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사라바

 

 

어렸을 때부터 노력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가진 소년이 살았다.

 

경제력 있고 믿음직한 아버지, 배우처럼 예쁜 엄마, 누구나 뒤돌아볼 귀여운 외모, 비록 희한한 정신세계를 가진 누나 때문에 엄마와 누나 사이 묘한 긴장감이 흐르긴 하지만, 소년 아유무는 나쁘지 않게 성장한다. 무언가 사건이 생기면 모르는 척하고 눈치를 보며 살지만 불행이랄 것까진 없는 삶이다.

집은 부유하고 친구들은 나를 좋아해주는 삶.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소년이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다 어머니와 이혼하긴 했지만 생활비와 집의 소유는 어머니 것으로 해둔 채. 그리고 어머니는 그 아버지가 대주는 생활비로 끊임없이 남자를 만난다.

 

대학생이지만 딱히 직업을 구할 생각은 없는 아유무.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몇 년간 돈걱정 없이 살 수 있기에. 아유무의 여자친구 아키라는 원하던 분야 회사의 직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는 동안 아유무는 빈둥거리러 영화동아리에 들게 된다. 그곳에서 고가미라는 여자 후배를 만나게 된다. 원래 있던 멤버 중엔 여자가 없던 동아리라 딱히 예쁠 것도 없는 아이였지만 술만 마시면 유혹해 관계를 갖는 헤픈 여자애, 라는 걸 알게 되고 경멸하게 된다.


어느날 다가와 자신을 경멸하냐고 가볍게 묻는 고가미. 아유무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묻는 고가미에게 놀라지만 정작 고가미는 아무렇지도 않다. 경멸받는 건 편해요, 라며.

 

어제 저녁의 성관계 같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고가미와 친해지는 아유무.

어쩌면 이 아이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는 것일까? 너 부끄럽거나 하는 일이 있어? 라고 묻는 아유무에게 고가미는 사실 부끄러운 일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물건을 꼭 가져야 하는 습관 때문에 물건이 늘어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방이 지저분해서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하는 아유무에게 고가미는 고개를 젓는다. 지저분한 것은 부끄럽지 않아요.

고가미는 방이 어지럽고 지저분해서가 아니라 언니가 죽고 나서도 끊임없이 살아가고, 사는 동안 자신의 취향을 갖고, 그 취향을 늘려나가는 자신이 부끄러운 것이다.

 

지저분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생각하는 아유무의 기준이다.

그러는 동안 아키라는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 어느 영상업체에서 일을 하게 된다. 비록 아르바이트할 때보다 벌이도 적고 훨씬 더 많이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인데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아키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일을 계속 할 수 없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키라가 안쓰러워 아유무는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키라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어느 정돈 무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여 말한다.

 

넌 언제나 분발하는 사람을 무시해. 노력하지 않는데도 선택받는다고 생각하지? 언제나 수동적인 자세로, 그래서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뭔가를 얻으려는 사람을 무시하는 거 아냐?

 

라고. 아유무는 그동안 자신이 수동적으로 있었던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같은 수준이 되기 싫어 입을 다물고 만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 많은 시간 동안 아유무가 그토록 수동적이었던 이유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으니까. 그리고 조용히 아키라와 헤어진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결혼을 한다고 했다. 50이 넘은 나이에 피어싱을 하고 8살 어린 남자와.

아유무는 그렇게까지 지독스럽게 자신의 행복에 매달리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이기적인 엄마를 뒷바라지하고 받아들이는 아빠 역시 이해할 수 없고, 무언가 믿을 만한 것을 찾아 고둥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하는 누나를 이해할 수 없다.

 

아유무는 무료로 나눠주는 레코드샵의 잡지에 글을 쓰다 잡지 편집자로부터 일을 의뢰받게 된다. 유명인도 인터뷰하지만 소소한, 정말 소소한 예능인들도 인터뷰하는 그런 일이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인기 많고 지적이었던 친구 스구를 만나게 된다. 티라미스 분장을 하고 다니는 예능인 티라미스가 스구였던 것.


대지진 이후 밝음을 잃어버린 스구. 이어 미국의 9.11사건을 보고 난 스구는 왜 저 사람들이 죽어야 하는지, 자신은 왜 죽지 않은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지고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살아갈 의미를 잃고 만다.

그러다 후지산을 보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길을 떠난다. 그냥 걷기만 한다. 걷는 도중에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후지산을 보고 난 직후 스구는 엄청나게 허기를 느끼고 만다. 그리고 수중에 있던 돈과 꼭 맞아떨어지는 티라미스를 먹고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이 세상에 살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준 티라미스를 위해'티라미스'분장을 하고 티라미스를 외치고 다닌다.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아름답다는 느낌은 안 드는, 어찌 보면 이해하기 힘든 그런 일이다.


