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와 매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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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의 판타지는 '해리 포터' 그리고 '전민희'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이모가 우연히 선물해 준 해리 포터는, 이미 읽게 된 이상 끝을 보지 않을 수 없었고, 무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마법사의 돌로 시작한 호그와트 탐험은 무려 대학교 1학년, 죽음의 성물이 출간되면서 완결이 된다.

그리고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독서는 그야말로 판타지 범벅이라고 말해도 할 수 없을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책 대여점에 있는 모든 판타지 소설을 독파했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닌데, 그 중심에 바로 '전민희'와 '아룬드 연대기'와 '룬의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친구가 읽던 걸 이어 펼친 책이 바로 <세월의 돌>. 아, 나는 한국 판타지 소설을 이렇듯 치밀하고 촘촘히 짜여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만난 바람에 웬만한 판타지 소설에는 꿈쩍도 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한 작품의 일독에 이은 다독이었지, 온갖 소설들을 이리저리 탐독했던 것은 아니다.







실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역사와 현실에 기반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판타지만큼이나 기반을 다져놓고 그 위에서 빈틈 없이 그 세계를 펼쳐나가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우리의 현실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는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좋다. 그래서, <세월의 돌>의 아룬드 연대기와 게임 테일즈 위버의 근간이자 <룬의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이어 세 번째로 새로운 세계를 가지고 찾아온 전민희 작가님의 신작, <전나무와 매>가 너무 반갑다.

 

 

실은, 지난 연말 단편 중 하나인 「눈의 새」가 네이버캐스트를 통해 공개되었다. MMORPG게임 '아키에이지'의 세계관을 담당하셨다 하더니, 게임의 정식 출시에 앞서 단편 하나, 그리고 그 세계의 출발을 담아낸 단편집 <전나무와 매>가 출간된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지도 않고 앞으로 게임이 시작되어도 그다지 할 것 같지 않은데, 그래서 게임 속 세계가 어떻게 되어있든 그것은 실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한 편 한 편, 우리의 이야기 같으면서도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면 된다.







한 여자가 도주 중 낯선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랜 세월 자식을 보지 못한 에페리움의 왕은 신탁에 따라 가장 낮은 신분의 무희와의 사이에서 드디어 아들을 출산한다. 하지만 질투심에 불타고 있는 왕비 사비나는 그들의 안위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도주 끝에 무희 티나와 왕자 폴리티모스이자 진의 긴 여정이 그려져 있다.

반면, 남쪽에서 그들의 도주가 이루어지는 동안 북쪽 전나무 성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떠난 자로 인해 남아서 지키는 자들이 고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설환조'라 불리는 눈의 새를 잡아 온 키프로사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눈의 새를 가두어 놓은 채 세상 밖으로 떠나고 만다. 로사의 아버지 역시 마법을 공부하기 위해 떠나버렸고, 그렇게 남은 키프로사는 할머니 로지아의 냉대를 받으며 찬밥신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전나무(키프로사)와 매(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ㅡ.







하지만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은 채, <전나무와 매>는 그저 담담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분명, 소년과 소녀의 앞에는 가혹하고 험난한 길이 놓여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이들 사이를 연결하며 게임 속에서 앞으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상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저 단편 한 편 한 편을 음미하는 것도 꽤나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일국의 왕자는 꿈에서 낯선 문에 맞닥뜨리고, 한 성의 영주의 손녀는 찬밥신세이나 언제든지, 어디든지 떠날 수 있다는 듯 채비를 하고 성큼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세계의 출발점에 놓인 이들의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상당히 인간적이며 우리의 역사 속 어딘가 만날 수 있을 법하다.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이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등 신화적 인물의 비범함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들은 '용기'를 안고 첫 걸음을 내딛는다. 그 '용기'에서 비롯된 세계의 시작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실은 상당히 신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게임을 즐기고 싶은 이에게는 게임의 탄탄한 세계관을 통해 다음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그저 판타지로 소설을 즐기고 싶은 이에게는 여운이 남는 '전나무'와 '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앞날을 상상해 보는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그들의 모험을 상상해 본다.

 

하나의 단편으로 <전나무와 매>이자 게임 아키에이지 속 세계를 느껴보고 싶다면, 「눈의 새」가 공개되어 있으니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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