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역사에서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 것 같은데

로마도 마찬가지고 망하는 나라들을 보면 공통점이
항상 계층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사회 전반적으로 부패가 만연한 그런 것들이 항상 나라를 망하게 했던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역사에서 배우면 그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데,
항상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착각에 많이 빠지더라고요.

지금은 우리가 옛날 사람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현명하기 때문에
똑같은 바보같은 실수는 안 한다는 그런 자신감과 오만함 착각. 그런게 역사를 반복시키는 것 같아요.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지난 10년간 이런 격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벌어져 있는데요.
이 상태가 계속가면 저는 공멸할 것 같아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선제 조건은 그 문제 인식의 공유거든요.
문제가 있다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문제 해결은 아예 시작이 안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함께 공유해보자는게 이런 강연의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 MBC 스페셜 : 안철수와 박경철 2 中

 

 

 

 

얼마 전 방영했던 MBC 스페셜에서 안철수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그토록 가슴에 사무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어째서 이렇게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것인가. 역사를 알고 있으니 같은 짓은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오만 때문이다ㅡ.

다나카 요시키의 SF 소설 <일곱 도시 이야기> 속 일곱 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그런 것이야. 권력이라는 녀석은 타인을 합법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 힘이지. 따라서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거고. 

-p.162

 

 

때는 서기 2190년, 지구에서는 지축이 90도 뒤바뀌어 북극과 남극이 적도로 이동하는 '대전도'로 인해 인류의 대부분이 멸망하고 만다.

그러나 달에 머물고 있던, '월면도시'에 머무르고 있던 2백만 명의 남녀는 이 참사에 이어 지구의 다양한 문제들ㅡ인구 과잉, 빈곤층 증대 등ㅡ을 해결하고 이번에야말로 건실한 인류의 역사를 다시 써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구에는 7개의 도시가 건설되었고, 이들로 하여금 월면도시를 넘볼 수 없게끔 지상 500미터 이상을 날아오를 수 없도록 하늘길을 막아버리고 만다.

각 일곱 도시는 나름대로의 지형을 이용해 도시를 발전시켜나가기 시작하고, 필연적으로 권력을 잡아 각 도시는 물론이거니와 군대를 이용해 각 도시를 모두 점령하려는 움직임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각 도시의 괴짜 사령관들, 그들의 지략으로 도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들은 끝내, 그저 정치인들의 도구로서 이용당하고만 있을까?

 

 

 

 

독재자의 망명과 그의 복수에 맞서 격돌하는 「북극해 전선」, 독재자의 지배 아래 적당한 구실로 자신만만하게 쳐들어갔으나 끝내 「폴타 니그레 섬멸전」에서 참패를 하기도 하고, 독재자의 지배에서 벗어나도록(을 핑계로 각 도시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여섯 도시의 동맹국은 「페루 해협 공방전」에서 열세에 놓인 군대에게 밀려나기도 한다. 변두리의 두 도시 역시 「재스모드 전투」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한 번의 패배를 곱씹으며 여섯 도시의 동맹국은 또다시 「부에노스 존데 재공략전」에 돌입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일곱 도시 간의 싸움에서는 침공한 쪽이 반드시 패배하고 있군.

원숭이라 해도 같은 미로를 가면 세 번째에는 바른 출구에 도착한다는데, 공직에 있는 인간들은 그 수준조차 안 되는 것 같아.

-p.196

 

 

 

 

SF 소설, 이라 딱 단정짓기에는 뭔가 많이 아쉽고 부족하다.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판타지와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에서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투 씬과 전략, 그렇게 각 전투에서 영웅이 되어가는 주요 등장 인물들은, 그렇게 각 전투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지만 실은 주변 인물들의 눈총을 받는 소위 '괴짜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는 가시가 담긴 속시원한 한 마디씩을 내뱉으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하다. 게다가 그 뼈 있는 한 마디가 적절한 비유 그리고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는 것도 이들의 매력이다.

읽는 내내, 이런 표현에 감탄하고 신나게 웃어가며 소설을 실컷 즐겼다.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도시 간의 전쟁을 그려내고 있다 보니 이야기의 중심은 그 전투의 묘사로 이어지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상당히 통쾌하다. 예전에도 어디선가 이야기 한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전쟁에는 결코 찬성하지 않지만서도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즐겁다. 각자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 어떤 유리함을 내세워 적군들을 격파해 나가는지, 그 장면 하나 하나가 상당히 세세하게 묘사되어있어 이를 상상하며 소설을 읽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것이 정작 2190년의 미래를 그려내고만은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씁쓸해져 오는 것이다.

 

 

 

 

실은 이런 표현 역시 좋아하지 않지만, 어찌 보면 상당히 '남성적'인 소설이다. 섬세한 감정 묘사나 심리적인 면모를 그려내기보다는, 상당히 직설적인 대화와 전투를 묘사하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굵직굵직하게 미래 지구의 한 단면과 전투, 그리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머리싸움이나 전략은 역시 남자들의 로망에 가깝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역시 나의 편견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이야기, 굉장히 좋아한다.).

 

 

지축이 뒤바뀜으로써 인류는 멸망하고, 살아남은 이들이 새롭게 기반을 다니며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일곱 도시'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실은 이 <일곱 도시 이야기>는 SF 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치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정치인들, 독재자의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우둔한 대중들, 정치인의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는 군대까지.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도 노골적이면서도 우회적으로 권력에 물든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니까.

 

 

 

놈들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은 놈들의 자유야. 하지만 우리들이 거기에 말려들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p.204

 

 

 

 

지구의 지축이 그대로 기울었기 때문에, 일곱 도시가 세워진 지구의 대륙 역시 지금과 상당히 비슷한 형태다. 다만, 불모지였던 사하라 사막이 어느샌가 풍요로운 아열대 기후의 비옥한 토지로 바뀌었다는 식으로 각 대륙의 풍토가 상당히 달라졌는데, 그 와중에도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할지, 단지 귀찮음 때문이었을지.

지금의 유럽 대륙에 해당하는 '뉴 카멜롯' 시는 과거의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의 열강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여전히 유럽 대륙의 '뉴 카멜롯'과 러시아의 '아퀼로니아'는 아웅다웅한다. 패권 싸움의 중심에 모여 있지 않았던 동남아시아의 섬을 근간으로 하는 도시 '산다라'는 이번에도 역시 한쪽 끝에서 다만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중남미에 해당되는 '부에노스 존데'에는 독재자가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데, 이것 역시 남미에서 벌어진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뛰어난 정치가이자 지략가였던 귄터 노르트와 류 웨이가 망명해 살아가고 있는, 고요함이 조금 엿보일 것 같은 도시 '쿤론'은 인도 대륙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 로마인들이 그랬고 서구 열강들이 그러했고 지금의 어느 국가가 그러한 듯한, '역사의 반복'을 또 한 번 그려내며 그 모든 것을 통렬하게 꼬집고 비판하고 있는 다나카 요시키의 <일곱 도시 이야기>.

미래의 지구를 그려내는 SF 소설, 영웅들이 지략을 펼치며 전투를 벌이는 영웅소설, 부패한 권력자를 꼬집고 비판하는 정치소설 등, <일곱 도시 이야기>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어떤 얼굴을 만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또 한 번 새롭게 기반을 다진 도시의 권력자들은 또 다시 부패하고 대중들은 현실을 외면하는 우매한 모습으로 그려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대중 속에 내가 있는 듯한, 비슷한 역사를 반복해나가는 모습이 참 씁쓸하면서도 그 현실을 꼬집는 시니컬하기 짝이 없는 블랙 유머가 통쾌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다양한 색채를 비추어주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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