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면서 등장인물을 자기로 오해하는 사람의 항변 못지 않게 곤혹스러운 경우가 바로 등장인물을 작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우이다. 지금 신문에 쓰고 있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은 시니컬하지만 따뜻한 인물이다. 억압의 형태로 나타나는 모든 기존질서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그녀는 성에 대해서도 도덕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전해주는 얘기로는 내 동창들이 그 소설을 보고 '걔가 어떻게 그런 경험을 다했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으더라고 한다.

 

 

나는 그런 일로 그 인물의 리얼리티를 위축당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억압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쓰면서 굳이 성적 억압 부분만을 은유적으로 다루고 넘어간다면 더욱 부자연스러운 노릇이 아닐까. 그렇게 쓴다면 오히려 신문소설에 대한 일반의 편견대로 성을 소설적 소재의 하나로(여러 소재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삼은 것이 아니라 상업적 장치로 이용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실감 나는 인물을 그리려면 앞모습만이 아니라 그림자까지도 그려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한없이 인자한 할머니, 한없이 똑똑한 대학생 등 획일화된 인물은 피했던 것이다. 상투성과 전형성은 분명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흔한 인물을 다루지만 그 인물을 상투적이고 평면적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각별히 긴장하는 점 역시 삶을 보는 내 시각을 반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똑똑한 사람을 보면 불안하다.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인간의 존엄은 자유를 보장받을 때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런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마음껏 이완시킬 수 있는 이면을 만들어주고 싶어진다.

 

 

_나.의.창.작.교.실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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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 담아놓은 산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은희경 글이라면 조각이라도 놓치지 않았던 시절에 모았던 글 중에 하나일 것이다.

 

 

'술이 많이 취했을 때면 그가 그립다'고 하지 않고
'술이 어설프게 취했을 때나 그가 그립다'고 말할 것이라고 차갑게 말하는 은희경표 주인공들에게
나는 얼마나 빠져있었던가.
각 인물들의 긴장감, 차가움을 가장한 자기애, 쫀쫀한 자의식 등 은희경은 내 20대 초반을 지배했었다.
하루키의 허무함을 반대축으로 하고...

 

 

다시 '은희경' 폴더를 연 이유는, 연말연시라고 이 일 저 모임에 치이다 뒤숭숭해진 마음을 잡을 길이 없어서이다.
(사실 회식, 망년회, 크리스마스, 사무실 이사 등등의 핑계로 쓰다만 임시저장글이 8개나 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 나의 모든 일상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마저 들었던 12월이 지나간다.
아마 내년엔 더 견고한 업무 프로세스를 다져야하기 때문에
정말 이 블로그에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글을 올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을 수는 없다.
"삶은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일상성으로 잘 덮여 있다. 뻔한 것 같으면서도 애매하고
또 엄청나게 광범위하다. 그런 광범위한 삶에서 어떤 한 부분을 포착하고, 거기에 칼날을 대고 잘라내서
단면을 본 다음, 다시 뒤집어서 이면을 보는 것, 나는 그런 것이 '소설쓰기'라고 생각하고 있다."_은희경
내게 블로그에 포스트를 쓴다는 것은, 곧 '소설쓰기'와 같다.
살기만 해선 아무것도 남길 수가 없다.
물론, 책을 쓰거나 만들면 책이 남을 테지만...
'생의 단면'을 날 것으로 보관하고 싶은 내 욕구를 충족해주는 것은'일기쓰기'와 '블로깅'밖에 없다.

 

 

'소설에 제일 쓸모없는 것이 예쁘고 똑똑한 여자와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자'인 것처럼
하루가 아름답기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삶에 미망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Written by. ego2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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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에는 색다른 묘미가 있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 자체를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가까스로 이에 성공하자마자, 또는 그런 후에 곧 다시 이를 포기하고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에는 무언가 색다른 맛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삶의 주된 흐름에서 중간 휴식이나 막간으로, 그것도 '휴양'이라는 목적으로 끼워 넣는다. 즉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하루같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것에 물들고 무기력해지며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거나, 이미 그러기 시작하는 경우 이를 쇄신하고 혁신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똑같이 정해진 생활을 계속하는 경우 유기체가 이처럼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매일매일이 똑같은 생활을 함으로써 우리가 시간을 체험하지 못하게 될 위험성이 있고, 그 시간의 체험은 생활 감정 자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한쪽이 약화되면 다른 쪽도 이에 따라서 딱하게도 손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루하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다. 대체로 내용이 재미있고 신기한 경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조롭고 내용이 없는 경우는 시간이 잘 가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반드시 올바른 견해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이 없고 단조로운 것은 사실 순간과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지도 모르나, 아주 커다란 시간의 단위일 경우에는 이를 짧게 하고, 심지어 무(無)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이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경우는 시간과 나날이 짧게 생각되고 훌쩍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시간 단위를 아주 크게 하여 생각해 보면 그럴 경우 시간의 흐름에 폭, 무게 및 부피가 주어진다. 그리하여 사건이 풍부한 세월은, 바람이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빈약하고 내용이 없으며 가벼운 세월보다 훨씬 더 천천히 지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현상은 생활의 단조로움으로 인한 시간의 병적인 단축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하루같이 똑같은 경우 오랜 기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조그맣게 오그라드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시간 감각이 잠들어 버리거나 또는 희미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으로 체험되고, 나중의 세월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가고 속절없이 흘러간다면, 이런 현상도 익숙해지는 것에 기인한다.

