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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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성범죄자에게는 무조건 강도높은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국가가 해주지 않아 그 억울한 마음을 자신의 손으로 복수함으로써 푸는 것도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고, 그렇게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선 관점에서 사실적으로 문제를 조망하며 그러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일깨워줬던 소설 <비스트>가 있었다. <비스트>의 마지막을 덮고 난 뒤의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책 속에 녹아있던 루슬룬드 + 헬스트럼 콤비의 메시지에 그리고 성범죄자와 그를 둘러싼 감옥 생활의 끔찍함에 치를 떨며 읽었던지라 정작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경찰과 검사와 교도소장 등의 등장인물들은 까먹고 있었나보다. 한참 책을 읽어나가던 중 <비스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상황이 문득 언급되는 것에 황급히 <비스트>를 뒤적이며 등장인물들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리 세컨즈>는 <비스트> 이후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벌어진 이야기이다. 잊고 있었던 등장인물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쓰리 세컨즈>에서 또 다른 사건에 맞닥뜨린다. 앞서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또 다른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에는 또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그리고 또 거기에 무슨 메시지를 담아냈을까 궁금해 몸이 근질근질하다.

 

 

 

 

  마약 운반책들에게 마약을 토해내게 하고 한편으로는 구매자와 거래를 시도하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마약 판매를 책임졌던 피에트 호프만은 자신의 흔적을 지워내고 현장을 경찰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베트 그렌스를 포함한─은 사건 발생 현장을 꼼꼼히 분석하고 용의자를 물색하지만 쉽사리 꼬리가 밟히지 않는다. 윗선에서는 파헤쳐야 할 다른 사건이 많이 있으니 수사가 여의치 않은 이 사건 역시 크게 파헤치지 않을 필요가 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형사, 에베트 그렌스는 끈질기게 신고 전화의 목소리와 주변을 분석하며 사건 현장은 마약 거래 현장이었음을 추리해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약상과 형사의 추격전이 그려지리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뿐이라고? 루슬룬드, 헬스트럼 콤비가 그려낸 이야기가? 바로 그 <비스트>를 써냈던 그들이?


  처음에는 이뿐이리라 생각했다. 경찰은 마약과의 전쟁에 시달리고 경찰이 마약 거래 현장에 위장 잠입을 해 그들의 뿌리를 뽑으려 한다,는 줄기를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는 있지만 신선하지는 않다 생각했다. 범죄 조직에 경찰 대신 경찰과 손을 잡은 범죄자가 잠입한다는 것만이 그들이 색다르게 설정한 소재라 하기엔 너무 단편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 '안전하긴 하겠다'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이뿐이라면, 뭔가 너무 아쉽다.






  경찰의 끄나풀이 되어 제발로 교도소에 들어간 '파울라' 피에트 호프만이 어떻게 임무를 마친 다음 교도소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을까,가 아니다. 호프만은 과연 살아서 교도소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까,가 이 소설의 주요한 줄기다.


