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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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 신기한 게, 세상에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수 만큼의 다른 얼굴과 지문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 역시 구문체냐 산문체냐 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한들 결국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이 모여 문장을 만들고, 문장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건만, 그 익숙한 단어들의 조합이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곤 한다.

그것 역시 언어라는 도구의 굉장한 메리트인데, 작가들은 머리가 아플지라도 한낱 독자의 입장으로 이야기를 소비하는 나로서는 그 사실이 참 즐겁고 언어라는 도구에 감사하게 된다.

물론, 완전히 세세하게 파고 들어갔다는 것이 그렇지 어느 정도 문학에서 장르가 구분되면 나름대로 틀은 잡혀 있기 마련인지라, 그 구분 속에서 취향에 맞는 책을 읽게 되는 것이지만, 그런 점에서 시자키 유의 <외침과 기도>는 상당히 색다른 시도를 한 '미스터리'라 해야할지 미묘한 경계 위를 넘나드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책 한 권'을 만났다고 해 두자. 조금은 낯설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빚어낸 소설 속 세계를 만났다고.





시자키 유의 데뷔작이자 제5회 미스터리즈! 신인상을 안겨준 단편 「사막을 달리는 뱃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낯선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과 동행하는 사이키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7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그 전공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직업을 택해 세계 각국을 취재하는데, 그 중에 만난 이국적인 세계에서의 사건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막을 달리는 뱃길」위에서 사막을 횡단하는 상인들을 덮쳐버린 연쇄 살인,

「하얀 거인」들 속에서 홀연히 사라진 그녀의 수수께끼의 로맨틱한 해법,

「얼어붙은 루시」의 짙은 안개 속에 서 있는 수녀원에 안치된 썩지 않는 시신의 진정한 불빛,

너무나도 다른 아마존 밀림에서 살아가는 부족들을 덮친 죽음과 그의 「외침」,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어느 제도에 위치한 신비한 동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행자의 「기도」까지.

 

 

 

하다못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불어온 바람이 귓전에서 울었다.

꽃보라 치는 경치 속에서 점차 현실의 소리가 되돌아왔다.

그 소리 속에서 언젠가의 정경이 떠오르기를 나는 기도했다.

-p.354, 「기도」

 

 

 

사이키의 이야기는 분명 「사막을 달리는 뱃길」에서 시작되었으나 마지막 「기도」에 이르러 다섯 편의 이야기는 한 권의 연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낯선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는 사이키의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트릭과 반전보다는,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의외성을 안겨 주는데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집 <외침과 기도>의 강점이자 매력이다.





사막과 스페인의 풍차마을, 러시아의 안개에 뒤덮인 수도원과 아마존의 밀림 등 세계 각지를 무대로 삼아 시자키 유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여행지라는 낯선 장소와 그 장소에 머물고 있는 낯선 문화 속에서 비춰지는 '낯선 동기'가 사이키가 맞닥뜨린 수수께끼의 의외성과 그 해답에 힘을 실어준다. '어째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가'에 대한 해답을, 시자키 유는 그 나름대로 탄탄한 시나리오 속에서 내놓는 것이다.





게다가 누구나 품고 있는 여행과 그 여행지에서의 모습을 상당히 낭만적인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 감성적인 문장 속에서 미스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교를 녹여내 몇 개의 단편은 그렇게 독자를 살짝 속이기도 한다. 거기에 방심하고 마는 것이다ㅡ이 글을 보고 '그래,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ㅎㅎ

그래서 이 소설은 미스터리로도 여행자의 감성을 담아낸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는 양면적인 매력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극적인 사건이 벌어져도 전혀 상관없는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 그리고 너무나도 담담하게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시자키 유의 문장 때문일지, 미스터리와 스릴러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감은 그다지 살아있지 않다. 그 긴장감을 즐기며 미스터리를 읽는 이에게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신인 시자키 유는 1983년생으로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굉장히 젊은 작가다.

시자키 유는 <미스터리즈!>만의 후기2에서 한 편의 세계 일주를 그려낸 듯한 다섯 장소를 그려내면서도, 스페인의 풍차 마을을 제외하고는 모델이 된 여행지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데뷔작에서부터 꽤나 멋지게 여행과 미스터리라는 두 가지를 함께 녹여낸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떻게 완성되어갈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히 쏠쏠할 것 같다. 그렇기에 '시자키 유'라는 작가의 등장이 반갑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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