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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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첫머리에 변호사 색슨버그에게 쓴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편지로 시작된다.

그리고 책의 중간중간에 편지를 쓴 주인공인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사담-색슨버그에게 말하는 일종의 팁이나 각주 같은 것-이 붙음으로써 이야기가 계속해서 프랭크와일러부인이 색슨버그에게 전해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나 중간 중간 드러난 팁을 읽을 때만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클로디아와 제이미라는 꼬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관찰자시점의 이야기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 부분에 큰 헛점과 반전이 있다. 시종일관 작가 관찰자 시점처럼 진행되던 클로디아와 제이미의 가출이야기는 두 아이가 프랭크와일러부인을 만나면서 첫머리 편지의 주인공과 일체가 되고, 색슨버그 변호사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낸다.

구성이나 진행방식이 상당히 독특한 책이라는 사실을 책장을 덮을 무렵에서야 알았다.  

책은 중반 이후까지 평이하게 읽혔다. 중산층 가정의 맏딸인 클로디아는 부모님의 지독한 차별대우-클로디아의 느낌으로 말하면 말이다-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결심한다. 가출상대로 자신의 두번째 남동생인 제이미를 선택하는데 제이미는 돈관리가 철저한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클로디아는 철저하게 가출 계획을 수립하고, 급기야 제이미와 함께 가출을 감행한다. 바로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말이다. 클로디아가 미술관을 가출장소로 선정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도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만큼 클로디아가 주도면밀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미술관에서 나름의 스릴을 즐기며 가출생활을 영위하던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미술관에서 새로 구입한 '천사상'이 진짜 미켈란젤로의 작품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클로디아는 미술관의 천사상이 진품인지, 가품인지를 밝혀낸 다음 영웅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 생전 처음보는 천사상이 진품이지 가품인지를 가려낼 방법은 도통 없다. 그러다가 클로디아는 미술관에 이 작품을 팔았다는 프랭크와일러부인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 프랭크와일러부인이 등장하게 된다.

프랭크와일러부인은 현자다. 80세가 넘었지만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집하고 공부를 한다.

그만큼 재력과 학식이 고루 있는 할머니로 클로디아와 제이미의 방문에 흥미를 느끼고, 그 아이들의 가출이야기를 듣는 조건으로 진품 천사상에 대한 증거물을 선물한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이 클로디아의 가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클로디아의 가출 때문이 아니라 클로디아가 갖고 싶어하는 비밀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비밀'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새롭게 제시한다.

"비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클로디아가 원했던 일이야. 천사상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클로디아를 설레게 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 클로디아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아. 클로디아에게 필요한 모험은 바로 비밀이야. 비밀은 안전하면서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비밀이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말이야." - 190쪽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대사

이렇게 작품은 단순한 아이들의 가출에서 시작되어, 비밀이 사람에게 전해주는 묘한 뉘앙스를 깨닫게 하게 하고, 한창 감수성이 여린 아이들에게 비밀스럽게 비밀을 간직하여 완벽한 인간이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매우 단조롭고 평이한 이야기라 생각하였는데 말미에서 이렇듯 크고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게 하였음이 작가 코닉스버그의 힘이었다는 판단이다. 또한 이렇게 주제가 주는 심오함 때문에 뉴베리 또한 이 책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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