서 밀려나기 전에 나만의 고독한 장소로 대피했다." (p.138)

"나는 고대 그리스 초기의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아름다움이라는 이론을 좋아했던 적이 없고, 그런 아름다움이 진리나 정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미덕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나는 항상 '아름다움은 외적 속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는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흄의 이론을 선호했다." (p.194)

그녀에겐 그녀만의 공간인 '중립의 방'이 필요했다. 마음이 요동치고 불안한 상황이 있으면 그녀만의 마음 속 공간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자신만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갈망했다.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아름다움'엔 장애인이 낄 공간이 없었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철학자들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 스스로도 편한 일이었다. 서로가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 철학자들의 이론을 '절망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로 사용했다.

그녀는 이탈리아 여행을 다니며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보게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내세우는 주관적 아름다움의 주장과 다르게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만난 많은 남자들은 그녀의 몸을 먼저 보고, 나중에 그녀의 다양한 특징을 보았다. 반대로 그의 남편 엔드류는 그저 복잡할 거 없이 그녀의 전부를 원했다. 그녀를 온전히 바라본 것이다. "그는 복잡할 것도 없이 나의 전부를 원했다." 어떤 장애인으로서의 편견은 물론, 기대도 없었다. "그와 함께하는 날들은 영화 같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펼쳐졌다."

클로이에게 출석 문제로 속을 썩인 학생 샤론이 어느날 그녀에게 다시 찾아와 사과하면서, 비욘세 콘서트를 간 이야기를 한다. 거기서 자신이 신적인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며 꼭 가서 보라고 추천했다. 샤론은 비욘세를 보면서 "자기가 있을 곳을 정확히 아는 한 여성'을 보았고, 자신에게 질문했다고 말한다.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지금 이순간에 확신을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클로이는 그런 말을 비웃듯이 대했다. 자신의 취향과 지적 수준에는 그런 무대가 별로 끌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쉬운 아름다음어려운 아름다움을 구분했다. 쉬운 아름다움은 눈에 잘 띄고 편안한 것이고 어려운 아름다움은 시간과 인내와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하는 것. 샤론의 이야기를 엔드류에게 말했는데, 엔드류는 클로이에게 오히려 비욘세 콘서트에 가고싶어하는 것 같다며 생일선물로 비욘세의 콘서트 티켓을 받는다.

힘겹게 콘서트장에서 비욘세를 본 저자는 샤론이 말했던 그 신적인 경험, 함께하는 경험을 느낀다. 사람들은 하나가 되었고 저자 또한 그 흐름의 일부였다. 비욘세는 현재의 절대성을 보여주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상태에 진입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함께함을 느낀다.


중립의 방은 중립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선을 그었다. 그녀의 세상은 죽은 철학자들과의 대화였다. 아름다움은 한번에 뚜렷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소화하는 것이었다.

클로이는 많은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특히 울프강을 낳았을 때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엄마에게도 자신을 낳았을 때 두렵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그녀의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빛을 봤다고 말한다. 엄마는 빛나는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그곳에 아기와 함께 있었던 엄마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지지 않고, 그저 함께 있었다.


세상의 현실을 마주했고, 그동안 세상을 그저 아는 척 했던 그녀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녀의 엄마는 세상을 추상적 대상으로 분석해 위에 내려다 보는 것보단,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커져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세상은 나 홀로가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중 하나로 스며드는 내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녀와 매우 닮기도 하고, 롤모델이기도 했지만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항상 도피하는 모습을 보였던 아버지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하며 아버지 또한 변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자신 또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가족 모두를 사랑하며 그 자체로, 온전히 이해한다. 그녀의 마음은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름다움이 내 온몸을 뒤흔들며 관통하면서 두렷하게 부정할 수 없게 진실을 창조하고, 너무나 강렬한 광선을 발사해 내 삶 전체를 밝혀주는 단 하나의 순수한 느낌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를 찾아온 것은 자욱하게 떠다니는 무더기 같은 것이었고 거기에는 과제가 따라왔다. 뚜렷하게 보이는 것을 내가 볼 수 있을까? 모래로 떡칠된 울프강의 머리카락. 가볍게 떨리는 울프강의 자그마한 어깨. 울프강의 매끈하고 볼록한 선홍색 잇몸. 새로운 치아가 잇모을 꿇고 나오면서 팽팽한 긴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울프강의 빛나는 두 눈, 회색 눈동자. 내 손 안에 있는 울프강의 손. 우리는 완벽을 선물받지 않았고, 신성함도, 대칭도, 우아한 비례도, 나쁜 패도, 저주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함게 보낼 한평생만을 선물받았다. 우리의 삶은 쉬운 삶도 아니고 고통 없는 삶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현실의 삶을 받았다. 무서울 정도로 일상적이면서도 숭고한 삶. 나는 더 이상 다른 삶을 염원하면서 그 삶의 아름다움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p.443


클로이 브루클린 술집에서 링컨의 친구였던 카일을 만나 이야기를 한다. 이혼한 카일은 자신의 결혼생활에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다 상대방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궁금해 하며 "선생님의 남편은 선생님의 몸이 부담스러울 때 어떻게 참아내는지 알고 싶은데요?" 라는 무례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삶의 관점이 달라진 클로이는 이전과 다르게 생각한다.

