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을 향해 쏴라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어언 세 번째로 만나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다보니 이제 더 이상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만서도, 그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기준에서 내 멋대로 하는 이야기이므로 한 마디라도 히가시가와 도쿠야만의 매력을 한 번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없이 가볍고 유머러스한 그만의 문장 속에는 의외로 치밀한 트릭이 녹아 있다' 라고나 할까.


  그의 데뷔작이자 이카가와 시 시리즈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하룻밤 사이 두 건의 살인사건에 휘말려 그 용의자로 지목받는 대학생 청년이 탐정인 제부와 함께 은신하는 한편 나름대로 '밀실의 열쇠를 빌려주며' 독자로 하여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 수수께끼의 풀이와 함께 자칭 '명탐정과 그의 제자'의 만담 아닌 만담, 그리고 의외의 복병이었던 '명형사와 그 부하'의 골때리는 대화 속에서 터지는 웃음은 보너스 정도?

  그리고 상황 설명과 함께 군데군데 작가 스스로 한 마디 하지 않으면 못 배기겠다는 듯 툭툭 내던지는 말은 어쩌라고 싶으면서도 의외로 등장 포인트가 명백해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유머를 선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밀실을 향해 쏴라> 역시 그 특색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편이다.



간토 지방 어떤 현에 있다고 했던가, 없다고 했던가? 아니면 예전에 그런 도시가 있었다고 했던가? 아무튼, 뭐 그런 도시 이카가와 시에 대해 독자 여러분은 아마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_p.7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라는 작가의 입이 제일 처음 떨어지면서 꺼냈던 이야기와 상당히 흡사하게, 그러면서도 능청스럽게 스리슬쩍 이카가와 시를 기억해 보라는 듯 시치미를 떼면서 만담 아닌 만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에 이어, 근무 시 태도는 정말 불성실하기 그지없으면서 필요할 때는 충분히 냉철해지는 '명형사' 콤비가 역시나 조금은 방심한 상태에서 근무를 하는 도중 사제 권총이 이카가와 시에 반출되어버리는 소설같은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것은 <밀실을 향해 쏴라>는 제목에 걸맞게 언제 어디서나 권총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도록 스리슬쩍 무대를 세팅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예상치 못하게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등장했던 우카이 모리오 탐정과 그의 처형 도무라 류헤이, 그리고 책에서 역시 등장하며 지난 번 사건의 알리바이를 상당히 꼬이게 만들었던 맨션의 여주인 니노미야 아케미가 우카이 탐정 사무소와 얽히면서 탐정 측 역시 스리슬쩍 팀을 짜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밀실을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인적 드문 해변가에서 노숙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도무라 류헤이가 죽은 노숙자 긴조 씨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변을 거닐다 주죠지 그룹의 회장, 그리고 그의 손녀를 만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찌어찌 사건 의뢰를 받아들여 주죠지 그룹에 하룻밤 머물게 된 우카이 모리오 그리고 도무라 류헤이. 잠든 밤, 우카이의 발을 향해 총알이 날아오면서 시작된 총성 소리는 토리노미사키의 주죠지 저택을 뒤흔들고, 잠에서 깨어난 주죠지 저택 사람들 모두가 지켜보는 중 쥐도 새도 모르게 복면을 쓴 총기남은 저택에 머물고 있던 손님 한 명을 살해한다. 덩달아 사건 현장 근처에서 한 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고… 저택을 뒤흔든 총성의 행방을 파헤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총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엄살은 있는대로 다 부리던 '자칭 명탐정' 우카이 모리오 측 그리고 '명형사' 시나가와 경부와 시키 콤비 측은 서로를 견제하며 총성에 감춰진 범인의 알리바이를 쫓기 시작한다.




"이번 사건은 그렇게 단순한 밀실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범인은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근 게 아니야."

"아니, 그럼 밀실이 아니란 말이에요?"

"아니, 밀실 맞아. 아마 중인환시(衆人環視)의 밀실이지."_p.256




  작가 스스로도 그렇게 '밀실 만들 정신 있으면 도망이나 빨리 칠 것을!'이라는, 범인의 정곡을 찌르는 핵심을 인정하면서도 밀실 살인사건에 대한 로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두 편에서 연달아 밀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저 자물쇠를 걸어잠근 밀실 대신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서 밀실이 만들어진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뭐, 실은 이러한 밀실─솔직히 중인환시의 밀실이라고 부를 줄은 몰랐지만─은 이미 많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접해본 형태이지만.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특정한 미스터리에서 형성된 밀실의 형태를 어느정도 가져와 변형을 꾀했다면, <밀실을 향해 쏴라>는 밀실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범인을 좁혀가라는 듯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것은 쉽다. 순식간에 단 한 명으로 좁혀진 용의자는 역시나 예상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중인환시의 상황─많은 사람들이 둘러싸 지켜보고 있는─에서 여덟 발의 총알이 들어있었던 총성의 행방을 찾는 것은 나름대로 정교한 추론이 필요했고, '동기'의 측면에서도 완전한 복선은 아닐지언정 초반부터 꽤나 암시를 주고 있었기에 그 부분을 놓쳐버렸던 것이 아쉽기도 했다.

  역시,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 속에서도 의외로 촘촘하게 퍼즐 조각을 흩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반전을 위한 반전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생각했던 그대로의 추리에서 끝나버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메인 요리에 손을 댈 것은 아닐지언정 자그맣지만 의외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디저트를 마련해 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전작의 그 의외성에 허를 찔렸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요리의 양념이라 할 수 있는 '유머' 역시 전작만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띨띨해 보였던(?) 도무라 류헤이가 '명탐정의 제자'로서 나름대로 착실히 훈련을 하면서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웃음을 주는 빈도 역시 조금 줄어들었다.

  훌륭한 요리였지만, 역시 처음 맛볼 때의 기대감과 설렘이 조금 부족해서인지 비슷한 요리를 두 번째로 먹을 때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마련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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