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카오루 습유집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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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라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어요. 취향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 개인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 수정하겠습니다. 다만 취향을 뭐라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 지켜보고 있노라면 뭐라 두루뭉술하게나마 느낌이 옵니다. 아, 난 이런 취향이구나, 하고요.

취향이라는 건 정말 세상 사람만큼이나 다양할 거라 생각합니다. 가끔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취향도 있고, 나 이런 취향도 있어요! 하고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맹렬해집니다.

좀 귀찮을 수도 있고, 고된 작업일 수도 있지만 '취향이니까' 저돌적으로 행동에 옮기게 되는 겁니다. 주구장창 음악을 들으며 퍼질러있는 건 쉽다고 말해도, 니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는데 뭐 어때, 라고 말해도, 사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냥 그 일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그 찝찝함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시험기간에는 불안해하면서 노는 거. 뭐 그런 정도의 용기는 어쨌든 필요합니다. ㅋㅋㅋ

모리 카오루도 상당히 저돌적으로 취향을 드러냅니다. 그 저돌적임은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시무시합니다. 물론 저는 그림을 잘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대단할지도 모르겠군요. 잠깐, 이 사람이 도대체 뭘 그리길래? 라고 생각하셨나요?

<신부 이야기>는 19세기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사랑 이야기였던 <엠마>로 데뷔한 모리 카오루지만 역시 <신부 이야기>로 상당히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 표지만 봐도 저 섬세한 옷감의 무늬를 어떻게 그릴까! 싶지만 만화책을 펼쳐 내부를 들여다보면 더 굉장합니다.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무늬의 카펫이라거나, 섬세한 무늬를 하나하나 파낸 나무 기둥이라거나, 아무튼 그런 걸 다 작가가 직접 그립니다. 복사 붙여넣기 같은 건 없는겁니다. 작업시간이 어마어마하게 오래 걸린다고 해요. 그래서 <신부 이야기>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옷감도, 카펫무늬도, 전부 그들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려고 하는데 암튼 그렇다는 겁니다.

그녀의 데뷔작인 <엠마>라거나 그 이전에 그렸던 작품 <셜리>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입니다. 주인공은 메이드입니다. 메이드의 일상을 혹은 사랑을 그려냅니다. 메이드가 입고 있는 옷이라거나, 메이드가 입고 있는 옷이라거나, 귀족 아가씨가 입는 어깨 뽕이 한껏 들어간데다 어마어마하게 섬세한 드레스라거나, 메이드가 입고 있는 옷이라거나, 도대체 속옷에까지 저렇게 섬세한 레이스를 붙여야하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코르셋을 입혀주는 메이드라거나, 뭐 그렇습니다. 게다가 인도 왕자의 화려한 방이라거나, 인도 왕자를 호위하는 무희라거나, 그렇습니다. 아무튼 <엠마>도 이야기뿐만 아니라 볼거리가 아주 풍성합니다. 요컨대, 그게 바로 모리 카오루의 취향이라는 겁니다.

모리 카오루는 각 연재 작품의 단행본 후기마다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냅니다. 이번에는 이런 의상을 그려서 즐거웠어요, 이런 의상도 예쁘네요, 이런 의상 정말 좋아요! 라는 식으로요.

모리 카오루는 의상도 의상이지만, 그 시대의 배경을 그려내는 것도 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모리 카오루 습유집>은 그런 그녀의 취향의 집대성입니다. 연재 중 틈틈히 그렸던 단편이나 중편과 사인회나 축전 등으로 그린 일러스트가 담겨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체는 꽤 뚜렷하면서도 사실적인 느낌이 들어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제 생각엔 안경을 쓴 얼굴을 아주 잘 그려내는 것 같습니다.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 실세계 어딘가에 저런 얼굴을 한 소녀나 여인이 있을 것만 같을 정도로 몰입이 잘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역시 주변 배경과 의상이 아주 섬세하게 잘 그려졌기 때문일까요? '엠마'의 얼굴은 꼭 영국까지 안 나가도 주변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일러스트를 틈틈히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그림체와는 달리, 정작 후기에 이르러서 모리 카오루는 상당히 느낌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일단 굉장히 간략하게 옷 같은 건 입히지 않은 자신의 캐릭터로 스스로가 불타오르는 '무언가'에 대해 마구마구 늘어놓습니다. 웃깁니다. ㅋㅋㅋㅋ '셜리도 좋지만 후기가 낫다', '아니다, 후기만 재미있었다', '후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편도 재미있어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르고 싶은대로' '뒷일 생각 안하고' '어차피 단행본도 아니니까' 마음껏 달린 일러스트 및 기타 등등의 그림을 지켜보는 재미는 꽤 쏠쏠한 걸 보면, 제 취향도 어느 정도 모리 카오루와 잘 맞나봅니다.-_-;;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은 모습은 꽤 예쁘다고 생각하거든요. 교복은 자기 몸에 딱 맞을 때 제일 예쁘지, 줄인 건 별로 안 이쁘다라고 생각하는 저 역시 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학생 시절에도 딱 맞는 교복을 좋아했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교복이 예뻐서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헤헤.

<엠마>와 <신부 이야기>의 초기 설정에 대한 이야기도 작품을 읽은 사람으로서 꽤 즐거웠습니다. 특히 엠마가 지금보다 좀 어른스러운 느낌이었던데다 윌리엄이 눈썹이 가늘어서 좀 어려보여 결국은 누님을 동경하는 소년 같은 컨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는 빵 터졌습니다. 신부 이야기 속 신부는 다른 조금 투박한 얼굴 대신 아미르가 되어 다행이에요.

아, 물론 앞부분의 중단편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중에 클 거니까' 헐렁한 교복을 산 신입생들의 모습은 일본이나 우리나 다른 것도 없구나(학교에서 교복을 입는 나라가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싶기도 하고, 역시 메이드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이 사람 어마어마한 의상덕후야 싶은 생각도 합니다. (좋아하는 만큼 마구마구 그릴 수 있어서 좋겠어요. 전 그런 능력조차 없다니.ㅠ_ㅠ)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마냥 누나같은 메이드에 대한 감정도 묘합니다. 서로 다른 타입의 친구가 친해져가는 과정을 그린 '스미레의 꽃'은 보기 드문 현대물이라 오오! 하고 또 신경을 살짝. 안경을 낀 지 오래되어 안경을 처음 썼던 순간 선명하게 보인 세상이 어땠더라, 하는 느낌도 꽤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평소 알지 못했던 시선을 새삼 깨닫는 순간도 굉장히 재치가 있어서 마음에 들어요.


여튼 그렇습니다. 모리 카오루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이에게는 도대체 이게 뭐..?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알고 있는 이에게는 낄낄거리며 가볍게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너무 빽빽한 글은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가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가볍게 읽으면 돼요. 그래도 <엠마>와 <신부 이야기>는 한 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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