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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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들어오는 식물들은 이상하게(나는 우리집이 도로변이기 때문이라고 우겨보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내 곁을 떠난다. 그래서인지 식물에 대해 미안함을 좀 가진 편이고 식집사들을 무조건적으로 리스펙한다. 그리고 식물에 대한 책도 좋아한다. 특히 호프 자런의 <랩 걸>을 보며 그림을 그린 신혜우 저자님도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 저자님의 이전 책들 <식물학자의 노트>를 즐겁게 읽었다.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출간한 다음 해에는 강연도 zoom으로 들은 적 있다. 그리고 이번에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가 나왔다.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메릴랜드에 눈이 내렸을 때 저자님이 만들었다는 스노우엘리(집주인 할머니네 개 이름이 엘리다)도 어떤 모양인지 떠올릴 수 있었고, 자원봉사로 농사 짓는 에피소드가 나올 때도 흙속 미생물이 죽을까봐 1950년대에 나온 가볍고 작은 트랙터만 이용할 수 있다는 예전에 담배 농사짓던 땅도 떠올라서 반가웠다.

저자의 식물학자라는 직업 하나 만으로도 굉장히 바쁠 것 같지만 누군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여행자라고 답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찾아 여행하는 분이니까. 또 자원봉사로 주말에 친환경 농사짓는 파머이기도 하다. 심지어 영국왕립협회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한국인 최초 금메달과 최고 전시상을 수상했고 또 올해에는 과학적인 식물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질 스미시스’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을 분이시기도 하다. 이렇게 24시간을 풀로 쓸 것만 같은 다재다능한 저자의 이 책은 ‘아트’ 그 자체다. 꽃 그림이니까 예쁘겠지, 평범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장마저 아름답다. “눈이 비가 되면 나뭇가지에 새싹이 틉니다”(p.5)라고 시작하는 프롤로그 첫문장을 읽어본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는 시간 조차 나뭇가지의 새싹을 향해 있는 문장이다. 홀딱 반하며 읽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메릴랜드의 4계절 12달이 들어있다. 내가 사는 곳은 온대기후의 서울이지만 나는 숲에 갈 때 이 책을 들구 갈 것을 다짐한다. 말못하는 나무들과 인사하기만 해도 더없이 좋겠지만 이 책을 더하면 내가 식물들을 보며 느끼는,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언어를 더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꽃집에서 꽃을 사서 그리길 꺼린다. 원예품종은 야생식물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식물학자에게 식물종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난초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발되는 품종과 사람들의 열렬한 난초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꽃을 사랑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p.45) 예쁜 꽃은 가게에서 멍때리고 보던 내가 보였던 구절이다. 비닐하우스 속 식물이 화려하더라도 거친 바람과 강렬한 햇빛, 그리고 다시 땅으로 묻어버릴 것만 같은 강한 비를 버텨내고 피워내는 야생식물들을 더욱 응원하게 된다.

서양배에 대한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떫은 서양배에 질린 저자는 알고보니 후숙해서 먹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배의 씨앗을 둘러싼 그 신부분을 석세포라고 부르고 이것은 리그닌이 축적되고 단단한 세포벽이 발달한 죽은세포라는 것이 더 쑈킹했다. ”열매가 자라날 때 수분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로 많은 석세포가 생긴다.(p.50)“는 지식은 덤으로 생긴다.

또 4년 만에 난초 곰팡이를 냉동고에서 꺼냈는데 살아있음을 보고 기뻐하며
”누군가 이어서 발전시킬 것이다. 완전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모든 과학이 그렇게 축적되어 온 것처럼“(p.204)이라는 과학의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을 쓴 부분도 마음에 남았다. 뭔가 과학자들만의 바톤터치가 상상 속에 그려졌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우산에서 내보내서 내리는 비도 맞아봐야 하듯 저자도 자연에서 강하게 크는 식물들을 응원하는 책이다. 브로콜리의 꽃을 보려고 몇 번을 물꽂이 하던 저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식집사들을 포함해서 꽃을 좋아하고 나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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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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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25.4.10.) 몇 명의 정치인들이 오는 6월 3일에 있을 21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있다. “제가 만들 대한 대한민국은 이러저러합니다!”라고 외치며 동시에 괴물정권 탄생을 막겠다고 또 지난 3년간의 정부가 방치해 둔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겠다며 출마하는 실정이다. 이 뉴스를 보다 보니 대통령 후보들이 만들겠다는 나라 말고, 진정 내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진다. 좀 안싸웠으면 좋겠다. 정당들은 정책을 세울 때 서로 좋은 안건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국가가 위험할 땐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질적인 지역감정이나, 젠더와 세대로 잘게 파편화되고 고립된 국민들을 화해시켜주었으면 좋겠다. 쓰고보니 이상적이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나 역시 구체화하기 힘든 막연한 나라를 상상하고 있었구나 싶다. 그러던 중 이 책, <김대중의 국정 노트>를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원하는 나라로 실현해줄 대통령의 역량이 무엇인지 자명해진다.

