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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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자가 있다. 멋진 남자를 만났다. 사랑에 빠진다.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리저리 비판받기도 하지만, 자주 사용된다. 통속적이면서도 많은 이들의 꿈, 환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컨셉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는가의 문제다. 아무리 가난한 주인공이 재벌을 만나서 연애한다고 해봐도 그 주인공이 남자에 목 메기만 해서는 신데렐라 자격 박탈. 백안시 당하는 신데렐라가 되기 마련이다. 수동적인 신데렐라보다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능동적인 신데렐라가 좋다는 말이다. 가끔씩 왕자님을 튕기기도 해야지. 그런 면에서 스타터스의 주인공 캘리는 십점 만점이다.

 

10대의 몸을 빌리는 노인들

일단 스타터스의 설정부터 보자. 미래,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는 대량 전쟁을 위한 포자가 뿌려진다. 살아남은 것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먼저 백신을 맞은 10대와 노인들 뿐이다. 조부모도 부모도 없는 미성년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힘겹게 살아가게 된다. 캘리는 그렇게 전쟁 통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병약하고 어린 동생 타일러를 돌보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프라임 데스티네이션, 통칭 바디 뱅크를 찾아가게 된다. 아름답고 건강한 10대의 몸을 노인층, 엔더들에게 빌려주는 회사. 마지막 렌탈인 3회 째의 렌탈 중 캘리는 렌탈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채로 클럽에서 깨어나게 된다. 캘리가 깨어나게 된 이유와 바디 뱅크의 음모는 과연 무엇일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매가 울면, 날아야 할 시간.

우리가 도망가야 한다는 의미로 아빠가 떠나기 전에 남긴 암호였다. 집행관들이 우리를 잡으러 올 거였다. 나는 더 알고 싶었다. 나는 답장으로 징을 보냈다. 아빠, 편찮으세요? 그 사람들이 그걸 알아요?

아빠는 그 암호만 반복할 뿐이었다. -p.364-5

 

SF 버전 신데렐라

스타터스는 말하자면, 신데렐라의 SF버전이다. 소설 내에서 아예 대놓고 주인공 캘리가 자신의 처지를 신데렐라와 빗대고는 한다. 영어덜트의 효과인지 SF임에도 분위기도 동화스럽다. 그러니까 이렇다. 가난한 아가씨 캘리는 바디뱅크(요정?)의 몇 가지 수술(마법)으로 미인이 되고, 클럽(무도회)에서 블레이크(왕자)를 만나게 된다. 게다가 쫓겨나는 중에 구두가 벗겨지고 그걸 블레이크가 주워 드는 건 그야말로 신데렐라 패러디다. 캘리도 왕자님한테 끌리고, 그 왕자님도 캘리가 좋단다.  

 

신데렐라가 그 멋진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신나게 즐겼던 밤에, 왕자에게 고백하려고 한 적이나 있나? 오 그런데요 왕자님, 저 마차는 제 것이 아녜요, 전 실은 더부살이 하고 있는 지저분하고 가여운 맨발의 청소부일 뿐이거든요. 이런 고백을 하려고 생각이나 했느냐 말이야. 아니지. 신데렐라는 그저 순간을 즐겼잖아.

그러고 나서 자정이 지나자 조용히 사라졌을 뿐.

-p.145-6

 

 사랑이 전부는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냥 평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캘리는 이런 왕자님과의 인연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블레이크를 좋아하지만, 동생이 우선이다. 목적을 위해 이용(?)하기까지 한다. 이런 당돌한 신데렐라를 보았나. 마음에 들었다. 캘리의 우선순위에서 사랑은 생존과 동생 다음이다. 캘리는 생존이 걸린 싸움을 하는 중에 사랑은 사치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블레이크에게 이끌리는지도 냉정하게 분석하고는 한다. 캘리가 처한 상황은 신데렐라같지만, 그 환경을 대하는 캘리의 태도는 다르다.  사격이 특기인 멋진 미녀 스파이가 연상되는 것은 나 뿐이려나? 애초에 로맨스 비중보다, 캘리의 싸움에 좀 더 비중이 실려있기도 하다. 

