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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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가 비웃으면 어떻게 되는데?"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한 마디.

"끝…."

-p.41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서 그렇게 당해놓고 이번에는 기필코 혼자 깨어있는 밤에는 이 소설을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마지막에는 이미 펼친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고, 마침 바람마저 스산하게 불며 덜컹거리는 창문, 그리고 그 밖의 어둠과 마주하며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책 속의 아리따운 여인네 대신, 일본 원서 표지에 실려있던 씩, 비웃는 여인의 얼굴이 눈 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무서워선, 그 상상을 피해 베개 앞에 얼굴을 들이댄 채, 하지만 궁금하니까 도중에 덮기는 커녕 또 혼자 떨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겁쟁이의 슬픈 이야기다.

 

 

이번에는 <산마처럼 비웃는 것>이다. 미쓰다 신조는, 산마처럼 비웃지는 않더라도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결말을 내놓으며 거기에 당하고 있는 독자를 생각하며 웃음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지벌 그리고 그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가에서 벌어진 비극, 그리고 그것을 파헤치는 환상 소설 작가 도조 겐야의 활약을 치밀한 복선, 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밀실을 만들었나' 하는 건 물리적인 수수께끼입니다.

한편, '왜 구태여 밀실 같은 번거로운 상황을 만들었을까'는 심리적인 수수께끼죠.

-p.148

 

 

 

이야기는 고키 노부요시의 기묘한 체험담이 담겨 있는 원고에서부터 시작된다. 환상 소설가 도조 겐야는 그 원고에 담겨 있는 어떤 '일가 증발'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그 체험담에 담겨 있는 기담에 대한 조사도 할 겸 구마도로 향한다.

그러나 도조 겐야가 일가 증발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부름산의 외딴 집을 방문했을 때, 밀실 상태로 놓인 방 안에서 얼굴이 화로에 처박힌 채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고, 그 이후 가스미 가의 일원들이 하나 둘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 시체들은 하나같이 구마도에 전해져 내려오는 여섯 지장에 관련된 옛날 동요를 따른 듯한 상태로 발견된다.

범인은 어째서 연쇄 살인을 저질렀으며, 동요에 맞추어 가스미 가의 사람들을 하나 둘 살해하는 것일까?

 

 

 

지난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서는, 분명 도조 겐야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사람은, 제일 마지막이 되어서야 생뚱맞게 등장하고는 그 얽히고 설킨 미스터리를 훅 풀고는 불쑥 사라졌더랬다. 그래서 상당히 아쉬웠는데, 이번 <산마처럼 비웃는 것>에서는 처음부터 전면에 드러나 본격적으로 '해결사'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렇게 직접 얽혀있다보니 도조 겐야의 배경이나 주변 인물 등에 대한 요소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소설의 볼거리 중 하나다. 물론 가장 반가웠던 점 중 하나이기도 하고.

 

게다가 여전히 '산마처럼 비웃는 것' 같은 '호러'를 접목시킨 본격 미스터리의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삼산과 흉산으로 일컬어지는 부름산. 부름산에 등장한다는 산마 혹은 산녀의 전설과 그들과 마주치면 결코 질문에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는, 그 마을에 살았던 구성원들이 어린 시절에 할머니께 들을 법한 이야기와 관련지어 불가사의한 무대를 꾸며낸다는 점. 기담에는 사족을 못 쓰는 방랑 환상소설과 도조 겐야를 위한 무대로는 정말 안성맞춤이다.

 

 

 

어쨌든 덕분에 앞에서 언급했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말 귀신의 소행이자 산마의 소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묘한 미스터리와 사람의 '악'에서 출발했음이 틀림없는 연쇄살인사건을 결합시켜 그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놓는 미쓰다 신조의 능력은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기묘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해명을 해 보고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사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말하는 도조 겐야는, 그렇기에 여섯 지장님에 얽힌 동요를 따르고 있는 살인사건을 해결해내는 것이다.

 

 

 

어쩌면 공포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 그 공포를 향해 나아갈 때가, 그 과정이, 실은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p.290

 

 

 

특히 압권은 고키 노부요시의 기묘한 흉산에서의 하룻밤 사이의 체험을 담아낸 수기, 그리고 마지막, 범인이 몰아넣는 상황의 공포다. 이건 내가 등장인물인지, 등장인물이 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포로 나를 몰아넣었다. 흑흑..ㅠㅠ

그러나 훨씬 무서운 것은, 도조 겐야가 말했듯 공포스러운 상황의 실체가 하나 둘 벗겨져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 등장하는 이면이다. 범인은 그것을 잘 알았기에, 더더욱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아이고.. 이거 읽는다고 내가 정말 어찌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는지. 덮고 내일 밝을 때 읽어야지 하기엔 수수께끼가 끝을 달하면서 덮을 수도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맞이한 결말은, 정말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실마리가 되어 연결되는 순간 무릎을 치고 말았다. 도조 겐야의 추리가 계속 되면서 앞에서 조금은 미심쩍게 느껴진 질문의 해답들 역시 명쾌하게 모두 해결해 준다.

그렇게 모든 장면, 모든 대사가 버릴 것 하나 없이 맞추어 떨어지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기괴한 '호러'에서 출발해 '본격 미스터리'의 풀이의 정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미쓰다 신조의 명성은 계속해서 이어져 갈 듯하다.

 

 

자, 얼른 책을 펼쳐보시지요.^^ 하지만 주의하시길. 겁이 많으신 분은 이 소설, 밤에 읽는 걸 권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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