 

p204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토마스 만'을 언급한다.
<마의 산>을 읽으며(아무도 남지 않은 사무실...), 위에 부분을 읽고 나는 하루키의 '지루함'에 대한 예찬이
토마스 만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 충만함. 하루키의 소설이 '날 것'이라면 토마스 만의 소설은 '된 것'이다.
을유문화사의 양장본을 손에 쥐고 토마스 만의 문장을 먹는 오후 6시 이후의 독서...
(다른 원고 읽다보니 벌써 8시....)

 

"낯선 땅에 오면 처음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거든. 말하자면.... 그렇다고 내가 지루하다는 말은 아니야. 반대로 나는 왕처럼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한스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익숙해진 것은 오히려 시간이 빨리간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시간이 더디간다.

그 무게와 부피. 내밀한 자아성취의 순간은 길수록 좋다.

 

바로 오후 6시 이후의 독서(학생 땐 밤 12시 이후의 새벽 독서)가 그렇다.
이 '무겁고 긴밀한' 시간엔 누구나 젊게 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어린 시절엔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서 생각했다. 하루는 굉장히 길었고, 해가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리거나, 시장에 따라
나서거나, 피구를 하거나, 화단에 핀 꽃을 뽑거나, 소꿉장난을 하거나, 잠자리를 잡거나..... 할 일이 (랜덤으로)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20살 이후 이제 시간을 하루 단위로 나눠 생각한다. 오늘 할 일, 그리고 내일 할 일, 주간업무보고.............
매일 체크하는 이메일, 업데이트하는 블로그 포스트, 검토할 도서, 써 내야할 페이퍼, 어김없이 다가오는 원고 마감일..........
할 일이 (차례대로) 정해져 있다. 익숙한 일 일수록 짧게 느껴지는 시간의 상대성.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가 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 주 오 랜 만 에 더 디 가 는 시 간 을 즐 기 고 있 다

 

 

 Written by. ego2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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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토마스 만'을 언급한다.

<마의 산>을 읽으며(아무도 남지 않은 사무실...), 위에 부분을 읽고 나는 하루키의 '지루함'에 대한 예찬이

토마스 만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 충만함. 하루키의 소설이 '날 것'이라면 토마스 만의 소설은 '된 것'이다.

을유문화사의 양장본을 손에 쥐고 토마스 만의 문장을 먹는 오후 6시 이후의 독서...

(다른 원고 읽다보니 벌써 8시....)

 

"낯선 땅에 오면 처음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거든. 말하자면.... 그렇다고 내가 지루하다는 말은 아니야.

반대로 나는 왕처럼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한스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익숙해진 것은 오히려 시간이 빨리간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시간이 더디간다.

그 무게와 부피. 내밀한 자아성취의 순간은 길수록 좋다.

 

바로 오후 6시 이후의 독서(학생 땐 밤 12시 이후의 새벽 독서)가 그렇다.

이 '무겁고 긴밀한' 시간엔 누구나 젊게 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어린 시절엔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서 생각했다. 하루는 굉장히 길었고, 해가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리거나, 시장에 따라

나서거나, 피구를 하거나, 화단에 핀 꽃을 뽑거나, 소꿉장난을 하거나, 잠자리를 잡거나..... 할 일이 (랜덤으로)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20살 이후 이제 시간을 하루 단위로 나눠 생각한다. 오늘 할 일, 그리고 내일 할 일, 주간업무보고.............

매일 체크하는 이메일, 업데이트하는 블로그 포스트, 검토할 도서, 써 내야할 페이퍼, 어김없이 다가오는 원고 마감일..........

