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에는 의욕에 넘치다가 월말이 다가오면 또 지난 달에 뭘 했나 급 우울함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만, 특히 이번 달의 경우는 새해의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역시 저는 거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다만 월요일에서 일요일이 될 수록 한 주에는 한 게 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역시, 새해에는 역시 나름 결심을 하게 된다는 게 함정. 욕심 부리지 않고 '비문학을 한 달에 한 권씩은 읽자'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책을 좀 읽자는 건 꼭 새해가 아니라도 저의 과업이 되어 있습죠. 그 결심이 나름 반영된(과연?) 1월의 독서가 아닐까 싶어요.



1. 얼음 속의 소녀들 _ 톰 롭 스미스 _ 노블마인 _ 416쪽

 

 

 

  <차일드 44>의 톰 롭 스미스의 신작 <얼음 속의 소녀들>이 나왔습니다. <차일드 44>도 그렇고 이 작가의 작품의 배경은 늘 눈이 함께 하고 있어요. 체제에 짓눌린 하얀 평원이 그랬고, 좁은 시골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눈이 그랬습니다. 그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도 꽤나 묵직합니다. <얼음 속의 소녀들>은 한 개인과 그럼에도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가족을 둘러싼 내러티브를 아주 훌륭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다들 얼른 읽어보시고, 톰 롭 스미스의 다른 작품도 얼른 출간되길 기다려 보자구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영업입니다. ;;;)




2.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 _ 로알드 달 _ 담푸스 _ 300쪽

 


 

  간만에 로알드 달의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워낙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담꾼인지라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생각했는데, 역시나,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작가가 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계기가 된 신문에 쓴 칼럼이 마지막에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 칼럼은 그다지 재미가 없더군요. 저는 작가 보는 눈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편집자라거나 출판 기획자가 되었다면 쫄딱 망했겠죠. 껄껄.




3. 스톨른 차일드 _ 키스 도나휴 _ 작가정신 _ 423쪽

 

 


 

  아마 알라딘 중고서점이 서면에 막 생겼을 때 쟁여뒀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도대체 몇 년을 묵혀뒀다가 이제서야 읽은건지! 표지도 제목에서도 판타지의 느낌이 가득 풍겨왔지만 제가 생각한 판타지의 터치가 아니라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뒤바뀐 아이와, 이름의 소중함과, 그들을 연결하는 '글' 그리고 '음악'을 잘 표현하고 있어요. 작가의 다른 작품이 한 권 더 출간되어 있던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읽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4.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_ 니시자와 야스히코 _ 한스미디어 _ 296쪽

 


 

  적은 분량에 뛰어난 가독성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 미스터리를 읽는 경험이 참 오랜만이라,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늘 반전에는 속지만, 그래도 '예상 가능한 범위'의 반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는 게 익숙해진 지 오래인 즈음에서, 쾅! 이라는 건 좋죠.




5. 오즈의 마법사 _ L. 프랭크 바움 _ 허밍버드 _ 295쪽

 


 

  '텍사스 외딴 시골집에서' 이후의 구절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즈의 마법사>를 잊고 산 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 마저도 애니메이션으로 본 게 전부이니,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오즈의 마법사>를 글로 제대로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로군요! 표지의 꽃밭이 도대체 어디지? 도로시와 사자는 왜 저런 표정을? 하고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다가 그 장면이 묘사된 페이지에 이르러서 심쿵! <오즈의 마법사> 연재 당시의 오리지널 일러스트가 함께 실려있다는 것이 새로 재해석한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와 나름 구별되는 '허밍버드 클래식'이 아닌가 싶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어, 이것도 참 간만에, 그리고 드디어 꺼내 읽었습니다. 어쨌든 인디고 시리즈는 늦었으니 허밍버드라도...? 싶습니다. 껄껄.




6. 달의 연인 _ 미치오 슈스케 _ 문학동네 _ 393쪽

 


 

  미치오 슈스케가 <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진 연애소설을 썼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소리소문없이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는 좋아하는 작가인지라 일단 '나중에 읽더라도 무조건 쟁여둔 다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 갔다 홀린듯이 대출해 왔습니다. 아마 '연애소설'이라는 측면이 일단 읽고 보자, 라고 생각하게끔 만든게 아닌가 싶은데, 읽고 나서도 사실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쩝... 가독성은 좋아 하루만에 뚝딱 읽었는데, 그냥 딱 그 정도의 심심풀이예요. 연애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가 연애소설을 처음 쓰는 작가의 소설을 읽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드라마는 결말이 다르다니 좀 보고는 싶군요!




