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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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한 장 두 장 넘겼을 때,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설계자들」이 떠올랐다. 물론 파과에서는 설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방역자가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한 것이지만. 그냥,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의 군상을 보니 꼬리처럼 떠올랐다.

책 속의 주인공은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노년의 여인이다.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보통 이런 유의 소설들은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을 내새워서 그에 얽힌 사연과 사랑, 갈등 등을 다루기 마련인데 60살이 넘은 할머니라니. 사실, 이런 사람이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녀의 담담함과 차분함, 어딘지 모를 초연함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투우라는 30대 초반의 남자.
주인공, 조각에게(이름이 조각이다. 가명이지만.)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대는, 왠지 위험함이 물씬 풍기는 남자. 척 봐도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나는 남자가 등장을 한다.

이야기는 조각의 과거와 투우의 과거. 두 사람의 만남과 엇갈리는 생각들. 감정의 편린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읽는 내내 어떤 초조함과 서늘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투우는 계속해서 조각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끝없이 자극해 간다. 그녀의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채며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밀어 붙인다.
처음에는 무시해도 좋을 늙은 여자에게 뭐가 아쉬워서 저러나 싶었다. 그게 조금 아니꼽기도 하고 어딘가 신경이 거슬려서 삐뚜름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네가 뭔데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는 느낌.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솔직히 말하자면, 조각보다도 이 남자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이 남자의 과거가 나오면서 그의 생각이 조금이나마 과거 속에서 드러나면서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하고 잡히는 것들이 몇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애 같은 이 남자가 어째 안쓰럽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돌아봐 주지 않을 텐데 뭐 저리 애쓰나 싶어 안타까움이 물씬 느껴졌다.
막말로, 투우가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조각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가 머물 자리가 없을 텐데…….

어쩌면 누구도 돌봐 주지 않던 자신에게 정성스레 약을 먹여주던 여자에게 느낀 어머니의 정일 수도 있고 분위기에 휩쓸린 사랑일 수도, 자신은 못하는 것을 가뿐하게 해내던 여자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 하나로 조합해 보면, 나는 당신을 본 순간 그녀라는 걸 알았는데 왜 당신은 나를 몰라주느냐는 오기.

읽는 내내 가슴 안쪽에 공허함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공허와 어딘가 막연한 서글픔.
조각이 투우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를 읽고 나서야 그게 아련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발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는 애초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거다. 그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데도 결말에 대한 작은 불만이 차오르는 걸 보면 내가 두 사람을 아주 많이 좋아했나 보다.
그래도 역시…… 결말은 그것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뒤로도 그는 가끔 궁금했던 게 있다.
그녀는 왜 그렇게 정성스럽게 제대로 된 약을
챙겨주었을까.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약을 바꾸거나 조작하여
어린애 먼저 보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다만 방역 대상이 아닌 자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러기엔 품이 상당히 드는 일,
그야말로 아무거나 주워 빻아다가 밀가루랑 섞어
약이라고 갔다 안겨도 모를 일이었는데.
"아…… 덥다."
그 혼잣말에는 짜증이나 나른함 대신
흥건한 물기와 작고 가벼운 흥분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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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드랴프카의 차례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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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인 「빙과」에서부터 시작해 3권인 「쿠드랴프카의 차례」까지……. 왠지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난다. 「빙과」는 가미야마 고 축제 때 냈던 고전부 문집과 간야제라는 명칭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냈었고, 「바보의 엔드크레디트」는 2학년 F반이 축제 때 상영하기로 한 영화의 극본이 어떤 내용인가를 찾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쿠드랴프카의 차례」는 본격적인 축제 시즌으로 돌입해 전 권 내내 축제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그래서인지 3권에 이르기까지 1권과 2권은 축제 전야제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3권을 읽고 보니 그렇게 느낀 것일 뿐이지만.

