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이 많아요
존 마스든 지음, 김선경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9학년에 다니는 마리나의 일기다. 일기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꼭

<키다리 아저씨>와 닮아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주제와 소재가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마리나는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기보다 의식적으로 입을

꾹 닫고 묵묵히 사물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글로 옮김으로써 세상과 교류하고 있는 어쩌면,

세상과 벽을 쌓고 있는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 책에서 마리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건을 겪었는지는 일러주지 않는다. 띄엄띄엄 일기 속에 드러난 마리나의 심경을 통해

엄마와 아빠가 늘상 심각하게 다투었고, 십오 개월 전 그 날, 평소 별로 말이 없던 아빠가

격하게 화가 나서는 엄마를 향해 산성물질을 던졌는데 그것이 하필 마리나의 얼굴에 맞았던

것 같다고 독자는 유추를 해내야 한다. 그로인해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아빠는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엄마는 새 아빠와 살고 있다고... 그 일 이후

마리나는 입을 열지 않았고, 엄마는 마리나를 정신병원에 보냈으나 딱히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보통의 학교에 기숙학생으로 보냈다고... 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작가

혹은 마리나를 통해 표현되지 않고, 구석구석 보여 지는 짧은 몇 문장을 통해 얼거리를

짜 맞추듯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뿐 아니라 주인공의 이름이 ‘마리나’ 라는 것 또한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다. 그 이전까지는

그저 주인공인 화자는 나, 라는 것 밖에 알 도리가 없다. 오히려 나와 함께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는 일곱 명의 다른 학생들이 마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끊임없이 작품 속에 등장을

하고 사건을 만들어간다. 아주 소소한 사건들을...


작가는 호주에서 청소년 소설 분야의 꽤 권위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가족간의 정인지,

오해는 말로써 풀어야한다는 것인지, 또래 청소년에게는 모두 그만그만한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어쨌든 얼굴에 상처를 입고 입과 마음을 동시에 닫아버린 한 소녀가

주위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로 더불어 아빠와의 교감을 통해 마음을 열게 된다는...

그런 스토리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그러한 이야기의 구조를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면 새로울까. 아이의 깊은 고통에 접근하지 못한, 마리나처럼

가까이에서 빙글빙글 배회만 한 느낌이다. 매우 사실적이고도 직설적인 표현-아무래도 일기

체여서 그렇겠지만-과 구체적인 심리묘사는 읽는 이에게 속도감을 주고 있지만 근원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이 책에 후한 점수를

못 주게 한다. 물론 매우 잘 쓰여진 청소년 소설이라는 것은 알겠음에도 말이다.

 

아.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이 책은 저자가 교편생활을 할 때 직접 접한 아이의 실화라는 점.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리나가 심정적으로 좋아하는 매우 씩씩한 그러나 무언가 외로움이 느껴지던

리사의 일기가 출판되어 있다는 점이다. 할 말이 많아요2-리사의 일기,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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