서른셋밖에 안 되었지만 예전에는 가만히만 있어도 이성들이 먼저 다가오던 매력적인 외모를 잃은 아유무. 언제부턴가 빠진 머리카락은 이제 모자로 가려야하는 처지가 됐고 살도 점점 찐다.

 

퇴직 후 출가를 한 아빠를 찾아가는 아유무. 그리고 아빠가 고행 같은 삶을 사는 이유도, 엄마가 기를 쓰고 행복해지려고 하는 이유도 알게 된다. 아빠와 엄마는 원래 사랑하면 안 되는 사이였다.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에게 약속한다. 아빠는 뭐라도 할게라는 약속을, 엄마는 선배에게 가혹한 짓을 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살게요라는 약속을.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자신을 믿고 있던 선배에게 배신을 한 두 사람.그리고 약속을 한 두 사람. 아빠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엄마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그 댓가로 아버지는 행복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엄마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그모든 것을 놓고 행복해져버렸고, 엄마는 불행해져버린다.

어렸을 적 이집트에서 알게 된 친구 야곱을 떠올리는 아유무. 야곱과 아유무가 나누는 인삿말이 있다. 사라바! 원래는 안녕이라는 뜻의 맛살라마 라고 했던 것을 아유무가 처음으로 아무 의미 없이 붙인 이름이었다. 맛사라바, 라고 하던 것을 야곱이 사라바라고 인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라바는 어느순간부터 많은 의미를 담게 된다. 내일도 만나자, 잘 있어, 약속이야, 굿럭, 갓 블레스 유.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려는 아유무가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며 왼발을 내딛으면서 소설이 끝이 났다. 

처음엔 이 책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왜 인기가 있지, 라기보다 왜 이 책이 시점대상 2위인 거지? 라고 생각한 게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점대상은 서점 직원들이 독자들에게 추천을 한 것을 순위로 매긴 것이니까. 그러다 이 책이 꿈꾸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위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십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만큼 물질은 풍족해졌고, 따뜻한 집에서 손쉽게 정보를 얻고,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꿈꾸는 일만큼은 게으른 요즘 젊은이들. 이렇게 많은 걸 누려보고 많은 걸 배운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하고 싶은 게 없는 시대라니.

아유무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걸 잃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으니까. 비록 주목받고 싶어 안달나 밥도 안 먹고 깡마른 난해한 정신세계의 누나는 골칫덩이지만 누나만 빼면 자신의 삶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날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누나는 알수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빡빡 밀었던 머리는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자라있고, 그래도 마른 편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살도 조금 올라있다. 동양적인 미, 라고 할 만한 외모를 갖춘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옆에는 금빛 속눈썹을 가진 남편과 함께. 그리고 이제 자신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아유무는 외모도 잃고 이젠 여자친구마저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밖에 만날 수가 없는 이때에.

아유무 생각엔 누나가 가진 위치가 원래 자신의 위치여야 맞을 것 같다. 보기 좋은 몸, 아름다운 배우자.

 

하지만 아유무는 알지 못한다. 누나가 얼마나 전력을 다해 자신의 삶이란 것을 이해하기 위해 싸워왔는지. 아니 싸운 것은 물론 누나 다카코 뿐만이 아니다. 아빠도, 엄마도 전력을 다해 싸웠다. 스구도. 고가미도, 아키라도, 비록 자신을 이용해 인터뷰를 따낸 사치코까지.

 

 

 

비록 남들이 이해못할지라도. 아유무는 그저 흘러왔을 뿐, 자기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는지에만 매달려 왔을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유무가 보기엔 비정상 같아보이고, 헤프고,

이기적이고, 속물이었던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상처를 잊지 위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것을 얻든 얻지 못하든 계속해서 한발짝을 내딛었던 사람들이었다. 너무 쉽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모든 선물들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입장에 놓이고 나서야 아유무는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마음의 심지를 가지고 말이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살긴 사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이 계속 드는 것이다. [사라바]를 읽고 나서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비록 원하는 위치에 오르지 못한 아키라 같고, 미치광이 같은 스구처럼 다른 사람에겐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만큼은 행복하니까, 그거면 나쁘지 않은 거구나 하는 용기를 가지게 된 것 같다.


혹시나 무얼 해야 하는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은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친구, 혹은 동생에게 꼭 읽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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