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무렵이었습니다. 둘이서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강원도 어느 곳을 지날 때였어요. 그땐 시가 넘쳐날 때였습니다. 모든 걸 시로 썼죠. 바람이 불면 부는 걸 시로 쓰고, 아무거나 시로 썼죠. 그런데 기차 안에서 김중혁이 저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이건 시가 아니다. 이건 시가 아니니까 태워버리자.' 저를 선동한 겁니다. 저도 생각해보니까 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차 안에서 사람도 없기에 거기서 시를 태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런 우를 범하곤 한다. 문학이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았고(이젠 알지? 절대 안 죽는다!), 문학의 진정성에 토를 다는 자는 배신형, 배반형으로 낙인 찍어버렸다. (겨우 나보다 한두살 나이 많은) 선배들을 붙들고 별 쓸데없는 질문을 다 던지거나 나 혼자 외롭게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지고 있었으니,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고뇌하고 있는 내 자신의 뒤통수를 겁나 세게 후려치면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안다.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었다. 선배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후배들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받고 온갖 고민을 혼자 짊어져본 뒤에야 가벼워질 수 있었다. 가볍다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이젠 적어도 목을 매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가벼운 척하면서 무거운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무거운 척하면서 가벼운 사람은 곁에 두고 싶지 않다.

 

<씨네21> No. 698 p54 

  

어제의 전혜린 포스트와 오늘 읽은 씨네 21 김중혁의 칼럼은 여러가지로 통하는 면이 있어서 또 혼자 배불리 웃으며 읽고 타이핑했다. 과연 내가 가졌던 그 무거움이 지금의 가벼움을 만들었던가.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얼마 전까지 내 모토 아니었던가. 가벼운 것은 곧 단순한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며, 칫릭처럼 쉽게 읽히는 작품에 대한 알러지도 많이 치료되었다.

 

내가 요새 (요즘) 가요와 멀어진 것은 고교때 너무 죽어라~ 들어서(공부할 때 더 들었다. 사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밥먹을 때 빼고 이어폰을 빼고 있었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수험생 시절에는 말도 잘 하지 않았으니 거의 베터리를 2~3개씩 챙겨 다녀야 했다)이기도 하다. 이제는 모던락(째즈, 라흐마니노프)만 죽도록~ 듣고 있으니 마흔이 넘으면 다른 음악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미술관은 웬만하면 주말에 가지 않으며(그 때가면 사람 구경하러 가는거다) 음식 앞에서 사진 먼저 찍지 않는다.

 

죽자고 덤벼들어서 태운(버린) 시와 소설이 한 트럭은 될테니...나도 이제 좀 가볍게 살자는 생각으로 사회에 나왔다. 무엇 하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지만 이거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스스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란 의식도 점점 '보이는 것이 믿는 것이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편견보다는 직관을 믿고 싶다. 어쩌면 더 강해진 자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나는 김중혁의 말처럼 '무거운 척 하면서 가벼운 사람' 옆에 사적으로 1초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의 소설집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은 참 가벼워서 늘 '무겁게' 다시 읽게 되는 책이다. <한겨레> 목요 섹션 ‘Esc’에도 제격인 필자이다. 일상이 곧 놀이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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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020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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