부제로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을 단 이 책은 2000~2002년 청와대 출입 기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을 가까이 지켜본 박찬수 저자가 김대중 탄생 100주년인 2024년에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22년 만에 공개되는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27권의 DJ 친필 메모를 사진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다. 사실 국어보다 한문이 더 많아 이를 해석하는데 시간 꽤 보냈을 저자의 노고가 느껴짐과 동시에 꼼꼼하게 메모하고 이를 토대로 국정운영을 해나갔던 DJ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 시절의 일들이 어제인 것처럼 떠오른다. 대선 4수 만에 대통령이 되었으나 전 대통령 시절에 벌어졌던 IMF를 수습하는 DJ, 감옥에 있었던 시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정독하고 이후 손정의와 빌게이츠를 만나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한 일, 문화란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생각대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으나 스크린 쿼터제는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그. 언론개혁,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생산적 복지, 정치적으로 화합을 위해 야당총재와의 여덟 번의 영수회담, 햇볕정책을 펴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등이 그렇다. 그의 행보는 오늘날의 K-wave의 위상을 떨치는 문화강대국으로서의 면모와 IT강국의 발판이 되었다. 또 정치적으로는 야당과 화해하려 했고, 위로부터의 부정부패를 여, 야당 상관없이 제거하려 애썼고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전쟁이라는 남북의 위험요소를 없애려 노력한 리더였다.

“진보와 보수는 지향과 가치가 다르지만, 국정 운영 방식과 목표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새롭게 시작되는 정책은 없다. 이전 정권 정책을 모조리 부정만 할 게 아니라, 좋은 건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은 메우면서 필요한 곳에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임기 중에 가시적 정책 성과를 낼 수 있다.(...) 5년 임기의 대부분을 전 정권 정책을 부정하고 시행착오만 거듭하며 보내는 대통령들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pp.33-34) 이 부분을 읽으며 정당의 존립을 위해 그들의 지침대로 꼭두각시처럼 행동할 정치인이 아닌, 잘한 것은 치하하고 모자란 것은 덧댈줄 아는 그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소통방식도 인상깊었다. “DJ는 절대 자기 생각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외부 인사가) 의견을 말하면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받아 적는다. 그러고는 배석한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곤 다시 나한테 물어본다. 그런 식으로 참석자들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에 마지막에 자기 생각을 반드시 밝힌다.”(p.55) 이 부분은 나중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 빛을 발한다.
“전체 대화 중에 70%는 김 위원장이 말을 하고, 내가 30% 정도 이야기를 했을 거다. 내가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유는 회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판단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좋은 합의문이 나올 수 있었다”(p.283) 경청이 DJ의 특별한 정치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뭐니뭐니해도 자신을 몇 번을 죽음으로 몰아간 박정희기념관의 건립을 허락했다는 부분에서 DJ는 용서와 타협의 정치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지 않았을까? 박대통령이 이뤄낸 경제적 근대화를 부인하지 않고 인정한 DJ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졌다. 훌륭한 학벌을 바탕으로 리더십있고 능력있는,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사람 말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삼권분립과 의회 민주주의를 존중하며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배째라 야당으로 나온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연대할 의지가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여기에 기후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더욱 좋겠다.
다가오는 6월 3일,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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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의 소문 - 변하리 유니버스 푸른숲 어린이 문학 47
제성은 지음, 주성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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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터러시 동화시리즈
변하리 유니버스, 두 번째 이야기 <최애의 소문>

하리라는 이름은 주인공의 아우라를 품은걸까? 신비아파트의 구하리에 이어 ‘변하리 유니버스’ 세계관에서는 변하리가 주인공이다. 이 책에는 1편이라고 할 수 있는 <언니 폰좀비 만들기>의 가족이 그대로 등장한다. 하리보다 부끄러움이 많은 연년생 언니, 5학년 변주리가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현실에서보다 SNS의 친구가 많이 생기는 과정에서의 사건을 그렸다. 동생 하리가 그런 언니를 한심하게 보기도 하고(물론 하리는 스마트폰이 없기에 가능했던 일) 자신이 스마트폰을 갖기 위해 언니를 폰좀비로 만들려 애쓰기도 하는 재미있는 전편의 책이다. 마지막에 언니를 위해 큰 활약을 했던 하리는 엄마가 파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주면서 끝난다. <최애의 소문>은 하리가 비프롬씨라는 아이돌 그룹 멤버 유민에게 입덕하고 스마트폰으로 팬 활동을 하면서 시작한다. 탈덕헬퍼라는 사이버 레커의 유투브를 통해 퍼지는 아이돌 유민의 안좋은 소문들을 하리가 접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란 교통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빠른 속도로 몰려드는 견인차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루머를 퍼뜨려 조회 수를 늘리고 구독자수를 모으는 유투버등을 일컫는 단어라고 한다. 하리와 주리, 그리고 주리의 친구는 짤들이 편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서서히 진실에 다가간다.