제목을 발음하다가 혀가 꼬일 것 같은 「쿠드랴프카의 차례」는 전반적으로 축제 기간 동안 벌어지는 도난사건을 다룬다. 뭐, 그냥 일반적인 도난 사건이라면 흥미가 가지 않았겠지만, 괴도가 등장한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게다가 평범한 학교 축제에서 괴도 출몰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리가 없다.
십문자라는 괴도는 동아리마다 어떤 물건을 가져가고 메시지와 함께 간야제 100배 즐기기라는 팸플릿을 놔두고 간다. 중반까지만 해도 미묘하게 어슬렁거리며 뒷목을 갉작갉작 긁어대던 미스터리가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에 호타로가 사건을 완벽하게 풀어내는 장면은 지금까지 읽었던 고전부 중에서 가장 탐정다워서 놀랐다. 물론 「바보의 엔드크레디트」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연출 면에서 「쿠드랴프카의 차례」가 좀 더 추리 소설 같다고 할까……. 마지막까지 범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다가 회심의 일격이라도 날리는 양 극적으로 언급하는 점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호타로가 스타로써 활약도 좀 하고 고전부가 주목도 받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그런 활동적인 일은 호타로와는 맞지 않는가 보다. 개인적으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멋들어지게 사건을 풀이해주기를 원했는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 둘 호타로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그건 기쁘지만. 아무래도 나는 고전부가 끝나는 날까지, 어쩌면 그 후로도 계속 호타로에게 빠져있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색다른 매력이 있는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부 자체가 심각한 사건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범인에게도 동정이 가게 된다. 애초에 이 세상에 사정없는 사람이 없을 리 없으니까. 살인, 강간 등과 같은 용서 못할 죄가 아니라면 축제를 조금 망치는 정도야 뭐.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을 가졌었다. 이런다고 해서 범인에게 무슨 메리트가 있지? 그냥 축제라는 걸 빙자삼아 벌이는 장난이 아닐까?
물론 범인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축제의 여흥이 아예 실리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투정과도 같은, 안타까움이 물씬 풍기는 그 말을 듣고 있으려니 문득 나도 모르게, 이래서 천재라는 것들은. 하는 비난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편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바로 그거였다.
네 명의 고전부가 각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 전 편까지는 거의 호타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이번 권에서는 각자 생각하는 점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인 호타로는 물론이거니와, 지탄다가 생각하는 호타로가 의외의 수확이었고 마야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생각들, 언제나 당당하게 나는 데이터베이스다 라고 말하고는 하는 사토시의 일면 등.
그래서인지 좀 더 성장 소설 같은 면모가 풍겼다.

이 아이들과 나는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먼저 지나왔던 세대를 대표해 말한다면,
그러면서 성장해 가는 거야, 라고 해주고 싶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진부한 이야기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내가 그만 깜빡했지 뭐야, 마야카.
이걸 좀 더 똑똑히, 한 시도 잊지 않게
가슴에 새겨 놨으면
쓸 데 없는 일은 안 해도 됐을 텐데."
이거라니? 하고 묻는 대신
마야카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연결 통로로 들어섰다.
폐회식이 열릴 체육관에 이제 거의 다 왔다.
주위의 가미 고 학생들에게 들릴 만한 성량으로
나는 또렷이 말했다.
어쨌거나 이것은 누가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확실한 것이니까.
암, 그렇고 말고.
"데이터베이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해."
마야카가 쓸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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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틀 스타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
배명훈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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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로 너무 얇아서 놀랐다.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전체적으로 얇은 두께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이 책만 그런 건지.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로봇이 나오는 SF소설이다.
세계정복을 꿈꾸는 미야지마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전투 로봇. 수백 대의 로봇을 이끌고 마드리드를 침공했으나 그것은 결국 꿈으로 그치고 만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 많은 로봇들 중 하나의 로봇이 전선을 이탈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사람들은 가마틀이라는 로봇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며 두려움에 떨고 UES 수사관인 민소는 은수와 함께 가마틀을 찾기 위해 온 힘을 쓴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괴한에게 납치당했다는 피해자들이 생기고 민소는 그것이 가마틀의 짓이라는 걸 눈치 챈다.
민소는 목격자와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또 가마틀의 행적을 추적해가는 도중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고 다소 어이없는 진실에 이른다.

사람들은 가마틀이 전선에서 이탈했다고 했을 때 공포를 느꼈다. 그 무시무시한 로봇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무서웠던 탓이다. 그러나 민소는 가벼운 의문을 갖는다.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가진 로봇이 그 명령을 어긴 거라면 오히려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그 로봇한테는 사람을 죽이려는 의지 따위는 없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 로봇에게 자아가, 마음이라는 것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가마틀이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사실 나도 인간 종족에 속해 있으니까 알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껴야 당연한 것인데 혼자 남게 된 가마틀이 불쌍했다. 돌아가야 할 곳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을 그 모습이 우리와 닮은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혼자 남은 가마틀이 너무 안쓰러워서 보듬어 주고 싶었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인간답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단지, 인간의 육체를 뒤집어쓰고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인간다운 것일까. 그럼 가마틀은 인간일까 로봇일까 그도 아니면 기계인 걸까.