할 일이 (차례대로) 정해져 있다. 익숙한 일 일수록 짧게 느껴지는 시간의 상대성.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가 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 주 오 랜 만 에 더 디 가 는 시 간 을 즐 기 고 있 다

 

 

 Written by. ego2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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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무렵이었습니다. 둘이서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강원도 어느 곳을 지날 때였어요. 그땐 시가 넘쳐날 때였습니다. 모든 걸 시로 썼죠. 바람이 불면 부는 걸 시로 쓰고, 아무거나 시로 썼죠. 그런데 기차 안에서 김중혁이 저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이건 시가 아니다. 이건 시가 아니니까 태워버리자.' 저를 선동한 겁니다. 저도 생각해보니까 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차 안에서 사람도 없기에 거기서 시를 태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런 우를 범하곤 한다. 문학이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았고(이젠 알지? 절대 안 죽는다!), 문학의 진정성에 토를 다는 자는 배신형, 배반형으로 낙인 찍어버렸다. (겨우 나보다 한두살 나이 많은) 선배들을 붙들고 별 쓸데없는 질문을 다 던지거나 나 혼자 외롭게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지고 있었으니,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고뇌하고 있는 내 자신의 뒤통수를 겁나 세게 후려치면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안다.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었다. 선배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후배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받고 온갖 고민을 혼자 짊어져본 뒤에야 가벼워질 수 있었다. 가볍다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이젠 적어도 목을 매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가벼운 척하면서 무거운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무거운 척하면서 가벼운 사람은 곁에 두고 싶지 않다.

 

<씨네21> No. 698 p54 

  

어제의 전혜린 포스트와 오늘 읽은 씨네 21 김중혁의 칼럼은 여러가지로 통하는 면이 있어서 또 혼자 배불리 웃으며 읽고 타이핑했다. 과연 내가 가졌던 그 무거움이 지금의 가벼움을 만들었던가.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얼마 전까지 내 모토 아니었던가. 가벼운 것은 곧 단순한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며, 칫릭처럼 쉽게 읽히는 작품에 대한 알러지도 많이 치료되었다.

 

내가 요새 (요즘) 가요와 멀어진 것은 고교때 너무 죽어라~ 들어서(공부할 때 더 들었다. 사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밥먹을 때 빼고 이어폰을 빼고 있었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수험생 시절에는 말도 잘 하지 않았으니 거의 베터리를 2~3개씩 챙겨 다녀야 했다)이기도 하다. 이제는 모던락(째즈, 라흐마니노프)만 죽도록~ 듣고 있으니 마흔이 넘으면 다른 음악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미술관은 웬만하면 주말에 가지 않으며(그 때가면 사람 구경하러 가는거다) 음식 앞에서 사진 먼저 찍지 않는다.

 

죽자고 덤벼들어서 태운(버린) 시와 소설이 한 트럭은 될테니...나도 이제 좀 가볍게 살자는 생각으로 사회에 나왔다.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지만 이거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스스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란 의식도 점점 '보이는 것이 믿는 것이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편견보다는 직관을 믿고 싶다. 어쩌면 더 강해진 자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나는 김중혁의 말처럼 '무거운 척 하면서 가벼운 사람' 옆에 사적으로 1초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의 소설집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은 참 가벼워서 늘 '무겁게' 다시 읽게 되는 책이다. <한겨레> 목요 섹션 ‘Esc’에도 제격인 필자이다. 일상이 곧 놀이인 듯.

 

+

김중혁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020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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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문득문득 잠이 들기 전, 아니면 아침에 눈을 뜰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아, 계속 이대로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멀쩡한 엄마가 쓰러졌다고 할까?.....
여러가지 핑계들이 뭉게구름처럼 떠다닌다.  
마치, 악천후로 학교가는 길이 잠겨 휴교되거나, 교수의 사정으로 휴강되기를 바랐던 학창시절처럼 회사도 '땡땡이'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혹은 회사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일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툴툴 털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지옥철에 오른다. 내가 최근에 읽은 독서에세이 <밑줄 긋는 여자>는 이런 월요병이나 퇴사, 이직의 유혹을 뿌리칠 때 특효약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다잡고 내가 그은 책 속 밑줄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이제 프로만이 살아남는다"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살벌함, 비장함, 잔혹함.... 난 이런 것들이 프로의 속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보운전자들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늘 목이 뻣뻣하다. 그게 바로 아마와 프로의 차이다. 프로는 긴장을 풀고 즐길 줄 안다. 주위에 너무 스트레스받거나 긴장한 사람이 있다면 음료수라도 한잔 뽑아주거나 농담이라도 한 마디 걸어주는 게 프로의 자세다. 프로들이여, 여유 바이러스를 퍼뜨리자.

