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터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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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자가 있다. 멋진 남자를 만났다. 사랑에 빠진다. 이런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리저리 비판받기도 하지만, 자주 사용된다. 통속적이면서도 많은 이들의 꿈, 환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컨셉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는가의 문제다. 아무리 가난한 주인공이 재벌을 만나서 연애한다고 해봐도 그 주인공이 남자에 목 메기만 해서는 신데렐라 자격 박탈. 백안시 당하는 신데렐라가 되기 마련이다. 수동적인 신데렐라보다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능동적인 신데렐라가 좋다는 말이다. 가끔씩 왕자님을 튕기기도 해야지. 그런 면에서 스타터스의 주인공 캘리는 십점 만점이다.

 

10대의 몸을 빌리는 노인들

일단 스타터스의 설정부터 보자. 미래,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는 대량 전쟁을 위한 포자가 뿌려진다. 살아남은 것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먼저 백신을 맞은 10대와 노인들 뿐이다. 조부모도 부모도 없는 미성년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힘겹게 살아가게 된다. 캘리는 그렇게 전쟁 통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병약하고 어린 동생 타일러를 돌보며 근근히 살아간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프라임 데스티네이션, 통칭 바디 뱅크를 찾아가게 된다. 아름답고 건강한 10대의 몸을 노인층, 엔더들에게 빌려주는 회사. 마지막 렌탈인 3회 째의 렌탈 중 캘리는 렌탈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채로 클럽에서 깨어나게 된다. 캘리가 깨어나게 된 이유와 바디 뱅크의 음모는 과연 무엇일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매가 울면, 날아야 할 시간.

우리가 도망가야 한다는 의미로 아빠가 떠나기 전에 남긴 암호였다. 집행관들이 우리를 잡으러 올 거였다. 나는 더 알고 싶었다. 나는 답장으로 징을 보냈다. 아빠, 편찮으세요? 그 사람들이 그걸 알아요?

아빠는 그 암호만 반복할 뿐이었다. -p.364-5

 

SF 버전 신데렐라

스타터스는 말하자면, 신데렐라의 SF버전이다. 소설 내에서 아예 대놓고 주인공 캘리가 자신의 처지를 신데렐라와 빗대고는 한다. 영어덜트의 효과인지 SF임에도 분위기도 동화스럽다. 그러니까 이렇다. 가난한 아가씨 캘리는 바디뱅크(요정?)의 몇 가지 수술(마법)으로 미인이 되고, 클럽(무도회)에서 블레이크(왕자)를 만나게 된다. 게다가 쫓겨나는 중에 구두가 벗겨지고 그걸 블레이크가 주워 드는 건 그야말로 신데렐라 패러디다. 캘리도 왕자님한테 끌리고, 그 왕자님도 캘리가 좋단다.  

 

신데렐라가 그 멋진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신나게 즐겼던 밤에, 왕자에게 고백하려고 한 적이나 있나? 오 그런데요 왕자님, 저 마차는 제 것이 아녜요, 전 실은 더부살이 하고 있는 지저분하고 가여운 맨발의 청소부일 뿐이거든요. 이런 고백을 하려고 생각이나 했느냐 말이야. 아니지. 신데렐라는 그저 순간을 즐겼잖아.

그러고 나서 자정이 지나자 조용히 사라졌을 뿐.

-p.145-6

 

 사랑이 전부는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냥 평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캘리는 이런 왕자님과의 인연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블레이크를 좋아하지만, 동생이 우선이다. 목적을 위해 이용(?)하기까지 한다. 이런 당돌한 신데렐라를 보았나. 마음에 들었다. 캘리의 우선순위에서 사랑은 생존과 동생 다음이다. 캘리는 생존이 걸린 싸움을 하는 중에 사랑은 사치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블레이크에게 이끌리는지도 냉정하게 분석하고는 한다. 캘리가 처한 상황은 신데렐라같지만, 그 환경을 대하는 캘리의 태도는 다르다.  사격이 특기인 멋진 미녀 스파이가 연상되는 것은 나 뿐이려나? 애초에 로맨스 비중보다, 캘리의 싸움에 좀 더 비중이 실려있기도 하다. 

 

신데렐라가 맞기는 했던가?

그 무엇보다, 이 소설의 특이점은 막판에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친 반전에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키다리 아저씨, 아니, 미녀와 야수인가. 캘리는 잠든 사람들을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고 전진한 왕자, 아니면 오즈를 도망가게 한 도로시일지도 모르겠다. 연상되는 동화가 왜 이렇게 많지? 프라임 데스티네이션의 얼굴 없는-어쩌면 너무 많은-CEO인 올드맨의 정체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읽으면서 이리저리 고민을 할 것이다. 나도 올드맨이 사실은 얘 아닐까, 쟤 아닐까 무척이나 고민을 했더랬다. 작가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고 그동안의 신데렐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이런 혼란은 역시 바디 뱅크라는 시스템때문에 야기되는 것. 작가는 캘리를 통해 십대들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엔더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갈망이란.

 

동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동화는 이제 시작이다. Happy ever after 같은 분위기에서 끝났지만 정말로 끝난 것은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께서는 시대에 맞춰 열기구 대신 헬기를 타고 To be continue라고 말하며 달아나셨다. 그러니까 올드맨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특히 캘리의 연애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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