"나의 경우 사람들이 항상 나를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해 주지는 않았고, 사람들이 항상 나를 온전한 조재로 봐주지도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카일 같은 사람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카일을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건 건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해서 내가 잃을 건 없다. 반대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느끼곤 했던 그 모든 분노와 불안, 공포와 혐오는 나에게서 거의 모든 걸 앗아갔다."

원하지 않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장애라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클로이 그저 어딘가 부족하지 않은 그저'나'로서 살아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온전하지 않은 인격체로 바라보곤 했지만, 그런 시선에 의해 클로이는 방에 들어가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클로이는 아들 울프강과 마술공연을 보러간다. 울프강은 속임수를 눈치 채고 아는 척을 하며 마술이 재미 없다고 말하는데,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완벽하게 속아버리며 마술의 대단함을 느낀다. 그 모습을 보고 앤드류는 말한다 "그것 보렴! 이제부터는 너무 똑똑한 척 하지 마라, 요 시니컬한 녀석" 세상은 잘난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우린 잘난 나의 머리를 거세게 망치로 맞는 경험을 한다.

클로이는 철학자 아이리스 머독의 책을 읽는다. 머독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가짜 베일을 통해 사물을 보는데, 그 베일은 세상의 일부를 숨긴다"고. 클로이는 자신만이 만들어낸 가짜 베일을 통해 세상을 보고 가려냈다. 경험을 추상화해서 이론으로 만들며 우월감을 느꼈다. 같이하는 경험, 대중에 휩쓸리는 것을 깔보고 홀로 도피한 장소에서 철학 이론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현실의 경험은 그의 생각을 바꿨다.

그녀가 평생 질문하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또 이상적인 세상을 추구하는 문제는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며 평가하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머독은 말한다. 우리는 이상적인 것에 이끌려서 변화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바깥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때때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그 아름다움은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대상의 진실된 모습을 볼 기회를 준다. 그렇게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보면 세상이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통해 '살찐 고집쟁이 자아'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잊을'수 있고, 그러면 우리의 의식의 질이 향상된다

p.489

세상은 맞딱뜨려야 하고, 우린 거기서 아름다움을 얻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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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약국 말기암 통합요법 상담소 - 말기암, 전이암의 뿌리를 캐내고 암세포를 정상세포로 만드는 놀라운 경험!
김훈하 지음 / 리더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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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기암 환자 가족이다. 항암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유튜브를 통해서 김훈하 약사를 알게되었고 유튜브를 통해 이 책을 알게되었다. 김훈하 약사는 유방암을 극복한 후 치료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저자의 아버지가 폐암에 걸리고 또 머리와 갈비뼈쪽에 전이되어 말기암 환자가 되었지만 항암요법을 통해 6개월만에 암세포를 없앴다. 나는 6개월이 훨씬 지나 몇년 후에야 이 책을 발견했지만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책을 구매했다. 암환자 치료도 치료지만 스스로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암 연구자나 보건계열 학생도 읽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은 저자의 아버지가 전이암(4기 비소세포폐암- 간, 머리뒤통수, 갈비뼈 아래에 전이가 되었다고 한다)에 걸린 이야기로 시작한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항암 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보호자와 함께 상의하면서 결정해야 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끌어올려야 한다. 저자는 아버지에게 몇년 더 살고싶은지 묻고, 항암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4기 환자의 처음 3개월은 0~2기 환자의 3년과도 같은 시간이다.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다.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나게 된다." (p.24)

 

항암 계획과 약물은 사람마다 다르게 짜여지기 때문에 저자는 아버지의 항암일정에 대해 설명한다. 항암약에 대해서는 병원에서 잘 설명해준다. 모든 항암의 공통점이라면, 항암과정에서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면역이 당연히 약해지는데, 세균과 바이러스 날음식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또 구내염이나 변비와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으니 자극적이거나 딱딱한 음식은 자제해야 한다.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 어떤지 확실히 알고 의사한테 설명해야 한다.

 

*식단은 어떻게 해야할까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항암 식단은 '야채를 최대한 많이 섭취하기'이다."(p.34) 식용유, 설탕, 밀가루, 붉은 고기는 배제해야 한다. 전이암은 0~2기 암과 다르게 순식간에 자란다. "해결책은 전이암 세포가 싫어하는 먹이만 주어야 합니다." 책에서 항암중요도 식품들을 설명해주는데, 이것들을 갈아서 수프형태로 마시는 걸 추천한다. 또한 유제품, 설탕, 밀가루, 붉은 고기, 인슐린을 급격히 올리는 식단을 피해야한다. 항암 구매 물품 목록과 피해야 할 식단을 자세히 알려준다.

 

저자의 아버지는 80의 나이지만 항암후 혈액결과가 잘나왔다. 하지만 부종과 같은 부작용이 심해서 항암약 중 하나인 키트루다를 중단했다. "힘들면 항암제를 중단하고 다시 몸을 추스르고 체력을 키우는 다른 요법들을 실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p.46) 이후CT결과에서 전이 암이 줄어들었다. 생활습관을 바꾸고 협력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15가지의 보충제와 천연물 알칼로이드 복합제를 함께 썼다."

 

* 저자는 암 관리 방법을 간단하게 요약한다.