p46 

 


그래, 프로란 바쁘다, 바쁘다, 힘들다, 힘들다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다. 때론 여유 DNA를 갖고 '회사, 계속 다녀라!'란 기운찬 에너지를 얻은 책이다.  해외영업부에서 13년째 일하고 있는 저자는  신입사원 시절에 한 과장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과장님, 제가 스페인어를 배울까, 프랑스어를 배울까 고민인데요. 아무래도 제가 독일어 전공이니까 일본어나 중국어보다는 유럽어를 하나 더 하는 게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요. 어떤 게 좋을까요? 그 과장님은 "능력은 지금도 충분하니, 회사나 그만두지 말고 계속 다녀라!"라고 답했다.그 땐 무성의해보였던 이 대답이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적절한 충고가 없었단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렇게 <밑줄긋는 여자>에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기회가 오기 전에 나가버리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과, 길 위에 머물러 있는 법 등 현직 '선수'의 생생한 조언들이 살아있는 독서에세이라서 사무실에서 흔들릴 때마다(내가 이짓을 왜 하고 있는 걸까, 난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하는거, 회사엔 왜 상식이 통하지 않을까 등등 과도한 자의식이 솟구칠 때)펼쳐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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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벌써 눈물의 계절, 7월이 왔다. 7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기에, 나는 항상 비오는 날 생일 파티를 해야 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초대했던 많은 친구들이 단지 비가 온다는 이유만으로 오지 않을 때 느꼈던 쓸쓸함은, 하필 장마가 낀 달에 날 낳은 엄마마저 원망하게 만들었다. 어릴 땐 화장실을 같이 갈 ‘단짝 친구’가 하느님보다 중요한 존재였다. 그렇게 학교와 친구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 당신은 왕따(이지메)를 당해본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본 작가가 있다.


철저히 몸과 욕망, 발칙함과 도발이라는 콘셉트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야마다 에이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도서관에서 세워져있지도 않고 ‘누워’ 있던 그녀의 소설집 『공주님』을 처음 발견했을 때 유치한 표지와 제목에 피식거리며 그 책을 슬슬 넘겼다가, 밤을 꼴딱 새버렸다. 그 후 그녀의 전작, 신작은 모두 내 장바구니에 담겨지게 되었다. ‘낭만을 버리고 순정을 짓밟고 당신 스스로에게 솔직하라’고 말하는 연애 소설의 여왕, 야마다 에이미의 대표작 중에서도 전설의 초기작 세 편을 묶은 『풍장의 교실』이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소설집의 표제작 「풍장의 교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은희경의 장편 『새의 선물』보다 일상어로 된 짧은 문장으로 어른과 아이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수작이다.


내가 ‘물처럼 잔잔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과 달리이 소설의 화자인 ‘모토미야 안’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그런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생각을 한다. 1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전학을 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동안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이다. 이 ‘계집애’가 겪어야했던 따돌림의 생생한 묘사는 지나간 내 모든 학창시절의 기억을 흔들어놓았다. 물론 나는 자살을 시도할 만큼의 심한 왕따 경험은 없다. 하지만 서서히 ‘교실의 부품’으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낀 다음부터 이 소설은 더 이상 ‘학창 시절만의 비망록’이 아니었다. 그 무대가 비단 교실과 학교의 범위 안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유혹하는 법과 피 하나 내지 않고 세상에 복수하는 법을 전수받고 싶을 때마다 빌려 읽었다. 감정을 배제한 ‘절망’의 상태를 조금씩 맛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풍장風葬’이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은 사람을 들에 내버려 두는 것을 풍장이라고 한답니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안’의 마지막 모습에서 불현듯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필승>의 후렴구가 생각났다.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나는 이 노래를 고등학교 연극부 오디션 현장에서 대걸레를 들고 목청껏 불렀다. 아무도 모르게 죽이고 싶은 존재는 날 구속하는 사람이었거나, 중학교 내내 따라다닌 ‘1등에 대한 집착’ 또는 ‘따분한 평화’였는지도 모른다.


81페이지밖에 안 되는 「풍장의 교실」을 읽고 나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패닉 상태에 빠지거나,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데......’라며 회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한때 8만원까지도 호가했던 절판본을 모체로 하고 있는 이 책의 ‘소문의 진상’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쾌감일 것이다. 내가 줄거리를 이 자리에서 다 말한다고 해도 얻을 수 없다. 나는 지금, 내 속에 새로운 감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78) 그리고 마음속에 하나의 묘지를 품고 풀과 나무를 천천히 밟는 의식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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