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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연극, 숨쉬러 나가다>
공기 밖에 없는 무대, 그 곳에서 숨쉬는 이야기
연극 속으로..
조지볼링의 현실은 이렇다.
너무나 현실적인 아내, 징징거리기만 하는 아이들..
1차세계대전의 악몽에서 겨우 벗어나나 싶더니,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주위를 둘러봐도 평화와 안락, 그리고 유일한 취미라 볼 수 있는 낚시를 할 곳 조차 찾을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아내도 모르는 돈이 생기게 되고,
조지볼링은 어떻게 돈을 쓸까 고민하다 어린시절 자신이 살던 런던 외곽 마을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과연 그가 선택한 숨쉬기 위한 여정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나의 주인공, 두 명의 배우..
정말 오랜만에 연극을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공연의 주인공은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의 CY시어터에서 진행된 극단 신작로의 <숨쉬러 나가다> 였다. 내가 지금까지 본 연극이라고는 사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이다. 연극에 대한 지식이 미비할뿐 아니라, 가지각색의 여건이 항상 연극관람을 방해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관람하지 못할뻔 했으나, 이 공연만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연장을 찾았다.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연극 <숨쉬러 나가다> 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내 블로그의 리뷰들을 보면 보통 스토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리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제나 이야기 구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공연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그 이유는 차차 써보도록 하겠다.
일단, 이 연극은 2인극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연극이다.(물론 내 기준에서 독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은 단 두 사람의 배우만이 등장하고, 두 사람이 모든 역할을 맡아 플레이한다. 하지만 이 연극이 여타 2인극 공연과 다른점은 바로 두 배우 모두 주인공인 조지볼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극에서는 두 배우가 한 사람은 내면 적인 모습, 한 사람은 외형적인 모습의 조지볼링을 나눠 연기한다. 그렇기 떄문에 관객들은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며 조지볼링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게 된다.
나는 이같은 시도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작품은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이라하면 어떤 콘텐츠보다 시공간적 제약이 없는 매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에선 주인공의 내면 묘사는 물론 외면적인 활동등, 다양한 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이런 저런 제약때문에 그 모든 것을 보여주기는 매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 캐릭터를 소설처럼 정밀하게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조지볼링이라는 주인공 캐릭터를 두 사람이 나눠 연기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점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 "보기 어지러웠다." "햇갈리기만 했다." 등등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은 이 시스템의 극히 일부분의 단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조지볼링(주인공이자 극의 전부를 끌고 간다) 의 상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속의 조지볼링은 현재 우리나라 40대 가장처럼 즐거움이라곤 찾을 수 없고, 불안한 현실과, 짐만 되는 가족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캐릭터이다. 그런 캐릭터들에게 흔히 생각해볼 수 있는 모습은 바로 이중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중성 이란 겉으로는 사회에 맞춰나가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그나마 쥐고 있는 안락함을 떨치지 않기 위해 웃음을 지어야 하고, 속으로는 그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싶고, 타락하고 싶고, 그저 하룻밤 제대로 놀고 싶어하는 그런 감정을 말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감정과 이중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극에 나오는 조지볼링은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그 당시 영국의 사회가 그런 이중성을 억지로 주입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자. 1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 휘말려 전쟁을 마치고,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지만, 집에서고 밖에서고 즐거움이라곤 찾을 수 없는 현실. 그 현실 속에서 속마음까지 "이 사회와 가정을 내 손으로 튼튼히 지켜야지!"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게다가 사회는 전운의 폭풍이 몰아치려 하고 있었으니 그 마음은 더욱 극단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말이길어졌는데.. 아무튼 조지볼링은 이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극에서는 이런 이중성을 한사람이 소화하는 것이 아닌,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배우가 소화해내고 있다. 어찌보면 두 사람이 닮지 않아서, 무언가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을 받아서 어색하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반대의 긍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배우는 서로 닮지 않아서, 억지로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려 하지 않고, 한 사람은 조지볼링의 한쪽 모습을, 다른 한사람은 조지볼링의 또 다른 한 면을 연기했다. 그런 차별성때문에 조지볼링이 지금 처한 상황, 내면의 갈등, 그런 요소들을 아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좁은 무대, 그 이상의 상상력..
