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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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별로, 문화별로 '공포의 대상'은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음란물 비디오-_-;가 아니고 목숨을 위협하던 바로 그 호환마마와 같은 전염병이나 산에서 슬그머니 내려와 생계를 위협하는 호랑이 같은 포식자 그리고 어디에나 있었을 탐관오리들,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바다 건너 왜구와 대륙의 오랑캐 등등이 현실적인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을 옆에 두고 '옛날 옛날에~'라고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도 공포의 대상은 존재해왔다. 가끔은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일단은 도깨비, 구미호와 같은 요괴가 대표적이고 한(恨)을 품고 죽은 수많은 귀신들이 바로 그들이다. 꼭 무덤을 뚫고 튀어나온 좀비일지 귀신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내 다리 내놔~'라며 살아있는 이들을 위협하고, 몇백년인지 몇천년인지를 묵은 구미호는 꼭 젊은 남자들의 간을 빼먹고선 사람의 탈을 쓰고 또 다시 사냥감을 노리곤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공포'에 대한 정서는 이랬던 것이다.

 

죽은 이에 대한 공포는 역시 한 사람이 죽고나서 주변 인물들은 고인(故人)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구미호는 우리나라에만 있다손 치더라도 죽은 이의 혼령의 등장으로 살아있는 이들로 하여금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이야기는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보편적이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다른 이들은 지레 공포에 휩싸이는 경우도 있고,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타격을 입힘으로써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 그들은 '귀신' 혹은 '유령'으로 일컬어진다. 이들을 테마로 영국에서는 고딕 소설(Gothic Novel)이라는, 고성을 배경으로 호러와 로맨스를 그려낸 장르가 유행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고성(古城)에서 벌어지는 으스스한 이야기는 수많은 공포 영화의 주요한 테마가 되어왔다. 그 곳을 맴도는 존재는 유령일까? 그들은 어째서 그곳을 맴도는 것이고, 성에 거주하는 이들은 어째서 두려움에 떨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한 여성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남매의 가정교사로 저택을 방문한다. 사랑스러운 소년소녀들은 티없는 순수함으로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는 영국의 저택에서, 가정교사는 유령을 맞닥뜨리게 된다!

저택의 집안일에 총책임을 맡고 있는 그로스 부인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묘사한 유령들은 예전에 저택에 머물렀던 하인 피터 퀸트와 그녀의 전임자였던 가정교사 제슬 양으로 추정된다. 유령으로부터 제자를 지켜내야겠다는 결심을 한 그녀는 필사적으로 아이들이 유령과 마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은 더욱 수상쩍기만 하다ㅡ.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고딕 소설의 보편적인 배경을 끌어오면서도 '독자의 사고마저 조종하는 교묘한 서술 기법(뒷표지)'으로 쓰여진 소설이란다.

교묘하고 천재적 '의식의 흐름' 기법의 원형을 만들어냄으로써 19세기 이후 영미권 작가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데, 솔직히 책의 처음 작가 서문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그러한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절대적 악행이란 없었다.

그것은 수십 가지 다른 요소들에 따라 달라지며, 인식과 성찰과 상상력의 문제이다.

더욱이 이런 것들은 정확히 말해서 구경꾼, 비평가, 독자의 경험에 비추어 달라진다.

"오로지 악에 대한 독자의 전반적 환상을 강렬하게 만들어라."

-p.19, 작가 서문

 

작가 서문에서 '독자 스스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공포를 만들어내'도록 의도한 채 쓰여진 이야기라고 헨리 제임스 스스로가 선전포고를 했다. 어디 한 번 두고보자, 아니기만 해 봐라 하고 괜히 혼자 도전적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가정교사의 의식과 그녀가 인식하는 유령의 존재. 유령이 뭐예요?라고 너무나도 해맑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웃음짓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그들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질 않나, 서술자인 '가정교사'의 의식은 공포와 혼란 속에 빠지면서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이 공포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처음 '유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듯 탑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던 한 남자의 모습과, 그 다음에 창밖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던 유령의 존재는 어찌나 섬뜩했는지!