1)철저한 식이요법 실시

2)명확한 목표 제시

3)결핍되어 있는 영양소 채우기

4)천연물을 통한 정밀한 암 신호전달 차단 및 사멸

5)가족의 사랑과 협력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선 암세포의 특징과 생기는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인간의 암세포는 단 한 번의 돌연변이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DNA의 누적된 돌연변이와 노화로 누적된 변이가 원인임이 밝혀지고 있다."(P.60) 우리 몸의 세포는 계속해서 생성되고 죽는데, 잘못 만들어진 세포는 면역체계가 없애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 번에 암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돌연변이가 쌓여 암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이를 앞당기는 것이 흡연같은 것이다. 또한 "암세포는 에너지대사에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P.62). 그렇기에 혈당이 치솟는 음식, 지방의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유전자에는 세포 성장, 사멸 등을 포함한 청사진이 포함되어 있는데 식단과 생활방식, 환경으로 인해 유전자 청사진의 발현에 문제가 생긴다. 암이 생기는 이유는 DNA 돌연변이의 누적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조직, 기관의 발현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P.93)

 

암세포보다 그 뿌리인 암줄기세포를 없애야 전이를 막을 수 있는데, 암줄기세포는 아기가 태어나는, 수정하는 과정의 배아세포와 굉장히 비슷하다. 그래서 암줄기세포를 없애기가 굉장히 까다롭다. 2000년대 이후로 후성유전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떠올랐는데, 우리의 DNA 발현이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발현시킬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니까 환경을 통해 DNA 특성을 컨트롤 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발현되고 안좋은 것은 발현되지 못하게. 그렇기 때문에 암환자, 특히 전이암 환자는 환경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현재는 1세대,2세대,3세대 항암제라 불리는 세포독성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가 있다.

"세포독성항암제는 '항증식제'라고도 불린다. 즉 증식하는 세포에 작용하여 세포주기 사이클을 억제하여 DNA복제를 억제하는 것이다. 빠르게 증식하는 세포에 작용하여 크기는 조금 줄일 수 있으나 잔존하는 암세포의 뿌리까지 제거하지 못한다.(P.104) " "표적항암제는 암세포에게 신호를 주는 수용체를 표적으로 해서 활성을 억제하고 공격하는 항암제이다. (P.105) 그러나 암세포는 하나의 표적이 막히면 다른 신호전달을 이용하기에 이것도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면역항암제는 우리 몸에 작동하지 않는 면역세포를 깨우고 면역 균형을 되돌리는 치료법이다." (P.112) 그러나 면역항암제를 투여하면 정상적 세포를 면역계가 공격할 수 있고 부작용도 상당해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항암제로 암세포를 모두 사멸한다고 기대하긴 어렵다. 보충제와 천연물 각종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항암치료는 단순히 위에 언급한 수술, 항암, 방사선으로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중의학, 일본의 캄포(한방), 천연물약초 요봅,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 등을 연구하는 통합종양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각종 한방 식품으로 효과를 본 논문과 연구결과들이 존재한다. 통합의학에는 천연물 제제(약효가 밝혀진 식물)을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부터 약초까지 다양하다. 책에 더 자세하게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예를 들면 생강, 마늘, 버섯, 강황, 오수유, 알로에, 양파, 포도씨, 구기자, 오미자, 귤껍질에 항암 성분이 풍부하다. 이런 천연물은 굳이 한방적 약제가 아니고 식품으로써 접할 수 있는 것이다. " (p.165)

"암 치료의 관건은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다. 표준치료를 진행하면서 정상세포의 손상, 골수 기능억제 등의 부작용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진다. 손상된 면역체계의 회복을 위해 쓰는 것이 천연물, 보충제 그리고 한약제제이다." (p.166)

 

운동이 중요하다. 연구 결과에서 보여지듯, 운동을 해야 암세포가 억제된다. 스트레칭, 걷기라도 해야한다. "암의 종류가 무엇이든 운동을 하면 전이암 환자의 생존 기간이 20% 늘어난다." (p.190) 지방섭취와 인슐린 분비를 막아야 한다. 초기에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린 보통 병원을 다니면서 항암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식단과 각종 요법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0기이든 3기이든 4기이든 기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치료의 우너칙에 따라서 결단하고 변화한다면 삶의 문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있다. 말기암 환자는 그 결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실행해야 한다." (p.204)

 

나는 가족이 암에 걸렸을 당시에 표준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며 괜찮아 지겠지 생각하며 무심했다. 하지만 전이가 되고 다시 항암을 받으면서 날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미안했고, 정신을 차리고 무엇이라도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보호자도 체력을 잘 유지하고 더 잘 챙겨먹고 마음도 정신도 잘 다듬어야 한다. 이 책을 최대한 빨리 접하고 구매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두려워 하지 말자. 친절하게 설명해놨다 모든 것에는 방법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자. 방법은 어디에나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가족이 함께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역할을 나누고 화목하게 서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보자. 그런 형편이 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자. 적어도 최소한 적어도, 살아있을 때 실컷 웃고 행복하게 살다 가자. 최선을 다했을 땐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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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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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은 기자 생활을 하다 주부가 된 정희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자유로운 생활을 꿈꾸는 직장인 딸 하민

밴드 활동을 하는 백수 아들 동민

운동권이었던 사회학 전공의 은퇴 교수 남편 영한


이 한 가족이 어느 순간부터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 대통령 선거 이후다. 부부는 현재의 야당을 찍었지만 아들 동민은 국민의 힘, 딸 하민은 정의당을 뽑았다. 교조적인 아빠 영한은 항상 아들을 가르치려 들었고, 아들은 그런 아빠 앞에서 욕을 하고 집을 뛰쳐나간다. 어느 부모들이 그렇듯 자식 이해하기가 쉬울까.


