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벌써 눈물의 계절, 7월이 왔다. 7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기에, 나는 항상 비오는 날 생일 파티를 해야 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초대했던 많은 친구들이 단지 비가 온다는 이유만으로 오지 않을 때 느꼈던 쓸쓸함은, 하필 장마가 낀 달에 날 낳은 엄마마저 원망하게 만들었다. 어릴 땐 화장실을 같이 갈 ‘단짝 친구’가 하느님보다 중요한 존재였다. 그렇게 학교와 친구가 세상의 전부이던 시절, 당신은 왕따(이지메)를 당해본적이 있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본 작가가 있다.


철저히 몸과 욕망, 발칙함과 도발이라는 콘셉트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야마다 에이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도서관에서 세워져있지도 않고 ‘누워’ 있던 그녀의 소설집 『공주님』을 처음 발견했을 때 유치한 표지와 제목에 피식거리며 그 책을 슬슬 넘겼다가, 밤을 꼴딱 새버렸다. 그 후 그녀의 전작, 신작은 모두 내 장바구니에 담겨지게 되었다. ‘낭만을 버리고 순정을 짓밟고 당신 스스로에게 솔직하라’고 말하는 연애 소설의 여왕, 야마다 에이미의 대표작 중에서도 전설의 초기작 세 편을 묶은 『풍장의 교실』이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소설집의 표제작 「풍장의 교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은희경의 장편 『새의 선물』보다 일상어로 된 짧은 문장으로 어른과 아이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수작이다.


내가 ‘물처럼 잔잔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과 달리이 소설의 화자인 ‘모토미야 안’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그런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생각을 한다. 1학기가 끝남과 동시에 전학을 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동안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이다. 이 ‘계집애’가 겪어야했던 따돌림의 생생한 묘사는 지나간 내 모든 학창시절의 기억을 흔들어놓았다. 물론 나는 자살을 시도할 만큼의 심한 왕따 경험은 없다. 하지만 서서히 ‘교실의 부품’으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낀 다음부터 이 소설은 더 이상 ‘학창 시절만의 비망록’이 아니었다. 그 무대가 비단 교실과 학교의 범위 안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유혹하는 법과 피 하나 내지 않고 세상에 복수하는 법을 전수받고 싶을 때마다 빌려 읽었다. 감정을 배제한 ‘절망’의 상태를 조금씩 맛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제목에 있는 ‘풍장風葬’이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은 사람을 들에 내버려 두는 것을 풍장이라고 한답니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안’의 마지막 모습에서 불현듯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필승>의 후렴구가 생각났다.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 거야” 나는 이 노래를 고등학교 연극부 오디션 현장에서 대걸레를 들고 목청껏 불렀다. 아무도 모르게 죽이고 싶은 존재는 날 구속하는 사람이었거나, 중학교 내내 따라다닌 ‘1등에 대한 집착’ 또는 ‘따분한 평화’였는지도 모른다.


81페이지밖에 안 되는 「풍장의 교실」을 읽고 나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패닉 상태에 빠지거나,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데......’라며 회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한때 8만원까지도 호가했던 절판본을 모체로 하고 있는 이 책의 ‘소문의 진상’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쾌감일 것이다. 내가 줄거리를 이 자리에서 다 말한다고 해도 얻을 수 없다. 나는 지금, 내 속에 새로운 감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78) 그리고 마음속에 하나의 묘지를 품고 풀과 나무를 천천히 밟는 의식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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