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
코바야시 야스미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네 개의 서명』에서 셜록 홈즈는 이렇게 말했어. '아무리 그럴듯하지 않아도 모든 조건 중에서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고 남는 것이 진실이라고.'_p.240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추리소설은 거의 대부분이 셜록 홈즈 시리즈이다보니 그 책을 읽고 있노라면 종종 셜록이 책 속에서 툭 하고 던져놓는 '이렇게 탐정을 찾아봐!'라는 복선과 암시를 주며 독자에게 수수께끼를 풀어보라고 하기는 커녕 셜록은 혼자서 신나서 북치고 장구치고 사건 해결하고 땡끝!


  아, 이게 아니고. 셜록은 그 와중에 자비(?)를 베풀어 '도대체 자네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게 틀림없는 존 왓슨 박사에게 이러저러한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독자는 그 때 이러저러했다, 하고 밉살맞지만 설명을 해 주는 명탐정의 말씀을 새겨듣는 것이다.


  나 역시 <네 개의 서명>에서 소거법을 언급하며 아닌 걸 다 보여주면 남게되는 하나가 바로 진실이다라는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오호라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후후후.

 

 

 

소거법을 적용할 때에는 먼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나씩 지워 가다 마지막에 남은 것을 진실이라 보지. 하지만 정말 모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소거법을 추리에 이용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지금 말한 점들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지. 아니면 소거법은 무척 위험한 방법이 되어 버리니까._p.19~20





  코바야시 야스미의 <밀실·살인>은 '소거법을 과신하면 위험하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그러한 소거법으로는 풀기 힘들 수 있을 사건을 풀어나가려 하니 한 번 맞춰보세요~라는 듯 느긋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리카와 탐정 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는 요츠야는 선생님께 이런저런 탐정으로서의 자질을 배움과 동시에 '정체가 많이 알려지면 탐정 일을 할 수가 없다'는 핑계로 언제나 손님 접대에서부터 주변 탐문 등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암묵적으로 종종 요리카와 탐정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하는 타니마루 경부는 ''소거법'에 대해 이런저런 논리를 펼치고 있는 요리카와 탐정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요츠야에게 손님을 보낸다.

 

 

 

  다짜고짜 탐정 사무소를 찾아온 니시나 부인이 꺼낸 말은 '아들의 결백을 밝혀달라'는 것. 살인인지, 자살인지, 사고인지조차 판별할 수 없는 기묘한 상황에 맞닥뜨린 타니마루 경부는 요리카와 탐정에게 SOS를 요청한 것이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요리카와 탐정은 슬슬 출발할테니 일단 현장을 최대한 빨리 살펴보기 위해 요츠야는 사건 현장에 먼저 달려갈 수 밖에 없다.




"밀실이 있고 살인이 발생했으니, 밀실 살인이겠죠."

"밀실 살인의 정의는 뭔가? 밀실 안에서 시체가 발견된 살인사건인가? 그렇다면 이 사건은 밀실 살인이라 할 수 없겠군. 시체는 밀실 밖에서 발견되었으니까." 타니마루 경부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밀실 살인'은 법률 용어도 아니고 경찰 용어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엄밀히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꼭 구분을 하고 싶으시면, '밀실'과 '살인' 중간에 가운뎃점을 찍는 게 어떨까요? '밀실'이 하나 있고, 살인사건도 발생했으니까요."_p.123




  확실히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다. 밀실은 밀실이고, 살인은 살인일 수 밖에 없는 상황. 밀실 그리고 사건이 분리되어버려 밀실 속에서 살인이 벌어진 건지, 단순한 추락으로 인한 사고사인지, 자살인지조차 헷갈리는 상황. 코바야시 야스미는 소거법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 했는데 사건에 있어서도 '어떤 가능성을 지닌 사건'을 만나볼 수 있을지 상상을 해 보라는 듯 도전장을 내민다.


  더불어 사건이 벌어진 별장 부지라 할 수 있는 '아지 산'에 얽힌 기묘한 소문들이 계속 요츠야의 주위를 맴돌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와 함께 전직 경찰이었던 요츠야의 트라우마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며 오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요리카와 탐정이 상당히 능청스럽게 소거법 등 미스터리의 요소라고 할지 기법이라 할지에 대한 이런저런 논평을 보면서 그 상황들이 적용되기 어려운 사건을 만들려고 하는가보다 하고 짐작하게 만들고, 책의 가장 처음과 중간에 삽입된 기묘한 독백과 문득문득 요츠야를 덮치는 과거의 트라우마 그리고 본디 신사(神社)였던 산의 본체를 깎아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의 별장, 이를 둘러싼 저주에 관한 소문 등이 뒤섞이며 이야기는 상당히 독특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사건의 전모와 더불어 또 다른 진실이 하나 밝혀지는데 그제서야 나는 뭔가 기묘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요소들이 책 속에 녹아있는 것이 자연스럽기 보다는 이질적인 것을 뒤죽박죽 섞어놓은 기분이다.


  요리카와 탐정의 입을 빌려 작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들─앞서 말한 소거법과 같은─은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산만해 이야기의 흐름이 잘 따라가지 못했고(심지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모든 가능성'을 주장했던 요리카와 탐정은, 정작 자신이 펼쳐놓은 가능성은 한계에 부딪힌다), 도중도중에 나오는 요츠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호기심을 유발하기 보다는 너무나도 뜬금없는 등장에 나를 당황시켰다. 게다가 뭔가 묘하고 흐릿한 결말까지……. 현재 이 책을 읽은 분들 사이에 결말에 대한 논란이 이리저리 벌어지고 있어 나도 살짝 의견을 피력해 보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 책 속에서 작가의 회심의 유머도, 본격 추리에 대한 애정도, 호러의 요소도 책 속 군데군데에서 느껴지지만, 그것을 단지 물리적으로 섞어두기만 했다. 그 속에서 화학 작용이 일어나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밀실 그리고 살인이 분리된 것 만큼이나 소설 속 작가의 의도와 욕심은 모두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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