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말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에는 색다른 묘미가 있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 자체를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가까스로 이에 성공하자마자, 또는 그런 후에 곧 다시 이를 포기하고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에는 무언가 색다른 맛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삶의 주된 흐름에서 중간 휴식이나 막간으로, 그것도 '휴양'이라는 목적으로 끼워 넣는다. 즉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하루같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것에 물들고 무기력해지며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거나, 이미 그러기 시작하는 경우 이를 쇄신하고 혁신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똑같이 정해진 생활을 계속하는 경우 유기체가 이처럼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매일매일이 똑같은 생활을 함으로써 우리가 시간을 체험하지 못하게 될 위험성이 있고, 그 시간의 체험은 생활 감정 자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한쪽이 약화되면 다른 쪽도 이에 따라서 딱하게도 손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루하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다. 대체로 내용이 재미있고 신기한 경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조롭고 내용이 없는 경우는 시간이 잘 가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반드시 올바른 견해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이 없고 단조로운 것은 사실 순간과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지도 모르나, 아주 커다란 시간의 단위일 경우에는 이를 짧게 하고, 심지어 무(無)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이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경우는 시간과 나날이 짧게 생각되고 훌쩍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시간 단위를 아주 크게 하여 생각해 보면 그럴 경우 시간의 흐름에 폭, 무게 및 부피가 주어진다. 그리하여 사건이 풍부한 세월은, 바람이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빈약하고 내용이 없으며 가벼운 세월보다 훨씬 더 천천히 지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현상은 생활의 단조로움으로 인한 시간의 병적인 단축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하루같이 똑같은 경우 오랜 기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조그맣게 오그라드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시간 감각이 잠들어 버리거나 또는 희미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으로 체험되고, 나중의 세월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가고 속절없이 흘러간다면, 이런 현상도 익숙해지는 것에 기인한다.

 

p204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토마스 만'을 언급한다.
<마의 산>을 읽으며(아무도 남지 않은 사무실...), 위에 부분을 읽고 나는 하루키의 '지루함'에 대한 예찬이
토마스 만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 충만함. 하루키의 소설이 '날 것'이라면 토마스 만의 소설은 '된 것'이다.
을유문화사의 양장본을 손에 쥐고 토마스 만의 문장을 먹는 오후 6시 이후의 독서...
(다른 원고 읽다보니 벌써 8시....)

 

"낯선 땅에 오면 처음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거든. 말하자면.... 그렇다고 내가 지루하다는 말은 아니야. 반대로 나는 왕처럼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한스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익숙해진 것은 오히려 시간이 빨리간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시간이 더디간다.

그 무게와 부피. 내밀한 자아성취의 순간은 길수록 좋다.

 

바로 오후 6시 이후의 독서(학생 땐 밤 12시 이후의 새벽 독서)가 그렇다.
이 '무겁고 긴밀한' 시간엔 누구나 젊게 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어린 시절엔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서 생각했다. 하루는 굉장히 길었고, 해가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리거나, 시장에 따라
나서거나, 피구를 하거나, 화단에 핀 꽃을 뽑거나, 소꿉장난을 하거나, 잠자리를 잡거나..... 할 일이 (랜덤으로)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20살 이후 이제 시간을 하루 단위로 나눠 생각한다. 오늘 할 일, 그리고 내일 할 일, 주간업무보고.............
매일 체크하는 이메일, 업데이트하는 블로그 포스트, 검토할 도서, 써 내야할 페이퍼, 어김없이 다가오는 원고 마감일..........
할 일이 (차례대로) 정해져 있다. 익숙한 일 일수록 짧게 느껴지는 시간의 상대성.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가 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 주 오 랜 만 에 더 디 가 는 시 간 을 즐 기 고 있 다

 

 

 Written by. ego2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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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토마스 만'을 언급한다.

<마의 산>을 읽으며(아무도 남지 않은 사무실...), 위에 부분을 읽고 나는 하루키의 '지루함'에 대한 예찬이

토마스 만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 충만함. 하루키의 소설이 '날 것'이라면 토마스 만의 소설은 '된 것'이다.

을유문화사의 양장본을 손에 쥐고 토마스 만의 문장을 먹는 오후 6시 이후의 독서...

(다른 원고 읽다보니 벌써 8시....)

 

"낯선 땅에 오면 처음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거든. 말하자면.... 그렇다고 내가 지루하다는 말은 아니야.

반대로 나는 왕처럼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한스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익숙해진 것은 오히려 시간이 빨리간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시간이 더디간다.

그 무게와 부피. 내밀한 자아성취의 순간은 길수록 좋다.

 

바로 오후 6시 이후의 독서(학생 땐 밤 12시 이후의 새벽 독서)가 그렇다.

이 '무겁고 긴밀한' 시간엔 누구나 젊게 사는 기분이 들 것이다.

 

어린 시절엔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서 생각했다. 하루는 굉장히 길었고, 해가 질 때까지 엄마를 기다리거나, 시장에 따라

나서거나, 피구를 하거나, 화단에 핀 꽃을 뽑거나, 소꿉장난을 하거나, 잠자리를 잡거나..... 할 일이 (랜덤으로)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20살 이후 이제 시간을 하루 단위로 나눠 생각한다. 오늘 할 일, 그리고 내일 할 일, 주간업무보고.............

매일 체크하는 이메일, 업데이트하는 블로그 포스트, 검토할 도서, 써 내야할 페이퍼, 어김없이 다가오는 원고 마감일..........

할 일이 (차례대로) 정해져 있다. 익숙한 일 일수록 짧게 느껴지는 시간의 상대성.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가 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 주 오 랜 만 에 더 디 가 는 시 간 을 즐 기 고 있 다

 

 

 Written by. ego2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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