7. 시인 _ 마이클 코넬리 _ 알에이치코리아 _ 608쪽

 


 

지금까지 내 소설 《시인》 얘기였다. …에드거 앨런 포가 거의 200년을 거슬러 올라와, 내 완벽한 문학적 절도를 단죄한 음산한 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_p.177, 마이클 코넬리, 「옛날 옛적 어느 음산한 밤에」,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때는 2012년(벌써!!), <더 레이븐>에 실린 마이클 코넬리의 에세이를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로부터 '문학적 절도를 단죄'받았노라 고백합니다. 나는 그 에세이를 읽으며 <시인>은 도대체 어떤 소설인것인가,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었더랬죠. 그로부터도 벌써 3년이 지나, 캡틴거북님의 하사로 드디어 <시인>을 읽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해리 보슈' 시리즈인 줄 알고 <블랙 에코>부터 읽어야지, 하는 핑계로 미루고 있다 스탠드얼론인 걸 알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

  전형적인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고 있으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기둥이 아주 독특하고 탄탄합니다. 오싹하고, 재밌습니다. 이래서 코넬리, 코넬리 하나봐요.




8.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_ 다니 미즈에 _ 예담 _ 332쪽

 


 

  출간되었을 때, 이웃님의 블로그에서 '잘 읽히긴 하는데 묘하게 집중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게다가 이런 종류의 로맨스와 수수께끼가 적절히 배합된 '힐링' 비스므리한, 한적한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에 나름 익숙해지고 또 질려간 시점에서, '그럼 그렇지 뭐', 하고 코웃음을 쳤더랬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읽게 되었느냐하면, 어차피 비슷한 이야기이니 얼른 읽고 치워버려야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집에 책이 있었답니다 ;;)

  잘 읽힙니다. 간만에 속독했습니다. 그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할 필요가 없는 정도의 무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작품 전체를 받치는 기둥(이라고 앞서 <시인>에서도 표현했습니다만 달리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나는군요.)은 꽤 좋습니다.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가 '에드거 앨런 포'를 가져와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시계공'이 시계를 고치며 과거와 현재의 추억을 함께 수리하는 설정이랄까요. 어쨌든 이 시리즈는 <검정고양이~> 시리즈와 상당히 비교가 될 듯합니다. 저의 호감도 역시 딱 그 정도로, 두 작품이 상당히 흡사한 느낌이어요. 그런데 귀신같은 타이밍에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가 나왔네요? 롸? 일단 2권까지는 읽어볼까? 싶기도... (검정고양이도 후속작이 나오면 딱 한 권만 더 읽어볼까...? 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흡사합니다. 뙇.)




9. 가재걸음 _ 움베르토 에코 _ 열린책들 _ 456쪽

 


 

  앞서 말씀드린, 새해결심의 일환으로, 한 달에 한 권씩 비문학을 꼭 읽자는 계획의 첫 타자가 되어준 책입니다. 그래서 새해 첫날부터 펼친 책은 분명 <가재걸음>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아홉번째로 끝낸 책이 되었군요. 껄껄. 그래도 비문학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데 저는 의의를 두려합니다. 흑.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의 몇몇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들을 주제에 맞춰 묶어낸 책입니다. 저는 에코 할아버지의 글을 이 기회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재미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실린 글이 대부분인데,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매우 뛰어납니다. 십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읽는데 소름돋는 칼럼이 한 두개가 아니더군요. 냉전의 시대가 끝나 다시 열전을 벌이고 있는 세계, 십자군 전쟁과 달라지지 않은 종교 갈등, 기타 등등, 뒷걸음질치는 세계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10. 말하는 검 _ 미야베 미유키 _ 북스피어 _ 256쪽

 


 

  드디어(이제서야) 미미 여사님의 에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실제 여사님의 집필시기도 앞서고, 에도시대로서도 앞선듯한 <말하는 검>부터 펼쳤습니다. 저는 에도 시리즈를 '시대순'으로 읽어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리스트를 확인해보니(thanx to 당꼬부크님ㅋㅋ) 두 권만에 시리즈의 빈 칸 발견! 벽에 부딪쳤습니다. 낄낄. 그래도 일단 <흔들리는 바위>를 읽고 나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말하는 검>은 오하쓰의 이야기가 두 편, 그냥 이야기가 두 편 실려있습니다. 일본의 표제작은 [가마이타치]같은데, 저도 [가마이타치]가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이 한 권만으로 '엄청 재밌어!'하기는 뻘쭘합니다요. 에도 시대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니라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요. 그냥 무난하게 시리즈를 시작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킥킥.




