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 다른 사람의 시선과 눈치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할 용기.

그런 순간, 나는 과연 어떨까? 그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벌린 카우치는 평생을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라는 생각에 순응하고 남들의 눈치만을 보며 살아온 중년의 여성이다. 자기를 무시하는 남편과의 생활, 그리고 매 주 일요일 시어머니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요양원을 '마지못해' 방문하는 것은 그녀에게는 고역일 뿐이다. 재빨리 자리를 피해 방문객 휴게실로 향한 에벌린은 만나자마자 대뜸 이야기를 풀어놓는 노부인을 만난다. 자신을 스레드굿이라 소개한 노부인의 이야기는 우울한 일상의 위로라고는 달콤한 사탕과 초콜릿뿐이었던 에벌린에게 새로운 활력이 되어준다.

스레드굿 부인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앨라배마 주 휘슬스톱 카페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쾌하고 다정했던 스레드굿 가(家)의 사람들, 정의롭고 거침없으며 한없이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던 이지 스레드굿, 그녀가 사랑했던 여자 루스 제이미슨, 그리고 그들과 함께 휘슬스톱 카페를 지켰던 십시와 빅 조지와 온젤까지...

그들의 거침없고 다정하고 따뜻했던 삶은 에벌린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리고 에벌린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ㅡ.

 

증오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사랑 때문에 죽이는 편이 낫지 않아요?

-p.119, 이지가 루스에게

 

스레드굿가의 충만했던 삶, 이별, 사랑을 중심으로 '니니'가 에벌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상당히 아름답고 따스하다. 1920년대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소드가 어떨 땐 이지와 루스의 첫 만남으로, 어떨 땐 둘이서 운영하고 있는 휘슬스톱 카페의 에피소드로 혹은 이리저리 마을의 소식을 들려주는 휘슬스톱 주간 소식지 《윔스 통신》의 발행인이자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닷 윔스의 이야기로, 이리저리 날짜와는 상관없는 듯 신문을 늘어놓은 듯 펼쳐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모두, 편견에 맞서 거침없이 살아갔던 두 여자와 그들이 운영하던 휘슬스톱 카페의 온기와 그들만의 특별 메뉴였던 '풋토마토 튀김'으로 상처를 위로받던 이들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떠돌던 이들을 말 없이 받아주고, 흑인이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은 커녕 그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과는 상관없이 흑인들에게도 '공평하게' 음식을 판다거나, 팔을 잃었지만 그 아픔을 나름대로 극복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루스의 아들 '스텀프' 스레드굿과 이지의 우정 등, 휘슬스톱의 작은 마을에는 온정이 넘쳐난다. 스레드굿 가의 삶과 이별 그리고 사랑의 기록을 미국 남부의 마을 풍경과 함께 글 위로 옮겨놓은 것이다.

 

덕분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상당히 미국적인 소설이다.

이지와 루스가 운영했던 휘슬스톱 카페가 서 있는 곳은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州)에 위치한 마을이다. 어째서 하필이면 앨라배마 주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그리고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작가인 패니 플래그의 고향이 바로 앨라배마 주 버밍햄이라고.

실제로 앨라배마 주는 전형적으로 목화를 재배하는 곳이었고, 짐작할 수 있듯 많은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와 플랜테이션으로 이들을 재배하고 또 그대로 그 곳에 정착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과거 인종차별주의 단체였던 KKK단의 본부 및 활동지가 바로 앨라배마 주였다는데,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에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차별 문제가 남아있다고 한다.

 

덕분에 작가가 살아왔던 곳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가기에 상당히 적절한 배경이 되어주었고 미국에서 가장 극심했을 '인종'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휘슬스톱 옆의 흑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 트라우트빌의 모습이나 휘슬스톱을 지나는 기차에서 흑인들을 위해 식량과 생필품을 던져주는 '범죄자'의 존재, 휘슬스톱 카페를 찾아오는 흑인들과 그들에게도 역시 공평하게 음식을 제공하는 이지라던가. 덕분에 휘슬스톱 카페에는 KKK단의 위협을 받기도, 흑인에게 음식을 판다는 이유로 혐오감을 내비치는 손님을 만난 적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니니'의 이야기 속 이지는 편견으로 가득찬 세상을 루스와 함께 거침없이, 하지만 자유분방하면서도 다정하게 맞서며 살아갔다. 팔이 없는 것에 처음으로 의기소침해진 스텀프를 위로하는 이지만의 방법이라거나, 사랑하지만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루스의 고통을 끝내 견뎌내지 못한 채 함께 맞서 싸웠던 일, 실종된 루스의 전 남편에 대한 행방에 대한 의심을 함께 떨쳐내는 마을 사람들의 활약 등은 마치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놀랍기도 하다.

당당함과 용기를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왔던 그녀의 삶이, 에벌린으로 하여금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자 마음먹게 했다. 그리고, 남들의 눈치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왔던 에벌린이 맞이한 새로운 삶은, 놀라운 변화를 맞게 된다ㅡ.

 

그리고 여전히 휘슬스톱 카페의 특선 메뉴 '풋토마토 튀김'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위로가 되어줄지도...

 

 

* 앨라배마 주 관련 정보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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