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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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stolen)' 집중력.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하듯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우리는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사회에 있으며, 이런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현대 자기계발서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적한다. 증가하는 아동 ADHD를 약물로만 처방하는 게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인 교육과 사회, 음식 문화의 문제점을 찾고 해결해야 함을 말하듯이,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7시 조기 등교라는 것을 했다. 당시에는 지방 사립고의 1,2위를 다투는 학교라 그랬는지는 몰라도(그런 학교와 다르게 나는 놀기를 너무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교육열이 상당했다. 야자 시간에 떠들다가 나오면 흔히 말하는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발바닥을 슬리퍼로 맞아야 했다. 심지어 담임이라는 사람은 아침 공부시간에 졸고 있는 나의 목덜미를 강하게 후려치는 사람이었다. 내가 맞는 소리에 주변 친구들까지 깰 정도였으니까.


한대 세게 맞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나와도 이렇게 졸고 있는데.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잠을 자거나 아침을 못 먹은 아이들은 자판기에서 가공식품을 사 먹었다. 그렇게 해서 졸업 때는 학교에 큼지막하게 서연고 입학 학생 현수막을 띄우는, 모두가 조용히 침묵하는 싸이코같은 세상이었다. 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해방되길 바라면서.


나도 이런 세상에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도 독서실에 다녔으며, 고3 때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갔다. 좀비처럼 살았다.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도 하는데 안 하면 두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결과는 오로지 내 탓이었다. 나는 결과가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오면 나오는 것.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이 내 성격이라 그랬으려나. 나에게 어떤 행위는 항상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가치였다. 무엇을 성취한다기보단 무엇을 알아간다는 과정. 그런 나에게 이 세상은 그저 아이러니였다.


이 상황을 압축성장의 폐해라고나 해야 하나, 자본주의적 폐해라고 해야 하나, 그저 현대교육의 실패라고 봐야 하나... 굉장히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였다. 분명 피해는 확실한데 그 원인은 다양한 것. 얼마 살아보지도 않으며 내린 결론은 적어도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게, 결론이 그거야? 할 수 있겠지만 저 3가지가 이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때는 몰랐지만 수많은 연구가 적은 수면이 작은 염증부터 암과 치매까지 각종 질병을 야기함을 말했고, 무제한적 소비는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을 포함한 정신 자체도 바꿔놓았다. 많은 물건을 인간의 건강을 즉각적으로 해치지 않는 한계까지 다다르게 만들었다. 세상은 나보다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나를 챙기는 것은 가족이나 스스로였다.


저자가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비판한 것은 3가지다. SNS 알고리듬, 노동시간, 교육방식 이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그 토대인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의 결과물이기에 저자는 결국 사람을 쥐어 짜내는 현대자본주의 성장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물론 그가 완전히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감시자본주의의 금지와 주 4일제,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되돌리자와 같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이 자라온 교육 방식 때문인지 급진적인 변화에 멈칫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거나 성취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고의 일환이다. 또 자본주의 사회 자체는 소비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내가 어떤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돈으로 구매하면 된다. 나는 무엇인가 창출해 내고 생산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는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잠을 자지 않고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타인조차 수단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동력 중 하나가 소비고, 소비의 동력은 비교라고 생각한다. 비교는 일종의 조바심, 두려움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가 조바심을 조장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 조금 뒤처졌다고 느끼면 두려움을 느끼고 후회할 결정을 내리거나, 그것을 극복하는 특강을 듣는다. 빼앗긴 집중력을 회복하는 것도 강의를 들어야 하는 정도다. 조바심조차 외부로부터 왔지만, 해결책도 외부로부터 찾으니 오로지 '내 것'이 없다. 자기계발로 그렇게 유명한 유튜버들조차 하는 행동이 타인의 것을 베껴서 성공하는 방식이다. 빨리빨리. 성공의 방식을 찾아서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


사회학 책에서는 이를 중산층의 계층 하락의 두려움이니 하면서 거창하게 말하지만, 앞서나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조기 처방이나 조기교육을 해서 무엇 하나. 타인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오르는 것? 타인과 비교로써 만족감을 얻는 사고는 개인 내부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의미가 사라진다. 우리는 사회적 위치에서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주체로서도 살아간다. 남과 계속해서 비교하는 삶은 나이가 들어서도 타인을 짓밟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안도를 느끼며 특정 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 얼마나 내적으로 공허한 삶인가.


나는 잠을 3시간 자면서 공부했다는 스타강사나 성공신화를 과장해서 떠벌리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자신을 죽여가면서 성취하는 행위에 숭고한 가치 부여를 하기 때문이며 그것만이 정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의 친구들에게 더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들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잠부터 많이 자라. 그래야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조차. 당신도 잠 없이 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태평하게 앉아서 배부른 철학자와 같은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스스로를 죽여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정신이 없다. 세상은 여기나 저기나 정신이 없다. 가만히 나를 돌보면서 내 방향에 대해 숙고하고, 자신감을 줄 내적 요인은 물론이요(이것은 일종의 깨달음의 영역이라 어렵다), 외적 요인조차 부족하다. 계속해서 현실에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개인을 만든다. 자본과 결탁한 기술은 날로 발달하지만 인간의 속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제는 기술이든 인간이든 정확한 이해조차 건너뛰고 특정 목표를 향해 폭주하는 세상이다. 인간은 어느새 시시각각 변화는 세상에 당연히 '적응'하고 '선두'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제는 그 지위마저 위태위태하지만.


여느 사회학 책들이 그렇듯, 이 책이 전달하는 일종의 교훈은 세상의 문제는 오로지 당신 때문이 아니며 사회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다.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릴 순 없지만 오로지 개인의 잘못만을 지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사회를 개선하며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이 개인의 최후의 보루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삶이라 믿으며, 이것이 진리라 믿는다. '잘'이라는 게 어렵지. 하지만 먹고 자는 것에는 확실한 답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 침범하는 것들에 저항하며 변화하는 세상에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 밑바닥을 치더라도 올라갈 힘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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