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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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은 어디든 내우외환으로 비슷한 문제를 안은 곳이 많아. 그럴 때는 사극에 비유하는 게 제일이지. "

"그럼 우리는 뭔데?"

"으음. 우리는…."

아버지는 턱끝에 자란 수염을 긁적였다.

"떠돌이 무사쯤으로 하자."

-p.182

 

 

자, 골 때리는 캐릭터 또 등장하셨다. 실은, 꽤 오래 전에 등장했으나 이제서야 우리 앞에 나타나 준 것이다.

 

'아르바이트 탐정' 시리즈로는 세 번째이자 첫 장편이기도 하다는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은 1988년 작으로, 과연 무엇을 하는 사무실인지 게임만 하다 끝난다는 소문이 무성한 사무실 '다이쿄쿠구'의 일원인 오사와 아리마사의 작품이다.

 

 

 

일본에서의 어마어마한 인기에 비해 국내에서는 인지도도 그다지 높지도 않고 많은 작품이 출간되지도 않았는데, 진즉에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의 1탄 <신주쿠 상어>가 출간된 이후 후속작은 감감 무소식(찾아보니 1993년 한 출판사에서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가 출간되었는데 지금은 절판되었다.).

그래봤자 나 역시 그렇게 책 출간 안 되냐고 독촉하지도 그렇다더라~하고 잘난척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닌 것이,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이 이 분과의 첫 만남이라는 거다.

 

 

 

 

실은 일본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소년 탐정단들이 사용하는 사물함에 의뢰가 들어온다, 그리고 소년들은 드디어 첫 임무가 들어왔으니 굉장히 설레고 두근거리지만, 찾아달라는 것은 집 나간 고양이라는 것에 굉장히 실망하곤 하는 것이 주요 패턴인데, 사실 누군가의 소중한 것에는 가벼움이란 없다. 뭐 그래도 좀 멋있는 임무를 수행하고 싶으니 스파이 활동에 악의 무리에 맞서 싸우고 싶은 것은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처음에는 제목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을 보고서도, 진짜 '왕녀'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 그래봤자 어느 재벌의 상속녀 정도로 오냐오냐 떠받들어지는 존재겠지, 무슨 거창하게 왕녀야.. 그 그룹의 왕녀겠지, 하고 코웃음을 쳤는데 이럴수가, 진짜 '라일 왕국'이라는 곳의 왕녀가 등장한다.

또 다른 등장인물을 소개해줘야겠다. '왕녀를 위한'은 해결되었으니 이제 '아르바이트 탐정'이 남았다. '사이키 인베스티게이션'이라는 그럴싸한 간판을 내걸고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이키 부자, 그 중에서도 '알바'를 뛰고 있는 아들 사이키 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과거 스파이로서 꽤 날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동료 시마즈 씨가 고3 여름, 라일 왕국의 왕녀를 경호해 달라는 의뢰를 한다.

왜 국가 기관에서 직접 안 하고...라는 게 뻔한 이유로 여차저차해서 신분이 숨겨져 있고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뭐 그런 것이다.

이번 일 잘 하면 도쿄대 정도 뒷구멍으로 입학할 수는 있겠지, 하고 시작된 아르바이트.

그러나 왕녀가 입국한 첫 날 부터, 라일 왕국 대사 대리가 독침을 맞아 살해 당하고... 어쨌든 장난이 아니다.

왕녀가 머물러야 하는 곳은 최고급 호텔이 아닌 싸구려 러브호텔에 이동을 할 때도 주변이 뻥 뚫려있을 수 밖에 없는 바이크.

 

맞술은 물론이거니와 맞담배 피는 불량 아버지와 아들, 사이키 부자의 기상천외한 경호, 그리고 처음 만난 아름다운 왕녀와 류의 상큼한 로맨스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

 

 

 

고등학생 아르바이트 탐정이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는 나의 방심와는 달리 책 속에는 본격적인 액션 씬이 상당히 호쾌하게 그려져 있다. 저격수와 폭파범의 등장과 그에 따라 목숨의 위협을 받는 등 꽤나 생생하고 쫄깃한 묘사가 함께하고, 한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만의 무기 같은 것 역시 웃기면서도 색다르다.

 

 

하지만, 역시 그게 전부다. 시원스런 액션과 상큼한 로맨스가 어우러진 적당한 분위기 속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정도. 덕분에 굉장히 뛰어난 가독성을 자랑한다.

게다가 주인공에게 닥쳐버린 절제절명의 긴박한 상황도, 뭐 어차피 주인공이니까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 라는 짐작 때문에 그닥 긴장도 안 되는, B급 액션 영화 한 편 본 그런 기분이랄까.

뭔가 모를 동남아시아 미개척지에 대한 신비함 역시 단골 소재로 등장하곤 하니, 비슷한 영화 한 편 제목을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건 딱히 안 떠오르니 어떤 스타일인지 이 정도로 알아주시길 바란다. 클클.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가장 먹어주는 건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다. 결국 이야기의 패턴은 비슷비슷할 수 밖에 없는데, 관건은 그 속에서 캐릭터들이 얼마나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움직이느냐다. 그런 점에서 이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속 등장인물들은 친근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다.

왕녀를 따라온 가정교사 할머니는 눈에 선하다. 딱 어떤 느낌일지 말이다.ㅋㅋ

 

 

 

참 신기한 것이, 나로선 책이란 '무조건 재밌어야 돼!'라는 엔터테인먼트를 나 혼자만의(...) 기치로 삼고 있는데 그 재밌는 소설 속에서도 입맛이 다르다는 것이 묘하다.

소설 속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도 좋고, 소설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데 의의를 지 않고 생각없이 가볍게 읽는 것도 좋은데 그럼에도 그 와중에 조금씩 조금씩 갈리는 것을 보니 또 세부적인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듯.

취향의 범주에는 속했으나 입맛에는 좀 맞지 않는다. 닭 요리라면 사족을 못 쓰지만 그 와중에 매운 것은 못 먹듯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지만 사람의 입맛은 제각각인 법이다. 매운 요리를 좋아하시는 분도 분명히 있으니 재밌게 읽는 분은 충분히 재미있게 읽으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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