 

신데렐라가 맞기는 했던가?

그 무엇보다, 이 소설의 특이점은 막판에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친 반전에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키다리 아저씨, 아니, 미녀와 야수인가. 캘리는 잠든 사람들을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고 전진한 왕자, 아니면 오즈를 도망가게 한 도로시일지도 모르겠다. 연상되는 동화가 왜 이렇게 많지?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얼굴 없는-어쩌면 너무 많은-CEO인 올드맨의 정체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읽으면서 이리저리 고민을 할 것이다. 나도 올드맨이 사실은 얘 아닐까, 쟤 아닐까 무척이나 고민을 했더랬다. 작가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고 그동안의 신데렐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이런 혼란은 역시 바디 뱅크라는 시스템때문에 야기되는 것. 작가는 캘리를 통해 십대들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엔더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갈망이란.

 

동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동화는 이제 시작이다. Happy ever after 같은 분위기에서 끝났지만 정말로 끝난 것은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께서는 시대에 맞춰 열기구 대신 헬기를 타고 To be continue라고 말하며 달아나셨다. 그러니까 올드맨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특히 캘리의 연애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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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당신? 1 블랙 로맨스 클럽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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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드라마 <49일>을 참 재미있게 봤었더랬다.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지만, 판타지스러운 소재에 끌렸었다. 유치한 것도 그것대로 재미있었던 49일. 이종호 작가의 『누구세요, 당신?』의 설정을 보고 바로 떠올렸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던 부잣잡 아가씨가 가난한 여자의 몸에 들어간다는 설정이 겹쳤으니까. 그리하여 받아 본 『누구세요, 당신?』은 두 권이었다. 



 


부잣집 아가씨, 죽어버리다.

27세의 양희진은 부잣집 아가씨로 허영심이 크고 철이 없다. 그녀의 남자친구 성우는 발라드 가수였으나 이번에 댄스가수로 성공인 재기를 한다. 그의 인기가 올라가며 희진과 성우 사이는 벌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희진은 성우의 아이을 가지게 되고 클럽에서 만난 민찬기와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는 1년간 식물인간으로 있는 지영과 그녀의 남편 영수, 아들 지호의 옆에서 그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희진은 식물인간인 지영의 몸에 들어간다. 자신을 배신한 성수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지영과 자신의 얽힌 끈을 풀기 시작한다.


인물 분량이 좀 달랐으면 좋았을 걸

희진이 죽기 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고, 희진이 죽고 나서의 전개는 예상보다 빠르다. 2권에 들어가서야 희진이 지영으로 깨어난다. 뒤쪽의 이야기를 좀 더 늘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영수의 비중도 늘어났을 테고. 소설 상에서 운명적 만남으로만 치부되는-물론 작품 자체가 운명론에 많이 기대고 있기에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의 감정 변화가 좀 더 자세히 드러났을 수도 있을 텐데. 초반에 중요하게 나왔던 민찬기가 이후로 언급도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후반부 태진의 대사에서 찬기의 접근이 의도된 것이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다.어쩐지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다. 그리고 표지에 나올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지영의 이미지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스토리 상 등장이 얼마 없는 탓이다.


의외로 비중 높은 엉터리 퇴마사들

초반에 희진의 이야기만큼이나 비슷한 비중으로 진행되는 타임라인이 하나 있다. 엉터리 퇴마사 선일과 진만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대체 이들이 무슨 상관이야? 로맨스랑은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데?' 싶다. 물론 나중에 희진이와의 접점이 생기고 두 이야기가 섞여 들어간다. 이들의 엉뚱한 퇴마는 희진의 이야기와 이상하게 엮인다. 소위 말하는 운명의 그물, 엮임이라고 해야할까? 공포 소설을 쓰던 이종호 작가가 귀신을 소재로한 로맨스를 쓰면서 퇴마 에피소드를 넣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전체적으로 봐도 이들이 영수나 성우, 지영보다 출연도가 훨씬 높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이들이 아닐까? 개그로 보나 출연 횟수로 보나 말이다.