사촌끼리도 정치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 그러지 않나. 동네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정치 이야기를 했었을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세대만 해도 모든 가족이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지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그 공식이 깨져버렸다. 특히 성별 갈라치기가 심해졌다고 하는 오늘, 20대 남성들은 주로 국민의 힘과 같은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20대 여성들은 주로 정의당과 같은 진보계열 정당에 투표한다. 각종 혐오 시위가 난무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봄>은 한 가정의 이야기를 정치와 엮어 그려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현실성 있는 작금의 사회를 반영한 가족 구성이다.


현재는 신경 써야 할 정치적 의제들이 상당히 많고, 한 집단이 그것을 오로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또 같은 진영 내에서도 각 주제에 대한 의견이 사람마다 다르다. 내 생각이 옳다고 말하면서 세상이 타락해간다거나 세상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소설에서는 세대 갈등, 소수자, 취업, 정치 문제, 퇴직, 사회적 사고 등의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제들을 건너간다.


정희는 야당에 표를 던지는 편이지만 나름 중립적 입장에서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존재다. 물론 아들과 딸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음과 머리가 따로 노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해의 첫걸음이자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딸 하민은 오랜만에 가족이 갈등을 겪은 후 어렵게 모인 식사 자리에서 튀르키예 무슬림 여성과 교재를 하고 있다고 커밍아웃을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 폭탄선언까지 한다. 가족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래도 직장을 다녔고 가족과 소통을 하는 편이었던 하민은 동생도 돌보며 가족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아들 동민은 답답한 집을 뛰쳐나가 밴드 활동을 하면서 곡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곡작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공연도 잡히지 않아 이룬 것은 하나 없었고,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공기조차 잘 통하지 않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다.


민주화 시절에 문제의식을 공유했던 부모 세대들과 SNS로 빠르게 정보를 접하고 연대보단 밈과 같은 문화로 가볍게 연대되며 개인의 주장과 스타일을 쉽게 나타내는 세대가 소통이 될 리가 있을까. 운동권 시절 주장한 민주화 담론은 이미 케케묵은 담론이며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나마 딸과 친한 정희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통해 딸과 소통점을 찾는다.


하민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다. 사람은 어떻게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독일로 떠나는 것도 부모님과 상의 없이 폭탄선언했다. 엘리샤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나라로. 동민은 연습실 근처에 있는 성공한 래퍼 스윙스의 빌딩을 바라보며 성공하고 싶었다. 쇼미더머니의 반항심은 대중에게 통했고 또래와 어울리고 싶어 하는 특성상 단순히 엇나가고 문제 있는 아들로 보기엔 동민도 할 말이 많았다.


자식이 정말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예전에 우리 엄마 아버지가 하시던 말인데 요새 우리가 그러고 있네" "정희는 두 아이를 보면서 자주 '얘가 왜 이러나' 싶다가 '내가 이렇게 키웠지' 아니, '얘는 다른 세상에서 자랐지'하게 된다. (P.320)


할아버지 세대는 논어 맹자를 안 읽는다고 부모님 세대를 욕했고, 아버지 세대는 요즘 젊은 애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했다. 그다음의 다음으로 이어지는 세대들은 어떤 말을 들으면서 살아갈까? 정희는 영한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 나는 그저 꼰대가 아닐지.


영한은 자신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상한다. 하지만 그가 배웠던 사회학, 사회라는 것은 멈춰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었으며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아들 동민과 술을 마시며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동민도 역동하는 시대의 역동하는 청년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가르치려면 소통하는 방법 또한 배워야 하는 것이 순리 아니겠는가. 영한은 이 시대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면서 책을 쓴다. 책의 이름은 '혐오의 팬데믹을 넘어' 통합을 이루려 노력하는 독일의 정치제도를 언급한다. 그가 걱정한 것은 갈등이었다. 대통령 당선 후 약속했던 협치보단 검찰 수사를 답으로 여기는, 갈등을 만드는 대통령과 이 사회가 걱정됐나 보다.


"정치의 질이 너무 나빠져서. 갈등을 수습하는 게 대통령 역할인데 싸움을 걸고 있으니. 사회 전체를 전쟁판으로 만들고 있어."(P.328)


20대 아들 동민을 철없는 청년으로 묘사해 20대 남성들이 불편하다 느낄 수도 있다. 동민도 나름대로 성공을 하고 싶었고 그 자리에서 고민하면서 살았다. 접해본 세상이 부모의 기대만큼 얼마나 됐겠는가. 동민은 지인을 통해 소규모 스타트업 맥주 회사에 들어간다. 핏줄은 속일 수 없다고, 집에 다시 돌아온 동민은 맥주를 가져오고 술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면서 소통도 다시 원활하게 된다. 그러나 영한이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듯, 동민 또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해 보길 노력하고, SNS로 퍼지는 가짜 뉴스도 가려내는 방법들.


대선 이후 스트레스를 받은 저자 조선희는 등장인물 '정희'에 자신을 투영했다고 말한다. 나머지 가족은 허구라고 말한다. 일종의 사회의 집단 표본을 하나씩 뽑아 소설 주인공을 만든 것이다. 사회를 가족에 빗댄 것이다. 동양 철학은 가족 내에서의 도덕률이 번져 나라까지 미쳐야 함을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인과 같이 사는 세상이다. 이리저리 찢어져도 어느 분야에서는 의견이 맞아야 하고,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대통령은 특히 모두를 품어야 하는 위치다.