11. 파계 재판 _ 다카기 아키미쓰 _ 검은숲 _ 460쪽

 


 

  한 사람의 살아온 인생의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타인이 그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는 일일까, 라는 통렬한 질문을 법정에서 던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법정 공방도 상당히 날카롭고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12. 오늘 밤 안녕을 _ 마이클 코리타 _ 알에이치코리아 _ 408쪽

 


 

  놀라운 데뷔작으로 극찬을 받았다는 마이클 코리타의 '링컨 페리 시리즈'의 첫 번째, <오늘 밤 안녕을>입니다. 영미 스릴러는 뭔가 애매해서 읽고 나서도 꼭 다른 사람의 감상을 찾아보는 편인데(이건 저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일테죠), 호불호가 꽤 갈리더군요...? 혹평 몇 개를 살펴보다 슬쩍 움츠러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일단 저는 꽤 마음에 들어요,라고 (용기내어) 말하겠습니다. 작품 속 시기에 누가 요즘 이러고 다니나 싶은 올드함, 구성의 허술함도 지적을 받았던데 개인적으로는 분위기도 좋고, 주인공과 범인의 숙명적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구도보다 오히려 <오늘 밤 안녕을>의 흐름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탐정이 의뢰를 받아서 대수롭지 않게 일을 시작했는데 아 좀 꼬였네... 하고 휘말려들어가는 게 오히려 '간혹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선요. 이인조의 유머도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아직 '링컨 페리 시리즈'의 후속작은 나오지 않고 스탠드얼론만 두 권 더 출간된 듯합니다. 일단 <숨은 강>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3. 1F/B1 _ 김중혁 _ 문학동네 _ 305쪽

 


 

  뒷북소녀님께 하사받은지 어언... 어쨌든 굉장히 오래되었는데 이제서야 책을 펼쳤습니다. 엉엉. 김중혁 작가님께서는 요즘 빨간책방과 더불어 인기가 더더욱 상승하고 계신 듯합니다. 저로서는 첫 대면을 <일층, 지하 일층>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여러 단면들이 각 작품의 주제로 나섭니다. 단편임에도 장르가 가지각색이라 읽는 재미도 있었구요. 뭐 그냥 그 정도 생각만 합니다, 일단은요. 자세히 아는 척 하고 싶어도 못 하겠다는요... 원체 단편에 약하고, 한국 소설에는 더 약해서요. 흑흑.




14. 일곱 명의 술래잡기 _ 미쓰다 신조 _ 북로드 _ 470쪽

 


 

  패기돋게 새벽에 펼쳤다가 무서워서 잽싸게 덮었다는 건 안 비밀. 그리고는 무조건 낮에, 혹은 식구 누군가가 깨어 내 옆에 있을 때, 만 읽었습니다. 그 탓인지, 사실 초반의 가장 무서운 장면을 빼고 나니 별로 안 무서운데요? (허세) 앞선 <노조키메>는 호러의 성격이 더 강했다면,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미스터리의 성격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초반 이후로는 좀 덜 무서웠던 듯. (계속 허세)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친구들에게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죽음.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게 주요 흐름인데, 본격의 트릭이 강조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파적 분위기가 강한 것도 아니니 역시 '호러 +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작가님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읽는 재미가 있는 게, 작품 중간중간에 은근슬쩍 작가의 다른 작품 속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꼭 시리즈가 아니라도, 이런 연결고리가 있는 게 미쓰다 신조를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무섭지만.





  와, 쓰고 보니 14권.. 약 이틀에 한 권 꼴로 읽었다는 걸 생각하면 선방했군요. 케케. 반 정도가 일본 소설, 반 정도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군요. 무엇보다 오래 묵혀둔 책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재미가 역시 쏠쏠합니다. 2월에도 있는 책 열심히 읽어보겠사와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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