 


 

 


정감 가는 캐릭터, 희진

책은 쉽게 놓을 수 없다. 희진이라는 철 없는 아가씨의 행동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절대 누리지 못할 상류사회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 아가씨가 정말 귀엽다. 아무 것도 모를 때도 나름대로 정감 가기는 했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도 보기 좋다. 성우의 경우 그리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남자로만 보였다. 성우가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옆의 태진이 너무 극성맞았기 때문이리라. 노래하는 영수도 정말 매력적일 것같은데. 이쪽은 좀 답답한 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희진이가 옆에서 잘 채워줘야겠지. 


 

"그 사람, 절대로 그럴 사람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예전엔 나도 몰랐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처럼 생각하면서 사는 건 아니더라."

-2권 177쪽


 

"여긴 왜 오신 거예요?"

희진이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가족이니까요. 가족은 함께 지내야 하잖아요."

-2권 255쪽



드라마 판권이 팔렸다던데

<누구세요, 당신?>이 쉽게 읽히는 것은 역시 번역서가 아닌 덕도 크다. '청담동 명품녀', '된장녀'등의 친숙한 표현들이 감칠맛 난다. 잘 알고 있는 정서와 설정이 익숙함을 부여한다.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 모든 책이 이렇게 술술 넘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직접 드라마를 보듯이 영상이 머리에서 쉽게 펼쳐진다. 실제로 출간도 되기 전에 드라마 판권도 팔렸다고 들었다. 드라마가 나온다면 정말 괜찮을 것같다. 특히 기대되는 것은 노래 '기억해'가 어떻게 나올지이다. 누가 영수의 목소리를 표현해낼 수 있을까?



어쨌거나, 두 권이라는 분량에 비해 빨리 읽어버렸다. 호러 작가가 쓴 소설인데도 전혀 안 무서웠다. 일부러 분위기를 밝게 만든 면이 있다. 퇴마사들도 유령들도 철이 없고 재미있다. 며칠 후면 이종호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가는데,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이종호 작가가 썼다는 다른 공포 소설들도 호기심이 생긴다. 그쪽도 감칠맛 날 것같다. 더 무섭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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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스 기숙학교의 마녀들
리바 브레이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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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 브레이의 『스펜스 기숙학교의 마녀들』이 출간된 때는 작년, 내가 런던 생활에 겨우 적응해 정신 없이 보내던 때였다. 당연히 스쳐지나가며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서점에서 보자마자 펄이 반짝이는 까만 표지에 끌렸다. 제목을 보아하니 판타지. 또 보니까 학원물. 뒤쪽 광고문구를 보니까 영국 빅토리아 시대다. 고민할 게 뭐 있나. 사는 거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아닌가. 



환상을 보는 소녀

제머 도일은 인도에서 자랐다. 이제 10대 중후반, 런던 사교계에 멋지게 데뷔해서 멋진 남자도 만나고 싶지만 어머니는 도대체 제머를 영국에 보낼 생각을 안 한다. 이에 뿔이 난 제머는 어머니에게 모진 소리를 한 후 달려가버린다. 그렇게 달려가던 중 자신을 잡아끄는 환상을 보게 되고, 그 환상 속에서 어머니가 검은 그림자를 피해 자살하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의 자살 이후 제머는 슬픔을 안은 채 런던의 여자 기숙학교로 가게 된다. 그 '환상'의 비밀을 밝혀가는 것이 바로 제머가 해가는 일이다. 어쩌다 발견한 메리-정체야 뻔하다-의 일기장, 환상의 능력을 쓰지 말라는 남자, 제머를 찾는 마녀 키르케. 이것이 바로 환상으로 대변되는 마법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따돌림 당하는 전학생
그렇지만 현실은 바로 학교 생활 적응. 스펜스 기숙학교의 삶은 쉽지 않다. 여학생들이 모이면 언제나 그렇듯 '무리'가 있고, 그 무리 중에서도 소위 제일 잘 나가는 '아가씨들'이 있다. 제머는 그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하고, 룸메이트인 앤과만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지만 앤 또한 마뜩찮다. 제머는 사실 상당히 말괄량이면서 복잡한 심성의 소유자라 제머의 마음에 꼭 드는 인간이 있을리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이런저런 사건이 생기고, 사이 안 좋은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어울리는 친구들-제머는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라도-이 생긴다. 여왕같이 군림하는 여왕벌 필리시티, 아름답고 낭만적인 피파, 소심한 완벽주의자 앤이다. 서로 내키지 않는 상태로 모임을 만들게 된다.

