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테라 2권 세트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오오! 이 만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키득키득키득…… 어찌나 웃었던지. '시가테라'의 뜻이 뭘까 궁금해서 견디기 짜증날 지경이다.

이 만화 너무 리얼하다. 탁월한 심리 묘사! 소심쟁이의 내면과 행동을 이토록 잘 그려낼 수가! 이런 상황을 즐겨 사용하는 만화들은 흔히 감질나는 스토리 전개를 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구성이 탄탄하고, 무엇보다 장점은, 밝다!

학교라는 울타리 내에서의 억압과 착취, 즉슨 괴롭힘이라든지 왕따. 괴롭히는 놈들은 대체로 자기들의 폭력행위에 무개념하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도 대체로 자신의 괴로움을 적극 표출하지 못한다. 쌍방간에 소통은 일방적이고, 당하는 쪽이 3자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나의 어린 시절, 주변을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왜 그럴까. 나는 궁금하다. 이 만화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히는 놈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게다가 놈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맛이 워낙 간 놈, 피해야 할 놈' 등등 그쪽으로 인정해줘버린다(이런 질서정연한 착취구조의 성립이라니!). 그리고 이런 상황묘사는, 너무나 리얼해서, 특히 남자라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누구나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에게 드디어 봄날이 도래하는데, 환상적인 여자애와 사귀게 된 그것. 그맘때의 남자애들이 어련히 가졌을만한 판타지를 양질껏 충족해 주는 그런 여자와의 로맨스가 이 만화의 (학교폭력과 함께) 한축을 이룬다. 어둠과 밝음. 폭력과 성적인 문제.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주인공에게서 폭력문제는 직접적 생활과 잇닿아 있다. 이성적인 문제는 (아직은) 주변부다. 육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걸 내게 대입시켜 보면, 돈과 문학이다). 주인공이 이성적인 문제에 점차 빠져들수록, (생활과 잇닿아 있는) 폭력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되고, 그러다 보니 일이 잘 풀려(?) 괴롭힘을 면하게 된다. 그래서 이성적인 문제가 점점 더 생활에 가까워진다. 정신적인 관계에서 육질적인, 감각(실체)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 

십대, 그 아름다운 시기에, 획일화 된 울타리에 묶여야 하고, 도처에 도사리는 폭력에 시달려야 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다니, 나의 십대를 돌이켜 보아도 끔찍하다. 이 만화는 그런 문제를 아주 세밀하게 잘 묘사한다. 우리의 초상화다. 따지고 보면 슬프지 아니한가. 이 만화의 주인공처럼, 대배기량 바이크를 타고 거침없이 먼 곳으로 내달리고 싶었던 그 시절. 오토바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VF를 타고 다녀서 그 쾌감을 안다(커브를 돌 때, 한쪽 귀에서는 땅의 진동소리가 들리고, 다른쪽 귀에서는 바람의 속살거림이 들리는 그 기분). 비록 사고가 한번 나서 쇄골뼈가 두동강나고 귀가 찢어지고 기절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거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싶다(다시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시절은 내 멋대로였다. 중학교 시절이 삭막했구만). 늘 탈주하고 싶었던, 그런 공간 그리고 시간이었다. 만화에서 두카티, 아프릴리아 등의 이태리 바이크 메이커나 일제 바이크 메이커가 간간이 나와서 나의 고삐리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나도 한 때 그런 꿈을 키웠었다. 오토바이크라는 잡지를 사 보며. 나는 야마하의 바이크들과 매끈한 여성미의 아프릴리아에 자주 매료되었던 것 같다. 특히나 아프릴리아 250cc는 판타지 그 자체였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아프릴리아를 얻을 뻔하지만 결국 판타지는 깨진다. 으으, 현실의 파괴력이여.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도 인정하듯, 주인공과 그 애인과의 연애는 거의 판타지다. 그래서 이 만화의 진행이 두렵다. 무서운 현실의 파괴력이 마수를 뻗칠 것 같아서. 내게서 만화란 십대의 추억과 잇닿아서, 만화를 본다는 것은 감상적인 행위이다. 때문에, 이 만화가 얽히는 쪽으로 진행된다면 나는 마음이 아플 듯싶다. 이럴 땐 얽힘과 풀림이라는 문예학을 만들어 낸 아리스토텔레스가 미워진다. 하긴, 얽힘과 풀림은 비극에 해당하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는 이 만화를 보는 내내 웃었으니, 이 만화는 희극에 가까울 것이다(믿고 싶다). 부디 이 만화의 주인공이 하는 연애가 지금처럼 알콩달콩만 하기를 바란다. 제발 얽히지 말고. (드디어 내가 순진무구한 독자로 돌아간 것 같아 진심으로 기쁘다!)

이렇게 좋은, 재밌는 만화를 선물해 주신, 알라딘의 물장구치는금붕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4-09-1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4-09-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나중탁구부는 포기하고 아무래도 시가테라(두 권짜리 맞죠?)를 택해야 할까 봐요... 장바구니로 =3=3

superfrog 2004-09-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조만간 얽히고 망가지고 좌절할 거 같은데요.. 조마조마 뭔가 일이 터질 듯한 분위기죠? 후루야 미노루가 저렇게 행복하게 둘 리가 없겠죠..;;; 다른 작품을 보시려면 두더지와 그린힐도 재밌어요.. 그린힐은 님 표현을 빌자면 밝고 두더지는 좀 많이 어둡죠..ㅎㅎ

2004-09-11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쎈연필 2004-09-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말님 이 만화 잼써요. 음, 근데 자녀들에게 읽히기 전에 님께서 먼저 읽어보셔요~^^
카이레님 저는 이나중탁구부를 싫어하는 편이라서요. 그 만화 본 지 거의 10년쯤 지난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만화였는 듯...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시가테라는 강추입니다!
금붕어님 헉! 망가지고 좌절...ㅠ.ㅠ;; 그럼 안 되는뎅...ㅠ.ㅠ

로드무비 2004-09-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최근 읽은 것들 중 최고!
리뷰 써야지 해놓고 깜빡했어요.
저는 책 읽은 즉시 리뷰 안 쓰면 못 써요.
감흥에 겨워 쓰는 리뷰라야 하거든요.
그래봤자 별로지만...^^;;;