공연에 쓰인 요소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앞서 말한대로 이 연극은 단 두명의 배우가 나오는 2인극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무대 위에는 배우 2명을 제외하곤 어떠한 소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연극 공연을 보러가면 항상 감탄하는게 제한된 공간과 소품내에서도 극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표현해내는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그것은 정말 작은 소품, 작은 배치에도 디테일하게 신경을 써야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정말 잘꾸며진 연극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극의 재미를 떠나서 감동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이 연극은 어떨까?
앞서 말한대로 이 연극엔 어떠한 소품도 등장하지 않는다. 뭐 그리 성의 없는 공연이 다있냐고? 물론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을 끝까지 보게 되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말것이다.
사실 처음엔 나도 의아했다. 배우들이 하나씩 소품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연극이 끝날떄까지 어떠한 소품도 등장하지 않고, 오직 몇가지 색의 조명이 무대를 채우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런 비워진 무대가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말하려는 무대의 요소를 설명하려면 일단 극에서 어떤 장면들이 등장하는지를 간단히 설명하는게 좋을 것 같다. 이 극은 1930년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1910년 1차세계대전 이전의 영국도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조지볼링의 집이 나오고, 술집, 마을, 숲, 호텔 등등 꽤 다양한 장면이 나온다. 게다가 2인극이기 때문에 배우를 통한 장면전환을 보여주는것도 쉽지 않은 편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공연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정답은 바로 상상력이다. 배우들은 공간이 이동되는 것을 하나의 행동 약속(포스터에서 나오는 바로 그 장면!) 을 정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배우들의 그런 행동을 볼떄마다 아 이제 이동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어있는 사각형의 무대 곳곳을 누비며 입체적으로 활용한 배우들의 동선은 그 자체만을 따라가는것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졌다.
특히, 나는 조지볼링이 과거를 회상하며 숲의 어떤 호수를 찾아서 그곳에서 너무나 편한 표정으로 무대에 드러누운 장면이 인상에 남는데, 그 장면에서는 초록색 조명이 비춰지고, 조금 어정쩡한 위치에 배우가 누워 있었다. 그 단순한 조명에서 나는 숲을 그려볼 수 있었고, 어정쩡한 위치의 배우덕에 배우 앞으로 펼쳐질 호수를 그려볼 수 있었다.
공연은 모든 장면이 이런 방식이었다. 마치 공간 곳곳에 소품이 있다는듯 움직이는 배우의 동선과 연기, 그리고 적절한(조금 색이 부족한 것 같긴 했지만) 조명의 조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배경을 직접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이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치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어떤 의도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공적인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중요한건 스토리다!!
나는 스토리를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인지 어떤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스토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토리 외적인 부분은 환경적인 제약도 있고, 제작의 부분에서 미스가 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떄문에 잘 짜여진 스토리만큼 콘텐츠에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 <숨쉬러 나가다> 는 어떨까?
이건 사실 말해뭐해? 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원작자의 이름을 보자. '조지오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빅브라더로 유명한 <1984> 와 <동물 농장> 의 작가다. 난 사실 올해 처음으로 조지오웰의 작품을 읽었다. <1984> 를 시작으로 <동물농장> 을 연이어 읽었는데, 두 권을 읽자마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조지오웰을 올려버렸다. 그만큼 조지오웰의 작품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냐하면 작품 속 메세지는 분명 무겁고, 사회적인데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무거운 메세지를 무겁고, 어렵게 써버리면 그것은 메세지로서의 가치는 있더라도, 콘텐츠 적인 가치는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조지오웰은 콘텐츠적인 면에서도 '재미' 의 요소를 빠뜨리지 않음으로서 양쪽 모두에게 만족감을 줬다. 이런 조지오웰의 작품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사실 이 작품은 원작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아무튼 연극 내에서의 스토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원작이 있는 작품은 원작과 똑같이 만들거나 완전히 바꾸거나. 그러한 양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똑같이하면 똑같다고 욕먹고, 바꾸면 바꿨다고 욕먹는 것이 리메이크 작품의 숙명이니까 그런 면에서의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하겠다.
