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차일드 44>로부터 5년, 톰 롭 스미스의 신작 <얼음 속의 소녀들>이 나왔다. 오랜 침묵을 깬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차일드 44>에서 시작된 전직 KGB 요원이었던 레오의 이야기에서 벗어난 첫 소설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의의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얼음 속의 소녀들(The Farm)>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생각을 해 보기도 전에, 상당히 충격적인 도입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p.7)'지만, 그 아버지의 전화는 가족들 간에 쌓여 있던 신뢰를 뒤집고 애써 숨겨뒀던 거짓말을 꺼내게 만드는 방아쇠가 되었다. '엄마가 망상에 빠졌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망상에.(p.8)'


  어머니가 망상에 빠졌다니? 부모님은 스웨덴으로 건너가 농장에서 아주 잘 적응하고 계실 거라 생각했던 다니엘은, 어머니의 메일이 차츰 뜸해지는 것이 긍정적인 신호라 믿어 의심치 않았더랬다. 그러나 다시 어머니의 메일을 열어보았을때, 다니엘은 어머니의 절규를 발견한다. 도대체 왜 어머니는, '다니엘!'이라는 한 단어만을 보냈을까.


  다니엘은 자신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돕기 위해 스웨덴으로 향하기로 한다. 그러나 히드로 공항에서 다니엘은 불안에 떨고 있는 어머니와 마주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들'과 한패라 나를 망상에 빠진 환자로 몰아가고 있다며, 그 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에 아버지가 연루되어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버지가 범죄자라 주장하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미쳤다는 아버지. 다니엘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이것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양자택일의 질문보다 더 가혹하기 그지없다.



  다니엘은 일단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과연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머니는 그 농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다니엘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로 한다.




  어머니가 스웨덴으로 건너가 겪었던 일,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아들 다니엘에게 그리고 동시에 독자에게 부여된다. 독자는 이 이야기의 진실성의 여부를 두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스웨덴의 시골 마을, 끈끈한 연대감이 있는 동시에 농장과 농장 사이의 거리감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는 어떤 공동체를 감싸고 있는 관계도에서 영국에서 불쑥 건너온 중년 부부의 위치를 함께 찾아 헤맨다. 이방인으로서의 고립감과 미친 (혹은 미치지 않은)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자아내는 서스펜스를 따라가 보자.


  어머니 틸데는 이방인에 대한 주민들의 꺼림칙한 태도에 맞서고 마을에 숨어 있는, 모두가 모른 체 하는 비밀을 찾아 숲 속을 거닌다. 그 불안감을 안고 마주하는 농장의 숲 속은 서늘한 비밀을 숨겨두고 있는 듯하다. 그 안에서 틸데는 실마리를 찾아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대로 퍼즐 조각을 맞춰나간다. 그리고 맞춰지고 있는 퍼즐의 그림을 보며 판단을 내리는 것 역시 다니엘 그리고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할 수밖에! 그리고 마주하게 된 '진실' 역시 그 동안의 압박감과 서늘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일드 44>의 레오가 체제의 무게에 짓눌려 진실을 찾아가는 고단한 여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체제만큼이나 무거운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얼음 속의 소녀들>의 다니엘 역시 체제만큼이나 무거운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의 파편을 찾아가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거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더욱 무거운 것은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연대감' 그리고 그 틈을 살짝 파고드는 의심이라는 날카로운 송곳이 있기 때문이고, 그 틈을 파헤쳤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족'이라는 껍데기 속의 알맹이였기 때문이다. 그 알맹이의 모양새가 어떠했을까? 그 무게를 받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품어야 했던 그 알맹이는.



  <차일드 44>와 <얼음 속의 소녀들>은 다른 모양새로 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진실을 마주하기란 이토록이나 어렵다.


  부디, 압도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스웨덴의 숲 속을 거닐며 미치광이(혹은 멀쩡한)가 선사하는 서스펜스를 즐겨보시길.

 




_20150104~20150106





* 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_p.7

마지막으로 지난 몇 달간 일어난 사건들이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면 정말이지 난 뭐든 다 할 거라는 말을 꼭 해둬야겠다. 아, 현실이 그렇다면 내 삶이 얼마나 편해질까. 무서운 정신병원에 가서 미치광이로 낙인찍히는 굴욕을 당한다 해도 내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범죄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사소한 대가일 테니 말이다._p.46

하지만,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에서 스치고 지나간 사람을 단순히 그 이유로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한 이야기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의 단편적인 진실이 섞여 있다고 해서 그걸 진실이라고 주장할 순 없습니다._p.144

나는 익숙함을 통찰로 오해했고, 같이 보낸 시간을 서로에 대한 이해의 척도와 동일시했다. 그보다 더 나빴던 건, 아무 의문도 품지 않은 채 안락한 생활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이 자신의 가정환경과는 아주 다른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바람 이면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한 번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만족해버렸다는 점이다._p.158

난 엄마의 손을 놨다.

"엄마, 날 믿어요?"

"난 널 아주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절 믿어요?"

엄마는 잠시 내가 한 질문을 생각해보더니 생긋 미소를 지었다._p.328

나는 오래전에 이 이야기들을 직접 읽어보고 내가 이 이야기를 읽어주길 엄마가 원한 건 아닌지 궁금해했어야 했다. 엄마는 아주 쉽게 이 책을 버릴 수도 있었지만 가까이 두고,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이유는 밝히길 거부한 채 이 이야기들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전했다. 나는 그렇게 하면 그 순간이 더 밝고 길게 타오를 거라 믿으며 엄마와 행복을 나누었던 걸 떠올렸다. 한편으로 슬픔 역시 나눌 수 있는 것이며, 슬픔을 나누면 그 순간은 훨씬 더 짧고 덜 선명하게 타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마침내 나는 엄마에게 슬픔을 나누자고 할 수 있게 되었다._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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