가마틀과 우리들, 과연 누가 더 인간다운가가 모호해져 버렸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짧아서 빨리 읽히고 재미도 있고 마지막에는 기분을 유쾌하게 만드는 반전까지 있는데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작가님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거다. 독자들이 해석할 여지를 주지 않는 참 편한 소설이다. 물론 이런 소설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B다. 라는 사실을 전면으로 말해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만 아니라면, SF를 처음 읽어보는 사람들이 과학소설이라는 것에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책으로도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마틀은 기차 화물칸 컨테이너 위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화소 하나하나마다 서로 전혀 다른 느낌으로
펼쳐져 있는 하늘 조각들이 눈에 비쳤습니다.
그리고 매순간 달라지는 그 위대한 파랑은
곧 그의 마음에 곧바로 깊고 짙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가마틀은 그 파랑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아름다운 건 수도 없이 많지만,
지금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그 파란 하늘 또한 다른 아름다움들에 비해
조금도 모자랄 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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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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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오레키 호타로는 ˝안 해도 되는 일은 안 한다. 해야 하는 일은 간략하게.˝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자칭 에너지 절약주의자이다.
때는 여름 방학. 고전부의 부원들은 문집 「빙과」의 제작을 위해 지학 교실에서 모임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지탄다의 권유에 따라 2학년 F반이 만드는 비디오 영화의 시사회에 가게 된다. 그러나 막상 관람한 그 영화의 끝은 애매모호하고 고전부를 시사회에 초대한 장본인 이리스는 각본가가 병에 걸려서 대본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 이리스는 각본가를 대신해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전 편인 「빙과」도 재미있었는데 그건 말 그대로 일상 미스터리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던 데에 반해 이번 편은 추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빙과」보다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가 더 재미있었다.

고전부 부원들은 탐정이 아니라 옵저버로써 그저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내는 여러 탐정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추리가 타당한가,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비록, 영화 속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덕분에 여러 흥미진진한 추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왠지 더욱 추리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난 추리력이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어서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오 그럴싸한데? 라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오레키가 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빈틈을 찾아내 무효화시킬 때마다 점점 흥미진진해졌다.

사실, 부원들이 혼고 선배에 대해서 말을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혼고 선배라는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일부러 각본을 쓰기 힘드니까 고전부에 의탁한 것이 아닐까. 뭐 역시나 그건 그저 내 망상일 뿐이었다.

고전부 시리즈가 전통 미스터리가 아니라 일상 미스터리라서 피가 낭자하고 밀실 살인사건에 연쇄 살인사건 이런 것들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특히 난 오레키가 추리를 하는 장면을 정말로 좋아한다. 어쩐지 그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하면 그것을 한 마디의 말로써 물리치는 장면이 히어로 같기도 하고 멋있어서일까……. 나는 결코 하지 못하는 일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오레키의 확실한 승리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레키가 이것만이 정답이다 싶은 결말을 내어 놓은 후에 보인 고전부의 미묘한 행동이 조금 화가 났다.
물론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 나의 히어로는 완벽하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화가 나고 슬프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리스와 오레키의 마지막 대화에서 그나마 안심이 들었지만. 나 같으면 화가 날 터인데 오레키는 오레키 나름대로 다행이라고 느낀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흠잡을 데 없는 해답인가.
나는 일종의 감동마저 받았다.
지난 나흘간 우리를 번거롭게 했던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밀실 문제가 이렇게 간단히
풀릴 줄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밀실 같은 거.’
이바라와 지탄다, 사토시가 아직 뭐라
말할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사와키구치 안의 완벽함에 혼이 나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밀실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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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틀로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9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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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배경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단계이고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이 부농과 부르주아에게 갖는 적대심이 대단하다. 사유재산을 가지고 자유롭게 산 것도 죄인가 싶을 정도로 혹독하게 대한다.
빈농과 프롤레타리아들은 그들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위해 코틀로반을 파며 모두를 위해라는 말을 내세워 부농들의 자산을 가로채고 내쫓는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가 러시아의 조지 오웰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사회주의 소설이니 1984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대배경이 그래서인지 두 작품이 언뜻 비슷한 느낌을 풍기기는 했지만 분위기 자체는 완전히 달랐다. 1984를 읽으면서 느꼈던 소름끼치는 충격과 날선 두려움이 코틀로반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디스토피아 문학에서 느껴지는 회색 연기 같은 공허함이 진득하게 풍겼다.

소위 노동자계급이라 불리는 이들은 잠을 자고 먹고, 집을 짓기 위한 코틀로반을 파는 일을 반복하는데 계속해서 깊어만 가는 이 구덩이가 왜 내게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걸까.
어느새 희망을 상상하는 걸 포기해버린 이들은 그럼에도 어떤 희망을 위해 코틀로반을 파지만 따지고 보면 그 자체가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집을 짓는 초석을 열심히 쌓지만 결국에는 그 아이가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것처럼.

희망이 사라져 버렸음에도 계속해서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일까.

어쩌면 코틀로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 끝에는 절망밖에 없으리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까 파고파고 또 파는.
우리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코즐로프는 살해된 채로 입을 꾹 다물고
계속 누워 있을 뿐이었다.
불만이 없어 보이는 사프로노프도
마찬가지로 말이 없었다.
그의 붉은 수염은 힘없이
반쯤 벌어진 입을 덮고 있었고
입술 위까지 자라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생전에 키스 한 번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 주위에는 눈물이 말라
소금기로 변한 것이 보였다.
치클린은 소금기가 배어 있는
그 자국을 지우며 생각했다.
‘사프로노프와 코즐로프는 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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