 

하지만 그렇다한들 '고전적인' 공포 소설로서 수많은 작품들의 영감이 되어준 덕분에 분위기는 낯설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호함'이 도대체 무엇인지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당췌 알 수가 없었다.

유령이 있고 그 존재를 가정교사가 눈치를 챘는데, 그녀의 제자들 역시 그 유령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유령을 알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한테 들키면 안되기 때문에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선생님은 유령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지켜보고 있다. 선생님의 눈길을 돌려 그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 그 갈등에서 모호함이란 어디에 있는 걸까?

 

가정교사의 '의식의 흐름'을 함께 따라가면서 영국 시골의 한적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유령 소동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 분위기는 분명 모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헨리 제임스가 그리고 있는 밝은 듯 으스스하고 유령이 있는듯 없는듯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정말 유령을 보고 있는 걸까?', '가정교사는 정말 유령을 보고 있는 것일까?', '유령은 정말 저택 안에서 존재하고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을법도 하건만, 나는 이미 그녀의 생각에 완전히 공감하고 몰입해버려 이런 모호함은 단 한 순간도 눈치채질 못했다.

그저 보여주기만 한 채 모호함을 그려내고 있다니, 내가 보기엔 그저 명백하기만 했던 것다. '유령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단서만 달고 있다면 유령의 존재를 눈치챈 가정교사의 공포심과 그 유령의 '악(惡)'에 제자들을 노출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필사의 노력일 뿐이었다. 오로지 작가가 그려낸 현실의 표면만을 그대로 받아들인 나로서는 멋드러진 저택을 배경으로 한 완벽한 유령 이야기로만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아하, 이런 식으로 비슷한 배경의 영화나 소설의 바탕이 된 것이구나ㅡ하고.

 

그리고 비로소, 책의 마지막 '해설'을 읽고서야 그렇게 이야기하던 모호함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나사의 회전》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과연 유령이 실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퀸트와 제슬의 유령이 정말 아이들에게 나타났는가, 아니면 가정교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가?

(중략)

어느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해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며, 상반되는 두 해석은 양립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p.239, 해설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 모호함의 미학

 

그렇다. 헨리 제임스는 모호한 서술을 통해 유령이 가정교사 앞에서만 나타난다는 점, 다른 이들은 유령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유령이 가정교사의 의식 혹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해석, 혹은 실제 유령의 존재를 그녀만이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과 같이 전혀 다른 면모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가 선택한 문장 속에서는 결코 유령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확실치 않았다! 

 

그렇다한들 앞서 얘기했듯 나로서는 작가가 노렸을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서술로 그녀의 이야기에 의심을 품게 할 만한 점을 전혀 눈치채질 못했다. 오히려 완벽하게 그녀의 의식에 동조하여 함께 그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다.

가정교사가 본 적도 없지만 예전에 머물렀던 저택의 고용인들과 상당히 흡사한 용모를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의 행동이 그저 가정교사의 시선 속에서 '뚜렷하게' 수상쩍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녀와 '공포 체험'을 함께 했던 것이다. 작가의 의도, 그 '모호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즐거웠다.

 

현재의 정서로서는 이 <나사의 회전>이 그려내는 공포는 그다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 속 이야기에 몰입하며 으스스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이는 공포영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아 많은 '무서운 이야기'에 질색을 하는 나로서는 딱 맞는 분위기의 '공포 소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읽는다면, 분명 이번처럼 가정교사에게 동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호함'을 알아차리고 말았으니. 하지만 그렇게 또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이야기를 만나보는 것도 상당히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헨리 제임스가 이 이야기에 왜 <나사의 회전>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리질 않았다. 물론 굳이 해석을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으나 제목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의미가 있긴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나사의 회전'인 것일까?

그럼에도 작가 스스로가 '의도한 바'를 명백하게 밝히고 그 의도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도록 쓰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도'가 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였던 '모호함'과 '의식의 흐름'으로 나타난 것처럼, 소설의 방향이 모호함을 '나사의 회전'에 빗댄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 본다. 상당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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