결국 이해의 영역 아니겠는가, 상대방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 소설이 주는 지혜라면, 타인의 생각으로 사고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것이 논리적일 수도 있고 물론 아닐 수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든 이유는 존재한다. 정치가 심리학의 문제기도 한 이유다.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해야 하기에. 그 능력은 단지 정치에 한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느 순간부터 정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기가 참 부담스러워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친구 사이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꺼리게 되었고, 대학가 내에서도 그런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팍팍해진 일상이 도리어 정치적 갈등으로 드러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 현실을 바꾸는 것도 정치의 문제니 계속해서 돌고 도는 문제겠지만.


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대로 가지는 않을 거야. (P.329)


그래도 소설은 봄을 꿈꾸며 마무리된다.

그래도 가족들밖에 없다. 바닥을 칠 때 돌아갈 수 있는 품이란 가족이다. 때로는 자신만의 열정에 미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지 않나 생각한다.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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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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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stolen)' 집중력.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하듯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우리는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사회에 있으며, 이런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현대 자기계발서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적한다. 증가하는 아동 ADHD를 약물로만 처방하는 게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인 교육과 사회, 음식 문화의 문제점을 찾고 해결해야 함을 말하듯이,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7시 조기 등교라는 것을 했다. 당시에는 지방 사립고의 1,2위를 다투는 학교라 그랬는지는 몰라도(그런 학교와 다르게 나는 놀기를 너무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교육열이 상당했다. 야자 시간에 떠들다가 나오면 흔히 말하는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발바닥을 슬리퍼로 맞아야 했다. 심지어 담임이라는 사람은 아침 공부시간에 졸고 있는 나의 목덜미를 강하게 후려치는 사람이었다. 내가 맞는 소리에 주변 친구들까지 깰 정도였으니까.


한대 세게 맞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나와도 이렇게 졸고 있는데.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잠을 자거나 아침을 못 먹은 아이들은 자판기에서 가공식품을 사 먹었다. 그렇게 해서 졸업 때는 학교에 큼지막하게 서연고 입학 학생 현수막을 띄우는, 모두가 조용히 침묵하는 싸이코같은 세상이었다. 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해방되길 바라면서.


나도 이런 세상에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도 독서실에 다녔으며, 고3 때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갔다. 좀비처럼 살았다.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도 하는데 안 하면 두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결과는 오로지 내 탓이었다. 나는 결과가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오면 나오는 것.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 성격이라 그랬으려나. 나에게 어떤 행위는 항상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가치였다. 무엇을 성취한다기보단 무엇을 알아간다는 과정. 그런 나에게 이 세상은 그저 아이러니였다.


이 상황을 압축성장의 폐해라고나 해야 하나, 자본주의적 폐해라고 해야 하나, 그저 현대교육의 실패라고 봐야 하나... 굉장히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였다. 분명 피해는 확실한데 그 원인은 다양한 것. 얼마 살아보지도 않으며 내린 결론은 적어도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게, 결론이 그거야? 할 수 있겠지만 저 3가지가 이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때는 몰랐지만 수많은 연구가 적은 수면이 작은 염증부터 암과 치매까지 각종 질병을 야기함을 말했고, 무제한적 소비는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을 포함한 정신 자체도 바꿔놓았다. 많은 물건을 인간의 건강을 즉각적으로 해치지 않는 한계까지 다다르게 만들었다. 세상은 나보다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나를 챙기는 것은 가족이나 스스로였다.


저자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비판한 것은 3가지다. SNS 알고리듬, 노동시간, 교육방식 이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그 토대인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의 결과물이기에 저자는 결국 사람을 쥐어 짜내는 현대자본주의 성장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물론 그가 완전히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감시자본주의의 금지와 주 4일제,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되돌리자와 같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이 자라온 교육 방식 때문인지 급진적인 변화에 멈칫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거나 성취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고의 일환이다. 또 자본주의 사회 자체는 소비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내가 어떤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돈으로 구매하면 된다. 나는 무엇인가 창출해 내고 생산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는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잠을 자지 않고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타인조차 수단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동력 중 하나가 소비고, 소비의 동력은 비교라고 생각한다. 비교는 일종의 조바심, 두려움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조바심을 조장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조금 뒤처졌다고 느끼면 두려움을 느끼고 후회할 결정을 내리거나, 그것을 극복하는 특강을 듣는다. 빼앗긴 집중력을 회복하는 것도 강의를 들어야 하는 정도다. 조바심조차 외부로부터 왔지만, 해결책도 외부로부터 찾으니 오로지 '내 것'이 없다. 자기계발로 그렇게 유명한 유튜버들조차 하는 행동이 타인의 것을 베껴서 성공하는 방식이다. 빨리빨리. 성공의 방식을 찾아서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


사회학 책에서는 이를 중산층의 계층 하락의 두려움이니 하면서 거창하게 말하지만, 앞서나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조기 처방이나 조기교육을 해서 무엇 하나. 타인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오르는 것? 타인과 비교로써 만족감을 얻는 사고는 개인 내부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의미가 사라진다. 우리는 사회적 위치에서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주체로서도 살아간다. 남과 계속해서 비교하는 삶은 나이가 들어서도 타인을 짓밟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안도를 느끼며 특정 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 얼마나 내적으로 공허한 삶인가.


