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간에게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이라는 오감, 그리고 '어떤 무언가'를 감지하는 직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시각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시각을 이용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며, 하다못해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에도 앞을 보지 못해 잠깐의 옅은 빛이라도 이용하려 핸드폰을 들고 살금살금.

 

암흑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그래서이다. 시각을 잃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주변에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위협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충분조건이다.

공포영화에서는 왜 어둠 속에서 으스스한 소리만 들리게 하는 것인가. '안보이면 무서우니까',라는 것이다.




독일 심리 스릴러 소설계의 신동(그런데 왜 신동인지 의문,ㅋㅋ)으로 평가받는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사라진 소녀들>에서 시각의 상실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를 그려내고 있다.

 

어느 평화로운 여름날,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가 그네에 앉아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살그머니 다가온 낯선 그림자의 기척은, 소녀를 흔적도 없이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10년 뒤, 또 한 명의 시각장애인 소녀 사라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녀의 흔적을 쫓아 관련 사건을 찾아보던 형사 프란치스카는, 10년 전 비슷한 사건을 발견하고 실종된 소녀의 가족이자 헤비급 유럽 챔피언 복싱 선수인 막스 웅게마흐를 찾아간다. 막스는 프란치스카에게 동생을 잃어버린 과거와 심경을 털어놓고, 경찰과는 별개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납치된 소녀 사라와 납치한 범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가며 사라의 공포는 더더욱 커져만 간다. 프란치스카와 막스는 사라를 구해낼 수 있을까?





독일,이라 하면 역시 아무래도 스릴러보다는 고전 문학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 독일 스릴러? 하고 의구심이 생겼는데 작년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서 시작된 유럽발 스릴러 열풍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직 만나보지 못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압도한 심리 스릴러라는 <사라진 소녀들>로, 독일 스릴러와 첫 만남을 가졌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범인의 시점은 당연하다는 듯이 물망에 오른 용의자를 찾아가는 프란치스카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독자는 범인이 이 사람일까? 하고 의심하는 일은 없다.

앞서 <658, 우연히>에서 이야기했듯 범인은 언제나 그렇게 뻔히 보이는 사람 대신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이 하나의 패턴이자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계속적인 반복은 어느샌가 공식으로 자리잡는 법이다. 덕분에 조금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또 아예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고 있느냐, 또 그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패턴은 범인의 정체에 대해 의외성을 안겨주지 않는다.

 

그 의외성은 조금 아쉬울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납치된 소녀 '사라'가 아닌 10년 전에 납치되었던 막스의 동생 지나의 이야기 속에서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오빠의 고뇌라거나, 그로 인해 망가져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나, 소설의 초반 사라에게 다가온 낯선 그림자나 끌려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지나의 이야기는 상당히 오싹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밤에 침대에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거렸으니까.





주인공들의 사연이나 적당한 때에 딱 전개되는 장면 덕분에 실은 굉장히 잘 짜여진 스토리라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필요한 시점에서 딱 나타나는 전개는 좀 뻔하게 느껴져 도중도중에 허를 탁 하고 찔러주는 것이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러고 보니 허를 찌르는 부분이 있긴 했다. 그 때는 나도 모르게 아!하고 말았으니. 그러나 한 번에 그치고 만 것 같아 좀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녀가 범인에게 납치당한 뒤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작가는 상세한 잔인함과 끔찍함을 그려내는 대신,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소녀가 '정체 모를 무엇'ㅡ이라고 하지만 소녀는 시각이 아닌 예리한 다른 감각으로 대강 알아채지만ㅡ에 의해 공포를 떨듯 독자들에게 역시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여전히 '어둠'을 테마로 그 공포를 자극하기를 멈추지를 않는데, 지하실의 어둠 속에 거미와 함께 있다거나, 닫힌 방에 치명적인 동물과의 대치를 그려내는 등, 아마 나처럼 거미를 비롯해 벌레 등등을 싫어하시는 분에게는 그마저도 함께 공포심을 자극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어둠 그리고 곤충으로 좁혀들어오는 공포에 좀 무서웠다. 하필 읽는 도중에 주변에서는 또 모기가 날아다니며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으니 나에게는 제대로 먹힌 셈이다.

 

덕분에 독일 스릴러와의 첫 만남은 썩 만족스럽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과 함께 독일에서 시작된 스릴러의 열풍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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