“나는 며칠 동안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3일, 즉 72시간이 아주 긴 시간이라는 것을, 엄청나게 많은 소문의 소문의 소문이 퍼질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pp.134)

요즘 어떤 연예인의 소문이 끊임없이 확산되는 중이다. 검색창만 열어도 대문짝만하게 관련 게시글이 떠 있다. 보고싶지 않은데도 계속해서 소비하도록 만들어놓은 이 시스템도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문이 퍼지는 정도에 비하면 진실을 바로잡는 데 쏟는 관심은 별로 없어 보였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이 밝혀져 몰락하길 기다리는 일보다 덜 흥미진진해서일까?”(p.135)

이 책을 읽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기싶은 부분이다. 아니 어른에게도 유효해보인다.

꼭 1편을 읽고나서 읽어야 하는 책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단지 1편에서 변주리의 모습을 관찰하던 하리의 시점과 자신이 직접 폰좀비 되기 일보직전이 되는 부분을 비교하면 더 재미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모습도 객관화해서 생각하기도 좋은 책이다. 그런의미에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아이들과, 스마트폰에 과몰입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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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공부 - 최재천과 함께하는 어린이 성장 동화
함주해 그림, 박현숙 글, 최재천.안희경 원작 / 김영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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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소금물의 농도를 더했다 빼는 문제나 그래프를 그려야 하는 함수 문제 앞에서 나중에 어디에 써먹을 데가 있는건지 출제자를 원망하며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흔하게 보인다. 학교와 학원에서 해야하는 이런 공부 말고 진짜 공부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닌 제3의 어른이 누가 있을까? 평생 동물행동 생태를 연구해온 최재천 교수님은 기후위기 시대의 한복판에서 부모세대인 우리에게는 인간이 아닌 생물종을 차례차례 멸종시켜온 호모사피엔스의 이기심을 강연과 책을 통해 알려오신 분이다. 아이들과는 생명다양성 재단에서 특정 지역의 생물 생태탐구를 통해 인간과 함께 살아온 생물의 다양성 덕분에 우리가 누려온 자연의 순환 효과를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힘써온 교수님(책에서는 소장님)이다. 최재천 교수님의 필모그래피와 저서에 있는 내용 중에서 책 속 소장님의 언어로 탈바꿈해서 박현숙 작가님이 쓴 어린이 성장 동화, <하고 싶은 공부>를 소개한다.

이 책은 5학년인 정우, 소리, 건, 이 세 명의 아이들이 어느 공원 구석에 있던 연구소 소장님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정우는 의대진학을 원하는 엄마와 그 전공을 원하지 않는 고등학생 형과의 갈등상황 속에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계의 유명 건축물을 소개하는 유투버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엄마침팬지(이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같은 소장님의 조언으로 한 발자국씩 앞을 향해 내딛는 걸음이 인상적인 책이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도전해 보는 거야. 재미있고 흥미롭게 도전하는 것, 그게 진짜 공부거든. (...)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 악착같이 찾아보고, 뒤져 보고, 책도 읽어 보고, 결국 알면 사랑하게 된단다.”(p.28)

나태주 시인의 ‘풀꽃’ 중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 두 행의 마지막 행처럼 들리는 “결국 알면 사랑하게 된단다”라는 최재천 교수님의 말이 시처럼 들린다.

“실수하면 좀 어때!”(p.85)라며 자신도 수많은 실수 위에서 경험하고 그 것을 토대로 성장했다고 이야기해주는 소장님이다.

“셋이 모여서 그 문제에 대해 말하렴.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거야. 서로 생각이 다르면 자기 생각이 왜 옳은지 이야기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엇이 옳은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의논하렴. 그걸 숙론, Discourse 이라 부른단다.”(p.90) 서로 서운한게 많아 삐진 상황에서 소장님은 정우에게 숙론할 것을 제안한다. 나 역시 “아니~”라고 시작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걸 고쳐보고 싶다. 서로 옳고 그른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의논할 것, 최재천 교수님이 작년에 출간하신 <숙론>의 핵심 문장이 이 책에도 나온다.

