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팻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 표창원 감수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주홍색 연구』에서 홈즈는 왓슨과 악수를 한 번 한 뒤, 왓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는 것을 순식간에 눈치채 버린다.

영국 드라마 <셜록>은 21세기를 배경으로 새로운 홈즈와 왓슨 콤비를 탄생시켰는데, 드라마를 보면 실제 셜록 홈즈 시리즈를 패러디한 대사가 상당히 많아 보는 즐거움을 쏠쏠하게 제공한다. 잠깐 서서 나눈 대화와 존이 빌려준 스마트폰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것에서부터 룸메이트가 될 테니 집을 같이 보러다니자ㅡ라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드라마 속 셜록은 '추리의 과학(the science of deduction)'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까다로운 범죄에 대해 자문을 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셜록 이야기를 한 이유는, '프로파일러'의 역할에 대해 팻 브라운은 조금은 다르고 오히려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고, 나에게는 그 면모가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 속 셜록이 이야기하는 '추리의 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현실은 탐정이 사건현장을 휘저으며 단서를 수집해 '이러이러해서 범인은 ㅇㅇ이야!'라고 외치는 상황은, 절대 말이 되지 않는다.

형사를 비롯해 관련 전문가 팀들이 모여 협력을 이루며 단서를 모아 이 단서들을 바탕으로 추리를 해 범인의 윤곽을 잡아내는 것이다. 물론 전과가 있는 용의자가 떠오르는 경우, 그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지문이 등록되어 있으니 지문이라도 남았다간 웬만큼은 붙잡힌다고 보는게 맞다. 누명을 씌우기 위해 일부로 지문을 묻혀놨다.. 그런 건 넘어가기로 하자.

 

하지만 이런 수사 기법은 대부분 일반적인 법이고, 수많은 범죄 중에서도 연쇄살인의 경우에는 그러한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리하여 투입되는 것이 프로파일러로, 용의자의 성격이나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해 도주 경로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마음만큼 어려운 것도 없는지라, 범행 현장에 남아있는 단서만으로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대신 '심리학'이 포함되는 이상 불확실성 역시 존재하기에 논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파일러는 그러면, 철저하게 범죄심리학을 공부한 끝에 연쇄살인범의 심리를 파악하고 범행 현장에 남겨진 살인범의 흔적을 바탕으로 '범인은 이러이러하게 생긴 이러이러한 성격의 살인범이야!'라고 단언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러한 환상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FBI 소속이 아닌 민간 프로파일러가 된 팻 브라운은 단호히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프로파일러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팻 브라운은 왜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프로파일러가 되기로 결심했을까?

<프로파일러>에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로서 생활하던 팻 브라운이 어째서 프로파일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프로파일러로서 의뢰를 받은 사건에 대한 분석, 해결된 사건이든 미해결 사건이든 그녀가 생각하는 사건의 진실과 잡히지 않은 진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정말 그야말로 평범하디 평범한, 주부로서는 완벽한 삶을 살아가던 팻 브라운은 어느 날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녀는 그 전부터, 자신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던 한 하숙인이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평소의 행동과 언변이 수상쩍었기 때문인데, 함부로 남을 의심해서는 안 되는 법인지라 그냥 넘어가려고 하던 찰나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를 하숙인의 방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이미 또 다른 남학생의 자살로 범인은 자살한 남학생이다, 라고 결론은 내려진 상태.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경찰서에 찾아가지만, 경찰들은 웬 할 일 없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리고 그녀의 의견을 묵살해 버린다. 남편 역시 쓸데없는 상상이라며 그 하숙인을 쫓아낸 것에 분개한다.

 

그 현실에 좌절감과 분노를 느낀 그녀는, 혼자서 프로파일링에 관한 지식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끝내 민간 프로파일러가 된다. 그리하여 지금 그녀는, 흉악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자문을 구하고 언론에서도 앞다투어 그녀의 의견을 묻는 '전문가'가 되었다.

 

그런 그녀의 삶과 함께 미결로 처리된 사건에 대한 의뢰 몇 건을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이 연쇄살인으로 당시 경찰들이 내린 결론과 가설과는 다른 측면으로 사건을 분석한 것.

그 결론은 대부분이 일반적인 원한 관계에 의한 살인이리라 짐작한 가설과는 달리 '연쇄살인마'의 그늘이 드리워있는 사건들이 오싹하게 다가왔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서 순진한 소녀가 도살된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명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을 경우에는 항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나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입을 열었을 때는 그것에 관해 잊어버리라는 말을 했다.

한 여자가 숲속에서 살해됐는데도 아무도 떠들어대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살인사건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p.89

 

정의감으로 뭉친 이 아주머니는 그렇게 연쇄살인에 대한 통찰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각 주(州)의 관할서 사이에서의 원활하지 못한 정보 교환이라거나 너무 많은 사건과 업무량으로 인해 하나의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여건조차 되지 않는 미국의 사건 수사 기반에 대해서 비판한다. 또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압력 등이 가해졌던 사례를 들며 정치와 사법 시스템이 결코 유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역시 그녀의 정의(正義).

 

경찰에서 내린 결론에 대한 반박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팻 브라운의 결론 역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실제 사건이 벌어진 상황이 실제로 가능한 일일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실험 그리고 단서에 대한 추적을 통해 '연역적으로 추리'를 하면서 내린 결론과 일에 쫓겨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 볼 틈도 없이 수사를 종결시키며 내린 결론 중,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고 정확하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방치된 사이코패스가 어디선가 먹이를 노리고 있다면?

 

연쇄살인범과 사이코패스를 추적하며 지낸 팻 브라운의 인생,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바라는 정의가 실현 되는 것도 기쁜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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