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진 살인사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나 무엇에든 '시작'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미스터리의 왕국이라 감히 이름붙여주고 싶은 일본 미스터리들 역시 시작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일본 미스터리의 시조는 '구로이와 루이코'로 처음으로 '탐정소설'이라 할 수 있는 <법정의 미인>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이지만, 그래도 본격적으로 그 줄기가 뻗어나기 시작한 것은 '에도가와 란포' 그리고 '요코미조 세이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의 '일본 미스터리'의 시작은, 실은 만화 <명탐정 코난>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게 많이 소개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찾아 읽었을 것 같지도 않다. 그 때만 해도 셜록 홈스의 모험에 듬뿍 빠져 있을 때였는데, '에도가와 코난'이라는 소년과의 만남은 뒤늦게 일본 미스터리를 탐독하면서 '에도가와'라는 성을 란포에게서 따왔구나 하는 것, 그리고 뒤늦게 코난의 책 날개에 소개되고 있는 수많은 일본의 명탐정들을 발견하고는 아하, 이 때 부터 내가 이들과 이렇게 접촉(?)을 했었구나, 하고 굉장히 즐거움을 안겨주곤 했었다. 2007년 <용의자 X의 헌신>의 유가와 교수를 만나면서 일본 미스터리 그 자체에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 때 부터 읽은 만화책에서는 꽤나 낯익은 탐정과 형사가 소개되어 우와, 나도 이 사람 알아! 하고는 괜히 뿌듯해했던 기억도 난다.ㅋㅋ

 

그리고 또 하나, 사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탐정 하면 역시 코난과 김전일(아니 최악의 연쇄살인마인가?)이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라니. 스스로 명예를 만들어갈 생각은 안하고 할아버지 실컷 팔아먹고는 내려지는 결론이란 연쇄살인마라니.ㅋㅋ 어쨌든 긴다이치 소년, <소년탐정 김전일>을 읽으며 그놈의 할아버지가 누구길래? 긴다이치 코스케가 뭐라고 이런 자식이 설치고 다니나,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리고 만화책을 만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긴다이치 코스케'란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 이쯤에서 딴 소리는 그만해야겠다. 어쨌든 그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국내에도 이미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나는 그의 작품을 단 한 권 읽어봤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전설의 시작이자 소년 김전일 그리고 긴다이치 코스케의 원점, <혼진 살인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얼마 안 되어 이렇듯 긴다이치 코스케의 시작을 만날 수 있게 되다니, 상당히 기쁘구만.





이번에 새로 출간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혼진 살인사건>은 이미 출간되었던 「본진 살인사건」을 다시 정식 완역본으로 출간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두 편의 중편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흑묘정 사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거두절미하고, 요코미조 세이시는 자신의 첫 소설을 '밀실 살인'으로 시작했다.

본채와 떨어진 별채, 그 길을 막아놓은 덧문 그리고 아무도 걸어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은 듯 새하얗게 쌓여 있는 눈. 게다가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신랑 신부는 싸늘한 시체의 모습으로 참혹하게 발견된다. 살인 도구로 썼던 일본도는 전혀 상관 없는 낯선 장소에 툭 떨어져 있을 뿐더러, 비명과 함께 들려온 의문의 거문고 소리는 무엇인가.

 

 

이번 책에 실려있는 세 편의 소설 중 두 편은, 미스터리 소설가 Y의 시점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을 담아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소설가 Y씨라는 게 요코미조 세이시라는 것으로, 밀실 트릭을 사용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라는 욕망을 소설의 첫머리부터 강력하게 내비치며 말문을 뗀 그는,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미스터리들을 언급하며 스스로의 밀실 트릭 역시, 범인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과연 그가 선보인 밀실 트릭은 어떤 것이었을까?

 

언제나 그렇지만, 물리적인 밀실 트릭을 파헤치는 것은 나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냥 그랬나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실은 대다수의 독자가 겪고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사실 '밀실'이 등장한 사건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신 '왜'가 상당히 중요해지는데, 긴다이치 코스케의 추리는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신랑 신부를 살해한 범인은 어째서 방을 밀실 상태로 만들어 둘 수 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보수적인 명문가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이 녹아 있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일본적인 특색이 짙은 이 「혼진 살인 사건」은, 그렇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잘 녹여낸 밀실 트릭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미스터리 소설 문답'을 통해 요코미조 세이시의 미스터리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그러나 개인적으로 마지막은 좀 과했다. 굳이 그럴 것 까지야.). 그 모두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미스터리 소설, 전설적인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첫 출발점으로 '밀실 트릭'을 내세우며 산뜻하게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역시 비슷한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전쟁 이후 눈을 잃고 사람이 뒤바뀌어 돌아온 혼이덴 가문의 장남 다이스케의 몰락을 그려내고 있다.

이 중편의 경우 일반적인 서술자의 서술 대신 예리한 소녀의 편지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고 있는데, 그렇기에 섬세한 소녀가 눈을 잃은 오빠의 기이한 행동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여실히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전후를 배경으로 어느 시골의 명문가 사람들의 비극을 상당히 섬세하게 그려냈다.

 

「흑묘정 사건」은 역시 또 소설가 Y씨가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직접 자신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그의 소문을 듣고 긴다이치 코스케가 찾아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밀실 살인, 그리고 <옥문도>에서의 기이한 3중 살인(이 맞나?;;)을 경험했으니, 언젠가는 꼭 '얼굴 없는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이야기를 내비친 그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흑묘'라는 술집에서 벌어진 얼굴 없는 시체 사건을 파헤치면서 숙원을 이루게 된다.

대놓고 '얼굴 없는 시체'ㅡ그러니까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뒤바꾸어 은폐하는 등의 공작ㅡ이 등장한다고 공언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는 「흑묘정 사건」은 또다시 「혼진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소설가 Y씨의 미스터리에 대한 견해를 듬뿍 표현해 주고 있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트릭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조금씩 이걸 사용할테니 속지 말고 지켜보라는 듯 슬그머니 문제를 내어놓는 요코미조 세이시. 그리고 역시 더벅머리의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역시, 확실히 예전에 쓰여진 미스터리 소설인 만큼 상당히 전형적인 트릭을 부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탐정의 역할 역시 상당히 전형적이다.

혼자서 뭐 하나 툭, 숨겨두고는 그래그래,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 마지막에서야 이렇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가는 점은 특히 더더욱.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비장의 연극적인 요소를 준비해 두고 청중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Y씨는 그래봬도 꽤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라고 평하고 있는데, 김전일의 피는 여기서부터 이어진 것이었나보다. 음.

 

하지만 확실히, 다양하지 못했던 '살인사건의 동기'를 일본을 배경으로 그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후의 혼란한 사정과 그를 둘러싼 애증의 화살표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바로 그 위대한 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일본 미스터리 관련 참고 : http://blog.naver.com/morush/60008297542,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의 예전 게시글이네요. 그러나 원문은 없어졌습니다..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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