"앤을 끼워주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냐. 저애의 삶이 우리의 삶과 같을 수 없을 뿐이지. 넌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바깥 세상에서 저애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아. 괜한 친절로 오해하게 만드는 게 더 잔인한 짓이야." -p.89

 

 

 


현실과 환상
현실과 환상의 이야기는 겹칠 것같지 않으면서도 잘 섞여 들어간다. 초반부에는 환상보다는 현실 쪽에 더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후 환상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현실의 관계들도 더욱 견고해진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의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라고 하면 낭만적이고 화려한 문화라고 인식이 되지만, 실상 그 안에서 살고 있던 소수의 고위 계층 남성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사회였다. 숙녀가 되기 위해 교육 받는 아가씨들 사이에도 엄연한 신분격차가 존재하고, 괜찮은 젠트리 계층이라고 해도 절대 여성에게는 쉽지 않은 사회.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은 숙녀의 흠집이 되고 자신의 사랑마저 숨겨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환상은 이 숙녀들에게 현실에서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나이 많고 뚱뚱한 약혼자로부터, 여성이라서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하는 억압으로부터, 못생긴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죄책감으로부터. 그리고 도피의 결과 그들은 변해간다. 처음부터 돈독한 우정으로 시작했던 사람들마저 틀어졌으니, 이 마약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가 처음부터 서로 별로 탐탁찮아하던 그들의 관계에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그 옛날의 아가씨들은 사라졌어. 죽어서 땅에 묻혔지.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여자들이야." -p.333
'내가 세상을 바꾸면 세상이 나를 바꾼다.'-p.357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서로를 못마땅해하던 아이들을 환상이 묶고, 서로 이해하는 친구가 되나 싶었다. 실제로 비밀을 공유했다는 사실, 서로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우정이 생겨나고 친구가 된다. 하지만 갈라진다. 현실에 무너져 환상을 선택하는 이, 환상에 현혹되어 현실을 배반하는 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끝내는 이. 이게 끝인 줄 알았다. '스펜스 기숙학교의 마녀들'은 단권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짜여졌고,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시리즈물이더라. 회수 안 된 떡밥들이 있긴 한데. 무어 선생님 과거라거나, 시작이 된듯 만듯 한 카르틱과의 로맨스, 앤의 톰에 대한 연정 같은 것. 영 어덜트는 역시 시리즈인 걸까. 근데 문학동네에서 이 이후 이야기는 나올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내 취향!
스펜스 기숙학교의 마녀들은 리바 브레이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첫 소설 치고는 꽤 괜찮다. 여러가지 요소를 잘 섞었다. 절대 내 취향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아니, 내 취향이라서 하는 소리인데 재미있다. 일단 로맨스 요소는 영어덜트 치고 그리 많지 않다. 시리즈 진행되면서 로맨스가 강화되겠지만 적어도 이번 권에서는 상당히 약했다. 학원물로서도 괜찮고-저게 진짜 여학교지-, 판타지이면서, 무엇보다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이니까! 근데 진짜 다음 권 안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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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와 매 제우미디어 게임 원작 시리즈
전민희 지음 / 제우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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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었다. 작년에 출간된 덕에 사인회고 뭐고 전에 읽을 수조차 없었던 책. 전민희 작가의 『전나무와 매』이다. 전나무와 매는 다들 알다시피 아키에이지 세계관의 이야기이다. 책도 읽기 전에 이야기는 잔뜩 들은 터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게임의 프롤로그 격이라고, 덜 끝난 느낌이라고들 많이 말했으니까. 