  범죄자와의 연결을 끊어버리려는 대단하신 '윗분들'의 결정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급변하면서 호프만은 그야말로 언제 죽을 지 모를 위기에 처한다. 한편, 호프만의 그림자를 끝내 발견해내고야만 에베트 그렌스 역시 상부의 결정에 의해 진실을 알게 된다면 평생 동안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린 피에트 호프만과 호프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에 휘말리게 된 에베트 그렌스. 그 때부터 <쓰리 세컨즈>는 그야말로 '3초'의 시간 속에 모든 것을 결정짓는, 어마어마하게 긴박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나는 그 3초의 순간과 하룻밤을 바꿔버렸다.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쓰리 세컨즈>는 초반 인물들의 등장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이야기가 조금 더디게 흘러간다. 그리고 1권의 말미에 이르러 피에트 호프만이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펼친 2권에서는 '여기까지만 읽어야지'라는 다짐과는 달리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었을 정도로 엄청나게 몰입하게 된다. '3초'라는 순간을 그렇게 어마어마한 속도감으로, 하지만 생생하게 그려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의 하룻밤과 바꿀 가치가 있었던 '3초'라는 시간은 <쓰리 세컨즈>라는 소설을 단순한 스릴러 그 이상의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전직 기자로서, 또 실제 범죄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들은 철저한 취재와 조사를 통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생생함은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이 그저 픽션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역시 기자였던 안데슈 루슬룬드와 범죄자로서의 삶을 보냈던 버리에 헬스트럼은 누구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낼 적임자였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그들은 <비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피에트 호프만과 에베트 그렌스를 지켜보면서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과연,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통해 범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범죄자를 이용하고 필요없으면 그저 잘라낼 수 있을까. 아무리 범죄자라 한들 그 정도의 인권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일까(라고, 또 이 콤비는 나의 평소의 가치관을 또 한 번 뒤흔들 수 밖에 없는 질문을 던졌다!). 기타 등등. 더 많은 의문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질문들, 그리고 모든 것을 바꾼 '3초'가 무엇인지, 그 '쓰리 세컨즈'가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읽으면서 확인해 보시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은,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점이다. 어마어마한 긴박함과 통쾌함을 안겨다 주는 것은 소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범죄자와 경찰의 거래, 술수와 배신은 사실이다. 마약의 늪에 빠져 평생을 마피아에게 이용당할 수 밖에 없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도 사실이다. 교도소에서 이루어지는 끔찍한 폭력과 마약 거래 역시 사실이다. 또 다른 '피에트 호프만'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에베트 그렌트 같은 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벤 순드크비스트 같은 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리안나 헬만손 같은 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렌나트 오스카숀이라는 교도소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있어 <쓰리 세컨즈>는 끝을 향해 달려갔건만, 여전히 현실은 이 모든 일이 횡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

 

 

 

 

 

  <비스트>는 루슬룬드 + 헬스트럼 콤비의 첫 합작품이다. 그리고 <쓰리 세컨즈>는 그들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비스트>에서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던 에베트 그렌트 형사가 <쓰리 세컨즈>에서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베트 그렌트는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미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요 형사님.

  <비스트>를 읽는 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은 어마어마한 리얼리티 속에 그려진 성범죄자, 특히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충격이었다. 그리고 <쓰리 세컨즈>는 허구인 듯 실제인 듯 모호하게 꿰어놓고 독자에게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쓰리 세컨즈>에서는 그 뿐만 아니라 소설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스릴러적 요소에서부터 캐릭터의 완성도 역시 훨씬 탄탄해졌음이 자명하다. 나만 해도 <비스트>에서는 기억못했던 이 형사님, 확실히 알아보지 않았는가. 작품 역시 콤비의 집필이 계속 될수록 진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리라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리얼리티와 스릴러적인 재미까지 함께 갖추며 나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던 <쓰리 세컨즈>는 세계 28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영화 판권이 계약되었다. 영국 범죄추리소설작가협회가 선정하는 대거 상 해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오직 범죄자만이 범죄자 연기를 할 수 있다._1권, p.309


지금 우리가 는 일이 잘못된 일은 아니야. 원래 그런 거라고. 우리가 할 유일한 일, 그리고 우리가 한 유일한 일은 그저 현재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하는 보이테크 조직원들의 변호사에게 그저 몇 마디 말을 건넨 것뿐이라고._1권, p.415


법이라……. 빌어먹을 법이라니, 이보쇼, 스텔넬. 그 법이라는 건 책상 뒤에 숨어서 끼적거리는 인간들이 만든 거란 말이오! 그런데 지금 이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이오._2권, p.145


이봐, 헬만손. 내가 이상해지는 거야, 아니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이렇게 복잡해지는 거야?_2권, p.222


범죄자가 경찰수사를 돕는다니, 이런 빌어먹을 시스템이 또 어디 있습니까, 형사님. 정작 그 인간들이 벌인 범죄는 위장되고 묻혀버린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또 다른 범죄수사를 위해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정작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에게는 진실을 숨기고 있다니, 이런 젠장, 이게 민주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형사님?_2권,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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