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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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엔도 마유미는 툭하면 히스테리를 부리며 날뛰는 딸 아야카를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어린 시절만 해도 가족은 행복했다.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꿈의 집을 지을 것을 상상하던 중, 히바리가오카에 집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때부터 마유미는 히바리가오카에서의 생활을 상상하며 행복해했고, 딸 아야카 역시 근처의 사립여학교를 다니며 올바르고 예쁘게 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 사립 중학교 시험에서 떨어져 공립학교에 다니며 아야카는 마유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집에서 소리치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날뛴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저 수수방관하기만 하는 남편 게이스케까지. 엔도 가족의 모습이다.

 

반면, 아야카의 히스테리에 한 몫하는 가족이 있었으니, 바로 맞은 편 이웃집의 다카하시 가족이다.

누가 봐도 그림처럼 행복할 것만 같은 가족. 의사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의대생 큰아들, 그리고 유명한 사립고에 다니는 딸과 어머니를 빼닮은데다 역시, 유명 사립중에 다니는 막내 아들까지. 이웃들이 봐도 흐뭇해지는 광경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이다. 하지만 7월 4일 저녁, 이 그림 같은 집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어머니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고 연행되지만, 마침 밖에 나왔다 편의점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막내아들 신지의 행적과 신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마유미는 의심이 증폭된다. 과연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미나토 가나에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일상적인 곳을 무대로 내세워 분명 어딘가에 조용하게 숨죽이고 있을 어떤 인물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것은 분명, 그 인물이 가만히 있었듯 내 마음 속 어딘가에 평소에는 억누르고 있는 '나약함'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다만, <고백> 속에서 벌어진 비극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사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에 더 가까웠다면, <야행관람차>에서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한 번쯤은 동경을 품을 법한 아름다운 거리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아름다운 거리에 살고 있는 이웃들을 모두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그들 모두에게 공감하게 된다. 분쟁을 피하고 싶어 갈등 뒤에 물러서 있는 게이스케나 자신에게 쏟아진 과한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신지, 혹은 아무리 히스테리를 부려도 묵묵히 참는 어머니가 답답하기만 한 아야카, 그리고 거리에 벌어지는 일들에 이리저리 찔러보고 참견하고 다니는 고지마 사토코의 모습까지 말이다. 내 안에 있는 그들의 모습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언덕길 병."

아야카가 불쑥 중얼거렸다.

"평범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이상한 곳에서 무리해서 살면 점점 발밑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끼게 돼.

힘껏 버티지 않으면 굴러 떨어지고 말아. 하지만 그렇게 의식하면 할수록 언덕의 경사는 점점 가팔라져......"

-p.314

 

'내 안에 숨어있는 나약함'에서 이끌어낸 공감만이 아니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이라던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 교육에 전념하는 부모님의 모습과 같은 곳에서는 분명 일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모습 역시 너무나도 닮아있어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언덕길 병'이라고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 아야카의 말, 그리고 잠깐이나마 공부에서 벗어나 쉬고 싶었던 신지의 마음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외모에는 눈길도 주지 않다 '의대생'이라는 말 한 마디에 자신을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이 바뀌어버리는 것 역시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웃간의 교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웃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도 자신의 눈과 귀를 막고 모르는 척 해 버린다. 그리고는 호기심에 이리저리 쑤시고 다닌다. 혹은 다른 가족의 불행을 발판 삼아 우리 가족이 빠져있던 진흙탕에서 발을 빼내려고도 한다. 그 모든 것을 근친 살인을 소재로 한 가족 소설 형태로 그려낸 미나토 가나에.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350페이지라는, 요즘 출간되는 책을 생각하면 두껍다면 두껍고 얇다면 얇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지만, 눈을 떼지 않고 한 번에 책을 읽어버리는 일이 드문 나임에도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야행관람차>. 2009년 처음으로 국내에 <고백>으로 소개된 이후 그녀의 작품은 상당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 <속죄>, <소녀>와 같은 다음 작품들 역시 국내에 속속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고백>만 못하다,라는 아쉬움을 남기게 했다.

하지만 조심스레 예상해보건대 이 <야행관람차>로 다시 <고백> 때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이야기 구조와 서술 형식의 반복,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도 반전을 만들 수 있다'라고 데뷔작에서 놀라움을 안겨준 만큼, 이것은 그녀만의 스타일이리라 믿어보고 싶다. 다음 그녀의 작품은 만족과 실망 중 어느 것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고 말이다.

 

진상은 단 하나. 애도할 상대도, 책망할 상대도, 위로할 상대도 전부 가족이라는 사실. 그뿐이다.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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