전나무의 딸 키프로사

전나무와 새의 전체적인 주인공은 진이라고 보이지만, 진과 관련 없는 주인공이 하나 있으니 바로 키프로사. 북방 영주의 손녀이지만 부억데기로 자란 소녀다. 사실 책에 실린 키프로사의 이야기는 다 온라인 상에서 공개된 것이었다. 네이버에 올라왔던 단편 <눈의 새>와 아키에이지 홈페이지의 키프로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그림자 성>이 실려있다. 그 외의 이야기는 없다. 키프로사의 이야기는 딱히 뭔가 일어났다거나 시작되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대신 차디찬 북방의 얼어붙은 바로 그 모습 그대로만을 보여준다. 키프로사를 둘러싼 관계, 그녀의 성장을 보여준다. 세계의 수도 델피나드에 가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라지만 별 거 없다. 키프로사도 크게 변한 것이 없고 주위 상황도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차이라면 새의 거취 뿐이랄까. 


"약속해줘, 세계의 수도에 간다고. 내 대신 그곳 하늘을 날아준다고. 꼭 그래줘."-p.168


매의 검 진

진의 이야기는 키프로사의 이야기에 훨씬 격정적이다. 키프로사에 비해 할당된 페이지 수도 훨씬 높다. 책 제목은 '전나무와 매'라지만 '매와 전나무'라고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헛소리는 뒤로 미루고, 진은 일단 태생부터가 왕의 적자로 스펙터클한 인생을 예고한다. 아기 때부터 사선을 넘나들고 자라서는 전쟁까지 한다. 진은 길거리에서 자란 탓에 평민들과 쉽게 소통하고, 검술도 승마도 잘 하는 완벽한 왕자님 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진이라는 이름 또한 본명이 아니고 거리에서 신분을 감출 때 사용했던 이름이다. 본명은 폴리티모스, 근데 역시 진이라는 이름이 더 정감 가는 것같다. 진의 이야기는 영웅으로 태어난 왕의 서자라면 당연히 겪을 법한(?) 뻔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워낙 전민희 작가가 이야기를 세련되게 이끌어가다보니 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몰입하게 된다. 진의 에피소드 또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멈췄지만, 프롤로그인데도 워낙 굴곡이 많다보니 진행되다가 중간에 멈췄다는 인상이 강하다. 


"델피나드에 가시면 근사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왕자님이 왕자님이든 아니시든 개의치 않고 사랑하는 강하고 똑똑한 아가씨 말이죠."-p.350




책 속에는 없는 접점

전나무와 매에서 키프로사와 진의 교차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끝부분에 진과 키프로사의 만남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대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 뿐일 뿐.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아키에이지의 세계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의 태는 진만이 알고 있고, 키프로사는 그것조차 모른다. 물론 그 둘이 후에 델피나드에서 만날 것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후로 아키에이지 세계관의 소설이 계속 출간될 것이라고는 하나, 그 때는 키프로사와 진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키에이지의 다른 인물들이 델피나드에 가기 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물론 그 때에 다른 주인공들이 겹쳐 등장하는 것 정도는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진짜 중요한 후의 이야기는 '게임에서 확인하세요'라고 말할 것같은 것은 내 착각일까? 아니, 착각이 아니겠지. 애초에 이 세계는 게임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말이다. 



사실 나는 게임을 해볼 생각이 없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쉽게 그만둬버리기도 하고, 그리 열정적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컴퓨터가 못 받을 듯 하다. 게다가 너무 빠지면 다른 건 다 뒷전으로 미룰 것이 뻔하기 때문에라도 하지 말아야한다. 그래도, 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손대볼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못 보는 건 확실하지만. 역시 책으로 나오는 부분만 보는 게 나한테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인물은 열두 명이나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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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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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베스트 도전 만화에 <한글을 그리다>라는 웹툰이 있다. 한글을 가지고 이것저것 형상을 만드는 웹툰이다. 그 만화를 보고 외국인이 가지고 있던 한글 도메인을 사왔다는 사람도 있을만큼 인기가 좋다. 붓으로 쓰는 캘리그라피야 각광받은지 꽤 되었다지만, 이렇게 한글 자체를 그림으로 바꿔버리는 타이포그래피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멸종』의 표지도 그런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그림이다. <한글을 그리다>처럼 전부 한글만으로 그린 그림은 아니고 부수적인 다리도 달려있지만 이런식으로 문자를 그리는 게 낯설면서 재미있게 다가왔다. 3년 전, 물론 이런 시도를 한 게 처음은 아니겠지만 색다른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책 표지가 그런 일러스트니까. 





