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단편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0. 헨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그래도 역시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렬히 박혀 있는 단편소설은 초등학생 시절 <세계 우수 단편 모음>에 실려있던 단편들이다. 어느샌가 집에서 사라져버린 책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가볍게 구글링을 하니 표지가 바로 나오는구나. 덩달아 그 때 내가 무슨 단편을 읽었나 목차를 살펴보니 모파상의 「목걸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별」, 톨스토이의 「바보이반」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다. 그러고보니 「검은 고양이」를 읽고 상당히 충격을 받은 기억도 난다.


  그런데 나의 기억은 상당히 와전되어 있었는지 모파상의 「목걸이」도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도 오 헨리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더랬다. 오 헨리 단편선이라면 이 정도 작품은 당연히 있겠지 생각했는데 뒤늦게 다른 작가의 단편을 혼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튼 그 정도로 '오 헨리'라는 이름은 단편 소설 하면 바로 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어린 마음에도 상당히 강렬한 기억에 남아 있었나보다. 실제로 상당히 강렬한 반전으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그리고 모파상의 「목걸이」인데, 나도 모르게 그 정도로 유명한 단편을 읽었으니 나는 오 헨리의 단편은 거의 다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랍시고 혼자서 납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 헨리를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유이하게 알고 있었던 두 작품이 아니라 그의 단편 중 서른 편을 골라 모아둔 단편집이란다. 그러고 보니 새삼 오 헨리 단편선이라는 이름 아래 상당히 많은 단편들이 이미 소개되고 있었음에도 나는 어찌나 오만하게 그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건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역시 가장 유명한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작되는 그의 단편들은 뉴욕 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새삼 다시 읽는 두 이야기는 어찌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느낌과는 상당히 색다르다. 가난하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어찌나 감성을 자극하는지. 실로 이렇게 감성을 자극받은 것도 도대체 얼마만인가!


  그 밖에는 아예 그야말로 아예 처음 보는 이야기들뿐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오 헨리의 단편은 비록 1900년대 초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당연히 내가 모든 것을 공감할 수는 없지만서도 역시 시대를 초월해 함께 공감하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의 삶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가 팍팍한 생활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웃음과 행복을 찾아낸다. 그리고 오 헨리는 그 모습을 따스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일관되게 그려내면서 독자에게도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오 헨리의 단편에는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그의 따스한 시선과 더불어 함께 웃을 수 있는 유머가 가득하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어느정도 읽다보면 패턴을 알게 되어 예측가능하지만서도 살포시 미소를 짓게 하는 반전을 마련해 두었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에도 잊을만 하면 간간히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귀여움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결정짓는 당시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실제 그들의 생활상이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너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감성으로 그들의 삶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오 헨리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그의 주변을 살아가는 이들을 관찰한 덕분일 것이다.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오 헨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따뜻하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뜻하지 않게 우울할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휴식처를 발견한 기분이다. 즐겁게 읽었던 단편도, 새로운 만남이 너무 즐거웠던 단편도 한동안은 나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것 같다. 그리고 오 헨리는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냐고, 나의 약한 면모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작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쁨과 웃음이 너무 아름답지 않냐고.

 

 

 

 

 

 

 

 

  서른 개의 단편 모두 주옥같지만, 특히 나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웃음을 주며 날 즐겁게 해 줬던 단편 몇 개를 소개해 본다. 워낙 유명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두 남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낙원에 들른 손님」, 돈 그리고 사랑을 믿는 부자(父子)의 청혼 프로젝트를 그려내고 있는 「재물의 신과 사랑의 신」, 인생은 돌고 있는 것을 기막히게 그려낸 「경찰관과 찬송가」와 「인생은 회전목마」,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노부인의 한결같은 취향을 그려내고 있는 「매혹의 옆모습」, 말썽꾸러기를 유괴한 2인조의 고생담이 담긴 「붉은 추장의 몸값」 정도로 해 둘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반전이라거나 도중도중 오 헨리가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화자로서 개입을 하고 심하디 심한 우연에서 비롯된 해피엔딩 등 어느 정도 부자연스러운 요소 역시 담겨 있지만서도, 그런 점에 대해서는 오 헨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맡기면 될 것 같다. 그저 그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자, 창밖을 내다봐. 벽에 붙어 있는 저 마지막 담쟁이 잎새를 말이야. 바람이 부는데 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지 이상하지 않아? 아, 존시, 저건 버먼 할아버지가 그린 걸작품이야.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날 밤 그분이 저기에 그려놓으신 거거든._p.19, 「마지막 잎새」


델러,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당분간 치워두기로 하지. 지금 당장 사용하기엔 너무 훌륭한 것들이니. 당신에게 빗 사줄 돈을 구하기 위해 난 시계를 팔았어. 자, 이제 고기 토막을 올려놓지._p.29, 「크리스마스 선물」


이제 알겠어요. 당신은 증권일을 하는 중에는 다른 일은 모두 까맣게 잊어버리나 봐요. 처음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여보, 기억나세요? 우리는 어젯밤 여덟시에 저 길모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잖아요._p.128, 「어느 바쁜 브로커의 로맨스」


신사 양반들, 나는 오늘 우편으로 내 아들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몸값을 요구하는 편지를 잘 받았소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조금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 같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당신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바이니, 이런 제안이라면 당신들도 수락하리라고 믿소. 당신들이 조니를 집으로 데려와서 현금으로 250달러를 내게 지불한다면 나는 당신들 손에서 조니를 인수하는 데 동의하겠소._p.3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