나는 잠을 3시간 자면서 공부했다는 스타강사나 성공신화를 과장해서 떠벌리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자신을 죽여가면서 성취하는 행위에 숭고한 가치 부여를 하기 때문이며 그것만이 정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의 친구들에게 더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들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잠부터 많이 자라. 그래야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조차. 당신도 잠 없이 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태평하게 앉아서 배부른 철학자와 같은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스스로를 죽여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정신이 없다. 세상은 여기나 저기나 정신이 없다. 가만히 나를 돌보면서 내 방향에 대해 숙고하고, 자신감을 줄 내적 요인은 물론이요(이것은 일종의 깨달음의 영역이라 어렵다), 외적 요인조차 부족하다. 계속해서 현실에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개인을 만든다. 자본과 결탁한 기술은 날로 발달하지만 인간의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는 기술이든 인간이든 정확한 이해조차 건너뛰고 특정 목표를 향해 폭주하는 세상이다. 인간은 어느새 시시각각 변화는 세상에 당연히 '적응'하고 '선두'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제는 그 지위마저 위태위태하지만.


여느 사회학 책들이 그렇듯, 이 책이 전달하는 일종의 교훈은 세상의 문제는 오로지 당신 때문이 아니며 사회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다.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오로지 개인의 잘못만을 지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사회를 개선하며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이 개인의 최후의 보루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삶이라 믿으며, 이것이 진리라 믿는다. '잘'이라는 게 어렵지. 하지만 먹고 자는 것에는 확실한 답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 침범하는 것들에 저항하며 변화하는 세상에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 밑바닥을 치더라도 올라갈 힘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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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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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진영의 소설 <돌담>을 읽었다. 장난감 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발암물질을 넣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회사 사람들, 즉 사회의 부조리에 침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돌을 하나씩 쌓아 피해자를 가두는 담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연간 800개가 넘는 담을 쌓는다. 연간 800명. 산재 사고 사망자 수다. 하루에 2명꼴로 사망하는데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듯 돌아간다. 우리가 아는 산재사망 노동자의 이름은 유가족들이 열심히 알렸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산재사고는 대개 간단한 단신 보도로 끝을 맺곤 한다." (p.172)


 

커뮤니티나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피해를 입은 노동자 탓을 한다. 노동자가 조금 더 예의 주시 못한 것, 조금 더 정신 차리지 못한 것. 그런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재판장에서 회사 측 주장과 사상자 가족의 주장을 모두 듣고 판사가 결정한다. 노동자의 과실이 크다면 그것 또한 재판에 반영되고 가족들도 이해한다. 그런데 회사의 정보력이 더 좋고 노동자의 가족은 제한된 정보만을 습득하기에 재판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다. 게다가 개인의 탓만 한다면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어쩔 수 없는 죽음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계속되는 사고 앞에서 드는 의문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든 사고는 노동자의 탓일까? 개선될 수는 없을까? 단순히 일터라는 것이 시키는 일이 확실히 나뉘어 있고 노동자는 그것을 단순하게 실행하면 되는 것일까? 기업이 안전장치를 하는데 얼마나 예산을 쓰고 있을까? 어느 사회문제든 내막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오로지 하나의 탓만 할 수 없는 이유다.

 

노동자는 목표 생산량을 맞춰야 한다. 기업은 이윤을 최대한으로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로 노동자는 목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고, 기업은 이윤을 최대한으로 남기기 위해서 생산량을 높이거나 노동 강도를 높이게 된다. 기업의 목표가 오로지 '생산량', '최대한의 이윤' 그 자체일 때 사고의 위험이 커지기 시작한다.

 

SPC 사망사고 원인은? "12시간 안전장치 없이 '빨리빨리'...팔 걸려 사고"

"일터의 실질적인 우선순위를 고려하면 안전장치로 인해 일이 방해를 받거나 효율이 떨어질 때 노동자들이 안전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업무량을 못 채우면 생계의 위협을 받지만, 위험하게 일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위험한 작업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진다. 안전장치와 일의 효율이 충동할 때 관리자가 그 지점을 빨리 알아차리고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p.79)

 

실제 작업 현상과 떨어진 탁상공론식의 기업 경영도 문제다. "경험이 아닌 서류로만 현장의 필요 인력을 계산하고 배치하는 원청으로선 하청의 인력 부족 호소가 충분히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p.86) 비현실적인 작업량을 소화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안전을 포기한다. 회사에서 비현실적인 작업량을 정해도 노동자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 권위주의적인 구조에서는 더더욱 노동자의 의견이 들리지 않는다.

 

"대규모 산재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찾아가 보면 노동자들이 '이미 위험 경고를 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사측은 예측이 도저히 불가능한, 자연재해와 다름없는 사고라고 주장하는데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진작부터 위험 신호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산재 경고음이 여러 번 울렸는데도 조직 대처가 미흡했던 이유는 대부분 소통 미흡 문제였다." (p.98)

 

사고의 디테일은 다르다. 하지만 그 '구조적' 원인은 비슷비슷하다.

