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해 미 연방수사국(FBI), 국제형사경찰기구(Interpol)을 비롯한 국제 사법기관들의 자문을 구해 세계 10대 지명수배자(The World's 10 Most Wanted)를 선정했다. 대부분이 범죄 조직원이거나 갱단의 두목으로 구성되어있고, 2008년 발표 당시 1순위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뒤를 잇는 사람이 멕시코의 마약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 호아킨 구스만이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2011년에 새롭게 구성된 명단에서 호아킨 구스만은 1순위로 훌쩍 올라서게 된다. '엘 차포'로 불리는 그는 2007년 멕시코의 마약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미국과 멕시코에서 유통되는 코카인과 마리화나가 거의 대부분 이 사람의 손을 거친다고. 한 번 체포되어 8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는데 트럭을 이용해 영화같이 탈출한 뒤 10년동안 행방이 묘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약 유통 과정의 대부분에 손을 대고 또 막강한 권력을 발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2006년 멕시코의 제3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마약 전쟁을 선포한다. 하지만 멕시코의 곳곳에 뿌리내린 조직들과 관료들과 조직 사이의 유착 등 부패가 끊임없이 적발되며 여전히 전쟁의 끝은 안갯속에 숨어있는 상황이다. 범죄 조직간의 충돌이 빈번히 일어나는 국경도시에서는 가난한 청년들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이유로 마약 조직 카르텔을 찾는다. 마약 조직 사이의 갈등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범죄 등을 피해 집을 떠난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 피해를 당한 적이 있고, 소방관과 경찰이 사망, 실종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등 멕시코를 뒤덮고 있는 범죄와 조직의 뿌리는 언제쯤 뽑혀날 수 있을지, 뽑히긴 할지 의문스럽다. 불과 며칠 전 국경 도시에서 마약 조직 간의 충돌로 인해 하루에 23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여전히 멕시코의 마약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어마어마한 '개의 힘'이 멕시코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그 악의 힘이 어떻게 사회를 뒤바꿔놓았는지!


  이는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을 읽고 난 뒤 막연하고 희미하게 알고 있던 멕시코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뚜렷하고 선명하게 만들어보려고 어느 정도 발버둥 쳐 본 결과다. 책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었는가,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1975년부터 2003년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의 마약 전쟁을 관통하는 대서사를 그려내고 있는 스릴러 소설이다. 범죄를 다루고 있는 역사 소설이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또 촘촘하게 맞물린─이라고 한들 나는 여전히 이를 구분할 수 없다─이 작품은 거대한 규모의 서사에도 불구하고 꼼꼼한 구성과 힘 있는 문장으로 중심을 꽉 잡은 채 쉴새 없이 독자들을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으로 몰아넣는다.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마약 전쟁에는 크게 세 개의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바레라가 이끄는 바레라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마약 수사 전담반, 그리고 치미노 조직까지. 그리고 각 세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각각 아단 바레라와 아트 켈러, 그리고 션 칼란이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소설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주는 것이 고급 매춘부 노라 헤이든과 후안 신부다.

  방대한 등장인물들과 세력들 사이의 전쟁은 이 주요 인물들이 어느정도 구심점이 되어 쉴새없이 물어뜯는 개의 힘의 영향력 아래에서 독자가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대립과 우호의 관계가 아니라면 만날 일은 전혀 없어보이는 등장인물들 사이에 의외의 연결고리가 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치밀한 사전 조사와 꼼꼼한 구성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여지라고는 남겨주지 않는 이 어마어마한 흡입력이라니!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_시편 22장 20절