공룡 시대로 시간 여행

멸종은 표지 뿐만이 아니라 내용까지 내가 좋아할만한 요소가 많았다. 일단은 그 소재. '시간 여행!' 워낙 시간여행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라서 시간여행이 나오자마자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두 고생물학자 브랜든과 클릭스는 시간여행을 통해 6500만년 전의 지구로 가게 된다. 공룡이 멸종한 원인을 조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타임머신으로 공룡 시대로 간 두 고고학자... 왠지 쥬라기 공원 같을 거같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지구의 가벼운 중력, 새로운 별, 이상한 생물 등. 이거 단순한 시간 여행이 아닌데?


 


하드 SF?

로버트 J 소여는 스스로를 하드 SF 작가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하드 SF가 뭐냐면, 소프트 SF가 아닌 SF. 과학적 이론과 가설 등을 좀 더 파고 들어 거기에 기반을 내리고 있는 소설을 말한다. SF에서도 과학 이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 제각기. 어떤 건 그냥 판타지라고 보일 정도로 가볍기도 하지만 어떤 건 정말 묵직하게 복잡한 과학 이론을 가져오기도 한다. 소프트 SF라면 내가 아는 한에서는 배명훈을 들 수 있겠다. 하드니 소프트니 하는 게 상당히 주관적이기는 하다.  나야 SF 전문가가 아니니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판타스틱에 올라온 칼럼을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로버트 소여는 자칭 하드 SF작가 답게 소설 내에서 탄탄한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해나간다. 공룡 멸종에 관련된 수많은 이론을 들이대며 운석 충돌설에 대해 반박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하드 SF라고 해도 대부분은 허구다. 가설이 가지는 구멍을 파고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로버트 J 소여는 정말 멸종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정말 말도 안 될 거같은 이야기를 들이민다. '사실 원래 이랬어'라며. 그런 과학소설다운 엉뚱함이 멸종의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판타스틱 칼럼 - 하드 SF란 무엇인가[클릭] 

 

 


 

가끔씩 나오는 일러스트 보는 맛도 쏠쏠하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선택
타임라인과 변화, 우주와 생명의 기원. 미래와 과거. 그리고 계속되는 선택. 시간여행, 특히 타임 패러독스를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바꾸는 백 투더 퓨처 식의 시간여행에서는 선택이 무척 중요하다. 우유부단했던 브랜든이 선택으로서 인류를 구하고-선택지가 별로 없었다지만- 그럼으로써 가정의 행복을 되찾은 건 시간선을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게한 결단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거기에서 아픔을 얻었지만 적어도 브랜든에게는 완벽한 결말 아니었나 싶다. 이 타임라인의 브랜든과 저 타임라인의 브랜든 사이의 차이가 처음에는 나도 혼란스럽게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뭐 읽다보면 그냥 알게 된다. 소설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이 있다. '행동하지 않는 건 그 자체로서 하나의 결단이다'. 그래, 우유부단함도 선택이지. 제대로 된 선택을 하려면 행동해야겠지만, 행동하지 않음도 하나의 선택이다. 결국 브랜든은 행동함을 선택하게 되지만. 

그러나 바로 지금 이곳에 와 있는 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나는 몇 년 동안이나 결단을 내리는 일을 피해왔다. 그러나 결단을 내린다는 행위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며, 생물관 단지 생물을 흉내 낼 뿐인 헤트 같은 존재들을 구별하는 관건이다.  -p.363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았던 멸종
멸종 정말 재미있었다. 표지부터 내용까지, 내지 디자인까지 전부 마음에 들었다. 모든 SF가 이런 식이라면 난 정말 다 읽을 거 같다. SF가 나랑 맞지 않는 장르는 아닌데 왜 난 잘 안 읽고 있는 거지? 많이 읽어야겠다. 일단 3대 판타지 작가들 작품부터 읽어야할까. 하드 SF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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