우리가 이 구조에 신경을 쓰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왜 안전에 돈을 안 쓰는가.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애초부터 안전에 배분하는 돈의 기준이 낮다고 말한다. 안전비용에 쓰는 돈, 즉 법정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전체 예산의 2퍼센트에 못 미친다. 그러니까 안전에 사용하는 돈이 2퍼센트가 최저선이란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안전예산으로 최저임금처럼 딱 2퍼센트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안전 비용은 투자 대비 효율이 낮다는 인식 때문이다. "안전관리란 한두 가지 시설 투자로 안전사고의 원천적 봉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업장의 위험 요소를 발굴하고 개선하면서 가능한 사고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과정이"다.(p.118) 한마디로 안전에 돈 쓰는 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인식이다. 노동자를 사후 처리하는 것(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기업에겐 안전비용을 쓰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

 

 17명 사상 광주 학동 붕괴사고 ‘정비공사 입찰담합’에 집행유예

"비용 절감 목적의 외주화", 근본적으로는 인건비 감축이 목표다. 그렇게 하청에 하청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돈이 별로 안되는 사업은 차라리 하청을 맡기고 소개비 명목으로 소액의 돈을 건지고 책임은 지지 않으니 원청으로서는 손쉬운 해결법이다. 그렇게 하청구조를 거듭하여 전기가 흐르지 않는 사선을 주로 다루는 배전공이 전기가 흐르는 선을 다루게 되고, 건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안전 수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포크레인 기사가 건물을 철거한다. 그렇게 무분별한 하청은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사고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법이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하청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도 몇몇 기업은 암암리에 하청 팀을 섞어서 운영한다.

 

기업들이 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실과 최대한 남겨먹으려는 하청을 주는 관습 때문에 공사 금액에 하한선을 두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것은 적정임금제로 나타나는데 업계가 공정별로 필요한 최소 인건비를 산출해 공사 금액의 하한선으로 삼는 것이다.

건설현장 적정임금제 해봤더니…‘생산성ㆍ안정성’ 두마리 토끼 잡았다

 

정부는 대응을 하는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안전지침이 내려진다. 그러나 형식적인 이야기는 실제 노동환경과 동떨어져 있다.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일의 위험성을 스스로 알고 조심하는 것" 산재 예방의 핵심 요건이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자(기업)도 그 위험성을 모르고 노동자는 당연히 모른다. 위험 표지판도 형식적이다. 노동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업들은 작업장의 위험 요소를 능동적으로 파악하고 고민하기보다 수동적으로 법을 따르는 쪽을 택한다. 법이 느리면 똑같이 느려지는 것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사업주나 노동자 대상 교육자료도 업무 현실에 맞춰 제작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시간도 부족하다. 저자는 결국 업주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 인식을 바꾸는 것, 정부의 적절한 지원과 동반자적 관계 형성. 정책의 지속성과 질적인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50인 미만의 작업장이 사각지대다. 대부분의 사고와 사망자가 여기서 나온다. 파쇄기 근처에서 일을 하고, 파쇄기에 낀 이물질을 직접 치우기 위해 기계 위로 올라간다. 이게 가능한 곳이다. 법 제정을 조금 더 세심하고 융통성 있게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지키게 해야 한다. 계속해서 산재사망자가 나오고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기업 측에서도 사망자가 나오니 부담이다. 해결하지 않으면 모두가 피해를 본다. 대체로 그 피해를 노동자가 짊어지지만 말이다.

안전수칙 위반 상황을 한데 뭉뚱그려 '노동자 과실'이라고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반대로 행동의 구체적인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어렵지만 산재 감축에 더 효과적인 길이다.

p.155

많은 법령의 취지는 사업자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현실은 반대로다. "노동자의 자기 보호 의무는 수없이 강조되지만 사업주가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와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p.157) 지금의 관점은 "구조는 눈 감은 채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동자가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만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임은 노동자에게 떠넘겨지는 인식이다.

 

물론 법과 원칙을 어겨가며 위험하게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못 하도록 막는 것 또한 법과 구조의 역할이다. 우린 관점 자체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일의 효율과 안전 수칙이 충돌할 때 회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 지점을 해소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 안전수칙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p.81)

 

김용균씨 사망사건에서 피해자 의견서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읽으면 우리 사회의 노동조건이 그대로 드러난다. 시정요구는 묵살당하고 회사에 위험을 알려도 묵살당한다. 재판에서는 노동자의 잘못이 강조되고 2차 가해를 당한다. 죽은 작업장에서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일한다. 운 좋으면 살고 운 나쁘면 죽는 것이다. 사고가 나면 회사에선 사고 현장의 증거를 지우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밑의 주소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다. 앞부분 요약본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http://www.safedu.org/files/report_KimYoungKyun.pdf

 

회사는 왜 그렇게 급급하게 사건을 지우는가. 저자는 "위험 자체를 드러내기 두려워하는 조직 문화가 존재한다." (p.176)고 말한다. 위험을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어떤 위기감이 위험을 밝히는 데에 소극적으로 만든다. 무결한 안전 목표를 추구한다. 재해 수 0건을 달성하기 위해 사고를 감추는 것이다.

 

저자는 안전관리를 특정 부서에만 맡기는 것 또한 비판한다. "개별 부서 업무의 산재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안전관리부서가 아닌 그 부서의 직원들"(p.187)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서가 제 일처럼 챙겨야 하는 것이다. 현실은 안전관리조차 외주로 맡기고 있다.