일단 스토리의 기본 틀을 보도록 하겠다.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갑갑하게 사는 샐러리맨 주인공이 우연히 돈이 생겨 과거 행복했던 고향을 보러 떠난다. 너무나 심플한 내용이다. 공연 내에서도 이런 심플한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래서일까? 너무나 쉬워서 너무나 이해가 잘되는 나머지 조금 심심한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함정이나 장치 그런 것보다는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이야기가 흐른다. 그래서 조지볼링의 떠안고 있는 감정의 변화 곡선이 뒤로 갈수록 조금 흐려지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조지볼링이 가지고 있는 갑갑한 마음, 그리고 그것을 탈피하여 숨쉬려 하는 모습등의 감정은 심플하고 다이렉트로 전해졌다는 장점은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연극을 보면서 내가 든 생각은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바로 <삼포 가는 길> 이라는 단편소설이었다. 이 작품에도 주인공은 전쟁을 마치고 삼포라는 고향을 향해 찾아가지만, 고향은 예전의 고향이 아니었고, 무분별한 발전의 먹이가 되버린 모습에 좌절하는 모습을 그리고있다.
이 작품 <숨쉬러 나가다> 는 <삼포가는 길> 에 비해서는 조금 더 개인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어쨌든 맥락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1930년대의 조지볼링이 2010년대의 우리의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역사가 아무리 돌고 도는것이라하지만 이토록 비슷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나 비슷했다.
사실 시놉시스를 듣고, 연출가 이영석 님과 함께 홍보용 방송 콘텐츠를 만들때 질문지에도 너무나 현시대와 잘맞는 이야기인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귀로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머릿 속으론 내가 당장 살고 있는 현실의 풍경을 그리게 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감 있는 스토리, 그 안에서도 이야기적 재미를 놓치지 않은 점에 있어서 이 연극을 스토리적인 면에서도 재밌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바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상당히 큰 만족감을 가지고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 역시 존재했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엔딩 부분이었다. 사실 생각보다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엔딩장면에 어리둥절해서 아직 그때의 기억이 잘 살아있지 않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엔딩이 정말 급작스러웠다. 물론 예측하지 않은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끝나진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껏 공연이 선사해줬던 상상력의 정점을 찍으려는 방식이었을수도 있고, 여운을 남기는 엔딩.. 그것이 조지볼링의 감정을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할수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이해를 한 편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만 엔딩부분은 조금 더 꽉 채워지길 바랐던 마음이 있었는지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것도 개인차일테지만 어쩌면 공연 시간 내내 큰 만족감을 느껴서 그에 비례한 아쉬움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며..
지금까지 연극 <숨쉬러 나간다> 라는 연극 작품의 개인적인 리뷰를 써보았다. 오랜만에 쓰는 리뷰라 무슨 말을 썼는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은 그거다. 이 연극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캐릭터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장치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외, 단점의 나무는 이런 장점의 숲에 감출 수 있다.)
그렇기 떄문에 기회가 된다면, 재공연의 시간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는것을 추천 하는 바이다. 특히 한국 3,40 대 남성분들 필수로 보길 바라는 바이며, 조지오웰의 원작 소설 <숨쉬러 나가다> 도 꼭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 드리는 바이다.
무대 위엔 두 배우와
공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숨막혔고,
그래서 더 숨 쉴 수 있었다.
연극 <숨쉬러 나가다>
★ 달문‘s 추천 지수 ★
★ 관람를 추천 드립니다.
신선한 공연을 보고 싶으신 분.
상상력이 뛰어나신 분
조지오웰의 작품 세계를 좋아하시는 분
★ 관람을 자제해 주세요.
꽉 차있는 공연을 좋아하시는 분
공연 시간이 짧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