  성경을 공부하기는 커녕 읽어본적도 없는 나로서는 시편 22장을 수박 겉핥듯이 살펴볼 수 밖에 없음에도, 20절에 등장하는 '개의 힘'이란 거스르기 힘든 '악(惡)'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개의 힘>에서 '죽음의 진토'에 놓여 있는 자신을 둘러싼 '개'와 '악한 무리'들의 세력 아래로부터 구원을 갈망하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누구도 <개의 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마약 유통을 둘러싸고 조직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끝없는 범죄를 만들어내고 있는 카르텔과 이를 소탕하려는 아트 켈러의 움직임이 대조적임에도 불구하고, 선악의 구분은 명확하기는 커녕 모두가 악으로 물들어간다. 소설 속에서 사실적이고도 잔혹한 범죄와 이에 대한 묘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순수하기 짝이 없는 '악'이란 아직 찾을 수 없다고, 순수한 '개의 힘'의 실체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개의 힘'은 바레라와 아트 켈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같잖다는듯 그 세력을 갈수록 넓혀나간다. 마약 유통을 통해 획득한 거대한 자본의 힘은 어디서나 절대적인 권력을 발휘하는데, 이는 개의 힘을 수그러뜨리기는 커녕 목줄이 풀린 것 마냥 더더욱 키워나가는 증폭제가 되어준다. 기본적으로 '정의(正義)'의 편에 서 있어야 할, 마약 카르텔을 뿌리뽑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기관들은 이들을 구성하고 있는 관료주의의 부패로 인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시스템이 되어버린다. 목줄을 채우고 이를 꽉 붙잡고 있어야 할 그들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개의 힘'은 멕시코 사회 전역을 뒤덮어간다. 그 과정을 중심 세력을 중심으로 한 마약 단속국 요원과 카르텔의 비등비등한 대립 대신 멕시코 사회의 시스템과 마약 전쟁에 개입한 미국과의 관계까지 포괄적인 시선으로 그 '힘'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벗어날래야 벗어날 없는, 여전히 멕시코 사회를 뒤덮고 있는 '악'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괴롭고 안타깝지만, 여전히 '개의 힘'을 몰아낼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아 보인다.






 

핏불 같은 책. 일단 목줄을 풀어주면 이 스릴러는…… 인정사정없이 덤비고 공격해 와서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건 뭐든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_<워싱턴 포스트>





  소설이 함축하고 있는 '개'라는 녀석은 내내 할퀴고 물어뜯고 짖어댄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레라 카르텔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다못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보다 더 심하기야 하겠어, 그래도 얘들이 날뛰어봤자 여기까지겠지, 어쩜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나를 사정없이 비웃는다. 아니, 우리를 뭘로 봤던 거야? 이 정도로 끝낼 줄 알았어? 하고 말이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지옥이 지구 위에 나타난다면 여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개의 힘>에서 묘사되는 멕시코의 모습은 나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마약 카르텔의 끊임없는 범죄는 단지 그들의 물질적인 욕망만을 연료로 삼지 않는다. 관성은 질량이, 그리고 가해지는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해진다. 처음에는 물질적인 욕망에서 출발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범죄가 늘어날수록, 그렇게 질량이 높아지고 또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이 부여하는 힘이 세어질수록 더더욱 멈출 수 없어 달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릴러 팬에게는 <개의 힘>이야말로 지옥에서 태어난 천국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앞서 이야기 한 것의 반복에 불과하지만, 뛰어난 구성과 힘 있는 문장, 그리고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작품을 단숨에 읽어나가게 한다. 또 다른 의미의 '개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는 커녕 갈수록 나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스릴러의 세계가…….







어쩌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른 뒤 아트는 가끔 생각했다. 확실히 아트의 내면에도 잠재되어 있었다. 개의 힘._1권, p.55


좋소. 우리는 어떤 흙에서도 자라고 번식하는 철쭉나무 씨앗처럼 퍼져 나갈 것이오. 만약 시날로아를 차지하려는 우리의 거사에 그들이 거치적거린다면, 우리는 국가 전체를 차지해 버릴 것이오._1권, p.99


온두라스 밖으로 마약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양키 야구장에서 핫도그를 파는 사람만큼이나 경이롭다._1권, p.208


아트는 방아쇠를 꽉 쥐었다. 힘이 들었다. 아트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당기기가 힘들었다. 티오가 아트를 보고 싱긋 웃었다. 완벽한 사악함이었다. 개의 힘._1권, p.328


그 조직의 일부가 되도록 해. 그래서 그들이 너를 떼어내려면 전체를 잡아 뜯어내야 하도록 말이야. 그래야 널 떼어낼 일이 없을 게다._1권, p.378


신이 없다면, 필요한 것은 살아남기밖에 없었다._2권, p.126


코카콜라 판매자가 되겠어, 펩시콜라 판매자가 되겠어? 반드시 선택해야 하고 둘 다 선택할 수는 없어. 코카냐 펩시냐. 포드냐 시보레냐. 허츠 렌터카냐, 에이비스 렌터카냐. 모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지._2권, p.138


아트에게 이 일을 처리할 힘이 있을까? 현 정부에 의해 은폐되어 버릴까? NAFTA에 집중하는 만큼 신경 써줄 다른 미국 기관으로 어떤 곳이 있을까?_2권, p.187


죽이는 일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지. 내 영혼을 피로 물들이는 일에 질렸어._2권, p.492


어쩌면 정원을 돌보고 신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일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지도 몰라. 반대되는 모든 증거와 맞서서 말이다._2권, p.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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