 

산업재해 재판에서 어떤 기업은 굴착기에 깔렸던 사람을 그저 산에서 굴렀다며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 피해자는 살아있었는데 초기 대응을 놓쳐 상태가 악화됐다. 산재 은폐도 쉽게 이뤄진다.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직접 병원에 싣고 가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먼저 재해가 발생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자료를 보자. "재해가 발생했을 때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직원이 함께 작성하는 '재해조사의견서', 그리고 각종 수사자료를 토대로 해당 사고에 대해 사법적 결론을 낸 법원의 판결문이다. 이 두 자료는 산재가 왜 발생했으며 거기에 회사나 노동자의 책임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p.269)

 

"재해조사의견서는 사건의 기본적인 얼개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지만 현재는 비공개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자료 제출의무가 있는 국회의원실을 제외하고는 재해조사의견서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으며,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거절한다. 재해조사의견서가 "수사에 쓰이는 자료"라는 게 주된 이유다. 앞서 짚었듯 수사기관의 수사가 재해에 관한 사회적 소통을 통째로 잠식하는 예다." (p.272)

 

"판결문은 재판이라는 사회 공공 인프라와 비용을 들여 대한민국 재판부가 특정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낸 결과물이다. 그 결과를 사후적으로라도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극히 일부 사건을 제외하면 판결문 원문이나 재판 경과를 알 수 있는 사건번호조차 구하기 어렵다. 사건번호가 없으면 사건 당사자를 제외한 제삼자는 판결문을 찾을 수 없다. 동료의 죽음을 알고자하는 노조나 지역의 산재활동가들이 사건 내뇽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p.275)

 

산재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에 기자들은 유일하게 검색이 가능한 일산 법원도서관에 가서 검색하고, 직접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묻는다. 현재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만 최근 5년 내 산재 현황 정보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망자가 많이 나온 기업들 리스트는 시민단체나 노동단체가 가공하여 제공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모두 형이 확정된 기업의 과거 사고 이력과 확정된 형의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p.281) 국가가 일을 안 하니 시민들이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소통 구조는 결국 산재사고를 최대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려는 쪽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투명한 정보 공개, 피해자의 정보수집지원, 정부의 융통성 있는 기업 지원, 기업의 사고 전환, 국민적 관심 이 모두가 필요한 현실이다. 사고의 대부분은 막을 수 있으며, 오로지 노동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또 다른 억울한 나를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적어도 어릴 땐 그렇게 배웠다.

 

산재 조사란 사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마음 다해 찾는 일이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부고장인 동시에 또 다른 죽음을 막겠다는 산 자의 다짐이다. 산재를 연구하는 이들이, 나아가 평범한 시민들이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을 그토록 알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p.292

 

“해외 출장” 국감 출석 거부한 DL·SPC 회장...노동계 “국민 우롱” 청문회 요구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 각종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 불매운동은 일종의 소비자의 응징이기도 했지만, 국가나 사회가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결국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국가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시를 내린 관계자는 집행유예 정도로만 처벌받을 뿐이다. 책임 소재는 나뉘어 확실하게 구분 지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노동자는 더욱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피해는 분명한데, 원인은 작게 나뉘어 보이게 만드는 것.

 

먼저 나섰던 것은 동료들과 유족들, 또 노조였다. 유족은 매우 열심히 사건 일지를 만들었다. 노동자가 감정적이라고 하는 비난과 다르게 사실을 입증하고 구조적 결함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했다. 또한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노조를 통해야 했다. 노동자는 노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 같은 처지에서 현실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노조를 죄악시하고 모든 노조가 사라지고 조합원이 모두 사라져 간다면 결국 남은 것은 무엇일까. 노동자는 누가 지켜주며 사고 사실을 누가 알리냐는 말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면 회사가 망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작 전체 매출에서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음과 더불어, 끼임 장치나 간단한 장비 지급조차 안 하는 곳이 많은데 말이다. 어두운 석탄 공장에서 휴대용 전등도 자비로 사야 했던 노동자의 모습을 아는가.

 

현실은 복잡하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고 수지타산에 맞아야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이것을 노동자 가족이나 법정이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계의 덮게라든지 사고 발생 시 바로 알리거나 멈출 수 있는 체계가 무리한 요구로 들리는가? 만약 해야 할 일의 양이 늘어나면 노동자를 쥐어짤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더 투입하거나 고용해야 하는 일이다. 기업이 오로지 막대한 이윤창출에만 눈이 멀어있을 때 사고도 그만큼 늘어나는 이유다.

 

자본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이라면, 노동자인 한 개인을 지키는 것은 헌법에 근거한 국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기업에 개인의 권리나 존엄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업의 이윤을 뺏는다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서 융통적으로 정책을 운영하고 억울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적어도 헌법을 중요시하는 국가라면 말이다. 자본보다 사람과 정의가 우선하는 국가라면 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비용을 내고 목숨을 내걸고 노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목숨 돌리기를 하고 있다. 어디가 걸릴진 모르지만. 운 좋게 안 걸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피해자 주위에 돌담을 하나하나 쌓아나간다.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 사회가 굴러가고 있음을 망각하는 그 자만이 우리 사회를 곪게 한다.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기고 사용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하니포터활동으로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책은 전반적으로 문제점과 해결점까지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연결되어 굉장히 유익하고 설득력까지 갖춘 책이라 서포터즈 활동을 떼어내더라도 강력히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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