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때는 2010년 2월 20일 토요일이었다. <무한도전>을 시청했고 나는 그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론 27일의 충격도 있다.) 그것은 피고 측 변호사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법정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 외의 요소는 모두 필요 없다. 오로지 법정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오줌싸개의 오명을 벗길 듯 말 듯 한다. 그 와중에 나타났던 결정적인 그 한 마디. '오줌싸개 이미지는 누가 만든 것입니까?'


  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존재하고, 둘 사이에 존재하는 사실 관계만을 바탕으로 판결을 내린다.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하기 위해 원고와 피고 측 변호사 (혹은 검사와 피고 측 변호사)는 극적인 효과를 위한 필사적인 계산과 전략을 짜낸다. 사실 관계가 어떻게 봐도 말이 될 것 같다면, 더더욱 그 싸움은 치열해질 것이다. 사건 당사자는 피가 마르고, 그 밖의 방청객의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펼쳐질 테지.




  이번에 읽은 다카기 아키미쓰의 <파계 재판>도 상당히 드라마틱한 하나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화자는 '재판은 종종 연극에 비유될 때가 있다(p.11)'고 이야기를 시작해 훗날 '파계 재판'이라 이름붙여진 유명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피고 무라타 가즈히코, 그의 죄목은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사체유기다.


  검사는 네 건의 악질적인 혐의에 덧붙여 높은 구형을 위해 평소 피고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료를 마련해 두었다. 그는 극단에 있던 시절 공금을 횡령하여 극단에서 쫓겨났다. 친구에게는 사기를 쳤으며, 전쟁 시절 세 번 영창을 다녀와 이등병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연녀의 남편을 죽이고 이어 내연녀까지 살해한 것이다. 뭔가 전적에서 찜찜함이 느껴지는 인물의 범죄라니, 그의 유죄는 확고해 보인다.


  그러나 피고 측 변호인 햐쿠타니는 검사의 피고인 검증을 위한 과거 자료에 요목조목 대응하며 꼭 피고인은 악인만은 아님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음을 판사에게 인지시킨다. 그는 누구도 피고의 유죄를 의심하지 않고 범죄의 잔인성에 경악하고 있을 때, 그의 무죄를 믿고 있는 단 한 사람인 것이다. 과연 그는 피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일까? 나는 '오줌싸개 이미지는 누가 만든 것입니까?'라는,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로지 법정 안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모두진술, 그리고 증인에 대한 신문이 이어지는 정적인 장면만으로 이루어져있음에도 <파계 재판>은 상당히 긴박감이 넘치는 법정 묘사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파계 재판'의 의미와 숨겨져 있던 진실.


  작가 다카기 아키미쓰는 법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법학 공부를 기초부터 다져나갔다고 한다. 오로지 법정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면에서 이어지는 법정 장면을 묘사할 때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사실적이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법정에서 '가능한' 극적인 장면까지 치밀하게 계산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환희…….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품을 위한 작가의 계산도, 드라마틱한 구성도 아닌 작가의 시선에 녹아있는 휴머니즘이다.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에서 유래가 된 무라타 가즈히코의 '파계 재판'은, 그야말로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아닌 자'의 심정을 파고들어 그로부터 주변 인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 휴머니즘이야말로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의 원천이 아닐까. 그리고 그 휴머니즘을 온전히 품고 있었던 햐쿠타니의 짧은 이야기 「유언서」가 함께 실려 있으니 '아가씨'의 활약을 하나 더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그의 '페리(péri)'도.




_20150124~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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