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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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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21세기북스, 1판 1쇄 발행: 2018.03.06, 261p
잘 사는 것만큼 죽음을 예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실은 살아가는 데 급급하고...
잘 사는 것 자체에 너무 많은 집중력을 쏟기 때문에,
혹은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두렵기에 잘 생각하게 되지 않는 죽음.
그러나 삶을 잘 정리하는 것 역시 품위 있는 태도라고, 일본의 드라마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말한다.
하시다 스가코는 현재 아흔둘의 나이로,
<오싱>이라는 일본 내에서 가장 히트한 일본 드라마의 각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더불어 2016년 12월에「분게이 슌주」라는 일본의 한 월간지에 '나는 안락사로 죽고 싶다'라는 글을 실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 받기도 했다.
아직 일본 내에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헌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데다,
본인이 직접 안락사로 죽음에 이르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힌 경우였기에 더욱 주목받았을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 직접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일본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예의바른 느낌이었다.
자기 의견을 표현할 때도 무척 나긋해서 일본 개그나 영화에서 보았던 유난스러운 반응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그런데 유명인이 갑자기 '안락사로 죽고 싶다'니.
이 적극적 의사 표현에 대해 그들의 국민성(?)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시다 스가코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언제 죽을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끼니는 어떻게 때워야 할지, 언제 집으로 포탄이 날아와 불타고 부서질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녀는 죽음과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그랬기에 그녀가, 아니 그 시대의 일본인 모두가 죽음을 '한없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대학에 다닐 시절, 어머니와 잠시 떨어져 있던 중 집이 있던 도시에 포탄이 마구 떨어져
사상자가 엄청나게 발생했을 때, 그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슬픔에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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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어떻게 죽을지 예상할 수 없었고, 여자의 몸으로 자칫 몹쓸 짓을 당할까 늘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느꼈던 딸의 비정상적인 모습이
전쟁이 도려낸 인간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느껴졌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안심하는 딸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고 한다.
하기야 광복 직전 시기의 일본이었으니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 자신에게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에 대해 매일매일 곱씹으며 살았다고,
하시다 스가코는 회상한다.
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은 내가 마음대로 좌우해도 괜찮은 것일까?
살고 싶으면 살고,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생명을 포기하면 되는 걸까?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일까?
어떤 태도가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일까?
현재 안락사를 합법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으로
회복할 수 없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왜 이들은 제한을 둘까?
자신의 생명을 언제든 좌우할 수 있다고 여기게끔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런 문제에는 기준이 필요할까?
법으로 꼼꼼히 적시하여 시행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또 뭘까?
생각해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과 사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왔지만 ‘미 비포 유’라는 영화를 보며
존엄사, 죽음을 결정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주인공 커플의 마음에 동화되어 슬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더 신중하게 행복해지려는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내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제 몸 하나 움직이는 데에도 자기 결정권이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흐르는 눈물 한 번 닦아주지 못해 더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삶을 살아간다면......
존엄사를 선택한다고 해도 마냥 반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 명의 삶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말고, 책임감도 말고,
그저 오롯이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생각했을 때 내려진 결정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었다.
왜 너는 네 생명을 함부로 하느냐고, 차마 입을 뗄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을 것도 같았지만
그냥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내버려둘 수 없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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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년 종합 건강검진을 받는다. ...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해놓고는 모순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분명 검사를 받거나 약을 먹는 것은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살고 싶다.
죽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존엄성이다." / 135~136p
하지만 하시다 스가코의 태도는 결코 비관주의적이지 않다.
건강하게 살아갈 동안은 최선을 다해 '웰-리빙'하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사람을 고용해 식사와 청소를 부탁하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도 않고,
끼니와 약을 제 때 챙겨먹으며 건강하게 살기 위한 스케줄을 성실히 이행하는 그녀.
그렇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선택의 문제이다.
내 마음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 것인지 그걸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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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 하시다 스가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