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몸 - 여성의 몸 수치의 역사 한길 히스토리아 6
한스 페터 뒤르 지음, 박계수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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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리어왕」4막 4장 126행에서 이렇게 썼다. (텍스트가 옆에 없는 관계로 약간의 오차가 있다만) <그들은 켄타우로스의 후예 / 허리 위로는 신의 창조물이지만 / 허리 아래로는 악마의 소유물 / 그곳은 지옥이며 유황이 지글지글 끓는 구렁텅이다 / 더럽다, 더러워, 펫, 펫!> 여성의 성기에 대해 혐오을 표한 예술가는 셰익스피어 뿐만 아니다. 라블레도 그러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성의 쾌락 자체를 혐오했다. 살바드로 달리는 여성의 성기에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어서 성관계를 기피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남색을 했다나. 표지는 에곤 실레의 그림인데, 그의 스승인 클림트도 외음부에 대한 외설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단다. 그림 제목이 기억나진 않지만, 나체의 임산부가 횡으로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임산부의 나체를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는 클림트가 처음이었단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저자가 긍정을 표하는 예술가는 클림트 뿐인 듯하다.

이 책은 여성의 음부에 가해진 수치, 수치의 역사에 대한 엄청난 자료를 토대로 씌어졌다. 주석이 무려 200페이지나 된다. 삽화도 엄청나다. 책읽는 재미보다 삽화보는 재미가 더욱 솔솔하다. 여성의 성기를 <지옥의 심연>처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나, 중세의 풍자 삽화, 남자 조산원과 의사에 대한 풍자 삽화 등은 보는 재미를 자극한다. 얇지 않는 이 책을 순식간에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외음부의 수치심에 대한 연구 대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타히티섬은 물론이고 오지의 원시족들까지 파고들어서 부족함이 없다. 외부부의 수치심에 대한 역사 연구는 고대에서부터 현대를 아우른다. 일본의 경우는 외음부를 숭상했다며 저자는 친근감을 내비치기도. 일본에 대한 일화 하나. 1900년대 초반, 어느 목욕탕에 불이 나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 외음부가 남들에게 보여질까봐 안 뛰어내리고 그냥 타 죽었단다. 그후로 한 페미니스트는 기모노 속에도 팬티를 입으라고 주창하고 다녔다지만 기모노 속에 속옷을 안 입는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유럽에서도 조선시대처럼 임산부들에게 진찰하는 의사의 문제가 골치였던 모양이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와 남자 조산원들은 수치의 역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임산부를 진찰할 때 의사가 앉는 자세며, 손가락을 집어 넣는 자세며, 그런 것들의 디테일한 발전과정 등등이 아주 상세히, 자료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늘 수치심 자극의 요소였고 문제였으면서도 유럽에서는 여의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남자들의 권위 문제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후에 손가락으로 임산부를 진찰하는 것은 해롭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계속 손가락으로 진찰하는 의사 나부랭이들이 있었다 한다. 임산부를 진료할 때 각종 진료자세란 것도 있었는데, 그중 암소 자세란 것도 있었다. 섹스할 때의 후배위가 그것이다. 환자에게 그런 자세를 강요하고 의사가 진료를 했단다.

검경의 사용에 대한 쇼킹한 사건 하나. 18세기 무렵의 프랑스에서는 매춘이 의심되는 여자를 경찰들이 검경으로ㅡ게다가 정기적으로ㅡ검문을 할 수 있었다 한다. 어느 부인이 열여섯 난 딸과 함께 귀가 중이었는데, 불쑥 나타난 경찰관이 경찰서로 끌고 가서 검문을 하려니, 부인은 옷을 벗지 않고 버텼다. 그래서 수감되었다. 부인은 너무나 원통해서 강물에 투신했다. 임신여부를 확인한다는 검경을 경찰관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쇼킹하다. 현대에 들어서도 남자 산부인과 의사의 문제는 여전하다. 그들은 환자를 두고 전문적인 용어를 지껄이며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환자의 수치심을 고려해서 부러 기계적이고 거칠게 진료를 하는 경우도 있단다. (나는 남자이고 게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으므로 잘 모른다. 그저 이 책을 읽었을 따름이므로 요즘의 산부인과가 어떤 지는 전혀 모름)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법과 내가 생각하는 해결법도 같다. 산부인과 의사는 여자가 하면 되는 거다! 남자가 왜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거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서문과 부록이 주로 엘리아스에 대한 공격으로 이루어져 있고, 본문에서도 틈틈이 엘리아스를 공격한다. 저자는 엘리아스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가진 듯싶다. 정도를 지나치고, 감정적이어서, 저자가 방대한 자료로 써낸 이 책의 독서를 저해한다. 게다가 중구난방이라는 감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나 방대한 자료 탓일까?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문제 제시는 있는데, 그것으로 결정적인 결론이나 요지를 발견하거나 도출하기가 어렵다. 외음부에 대한 수치심에 대한 묘사가 엄청나지만, 그래서 어쩌라구? 에 대해서는 빈약하다. 이 책은 나체와 수치의 역사, 은밀한 몸, 음란과 폭력 ㅡ 연작이고, 2부에 해당하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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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궁금하네요, 왜 엘리아스를 공격하지요?

쎈연필 2004-10-0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라는 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고, 엘리아스의 제자들이 저자의 <나체와 수치의 역사>라는 책을 비판한 이유도 있는 듯합니다. 더 궁금하시면 책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