“경험하다 보면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고 창의력도 자라지.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하면서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하는지 그리고 뭘 하고 싶은지도 스스로 알게 된단다.”(p.107) 경험해보기 위해선 용감해져야 한다. 멘탈이 나보다도 약한 우리 슬이 근처에 자꾸 이 책을 들이미는데 제목에 ‘공부’자가 들어가니 당최 손이 안가나 보다. 그래서 예쁜 수채화가 그려진 뒷표지쪽으로 뒤집어 놓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찾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어. 그리고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냈고, 내가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하기 위해 노력했고, 원하는 걸 이뤘단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때 가장 재미있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단다.”(p.143)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따라서, 친구들이 많이 보는 유투브라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 부모의 잔소리가 아니라 이런 책이 대신해주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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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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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스타에는 데이트코스 추천 릴스가 넘쳐난다. 수많은 맛집의 메뉴와 디저트, 예쁜 공간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들은 수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한편, 쌀, 면과 같은 주식과 달리 디저트는 가성비, 맛, 새로운 유행에 민감한 선택적 음식이다. 저자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초콜릿을 ‘로맨쓰’의 맛이라고 표현하는 이 책도 그렇다.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라는 부제처럼 당시의 데이트를 상상할 수 있는 디저트들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은 마냥 달달하지만은 않고 ‘마뜩찮은’부분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책을 마무리하고도 마뜩찮은 부분이 있다. 조사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디저트는 종류에 상관없이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하나가 달콤한 맛이라면 다른 하나는 부드러움인데, 요즘은 거기에 차가운 맛도 더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디저트가 사람들을 매혹한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롭게 등장한 디저트는 달콤하고 차가운 맛에다 문명이라는 가면까지 쓰고 조선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 과정은 이전까지 즐겨 먹던 간식이 밀려나는 과정과 맞물려 있었다. 한과, 약과, 식혜, 엿 등의 주전부리는 달콤한 차가움에서 새로운 디저트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앞선 마뜩찮음은 여기에서 연유한다.”(p.8)

나는 이 한 단락의 글이 이 책을 관통하는 기찻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장처럼 디저트는 달콤하면서 부드럽고 가끔 차가운 맛도 더해져야 하지만, 여기에 더해 새로운 유행과도 같은 멈추지 않는, 근대의 맛은 당시의 퍼스트무버, 얼리어댑터이자 인플루언서들을 자극하며 일반인에게 보급한다. 그러면 이전의 오랜 전통을 가진 디저트나 잠시 유행했던 것들은 더이상 메인에 서지 못하고 구석으로, 뒤안길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통과 충돌했던 근대성과도 닮아있다. 디저트에서 이것을 발견한 저자에게 감동(!)하며 나는 이 책을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라는 여덟가지 디저트가 일제강점기의 경성에서 널리 퍼지는 광경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는 연인들, 영화를 보며 마시는 라무네, 추운 겨울에 코와 손이 빨갛게 부르터가면서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자 장사에 나선 만주를 파는 학생들, 지저분한 가게지만 고소한 기름냄새 풍기며 배고픔을 극대화 시켰을 호떡집 중국인 주인들, 그 앞에서 부끄럽게 먹는 한국인. 멜론이라는 최상급의 과일을 향한 이상의 비애, 조선시대에는 널리 퍼지지 못한 고구마지만 강점기 시절, 감자가 아닌 고구마를 훔친 복녀와 군고구마에 밀린 군밤, 그리고 왜 아아를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것만 같은 빙수에 대한 범국민적인 사랑. 일제 강점기라는 아픈 시절 속 다양한 사연과 소설 속에 녹아든 디저트에 대한 이야기들이 2025년을 살아가는 내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유행이라는게 돌고돌아 당밀이 함유되어 건강한 단맛이라는 띠를 두르고 다시 인기중인 조청과 할머니 입맛 MZ들이 선택한 약과의 약진이 눈부신 요즘 디저트 세상을 본다.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호떡부분을 읽으며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 1920년대 후반에 많이 생겨난 중국집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정호를 떠올렸다. 호떡파는 중국 상인들처럼 이때, 산둥지방에서 중국인들이 많이 넘어왔다고 고증이 되어 있었다. 1950년 중반이후를 시대배경으로 한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에서 한국전쟁으로 팔을 잃은 상이군인 출신의 준호댁이 아이를 업고 붕어빵을 굽던 모습도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이후의 또 다른 디저트의 출현이다. 벌써부터 이 이후의 디저트들이 담긴 저자의 책이 기대된다. 어떤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달콤함으로 무장한 디저트들이 우리를 유혹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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