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집에 들어오는 식물들은 이상하게(나는 우리집이 도로변이기 때문이라고 우겨보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내 곁을 떠난다. 그래서인지 식물에 대해 미안함을 좀 가진 편이고 식집사들을 무조건적으로 리스펙한다. 그리고 식물에 대한 책도 좋아한다. 특히 호프 자런의 <랩 걸>을 보며 그림을 그린 신혜우 저자님도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 저자님의 이전 책들 <식물학자의 노트>를 즐겁게 읽었다.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출간한 다음 해에는 강연도 zoom으로 들은 적 있다. 그리고 이번에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가 나왔다.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메릴랜드에 눈이 내렸을 때 저자님이 만들었다는 스노우엘리(집주인 할머니네 개 이름이 엘리다)도 어떤 모양인지 떠올릴 수 있었고, 자원봉사로 농사 짓는 에피소드가 나올 때도 흙속 미생물이 죽을까봐 1950년대에 나온 가볍고 작은 트랙터만 이용할 수 있다는 예전에 담배 농사짓던 땅도 떠올라서 반가웠다.

저자의 식물학자라는 직업 하나 만으로도 굉장히 바쁠 것 같지만 누군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여행자라고 답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찾아 여행하는 분이니까. 또 자원봉사로 주말에 친환경 농사짓는 파머이기도 하다. 심지어 영국왕립협회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한국인 최초 금메달과 최고 전시상을 수상했고 또 올해에는 과학적인 식물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질 스미시스’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을 분이시기도 하다. 이렇게 24시간을 풀로 쓸 것만 같은 다재다능한 저자의 이 책은 ‘아트’ 그 자체다. 꽃 그림이니까 예쁘겠지, 평범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장마저 아름답다. “눈이 비가 되면 나뭇가지에 새싹이 틉니다”(p.5)라고 시작하는 프롤로그 첫문장을 읽어본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는 시간 조차 나뭇가지의 새싹을 향해 있는 문장이다. 홀딱 반하며 읽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메릴랜드의 4계절 12달이 들어있다. 내가 사는 곳은 온대기후의 서울이지만 나는 숲에 갈 때 이 책을 들구 갈 것을 다짐한다. 말못하는 나무들과 인사하기만 해도 더없이 좋겠지만 이 책을 더하면 내가 식물들을 보며 느끼는,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언어를 더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꽃집에서 꽃을 사서 그리길 꺼린다. 원예품종은 야생식물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식물학자에게 식물종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야생난초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발되는 품종과 사람들의 열렬한 난초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꽃을 사랑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p.45) 예쁜 꽃은 가게에서 멍때리고 보던 내가 보였던 구절이다. 비닐하우스 속 식물이 화려하더라도 거친 바람과 강렬한 햇빛, 그리고 다시 땅으로 묻어버릴 것만 같은 강한 비를 버텨내고 피워내는 야생식물들을 더욱 응원하게 된다.

서양배에 대한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떫은 서양배에 질린 저자는 알고보니 후숙해서 먹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배의 씨앗을 둘러싼 그 신부분을 석세포라고 부르고 이것은 리그닌이 축적되고 단단한 세포벽이 발달한 죽은세포라는 것이 더 쑈킹했다. ”열매가 자라날 때 수분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로 많은 석세포가 생긴다.(p.50)“는 지식은 덤으로 생긴다.

또 4년 만에 난초 곰팡이를 냉동고에서 꺼냈는데 살아있음을 보고 기뻐하며
”누군가 이어서 발전시킬 것이다. 완전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모든 과학이 그렇게 축적되어 온 것처럼“(p.204)이라는 과학의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을 쓴 부분도 마음에 남았다. 뭔가 과학자들만의 바톤터치가 상상 속에 그려졌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우산에서 내보내서 내리는 비도 맞아봐야 하듯 저자도 자연에서 강하게 크는 식물들을 응원하는 책이다. 브로콜리의 꽃을 보려고 몇 번을 물꽂이 하던 저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식집사들을 포함해서 꽃을 좋아하고 나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