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없는 그림책 동화 보물창고 1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원유미 그림,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 일곱폭짜리 서화집을 본 듯한 기분이다. 잔잔하고 평화롭게 느긋한 마음으로 달빛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자분자분 들은 느낌. 마치 내가 다락방 창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하염없이 달님을 올려다보는 듯한 착각이 일만큼 이 책은 완전한 입말체를 간결하게 구사함으로써 부담감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그와 함께 글에 너무도 잘 어우러진 그림-원유미님의 그림은 볼 적마다 정겹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또한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안데르센은 동서고금은 물론 동서양을 고루 비추는 달. 그것을 화자로 하여 공간과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로 그럴 수 있을 법한 존재, 달님을 통해서다. 이렇게 다양한 글감을 소화해내기까지 안데르센은 얼마나 많은 사유와 공부를 병행하였을까...

열 일곱편의 이야기 가운데 열 일곱째밤의 꼬마 여자 아이가 인상적이었다. 멍멍이의 생각까지도 살뜰하게 챙기는 대사가 아이의 마음을 잘 담고 있는 듯 한 탓이다. 비슷한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스물둘째 밤 이야기나 서른한째, 서른세째 밤 이야기도 좋았다. 굴뚝 꼭대기에서 만세를 부르는 어린 청소부 이야기도,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잔잔함. 물결. 은은한 달빛에 어울리는 그러한 단어들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 편에서 퍼져나갔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아주 먼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루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냈다는 점에서 안데르센 이라는 작가에 다시금 존경심을 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